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스승의 날 기념 영상
ⓒ 이선영

관련영상보기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엄마", "아빠", "뭐예요?" 가 전부였던 22개월 딸 채원이가 2년 전 부천 공동육아 우리노리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작했다. 나는 자기표현에 서툰 어린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익숙지 않은 공간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놀이도 하고, 낮잠도 자고, 밥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쉬울 리 없으리란 걱정으로 매일 아침 채원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한 달이 다 되어도 이 녀석이 울지 않는다. 첫 등원한 아이라면, 아침에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와의 잠시 안녕 인사 후 대성통곡하기를 적어도 일주일은 할 것이라던 여러 사람들의 예언이 채원이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그간 딸아이와 나의 애착형성이 훌륭했나 으쓱해 하기도 하면서 나는 어린이집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는 채원이를 자랑스레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조금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채원이가 어린이집에서 엄마를 찾으며 보채거나 울어야 하는데..." 라고.

황당하고 어리둥절했다. 두 돌도 지나지 않은 녀석이 이렇게 잘 해내고 있는데 오히려 울지 않는 것이 걱정이라 하시니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등원 두 달째 접어든 채원이가 드디어 어린이집 앞에서 대성통곡을 시작했고, 그 통곡은 그 후로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터져버린 아이의 울음으로 당혹스러운데 선생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웃으시며 또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드디어 채원이가 울었네. 잘했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예상 밖의 이야기로 헷갈려하는 나에게 선생님들은 아이를 바라보는 건강한 눈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셨다. 한 달 동안 분명 채원이는 힘들고 어렵고 불편했을 터인데,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선생님들은 안타까워했고, 한 달이란 조금은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 채원이가 대견하다는 것이 선생님들의 설명이었다.

또한 아이들은 '내 마음 나도 몰라' 가 아닌 '내 마음 내가 잘 알아' 가 될 수 있어야 하고, 그 마음을 건강한 방법으로 잘 표현 할 수 있도록 교사와 부모가 함께 도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도덕적인 아이, 반듯한 아이, 모범적인 아이를 강요하지 말고 엄마의 이성을 아이에게 요구하지도 말라 당부했다.

세 살 아이는 세 살로만 봐 주세요

그렇게 두 달여 통곡의 시간을 지내고 난 후 조금 편안해졌다 싶은데, 다시 채원이의 손톱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는 나이여서인지 채원이가 속상한 마음을 손톱으로 다른 친구나 언니 오빠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얼굴에 상처 입은 아이도, 말이 어려워 손이 먼저 나간 채원이도 안타까워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저 채원이에게 "꼬집는 것은 절대 안돼!" 라는 도덕적 잣대만 계속 들이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얼굴에 상처 내는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던 어느 날, 나는 어린이집 안에서 많은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펑펑 울어버린 바보 같은 일도 저질렀다.

그때 엄마인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채원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줘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기에, 겨우 세 살 먹은 아이에게 온갖 도덕적인 이야기를 해대고, 협박도 하고 눈을 부라리며 혼내기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 줄 알았다.

겨우 말이 튼 아이에게 엄마가 무조건 옳음을 강요하고 있는 내 모습에 선생님은 따끔한 충고를 하셨다. "채원이는 세 살 이예요. 채원이에게 열 살 아이를 요구하지 마세요." "채원이는 세 살답게 잘 자라고 있는 너무 행복한 아이입니다."

친구 얼굴에 상처내고 다니는 녀석더러 행복한 아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또다시 당황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세 살 된 채원이가 조금 더 능숙하게 자기 마음을 언어로 표현 할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좀 기다리라는 주문을 하신다. 언어가 늘수록 감정을 몸으로 해결하는 일이 점차 줄어 갈 것이기에 그 속도를 엄마가 아닌 채원이에게 맞추고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채원이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기 마음을 몸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기에 행복할 수 있다고. 딱 세 살 아이라고.

더불어 아이들의 모둠시간을 통해 얼굴에 상처 난 아이들의 마음도 보듬어 주시고 어린 동
생의 행동을 어찌해야 할지 아이들 스스로 이야기 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하셨다.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한다는 누구나 하는 말을 나 역시 입버릇처럼 하곤 했었는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등원하자마자 선생님께 혼나가며 배워보니, 아이가 어른답게 크길 강요하고 아이가 행복한 방법이 아닌 내 맘이 편한 방법으로 육아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 이후 난 이제 다섯 살이 된 채원이를 다섯 살 아이로 보는 것과 채원이에게 엄마마음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기에 여전히 헤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살아가면서 쉽지만 않은 것이 관계와 인연인데, 채원이와 우리노리 아이들이 그려내는 어린 시절의 바탕그림을 넉넉함으로 지지하는 삶의 자랑스런 동반자 우리노리 선생님들.

긴 목 빼고 바라본 세상의 입체적 경험을 나누는 기린
서그러운 살손, 소담스런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살찌워 주시는 사과
산드러지고 살 거운 마음씨의 소유자 달코미
순박하고 진실한 슬기주머니 포도
듬쑥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작은 별
마음결이 올곧고 고운 앵두
암팡지고 옹골찬 참깨
시원스런 웃음으로 아이들 마음을 적시는 옹달샘
당신들은 우리 아이들을 가꾸는 농부이며 또 다른 이름의 어머니이다.
선생님들의 사랑과 신뢰가 함께여서 행복한 시절이다.
선생님들의 사랑과 지혜의 나눔에 최선의 박수를 드리고 싶다.

우리노리 선생님들의 흐르는 교육과 사랑 나눔으로 인해 사람냄새 풍겨서 좋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전히 헤매고 있는 엄마와 한결 같이 지지해 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다섯 살 채원이는 눈꼽만큼도 어른스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딱 다섯 살 아이로!


태그:#스승의 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