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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부분의 교단은 목회자 정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몇몇 교단은 몸과 혼이 다할 때까지 목회를 할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목회자 정년을 70세로 정하고 있는 교단에서도 세상 제도에 비해 너무 길다며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힘은 나이로 재단할 수 없다며 80세, 90세까지 목회를 할 작정인 목회자들에게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탐욕'이다. '탐욕'은 지나친 욕심을 말한다. 이것에는 물질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도가 넘치면 탐욕이 되는 것이다.

이동원 목사는 침례교 목사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 설교가로도 이름이 높다. 그가 작년 은퇴를 하고 후임자에게 메머드교회인 분당의 지구촌교회를 물려주었다. 침례교는 목회자 정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아는 몇몇 이름 있는 침례교 목사는 8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젊은이 못지않는 정력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자찬한다. 거기에 머문다면 노욕으로 봐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먼 미래(?)를 대비해서 아들과 사위를 후계자로 키우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정말 고소를 금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전(殿)인 교회를 개인 재산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개인이 일군 사업체도 창업주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기가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교회만은 무사통과이다.

이동원 목사는 작년 나이가 만 65세였다고 한다. 한국 교계의 보편적 정년 나이인 70세에 5년이 부족한 연치(年齒)이다. 그는 그 나이에 은퇴를 했다. 내가 정기 구독하는 <목회와 신학> 2011년 1월호 권두 대담으로 그가 나왔다. 은퇴 이후의 근황과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을 대담형식으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이동원 목사에 대해 잘 몰랐다. 단지 그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해서 신도시에 교회를 개척, 대형 교회로 성장시켰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의 책도 많이 읽은 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그에게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뚜렷한 이유를 갖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아내의 강권으로 이 목사님이 주 강사인 설교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경기도 가평의 심산유곡에 위치한 필그림하우스에서 4박5일의 짧지 않은 일정으로 설교 클리닉을 강행군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 세미나에서 설교의 부족한 점을 많이 지적 받고 교정 받을 수 있었다. 40명 가까운 목회자들도 모두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후일담을 남긴 세미나였다. 이동원 목사와 장시간 얼굴을 맞대고 지내기는 처음인데, 나는 그 기간 동안 그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만 했다. 뚜렷한 이유 없는 부정적 인식에서 이유 있는 긍정적 인식으로...

'이유 있는'의 범주에 처음 위치해야 할 것이 그의 성실성이었다. 그는 작은 것에도 성실함을 잃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근면 성실이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쉬 나올 수 없는 행동, 그는 그렇게 그 세미나에 임했다. 강해 설교에 있어서의 1인자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따라 붙는데, 정말 그는 강해 설교뿐만 아니라 대지 설교, 주제 설교, 원어 설교 등 설교의 전 영역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실력을 소유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따라서 그의 클리닉은 날카로우면서도 정확했다. 수요일이 포함된 세미나 일정이어서 삼일 밤 예배를 그곳에서 드려야만 했다. 나는 훈련 받는 우리끼리 순서를 정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목사님이 인도하고 설교와 축도까지 다 담당했다.

침례교 예배는 아주 보수적 예배로 나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교단이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있고 또 우리 교계 교단 중 보수 색채를 가리자면 침례교가 결코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날 예배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다. 그의 옷차림부터 청바지에 티 차림으로 나왔다. 다만 목회자임을 알려주는 것은 목에 두른 로만 카라 정도였다. 예배 순서도 약식에 가까웠다. 신앙고백도 없었고, 헌금 순서도 없었으며, 찬송도 순서에 딱 한 번 들어가 있었다. 나는 이런 예배 형태에 대한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수적 예배를 예상한 나에게 기존 진보 성향의 교회보다 더 형식을 벗어난 예배 형식이 나에게 참신하게 다가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그곳에서의 세미나는 이동원 목사에 대한 상(像)을 일정 부분 교정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1월 31일), 새벽 기도회 끝나고 침대 머리맡에 있는 <목회와 신학> 1월호 '아름다운 퇴장,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동원 목사 대담 기사를 읽은 것이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그가 은퇴를 하면서 "나는 돈을 위해 목회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어서 기뻤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든든한 후임자에게 교회를 물려줄 수 있어서 좋다는 것, 그리고 후임자와 3년 동안 장기적인 멘토링 관계를 맺어 후임자의 사역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며 흡족해 한 대목이다.

그는 은퇴하면서 '다섯 가지 참회, 다섯 가지 감사, 두 가지 기대'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다섯 가지 참회 중 첫 번째가 조국의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지 못한 것을 들었다. 이것은 의외의 언급이다. 우리나라 교계는 다 알다시피 진보와 보수로 확연히 나뉘어진다.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중심의 진보 성향 목회자들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중심의 보수 성향의 목회자들로 확연히 구분된다. 이번에 우여곡절 끝에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담임)가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되었는데, 그는 극보수 신앙의 옹호자로 대과 없이 대표 회장의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 높다.

이동원 목사의 고백은 대단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목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참회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도 자기 목회 나아가 삶의 정체성을 해칠 수도 있는 과거 민주화 운동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에 대한 참회는 극보수 신학을 맹종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이 목사님의 과거를 몽땅 거부해 버릴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만큼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은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목회자들은 먼저 하나님 앞에 솔직해야 되고 또 사람들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동원 목사는 대단한 사람이다. 끊임없이 정의 앞에서 자기 정체성을 바로 세워나가는-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보완해 나가는 모범된 목회자 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과거 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회니, 또 한기총의 극우 세력들이 주최하는 시국 집회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목회자들이 앞 다투어 차마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서슬퍼른 저주의 말을 쏟아낼 때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이런 데 나와서 자리를 채워주어야 할 사람이 다른 일정이 겹쳐 나오지 않은 것으로 쉽게 여겼다. 하지만 그가 은퇴 후 밝힌 고백에 의하면 그는 민주화운동에 일정 부분 빚진 마음으로 이런 집회에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람이 드문 세상이다. 좌와 우로 나뉘어져 서로에게 삿대질 해대기 바쁜 시절이다. 목회자들도 다를 바 없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를 질시하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대표적으로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부산에 잡혀 있는데, 그것을 지지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몇몇 극우 보수 교단에서는 WCC 부산 총회를 조직적으로 저지하겠다며 총회를 반대하는 연대 회의까지 만들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자기 신앙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신앙은 그르다는 색안경을 낀 신앙인의 작태로밖에 볼 수 없다. 이단이 발호해서 우리의 갈 길을 어지럽히고 있는 마당에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 쏘려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니다.

이런 때, 이동원 목사의 고백-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지 못한 일에 대한 참회-은 한층 돋보인다. 군사독재 체제에 운신하지 못하던 때, 소수의 진보적 목회들이 종로 5가 기독교회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권과 사상 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을 때, 대다수 목회자들은 이들을 외면하고 개인과 개교회의 유익만을 좇고 있었다. 교회 부흥과 정치 목사들이 이런 시대상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있을까?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100세 노인을 운위할 날도 멀지 않다고 한다. 이럴 때 65세에 정년 은퇴를 해서 교계에 아름다움을 선사한 이동원 목사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은퇴 전보다 은퇴 후가 더 바쁜 사람들이 있다. 이동원 목사도 남은 사역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들을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목회 리더십, 설교 클리닉, 영성, 기도의 영역 넓히기 등 교파를 초월해서 한국 기독교를 더 건강하게 세우는데 필요한 항목들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와 일치한다. 은퇴 후 그의 건강한 활동을 기대한다.


태그:#이동원 목사, #조기은퇴, #민주화운동, #침례교, #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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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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