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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셋째주는 니카라과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산 세바스찬 축제(San Sebastian Festival)가 디리암바(Diriamba)라는 마을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가진 가이드북에도 니카라과의 대표적 볼거리로 이 축제 사진이 소개되고 있었다. 화려한 색색의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퍼레이드하는 사람들... 그들의 과장된 겉치장이 참 인상적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말 억세게 운이 좋았던걸까? 우리가 마나과에 머무르는 동안 그 축제기간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축제가 열린다는 디리암바는 차로 40분이면 족히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이 아니던가? 뿐만 아니다! 호세 아저씨 말로는 마침 오늘이 바로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있는 날이라니,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친다는 건 땅을 치고 후회할 일. 벌써부터 사진 속의 현장에 직접 들어갈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우선 축제의 현장에 가기 위해서 어떤 교통수단을 택하느냐가 문제였다. 버스를 타고 직접 찾아가기에는 지역정보도 없는데다가 아무래도 시간적으로도 무리일 듯 하여, 택시를 대여하기로 했다. 오늘도 역시 친절한 호세아저씨는 기꺼이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주셨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디리암바라는 곳은 생각보다 아담한 마을이었다. 거리는 이미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나선 니카라과 사람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취재진들로 장사진이었다. 그들의 행보를 따라가니, 곧 성당이 있는 마을 광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쪽에선 마림바(marimba), 기타, 피리 등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과 무용수들의 춤이 한창이었다. 축제는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어찌나 흥에 겹던지,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이끌려 퍼레이드 옆에서 발을 맞추며 춤을 추고 말았다. 낯선 곳에서 생동감 넘치는 진짜 니카라과를 접하는 듯한 기분이다.

춤을 추며 행진하는 사람들. 양 손에 악기를 들고 '찰찰찰~' 소리를 내고 있다.
 춤을 추며 행진하는 사람들. 양 손에 악기를 들고 '찰찰찰~' 소리를 내고 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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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토속 문화와 스페인 가톨릭 문화가 만나다!

니카라과 사람들에게 보여진 스페인 사람들의 '첫인상'이 이러했을까? 축제에 참가한 많은 이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식민지 시절 백인들의 모습을 풍자라도 한 듯한 모양새다.

스페인 사람들의 얼굴을 표현한 가면을 쓰고 있다.
▲ 엘 구에구엔세 스페인 사람들의 얼굴을 표현한 가면을 쓰고 있다.
ⓒ 하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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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해지는 무용과 음악, 의상 퍼레이드를 통틀어 엘 구에구엔세(El Gueguense)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뜻이 '앞에서는 복종하는 듯 하나 뒤에서는 그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라는 의미라는데... 그렇다면, 과연 니카라과 사람들이 가면 안에 감추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는 우리 땅, 물렀거라!"

니카라과 사람들은 손에 들고 있는 악기로 '찰찰찰~' 소리를 내며, 마치 자신의 나라에 침범해온 옛 스페인 사람들을 내쫒기라도 하는 듯한 춤을 추고 있다. 이렇게 엘 구에구엔세는 스페인 식민 통치에 대한 니카라과 사람들의 저항의식을 축제로 승화시킨 일종의 풍자극이라고 한다. 그들을 보고있자니, 마치 서민들이 탈을 쓰고 양반들을 풍자했다는 우리내 봉산탈춤의 한 장면을 니카라과 버전으로 보는 것도 같았다.

니카라과 민속악기로 연주하고 춤을 추며 행진하는 씨끌벅쩍한 무리를 보면 산 세바스찬 축제는 단지 종교적인 축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이색적인 축제의식은 스페인으로 부터 전파된 카톨릭 문화와 니카라과 토속 문화가 융합되어 또하나의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니카라과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소녀들
 니카라과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소녀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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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던 축제의 사람들은 디리암바의 중앙 성당 안으로 들어가 경건하게 노래를 부르며 카톨릭 의식을 치뤘다. 의식을 마친 후, 마을의 수호 성인 산 세바스찬(San Sebastian)의 형상을 받들고 나오자, 성당의 종이 울리고 일제히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매캐한 폭죽 연기가 온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산 세바스찬 축제 축제가 열리는 디리암바 마을의 수호 성인 산 세바스찬이 다른 성인들을 만나기 위해 성당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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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성인이 한 자리에 만나다!

일주일 축제기간의 하이라이트인 이 날은 디리암바의 산 세바스찬(San Sebastian)이 드디어 인근에 있는 두 마을의 수호성인들을 만나는 날이다. 만나는 장소는 돌로리스(Dolores) 마을의 성당.

우리도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일찌감치 세 성인이 모인다는 성당 앞에 도착하였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축제에 '먹거리'가 빠질 수가 있더냐? 마을 입구에서부터 바비큐 냄새가 이미 온 거리에 진동하고 있던 터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거리음식만큼 훌륭한 문화경험이 또 어디있을까? 아까부터 참을 수 없는 유혹적 냄새로 식욕을 자극시키던 고기굽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우리도 모르게 걷고 있었다.

산 세바스찬 축제 중, 돌로리스 마을의 북적북적한 거리 풍경.
 산 세바스찬 축제 중, 돌로리스 마을의 북적북적한 거리 풍경.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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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 본 거리음식, 프리탕가(Fritanga)

프리탕가
 프리탕가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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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탕가는 니카라과의 '길거리 음식'을 일컫는 말이다. 거리 한편에선 양념을 한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그릴에 굽기가 한창이었다. 구운 닭고기나 돼지고기는 양배추와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와 플렌테인을 썰어서 튀긴 토스톤(tostones)과 함께 먹는다. 고기는 간이 잘 베어있어 짭조롬하며, 샐러드는 새콤 시원하고 토스톤은 바삭하고 고소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돼지고기는 내 입맛엔 좀 질긴 듯 했다. 오른쪽 사진은 비고론(Vigoron). 플렌테인 나뭇잎을 접시로 하여 그 위에 익힌 유카, 양배추와 토마토를 넣어 만든 샐러드, 그리고 돼지 껍데기 튀긴 것을 올려 먹는다.

산 세바스찬 축제 동안은 디리암바 지역주민들이 준비한 니카라과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귀한 기회이기도 하다. 음식 사이로 파리가 좀 날리고는 있었지만, 별 대수롭지 않았다. 축제의 현장 한 가운데서 현지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호세아저씨는 거리음식을 즐기는 우리를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후에도 자주 프리탕가를 먹었지만 특별히 탈이 난적은 한번도 없었다.

세 수호 성인이 만나는 자리. 돌로리스 성당을 지키고 있는 성녀의 형상이 마중나가 세 성인을 인솔해 온다.
 세 수호 성인이 만나는 자리. 돌로리스 성당을 지키고 있는 성녀의 형상이 마중나가 세 성인을 인솔해 온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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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다른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사이, 멀리서 각자 마을의 수호 성인을 상징하는 '반데라(bandera, 깃발)'를 앞 세운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축제의 본격적이 하이라이트에 도입! 드디어 세 성인이 만나는 순간이다. 일찌감치 기다리던 사람들은 돌로리스 성녀의 형상을 받들고 나와 세 성인을 맞이하였다. '쿵쿵쿵' 북소리가 울리자, 반데라를 휘날리며 차례로 세 성인이 성당 안으로 입장한다.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흔들며 환영과 기쁨을 나누기 시작했다. 북소리에 맞춰 박수치는 우리의 모습이 주변의 니카라과 사람들과 별 다름이 없었다. 세 성인이 각자의 자리에 안치되자, 사람들은 경건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반데라를 휘날리며 산 세바스찬 수호성인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반데라를 휘날리며 산 세바스찬 수호성인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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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에도 백두산 천지가 있었다? 라구나 데 아포요(Laguna de Apoyo)

그렇게 한바탕 치뤄졌던 이색적인 축제의 기분을 간직하며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름다운 화산 호수, 라구나 데 아포요(Laguna de Apoyo)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카타리나 마을의 전망대(Catarina Mirador)에 들렸다. 시야가 탁 트이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이 호수가 간직한 고요한 아름다움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예술작품이었다. 그렇게 대규모의 화산 호수를 보고 있자니, 백두산의 천지가 떠올랐다.

마치 맑고 푸른 야구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 라구나 데 아포요 마치 맑고 푸른 야구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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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에는 이처럼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호수가 여러개 있지만, 이곳은 다른 화산 호수와는 달리 물이 깨끗하고 차갑지 않아 수영이나 카약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호수의 중심부는 고깔 모양으로 생겨서 근처에 가면 마치 하수구에 빠지듯 가라앉고 만다고 하니, 어째 좀 무섭다. 게다가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수심 200미터, 중남미 전체 지대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고 한다.

이렇게 좋은 경치를 보며 앉아 있자니, 마음마저 푸른 호수 위로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다. 이런 기분을 풍악과 함께 즐기는 것을 '사치'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만, 우리는 거금 200 꼬르도바(약 미화 9달러)를 지불하고 네 명의 거리악사들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특히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 민속 악기라는 나무 실로폰 마림바(marimba) 소리가 맑고 아름다웠다. 그들의 연주곡 가운데 '니카라과 니카라기타(Nicaragua Nicaraguita)'라는 곡의 멜로디는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5곡의 연주를 마친 후, 앙콜로 신청곡을 받았는데 유일하게 아는 곡, '라쿠카 라차'와 '라밤바'를 요청했다.

거리의 악사. 마림바 밴드
 거리의 악사. 마림바 밴드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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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수도 마나과를 둘러보며 니카라과의 역사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경험을 했다면, 오늘은 니카라과의 문화에 취한 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이제 우리는 오늘로써 마나과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냈다. 내일은 배낭족의 천국이라는 그라나다(Granada)로 이동한다. 호세아저씨의 걱정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의 집을 떠나 본격적인 우리 부부만의 배낭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곧 만나자, 그라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1년 1월 2주간의 니카라과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하연주, 박인권 부부가 공동 작성하였습니다.



태그:#산 세바스찬 축제, #디리암바, #니카라과 여행, #니카라과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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