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지난해 12월 31일, 5년에 걸친 활동을 종료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부족함 등의 문제가 있어서 진일보한 위치에서 새로운 시작이 요구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청 받은 사건을 처리하였는데 한국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발생한 민간인 피해사건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신청기간이 1년으로 짧았으며, 홍보 부족 등으로 인하여 실제 발생했던 사건의 극히 작은 부분만이 신청되어 처리되었다. 신청되지 않은 많은 사건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미 진실규명된 사건으로 미루어 그 사실 여부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규명한 사건에 대해서 희생자와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제40조(과거사연구재단 설립) 규정에 '과거사연구재단'을 설립하여 후속 조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처리하도록 규정하였으나 정부의 무성의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내외 심포지엄의 개최, 연구 용역의 의뢰 등 심층 연구를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9년에 과거사연구재단의 설립,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 유해 발굴 및 발굴 유해의 안장 등을 국회와 대통령에게 정책건의를 하였다.

 

배·보상 특별법 제정은 '기본법' 제34조(국가의 의무) 및 제36조(피해 및 명예회복) 규정, "국가는 진실규명사건의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과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한 규정에 입각하여 정책 건의를 하였다. 이들 정책 건의는 '기본법' 제32조(보고 및 의견진술의 기회의 부여) 규정에 의하여 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을 최종 종료하면서 작성하게 되어 있는 종합보고서의 종합권고 부분에서 다시 한번 국가에 권고되었다.

 

이 중에서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 배·보상 특별법 제정의 당위성 및 필요성에 대하여 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법치주의 국가의 원칙 문제이다. 국가 법치주의 차원에서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를 당한 경우에 국가는 마땅히 배상을 하여야만 한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발생한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는 진실화해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이 이미 진실규명을 한 사실이다.

 

당시 피해를 당한 많은 분들은 절차적 불법은 물론이고 거짓, 오인, 누명 등으로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 이러한 국가의 잘못된 행위로 피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이 오랜 기간 겪어야 했던 연좌제 등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피해에 대하여 과거지사로, 불가피함을, 그리고 국가재정의 부담 등을 이유로 배·보상을 회피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둘째, 추가적인 진실규명의 필요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많은 사건이 신청되지 않아서 진실규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가 일정 부분 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을 함으로써 전체 사건에 대한 실체 규명의 확실한 실마리를 확보하게 된 만큼 배·보상을 통하여 미처 진실규명이 되지 못한 많은 사건을 다시 신청 받아서 진실규명을 해야만 한다.

 

추가적인 진실규명은 이미 이루어진 진실규명을 토대로 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사활동 시한에 쫓겨 충분한 조사와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심의하여 진실규명을 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당시 '군법회의'의 판결을 받은 사건은 형식적으로 군사재판을 받은 사건이라고 해서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당시 군법회의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의 유무 여부에 대한 논란과 이와 관련한 위헌 시비 뿐만 아니라, 체포·구금, 수사 과정 및 결과, 그리고 재판 절차에서의 중대한 불법 행위 등 많은 문제점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러한 불법 사실을 파악하고서도 이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사건 당시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고, 특히 군법회의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이들 재판의 수형자를 심의하여 희생자로 결정한 바 있고,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을 개정하였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피해 사건의 경우에도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막바지에 이르러 미군 행위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에는 진실규명 불능으로 처리하였는데 사실 이러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거나 설혹 그러한 자료가 있다하더라도 그 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 이를 고백하는 군사 자료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고, 그러한 자료가 있어도 그것을 '용기' 있게 외부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데 대하여 깊은 회의감이 든다.

 

미군의 '양심선언'을 기대하라는 것인데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기본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사건을 처리하면, 미군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은 피해자가 입증할 사항이 아니라 불법 가해자의 혐의를 받는 미군이 자기 변호 내지 방어적 입장에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 등을 먼저 제시해야 하는데 당사자인 미국은 지금까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셋째, 다른 유사한 사건의 처리와 비교한 형평 문제이다. 해방이후 굴곡진 역사의 피해자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보상'이 이루어졌다. '민주화운동 보상', '5․18민주화운동 보상', '삼청교육피해자 보상' 등이 그렇다.

 

그리고 피해에 대한 보상은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로 정부가 재정을 지원한 경우가 있다. '거창사건'의 경우 합동묘역관리사업 지원, '제주4․3사건'의 경우 위령사업 지원, 제주4․3 관련 재단 출연, 의료 및 생활 지원금 지급, '노근리사건'의 경우 의료지원금 지급, 위령사업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이 밖에 가해자 등 사건의 성격이 다르지만 '군사정전 협정체결 이후 납북피해사건'의 경우 정부가 정착금·피해위로금·보상금·의료지원금을 지급하고 관련 단체에 대하여 사업비 보조를 하며, '6·25전쟁 납북피해사건'의 경우 정부가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납북자 가족단체 등에 재정지원을 하도록 관련 법에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와 비교하여 보면 유독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한 사건,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실질적인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유사한 사건의 피해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형평성을 상실한 것으로, 한국 전쟁 피해 사건의 본체에 대해서는 무시 내지 방관하는 것이다.

 

넷째, 당면한 문제의 해결이다. 피해자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오고 있다. 소송의 쟁점은 소멸시효인데 우리나라의 지난 현대사가 독재정치, 오랜 기간의 군부통치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피해자 유족들이 억울한 피해에 대하여 사건을 진실규명하고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정해진 기간 안에 과연 제기할 수 있었을까 하는데 대하여 깊은 회의감이 든다. 이러한 이유로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데도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소멸시효의 경과 여부에 대하여 각 심급 법원의 판단이 달리 나타나고 있어 법원의 최종 결정이 미루어지고 있다. 법원이 소멸시효가 경과된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에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불복이 이어질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법원이 소멸시효가 경과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국가가 배상을 하도록 판결하는 경우에는 많은 유사한 사건의 당사자가 연달아 소송을 제기하여 소송의 폭주 사태가 발생할 것이며, 재판 결과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서 사건 간의 형평을 상실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가 제기되어 피해자 및 그 유가족, 전문가 및 단체 등에서 많은 연구와 논의를 하여 왔으며,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도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정책건의하고 권고하였다. 이제 국회와 정부는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하여 추가적인 진실규명을 하고,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기준을 정하여 일괄적으로 배·보상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고, 원칙과 형평을 유지하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또한, '기본법'에 규정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의 목적인,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실현하는 것이다.


태그:#배상 특별법 , #한국전쟁 피해, #진실화해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부패방지위원회 및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개혁적 입장에서 새로운 정보 등 취득 및 공유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