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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다. 대학 후배들 얼굴이라도 보고 군대 가자 싶어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했다. 아! 방위(단기사병을 '방위'라고 불렀다)는 '입대' 라고 안 하지 '소집'이라고 하지.

고향이 후방이었기 때문에 그곳 사단 신병교육대에 '소집' 되었다. 정문 밖에서 "오늘 입소하시는 장병들께서는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로 시작하더니 이내 정문을 지나자 '개새끼'로 시작해서 '개새끼'로 끝나는 날이 시작되었다. 한달 전 기수는 장마철이어서 실내교육만 주야장천 하다 갔다는데 나는 뒤늦게 찾아온 더위로 4주의 훈련을 땀과 함께 지냈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이 부대는 예비군 훈련이 주 업무인 대대다. 이 대대 안에 방위들로 이루어진 현역(방위의 상대적인 의미) 중대가 하나 있는데 이곳이 내가 근무한 곳이다. 이른바 '전투방위'. 보통의 방위들 같이 동사무소나 경찰지서가 아닌 '부대'로 출근하는 방위다. 부대 내에서 훈련 등의 생활은 현역병과 똑같이 하는데 다만 출근과 퇴근을 한다. 아침과 저녁밥은 집에서, 점심만 부대에서 먹는다. 소총 사격도 하고 기관총·박격포 사격도 하는 등 일반 사병이 받는 모든 훈련을 똑같이 받는다.

1주의 자대 교육(정식 명칭이 있는데 까먹었다. 직책을 배정받기 전에 하는 일종의 적응 훈련 같은)을 받았다. 이 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동원 훈련 준비를 했다. 예비군들이 잠을 잘 텐트를 만들고 훈련장의 각종 기물들을 만들고, 연병장을 다듬고 하는 등의 준비를 2~3주 했다.

동원 훈련은 이 부대에서 가장 큰 행사고 일거리도 많아서 부대 안에서 근무하는 병사들 뿐 아니라 각 동사무소와 읍·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병사들도 전부 소집되서 일을 했는데 문제는 이 때 발생했다. 당시 막내기수였던 우리 동기 중 몇 녀석이 부대에서 나오는 '똥국' 먹기 싫다며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친구놈 도시락을 같이 먹겠다고 배식줄을 서지 않은 것이다.

'기동 중대' 즉, 부대 안에서 근무하는 방위들은 도시락 가지고 다니는 방위들하고는 다르다는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고 고참이 사격장에 '집합'을 시켰다. 전역(방위는 '소집해제')를 며칠 안 남긴 최 고참이 그 다음 기수(한 기수는 입대일이 한 달 차이난다) 엉덩이를 때린다(몇 대를 때릴지는 정해져있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때린다. 동기들이 여럿인 기수는 조금 덜 맞고 동기가 적은 기수는 좀 더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 기수 중 한 사람이 그 다음 기수를 때린다. 또 그 중 한 명이 다음 기수를…  이런 식이다. 그런데 우리 막내 기수는 선임들이 맞는 동안 원산폭격(일명 '대가리 박아')를 하고 있었다. 막내 기수는 '줄빠따'에서 열외란다. 그러니 우리 고참들은 우리 동기들 땜에 줄빠따를 맞았는데 정작 우리 기수는 열외라니 그들도 참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 한달여가 지났다. 가을바람이 선선해질 무렵 부대 점검이 있었다. 각종 무기류와 장비들을 정비하고 점검하는 거다. 난 60mm 박격포 분대 소속이어서 연대에서 나온 군수 담당자에게 검사를 받기 위해 연병장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부대 선임이 나를 부르며 "야! 넌 이병 아냐? 빨리 내무반으로 와!"라고 했다.

무슨일인가 싶어 올라가 보니 내무반에 이등병들만 모아놓고 있었다. 이병들이 침상 양쪽에 줄을 맞춰 앉아있고 그 가운데엔 처음 보는 장교가 서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정도로 엄숙한 분위기였다. '소원 수리'를 받고 있었다. 내용은 그랬다.

1. 최근에 구타를 당한 적이 있는지.
2. 선임병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진 않았는지.
3. 장교나 관리자에게 폭언, 가혹행위 등 부당한 처우를 당하진 않았는지 등등 이었다.

신병교육대에서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적어 나갔다. 물론 정답은 '없음' 이었다.

40명 정도 되는 인원의 소원수리를 전부 보더니 맨 앞줄부터 일으켜 바지를 내려보라 했다. 그 '줄빠따' 사건이 있은 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서너명이 그때 맞은 엉덩이에 피멍이 남아 있었다. 사단 헌병대에서 나왔다는 그 장교는 이유를 물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아버지한테 맞았습니다", "형하고 싸워서 형한테 맞았습니다".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굴렀습니다" 등이었다. 그럴 듯한 얘기였다. 계단에서 구른 거 빼고는. 

그러고 그 서슬 시퍼런 헌병대 장교는 대대장실에서 한참을 이야기 하고는 지프차를 타고 돌아갔다. 이등병들은 대대장실로 불려갔다. 그리 넓지 않은 방에 빼곡히 들어찬 이등병들에게 대대장도 똑같이 했다. 바지 내려봐, 어떻게 멍이 들었어?  그때 우리 중대장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우리가 대대장실에서 나올 무렵 중대장도 불려들어갔던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사건의 전모를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대대장실에 있는 동안 선임들이 모여 회의한 결과 모든 걸 자백(?)해야 부대에 징계가 적을 것이라고 판단했단다. 결국 맨 처음 '빠따'를 든, 소집해제 며칠 안 남은 상병은 영창을 14일 다녀왔고 나머지 '빠따'를 든 나머지 선임들은 2주 동안 뺑뺑이(군기교육-완전군장을 꾸리고 하루종일 연병장을 도는 것)를 돌았다. 나머지 중대원들은 그동안 사격장에서 얼차려를 받았다. 구타는 안되도 군기교육의 일환인 얼차려는 허용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이등병은 예비군 훈련장 조교로 보직을 옮겼다. 그의 형이 청와대 모처에 근무하는데 휴가 왔다가 동생의 엉덩이를 보고는 어디에서 어디로 이 이야기가 흘러내려왔다는 것이었다. 위의 높은 곳에서 이야기가 전해내려왔으니 사단 헌병대에서 직접 사찰을 나왔다는 소문이 뒤늦게 흘러다녔다.

그때 어느 고참 상병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 X발 X나게 맞아가며 짬밥 먹었더니 이제는 군대도 민주화가 되서 빠따치면 영창을 간다네. 아~ X발 드러워서~"

이 이야기가 18년 전 이야기다. 18년 동안 우리 군대는 어떻게 변했을까? 신병교육대 마지막 주차에 신병교육대 생활이 어떠했느냐고 소원수리를 받기 바로 전날 중대에서 그 예행연습을 하다가 '조교한테 '개새끼들아' 하는 욕설을 들었습니다' 라고 적은 훈련병을 중대장이 불러내어 전 중대원이 다 보는 앞에서 군홧발로 걷어차며 언제 그런 욕을 들었느냐고 다그치던 그때보다는 나아졌겠지 했다.

그런데 '기수열외', '작업열외'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도 생기고, 여전히 부대 내에서 자살하는 병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구타는, 줄빠따는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군대는 여전히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인 공간이다.

세상은 민주화 되었다(18년 전보다). 정권도 두어차례 바뀌었고 세계적인 국가 위상도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군대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는 과연 그런가?

몇해 전 어느 초등 교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해서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몇몇 연예인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군복무를 면제 받으면서 자연스레 대체복무제 논의도 사그라졌지만 분명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은 많아졌다.

'국방의 의무'를 꼭 군대에 갔다오는것으로 져야 할까? 하긴 '국방'이니 군대에서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 제대로인지는 모르겠으나 군대 가서 고생하는 만큼, 또는 그보다 더 많이 사회에 봉사하는 방법으로도 그 의무를 다할 방법도 있지 않을까? 사람을 죽이는 훈련보다 불을 끄고 생명을 구하고, 철도 건널목을 지키고,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공무원들 일손을 덜어주며, 물난리가 나면 복구공사 하는 일들도 덜하지 않는다 생각된다. 그것도 불공평하다면 군복무 기간보다 2~3배 더 많게 하면 공평하지 않을까?

위의 초등 교사 소식을 들으며 나는 탄식했다. '왜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입소하자마자 군 영창으로 가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을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세상은 변했다. 줄빠따 맞기 싫어서가 아니라, 작업열외·기수열외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소신으로, 꼭 분단된 철책을 지키고 총으로 사람을 맞히는 훈련을 하지 않아도 사회에 봉사할 방법은 수없이 많다.

덧붙이는 글 | 병영 구타의 추억



태그:#구타의 추억, #청와대에서 내려왔대, #줄 빠따, #이등병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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