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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임승수씨.
 11일 서울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임승수씨.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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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과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같은 '운동권' 교양서적을 여러 권 쓴 임승수씨가 '자기계발서'를 썼다. 임승수가 자기계발서를 쓰다니, 낯설다. 이른바 진보 쪽에는 자기계발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는, 이미 보수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말로 굳어진 '자기계발'이라는 화두를 진보의 관점에서 새롭게 다뤄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언론 홍보용으로 들어온 이 책을 '공짜로' 읽고 나니, 한마디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시간을 도둑질한 것 같아서. 대한민국 청춘의 삶이 왜 이렇게 안 풀리는지,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20대의 인생 속에 숨어 있는 '시간도둑질'의 비밀을 속 시원하게 까발려줬기 때문이다.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이 사람은 무슨 수로 이런 비밀을 알게 됐을까 궁금했다. 묘한 질투심 같은 것도 생기면서, 술을 한 잔하면 술김에 자기만의 비법을 털어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1일 저녁 서울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임승수씨를 만났다. 정말 순박한 얼굴이다.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딴짓이라고는 안 해봤을 것처럼 생긴 사람이 "딴짓을 권한다"니, 좀 뜻밖이다.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연신 "먹으면서 해요, 그냥, 편안하게"라고 하기에, 정말로 편안하게 막걸리를 한 잔 비우고 첫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책에는 유명인의 추천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추천사를 보고 책을 고르는 독자들도 있는데, 아무도 이 책은 추천 안 해준 거냐고 얄밉게 물었다.

"출판사에서는 추천사를 받고 싶은 눈치더라고요. 그래서 진심으로 승부하고 싶다 그랬죠. 곁가지는 다 빼고. 책에 제가 하고 싶은 얘기와 제 진심을 다 담았으니까. 추천사는 포장이고 알맹이는 내 글이잖아요."

사실 웃자고 한 얘긴데 뜻밖에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좀 '뻘쭘'해져서 막걸리를 한 잔 더 마시고 나도 좀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책 중간 중간에, '딴짓'에 열심인 청춘들을 인터뷰한 글이 끼어 있는데, 사실 이 사람들이 20대의 롤모델로 적합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백수'나 '루저'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들을 대체 무슨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궁금했다.

'백수'와 '루저'가 청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임승수 씀,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1년, 12000원)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임승수 씀,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1년,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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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롤모델이라고 나오는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이잖아요. 일찍 CEO가 된 사람이나, 미국 아이비리그에 가서 우등생으로 졸업한 사람이나, 워렌 버핏 같은 '돈짱'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돈꽝'이라도,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향기를 내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이렇게 매력적인 향기가 있다는 걸 보여줘서, 그 향기를 전파하는 거죠.

또 개인적인 이유는, 인터뷰를 빙자해서 그런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고 싶다는 거였어요.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젊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활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일거양득이죠."

뜨끔했다. 사실 나도, '네트워크'까지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인터뷰를 빙자해서" 이런 사람 한번 만나보는 게 목적이었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살짝 얼굴이 붉어졌지만, 묘한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 맨 앞에 나오는 글이 가수 루시드폴을 인터뷰한 글이다. 임승수씨도 그런 인터뷰가 아니면 어떻게 '연예인'을 만나봤겠냐며 웃었다. 루시드폴의 열성팬인 아내가 인터뷰에 같이 가겠다고 조르는(?) 바람에 임신한 아내와 같이 가서 인터뷰를 했단다.

대학원생 때 배우 하지원을 만난 이후로 연예인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단다. 드라마 <학교>를 보고 하지원한테 반해서, 팬미팅까지 가서 하지원한테 <전태일평전>을 선물하고 왔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빵 터진다. 서울대 공대 93학번인 그. 석사 공부를 하면서 여배우 팬클럽 활동을 했다니, 이 사람의 딴짓도 확실히 보통은 아닌 것 같다. 임승수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딴짓을 세 가지만 꼽아보라고 했다.

"첫 번째는 1996년쯤인가, 공대생이 <자본론>을 읽은 것. 저는 운동권도 아니었거든요. 하도 사람들이 얘기를 하니까 혼자 한번 읽어봤는데,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두 번째는 2006년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진보정당에서 상근활동을 한 것. 누가 하라 그런 것도 아니었거든요. 세 번째는 '글치 공학도'가 책을 쓴 것. 전 글쓰는 거 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대학교 때 리포트를 쓰면 A4 한 장을 못 넘겼어요. 만날 논설문만 나오고. 그랬던 사람이 지금, 같이 쓴 책까지 다 해서 책을 한 열 권이나 냈잖아요. 그거 자체가 참 희한한 딴짓이에요. 정당에서 활동하면서 베네수엘라혁명연구모임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공부한 걸 알리려고 하니까 수공업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책으로 알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아서 처음으로 낸 책이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예요."

참 신기한 사람이다. 스무 살 공대 새내기 시절의 임승수는 지금의 임승수를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의 청춘들은 너무 '상상할 수 있는 미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딴짓을 통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희망을 좇아 자신의 시간을 걸어보는 '딴짓정신'이야말로 청춘의 상징이자 특권일 텐데.

11일 서울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임승수씨.
 11일 서울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임승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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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앞길에 놓인 가시덤불을 치워주고파

이런 청춘들에 대한 걱정과 연민이 '대세'인 건지, 마침 서점가에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잘 나가고 있다. 같은 '청춘' 책을 쓴 저자로서 그 책이 잘 팔리는 것이 좀 배 아플 것 같기도 했다.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아픈 데 약을 발라주는 책이거든요. 하지만 그 책에서 놓치고 있는, 청춘들에게 꼭 해줘야 할 얘기가 있어요. 약만 발라줄 것이 아니라 왜 계속 아플 수밖에 없는지 알려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진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청춘들 뭐하냐' 하고 나무라거나, '선구자'처럼 순교라도 해야 할 것처럼 얘기하는 건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당장 고약을 발라서 상처가 낫더라도 앞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또 상처가 날 수밖에 없어요. 저는 가시덤불을 치우는 방법을 부담스럽지 않게 얘기하고 싶었던 거죠."

오늘도 광장에서는, 제 손으로 그 가시덤불을 치우겠다는 청춘들의 싸움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사회가 20대의 인생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 얼마 만인가 싶다.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촛불집회에 30~40대 선배들을 시작으로 50대 학부모들과 10대 '예비 대학생'들까지 함께했다. 어떤 선배들은 통닭과 피자를 사들고 왔고, 또 다른 선배들은 책을 짊어지고 와서 대학생들에게 나눠줬다.

'2차'까지 가면서 알딸딸한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몸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을 골고루 제공하는 그 '훈훈한' 장면 속에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퍽 아쉬웠다. 그래서 임승수씨는,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후배들에게 꼭 이 책을 들고 찾아가보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기사로 써버렸으니 술김에 한 말이라고 잡아떼지는 못할 거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부제가 "미치도록 '인생'을 바꾸고 싶은 청춘에게"다. 그동안 진보는, '인생'이 아니라 '세상'을 미치도록 바꾸고 싶어하는 게 옳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이제 진보도, 세상과 함께 한 사람의 인생을 보살피는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제목에서 말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래도 젊은이들의 인생이 바뀌는데 세상이 안 바뀔 리가 없다. 신나는 딴짓으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청춘들이 더 넒은 세상으로 그 행복을 전염시켜나가기를 응원한다.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 미치도록 인생을 바꾸고 싶은

임승수 지음, 위즈덤하우스(2011)


태그:#임승수, #반값등록금, #위즈덤하우스,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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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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