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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려는 측과 반대하는 측 사이의 대립은 빈번한 몸싸움을 야기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전국단위 시민단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을 지원하면서 저항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결정과 집행을 책임지는 정부, 국방부, 해군 등은 건설 강행 의지만을 재확인하고 있다. 

2007년 5월 제주도가 해군기지 건설을 공식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갈등은 본격화됐다.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도민들의 하소연과 온갖 노력은 현안에 대한 재검토를 끌어내지 못했고 올해 초 공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온 몸으로 공사를 막으려는 사람들과 공사를 강행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갈등에 관계된 모든 당사자들은 이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 이외에 달리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대결이 첨예화되고 있다.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는 것은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현안이 각자의 삶과 일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현안이기 때문에 갈등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결코 쉽게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현재의 상황을 중단시키고 현안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릴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갈등은 부안 방폐장 건설 갈등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갈등을 생각나게 한다. 전국을 뒤흔들었던 이 갈등들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채 봉합됐다. 그로 인해 발생했던 사회적 비용은 아무런 보상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개인 및 공동체의 상처도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 다시 전국을 뒤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무엇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첨예한 사회갈등을 해결할 어떤 새로운 접근 방법도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끝없는 갈등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민주사회 수준 보여주는 갈등 대응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갈등에 대응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다.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 그것도 정책과 관련된 사회 갈등을 어떻게 잘 다루고 해결하느냐는 한 사회의 역량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수준을 말해준다. 정책 결정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해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회는 파괴적인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갈등의 건설적인 전개를 통해 갈등의 해결은 물론 사회 환경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적 역량이나 민주주의 수준을 갖추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첨예한 사회갈등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중앙정부 및 제주도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걸린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했고 반대하는 많은 목소리를 외면함으로써 갈등에 불을 지폈다. 그 후 정책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하소연이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한 정책결정자들과 정치인들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제 해군기지 건설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첨예화된 갈등이 가져온 이 긴급한 상황은 역으로 한 번 더 우리 사회의 갈등 대처 역량과 민주주의 수준을 점검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갈등해결 과정 마련돼야

해군기지 건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계된 당사자들 모두가 참여해 문제를 공동 점검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과정이 마련돼야 한다. 갈등이 첨예화된 상황에서 반목하는 당사자들이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당국 또는 제3자 집단에 의해 안전한 대화와 협상 공간이 마련된다면 당사자들이 마주앉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은 이대로 두면 끝없는 정체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재의 대립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진행됐던 갈등은 당사자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논의할 수 있는 대안적인 과정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악화됐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마주앉아 대화와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과정은 세심하고 조직적으로 계획되고 진행돼야 한다. 현재는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반드시 그들을 접촉하고 설득한 후 과정을 계획하고 진행할 전문적 제3자 집단이 구성돼야 한다. 갈등은, 특히 이번 갈등과 같이 첨예화된 갈등은 그냥 완화되거나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계획된 과정을 통해서만 점진적으로 파괴적인 전개에서 건설적인 해결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해결 과정에 참여해야 되는 것은 먼저 당사자인 강정마을 주민들, 중앙정부, 국방부, 해군 등이다. 또한 제주도청, 제주도의회, 제주 시민단체들도 당연히 과정에 초대되어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전국단위 시민단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들도 참여시켜야 한다. 과정에서는 이미 밝혀진 찬성과 반대 입장의 되풀이가 아니라 입장을 뒷받침하는 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와 실질적인 삶의 필요가 언급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그런 후 밀도 있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모두가 함께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해결 과정 진행이 합의되면 먼저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의 공사 중단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사실 공사 중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반대하는 당사자들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해결 과정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가장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해결 방법이다. 물론 상당기간 공사가 중단될 수 있고 당장 해결책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힘들지라도 이런 해결 노력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의 비용과 공동체의 파괴, 제주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 그리고 그로 인한 전체 국민들의 정서적 스트레스와 삶의 질 저하를 생각한다면 어렵다고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공사를 강행한다 할지라도 예전의 사회갈등 사례에서 봤던 것처럼 저항은 계속되고 공사도 시시때때 중단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렵고 길더라도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동시에 유일한 방법이다.

정부와 국방부 등 힘 있는 당사자들 결단해야

해결 과정이 실현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힘 있는 당사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책임진 정부는 결정 과정에서 범한 잘못을 외면하고 이미 공사가 시작됐으니 할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그렇게 열망하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제대로 된 시민참여 구조가 마련되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는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정부기관 게시판에 댓글 달게 해주고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게 해주는 것은 시민참여가 아니며 그것이 민주주의 수준을 올려주지도 않는다. 정책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무엇보다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갈등 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발도상국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국방부와 해군은 해군기지 건설이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과 국방사업이 마치 성역인 것처럼 포장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국가안보는 국민 개개인의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담보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으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각종 산업계의 이익과 직접 연결돼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공사가 14%이상 진행됐으며 공사가 중단될 경우 월59억 원의 국가 예산이 손실된다는 주장도 국가 예산 손실을 막기 위해 많은 국민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외면하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그것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국방부나 해군이 할 수 있는 발언은 아니다. 국민의 안전은 적으로부터만 보호돼야 하는 것이 아니다.  

현 상황에서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도민들에게 가장 큰 힘이 돼줄 수 있는 것은 5개 야당들이 공동 구성한 국회진상조사단이다. 몇 년 동안 진행된 갈등을 두고 이제 와서야 야당들이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는 것은 참으로 뜬금없고 실망스런 일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그들을 뽑아 국회에 보내준 국민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국회진상조사단은 지난 몇 년 동안의 문제 외면을 반성하고 정부 및 여당과의 협상을 통해 해군기지 건설 갈등이 파괴적인 전개를 끝내고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모색해야 한다.

다시 반복하자면 갈등은 인간 사회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당황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제대로 다뤄지지 않을 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갈등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또 다른 절망이 될지는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전향적인 태도와 결단에 달려 있다.


태그:#강정마을, #갈등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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