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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네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야딩 - 티벳가족과 함께하는 선내일 코라(순례)

어머님,
1928년 미국에서 온 어떤 이가 중국 윈난 모수오주(摩梭族)가 사는 2300m의 루구호(泸沽湖)에서 야딩으로 트레킹을 한 다음, 앙매용 설산의 풍경을 담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 그가 본 모습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올렸고, 사람들은 그의 사진을 보며 진정 천국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과 중국의 공산화로 그가 본 설산은 전설처럼 구전(口傳)되어 왔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후반, 세기말 증후군은 유토피아를 떠올렸고, 이로 인해 잊혀진 이름 '샹그릴라'를 깨웠습니다. 샹그릴라(理想鄕)에 대한 주변 나라 인도, 네팔, 부탄 등의 열풍에 중국도 뒤늦게 가세하여 사진 속의 전설을 찾아다녔습니다.

수많은 과학자와 탐험가가 찾아 나선 그곳은 전설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7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그곳을 티베트사람들은 그곳을 샹그릴라(샹바라)라 부르며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순례를 하곤 합니다. 샹그릴라, 티베트말로 '내 마음의 해와 달'이라 합니다.

야딩, 샹그릴라의 또 다른 이름.
▲ 동티벳(쓰촨 四川) 야딩, 샹그릴라의 또 다른 이름.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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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딩에 오면 꼭 선내일 신산(仙乃日 神山) 코라(순례)를 해보고 싶었고, 제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만에 순례할 수 없기에 낙융목장(洛絨 牛場)이나 충고사(沖古寺)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 다시 순례하는 여정을 그리며 걷고 있으니, 스님께서 "어디 가시냐"고 묻습니다. 저는 "충고사에 간다"하니 그이들도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제 말을 놓은 체 낙융목장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후 4시 홀로 걷고 있습니다.

목장 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으며, 시멘트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곳에는 관광차가 질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전에는 공원 입구에서 말이 드나들었을 터인데, 아쉬운 것은 말이 다니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시멘트 포장 그 자체입니다.

이런 깊은 곳에 인간의 편리나 상업성 때문에 포장을 하는 것이 참 가슴 아파옵니다. 혼자 햇살에 취해, 초록 꽃에 취해, 원시 삼림에 취해, 앙매용 신산(央邁勇 神山 문수보살을 상징. 5958m) 의 바람에 취해, 전설에 취해 힘차게 걷고 있습니다. 왼편으로는 오래된 바위 모두가 부처님의 현신이라면, 오른편으로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나무가 오르지 못한 바위에는 '상뱌라(香巴拉. 샹그릴라)로 드는 문(門)이 있다'합니다.

앙매용 신산,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가가 담다.
▲ 동티벳(쓰촨 四川) 앙매용 신산,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가가 담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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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따오청, 야딩. 이 동내를 어이 말해야 할까요. 4000m 고지의 황망하기만 한 가운데, 새 개의 신산이 눈물(雪河)을 흘려 계곡이 되고, 물 위로 바람이 달리면 계곡 초원에는 초록빛 야생화가 피어나고, 산에는 바람 맞은 소나무가 꼿꼿하게 서서 원시 숲을 이룹니다.

소나무의 색과는 다르게 바위가 무념무상으로 한 세상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으며, 산마루에는 하늘에서 천 년에 걸쳐 내려온 눈이 덮이곤 합니다. 눈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순간부터, 하늘의 순령을 전하기 위해 모든 대지에 골고루 흘러들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합니다. 사람이 닿지 않는 곳에는 오직 하늘만이 있습니다. 세 개의 신산이 황만한 고산 고지에 오아시스처럼, 비밀의 화원처럼 숨겨져 있어 숨이 막혀오곤 합니다. 여기는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아니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하느님의 정원에 몰래 숨어 들어온 악동일는지 모릅니다.

어머님,
저녁 7시 즈음, 낙융목장에 들어 새찬 바람을 피하려 하니 '자연보호'라는 명분으로 야영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절집(충고사)에서 못 잔다' '너는 야딩 마을까지 가야한다'라고 들려줍니다. 아저씨와 아가씨 몇 명이 있는데, 아저씨는 제 모습이 측은하신지 좀 앉아라 하지만 묘령의 아가씨는 득의양양하게 길게 영어로 쓰인 메모지를 보여주며 "어서 야딩으로 돌아가라"하며 등을 떠밀고 있습니다. 지금 시각이 저녁 8시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가 오후 4시에 공원에 들어서서니, 다시 4시간을 걸어 나가야 합니다. 야딩까지 가는 길도 길이려니와 다음날 아침 다시 순례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4,500m, 선내일 신산을 뒤로하고서...
▲ 동티벳(쓰촨 四川) 4,500m, 선내일 신산을 뒤로하고서...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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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떠밀리다시피 하여 잠시 바람만 맞고, 돌아 나오다 어느 굴다리 밑에서 침낭을 깔았습니다. 빙하가 제 눈높이에 있습니다. 바람은 황소의 울음보다 더 숨소리가 거칩니다. 침낭을 누워서니, '하납다길 신산(夏納多吉 神山 금강 보살을 상징. 5958m)의 빙하가 눈썹까지 내려왔습니다. 나무 가지 사이로 별사탕처럼 별들이 매달렸습니다. 저는 빙하를 보며 혹시 잠자는 사이에 동상이 걸리지 않을까 무시로 발을 비비고 있습니다. 바람이 차가워 침낭을 꼭 덮어쓰니 숨이 막혀 죽을 듯 하여 다시 고개를 내밀어 보니,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발은 여전히 시렵습니다. 낙융목장의 높이가 4100m 라고 하니 여기도 그 높이쯤 될 듯합니다.

4100m. 빙하가 눈썹까지 내려온 굴다리 아래에서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그리고 두 발을 끊임없이 비비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침낭으로 넣었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침낭을 덮어쓰면 숨이 막혀 오고, 고개를 내밀면 찬바람이 참을 수 없는 시린 바람입니다. 노숙을 작정하고 있었기에, 샹그릴라 순례가 간절한 바람이기에, 추위 쯤은 문제 될 것이 없다며 누워서는 어서 빨리 잠이 오길 애타게 바랐습니다. 잠들면 이 시린 바람도 잊혀질 듯하여.

아침 6시 즈음에 눈이 뜨여졌는데, '눈을 뜨자마자 움직여야지'라는 어제의 바람과는 달리 몸이 찌푸둥하고 무거워, 머리맡의 말똥을 치우지도 않고 누워있습니다. 굴다리 너머로 설산이 바라보입니다. 하늘이 파랗습니다. 다시 욕심이 생깁니다. '구름이 달려오기 앞서, 그 보다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나에게 주문을 겁니다. 1시간 여를 누웠다가, 세수도 하지 않은 체 부시시 움직입니다.

눈이 얼어버렸다. 발걸음은 바위가 되었다.
▲ 동티벳(쓰촨 四川) 눈이 얼어버렸다. 발걸음은 바위가 되었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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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아침 7시 즈음 찬 기운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본 풍경을 서양의 어떤 이가 사진을 담아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낙융목장의 초원을 아주 힘차게 걸어가며 놀라움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앙매용 신산을 마주합니다. 어쩜 신산이 저를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단지 신산의 부름에 따를 뿐입니다.

어머님,
낙융목장을 지나면서 풍경은 가희 압도적입니다. 진정 샹바라(샹그릴라)로 들어가는 길목이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제 앞에서는 앙매용 신산이 점 하나 없는 흰 살을 드러내 보이고, 파란 하늘은 그 어떤 천 보다 아름답습니다. 신산(神山)에서 녹아내린 물은 원시폭포(原始瀑布)를 만들어 냅니다.

그 물줄기와 물 위를 달리는 바람이 소나무 숲을 가꾸고 있습니다. 소나무 숲길에는 아주 허름한 돌조각 몇 개 얹고 비닐을 덮은 티베트 사람의 집도 한두 채 있습니다. 물은 흘러 평지에 닿아서 초록빛 화원을 만들며 이리저리 휘둘러 흐르고, 화원(花園)의 저 만치에 낙융목장이 있으며, 그곳에는 야크가 풀을 뜯고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네 다섯 시간 저 너머에, 마을은 산 두어 개를 너머 가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원시삼림(原始森林)을 지나 올라서면, 앙매용 신산이 한 층 더 가까워지면서 눈길 따라 햇살 따라 빛이 달라지는 우유해(牛乳海)가 있습니다. 우유해는 두 개의 신산(앙매용, 선내일)이 물을 내어 주어 4500m에 호수로 자리 잡았으며,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더 깊다고 들려줍니다. 저는 우유해 초원에 누워 파란 하늘을, 신산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엉거적 엉거적 기어서, 우유해에 닿아 빈 물통을 가득 채웁니다. 물통에 채워지는 물에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며, 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원시성과 신비한 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색해(五色海)가 위에 있다지만, 전 우유해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으니 어린아이 네 다섯 명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아저씨 서 너 분도 올라옵니다. 전 주머니에서 풍선을 꺼내 그네들에게 건네주고, 과자 몇 개도 덤으로 건네줍니다. 이런 저를 아저씨께서 같이 가자했고, 전 그네들과 함께 따라갑니다. 언제 왔는지, 걸음걸이가 어째서 저 보다 빠른지, 알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지만 전 뒤쳐지지 않으려고 숨을 헐떡이며 쫓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고갯마루 앞에서 아이에게 종이 한 묶음을 건네줍니다. 그러자 남자 아이 두 어 명이 힘차게 뛰어올라가 바람에게 말을 전합니다. 저 아래 우유해에서 아주머니 두 어 분께서 풀밭을 따라 동충하초를 찾으시며, 어린아이를 업고 올라오고 계십니다.

야딩에서 만난 사춘기 소년들.
▲ 동티벳(쓰촨 四川) 야딩에서 만난 사춘기 소년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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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하나가 되어, 첫 번 째 고개(4500m)를 조금 숨이 차 올랐지만 넘을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낭떠러지 길을, 한참을 외길 따라 내려가니 '신비한 호수'가 있습니다. 우유해보다 더 신비로우며, 빛 따라 제 눈길 따라 물색이 일곱 빛깔과 헤엄치며 뛰어 노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물빛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아마도 여기가 '샹그릴라'여서 일 것 입니다. 호수를 지나면 넓다란 초원이 있으며, 호숫물이 흐르는 개울도 있습니다. 티베트네 가족들은 이곳에 자리를 깔고, 이른 점심을 먹으며 제게 '참빠'를 건네주고, 사탕도 건네주고, 내가 건네 준 것 보다 더 곱절로 먹을 것을 챙겨줍니다. 저는 무겁다고 이것저것 놔두고 아주 가벼이 왔는데, 그네들은 진정 소풍을 온 듯 합니다.

배가 부르니 자연스레 눕고 싶고, 우리는 다 같이 꽃밭에 벌러덩 누워 파란 하늘과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바라봅니다. 말똥이 여기저기 있어도 괜찮습니다. 여기는 지상 낙원, 원시 꽃밭 샹그릴라, '내 마음의 해와 달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어머님,
티벳네 가족들은 걷다 쉬었다를 반복하며 나아가는데, 네 살짜리 꼬마의 걸음이 저 보다 튼튼합니다. 어머니는 간간이 꽃밭에서 동충하초를 찾기 위해 옆길로 새곤 하십니다. 넓은 초원을 건너 다시 산 속으로 들며, 내려가는 길 위에 서 있자 아저씨 한 분께서 "옴 마니 벵메 옴"하면 모두가 깊고 길게 울려내는 목소리로 "옴 마니 벵메 옴"합니다. 제일 뒤에 쫄래쫄래 따르는 이는 모기 소리 마냥 '옴 마니 벵메 옴'합니다.

선내일을 코라도는 티벳 가족.
▲ 동티벳(쓰촨 四川) 선내일을 코라도는 티벳 가족.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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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고갯마루. 마니석이 놓인 4700m의 고갯길은, 저기 앞에 고개가 있어 단숨에 뛰어 오르면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듯한데, 제 발걸음은 한 발 움직이는데 5분이 걸리는 듯합니다. 높이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지 머리가 아파오며, 아무리 샹그릴라가 좋다 한들 두 번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숨을 헉헉 토해내며 바위 같은 발을 억지로 한 발짝 한 발짝 내딛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나보다, 엄마 아빠보다 더 빨리 뛰어오릅니다. 그네들은 저만치에서 저를 부르는데, 몇 번이고 주저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숨을 토해냅니다. 오직 살아있기 위해서는 숨을 내쉬고 들여 마셔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네 발로 기다시피 하여 두 번째 고개에 올라서니, 이번에는 아저씨께서 고갯마루에 바람을 등지고 서서 종이 한 뭉치를 흩뿌립니다. 

"야솔로~"

어머님,
고개를 넘어 서는 순간, 숨은 꿀떡처럼 쑥쑥 내려갑니다. 저 너머에서 헉헉거리며 올라오던 녀석이 이제는 아주 가벼이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내려가니, 진정 신산(神山)인 선내일 선산(仙山)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선산 앞에는 따르초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으며, 티베트 가족들은 가방에 담아온 따르초를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그네들은 향을 피우고, 오체투지로서 절을 합니다. 어린아이는 장난 반 진심 반이지만 어른들의 모습에는 거짓이 없어 보이며, 오래도록 이어온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샹그릴라의 순례(코라)는 계곡을 따라 걷다, 원시 자연림 속으로 걷다, 설산을 마주하며 무지개 빛깔의 호수에 들렀다, 이름 모를 꽃밭에 주저앉았다, 비탈진 자갈길을 걷다, 마니석이 놓인 길을 오르며 4700m의 고개를 넘는 길입니다. 또한 산이 물결치는 풍경을 훔치다 진언(眞言)을 가슴 깊이 불러내어 선내일 신산 앞에 오체투지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에 감사해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야솔로(하잘로) "신에게 정의가 있어라"
▲ 동티벳(쓰촨 四川) 야솔로(하잘로) "신에게 정의가 있어라"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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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앙매용 신산 앞에서도, 지금 제 앞에 계신 선내일 신산 앞에서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며 그저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되뇌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원했던 곳에, 아무탈 없이 왔다는 게 그저 고마울뿐입니다. 신산 앞에서 무수한 욕심을 불러보지만 그 자리에 놓아 둔 말은 "고맙습니다"라는 말 밖에 없습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바람이 따르초를 가슴에 품습니다. 그네들은 이 종이에 적힌 경어를 바람이 읽고, 그 바람이 이야기를 세상 곳곳에 전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저 또한 그 바람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 세상 곳곳에 경전이 읽혀지길 바랍니다.

2010. 06. 21 야딩자연보호구-샹그릴라에서.


태그:#중국, #동티벳, #야딩, #샹그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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