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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이날은 꼭 검단산에 올라 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산책로를 품고 있는 걷기 좋은 낮은 산을 헤이리 지척에 두고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것은 나의 게으름 탓이다 싶었다. 하지만 모티프원의 청소가 늦어지는 바람에 결심은 다시 무산되었다.

검단산에서는 오두산의 통일 전망대가 눈 높이로 다가오고 그 아래의 자유로가 시원하게 펼쳐진 모습를 조감할 수 있다.
 검단산에서는 오두산의 통일 전망대가 눈 높이로 다가오고 그 아래의 자유로가 시원하게 펼쳐진 모습를 조감할 수 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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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2센티미터는 족히 온 듯했다. 눈이 흔하다는 올 겨울, 헤이리에서 눈을 맞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전히 도회지에 발을 걸친 내 직장생활 탓이다. 지난번의 눈도 아직 녹지 않은 상태이므로 적설양이 더 많아 보였다.

바쁜 남편을 두고 해모와 함께 오르기로 했다. 엄마가 해모와 함께 검단산을 타고 검단사까지 함께 산행을 했다는 것을 알면 영대가 얼마나 좋아할까.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산행을 한다는 것이 어려울 줄 알면서도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

아침 9시 30분에 완전무장을 하고 해모를 앞장세우고 출발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지만 해모가 있으니 든든했다. 눈길이어서 영어마을 정문 앞의 내리막을 내려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헤이리 사거리를 지나 성당 윗길에서 등산로 입구를 찾고 있는 중에 마침 하산하는 분을 만났다. 사실, 등산로 입구가 이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이 길을 오갔다. 단지 발자국을 따라 가리라 마음 먹었었지만 눈이 덮힌 탓에 쉽지 않았다. 그때 등산복 차림으로 내려오시는 아저씨를 만난 것이다. 등산로 입구는 넓은 차도에서 불과 20m 지점에 있었다.

검단산으로 오르는 초입길
 검단산으로 오르는 초입길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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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산이 많이 가팔랐다. 미끄러지면서 열심히 걸었다. 인적 없는 산으로 들자 해모는 신명이 나서 이곳저곳을 마구 뛰어다니면서 좋아했다. 산이 깊어질수록 해모는 서너 발자국만 나를 앞서갔다. 앞서가다가도 수시로 뒤돌아보면서 끊임없이 나의 존재와 안전을 확인했다. 든든한 아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만 개지 순하고 착한 심성은 사람 못지않았다.

오름길을 한참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이는 정상에 닿았다. 겨울의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산 아래의 마을과 들이 넓게 펼쳐졌다.

"아, 정말 오길 잘했다! 해모야! 너도 좋지? 이제 우리 뒷풍경도 감상하면서 천천히 걷자!"

나는 해모와 얘기했다.

산행을 하면 언제나 난 뒷풍경들이 더 아름답고 더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람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더 정감이 가듯이.

검단산은 산의 등줄기를 따라 소로가 만들어져 있다.
 검단산은 산의 등줄기를 따라 소로가 만들어져 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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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에 나타난 광경은 완전한 45도 급경사지였다. 우리는 아이젠도 지팡이도 없는데 목엔 무거운 카메라까지 달고…. 인적 끊긴 이 생소한 길을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아니면 되돌아 가야하나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충성스러운 해모를 믿었다. 해모도 나를 믿겠지. 서로 기대니 용기가 났다.

또다른 산봉우리를 오르고 보니 양쪽으로 산을 깎아서 벼랑을 만들어 놓았다. 산 아래에서는 산을 헤집는 기계음도 여전했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프리미엄아울렛 '신세계첼시'가 이 산의 남쪽을 차지했고, 고려역사관이 이 산의 북쪽을 가졌다. 아마 이 산을 하늘에서 본다면 분명 등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기형의 모습일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고려역사관
 위에서 내려다본 고려역사관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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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아직도 눈을 머금고 있는 듯한 날씨여서 해는 꼭 낮달처럼 보였다. 그 낮달을 닮은 해는 머리 위에서 나를 따르고 있었다.

소나무가 터널을 이룬 경사지를 내려오니 평지가 한참 이어졌다. 유행가 소리가 귀를 울렸다. 산 아래 상가에서 호객을 위해 확성기를 통해 증폭된 소리였다. 산위의 고요를 헤치는 그 확성기 소리는 산 아래에서보다 더 큰 소음이었다.

길지않은 산의 등줄기를 따라가면 소나무와 참나무등 비교적 다양한 식생이 맞아줍니다.
 길지않은 산의 등줄기를 따라가면 소나무와 참나무등 비교적 다양한 식생이 맞아줍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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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소리는 좀 줄여주면 안될까?"

이 깨끗한 산 정상까지 사람의 욕망을 퍼붓는 소음은 숲에 대한 가혹한 폭행이다 싶다. 한참을 걷는데 누군가가 해모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모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산에 있단 말인가?"

그 분은 바로 저희 앞집 빈우당의 김경중 선생님셨다. 산에서 이웃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헬기장까지 갔다 오신단다. 한참을 걸으니 콘크리트를 부어 T자로 만든 곳이 나타났다.

"이곳을 헬기장이라 부르는 곳이구나."

그곳에서는 한강 하류의 거대한 줄기가 모두 다 내려다보인다. 그 밑에는 아담한 석탑이 단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석탑 주위에는 돌무지 여럿이 석탑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빙 둘러져 있다. 두 손이 절로 합장을 하게 되었다.

"아, 이곳 가까이에 절이 있겠구나!"

검단산 서쪽 끝에 자리한 돌무지와 석탑
 검단산 서쪽 끝에 자리한 돌무지와 석탑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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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에서 내려다본 한강 하류
 검단산에서 내려다본 한강 하류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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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자로 밑으로 길이 크게 닦여 있었다. 그래도 많이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산한 사람의 발자국이 보였다. 그 아래로는 검단사의 기와지붕이 보였다. 반가움이 바삐 걸어가니 바라케이드를 쳐놓았다.

"왜 이리 해놓았을까? 한 사람이라도 더 등산객이 절을 통해서 내려가면서 부처님께 절이라도 할 수 있게  배려하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난 바리케이드 옆으로 그냥 내려갔다.

검단산 중턱에 있는 검단사
 검단산 중턱에 있는 검단사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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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에는 스님이 눈을 썰고 계셨다.두 손을 합장하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바리케이드를 친 연유를 물었다.

"이 산 정상까지 모두 이 도량에 속한 땅입니다. 법당 위에서 바로 내려오면 부처님의 머리위로 내려오는 것이 되어 그곳을 막아 놓았습니다. 대신 옆으로 돌아 주차장 위로 내려오는 길이 트여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주차장윗길로 내려오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법당에 올라가서 삼배를 드렸다. 해모가 합장하듯 두발을 법당 문턱에 올려놓고 있었다.

"부처님! 해모를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함께 가슴을 터놓고 사람의 말로 고민을 나누고, 해모의 전생에 대한 얘기, 즉 개의 입장에서 본 사람 얘기도 들어볼 수 있도록……."

법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자 11시40분. 모티프원의 청소를 시작할 시간이 이미 지났다.

"해모야, 뛰자!"

검단산 등산길을 동행한 충실한 콜리, 해모
 검단산 등산길을 동행한 충실한 콜리, 해모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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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검단사, #검단산,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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