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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네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리장에서 5시간 거리, 란찬강을 건너 산 고개고개를 돌아서면 넓은 초원이 보이며, 하늘의 구름은 발을 힘껏 차오르면 손에 잡힐 듯, 초록색 밭에는 늙은 염소인 듯한 야크가 느리게 풀을 뜯고, 손가락만한 꼬리를 지닌 돼지는 무엇을 찾듯 꿀꿀 거리며 코를 박은 채 땅을 헤집고 다닙니다. 집들은 연노랑색이며, 기와가 얹혀져 있고, 용마루 사이에는 이쁜 문양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는 샤오중덴(小中甸)입니다.

 

어머님,

샤오중덴에는 유채꽃이 한 가득 피었습니다. 들판에 방목하는 야크떼를 보거나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눈을 두거나, 저 멀리 설산과 파란 하늘에 눈을 뺏기거나 창밖으로  보여지는 샤오중덴의 풍경은 샹그릴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다시 30여 분을 더 달리면 중국이 새 이름을 붙여준 샹그릴라가 나옵니다. 

 

어머님,

저는 시짱(西藏)을 티벳이라 부르듯이 샹그릴라를 옛 이름인 중덴(中甸)으로 부릅니다. 중국 정부에서 2002년에 '중덴'이라는 진짜 이름을 버리고 현 '샹그릴라'라는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이는 너무나 속 보이는 관광과 상업성이 깔려 있습니다.

 

이 관광 상품성은 송찬린쓰(颂赞林寺)와 바이타이하이(碧塔海)도 비켜갈 수는 없습니다. 바이타이하는 보탈라국가공원으로 귀속시켜 잘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뻥튀기인양 한껏 부풀려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배낭 여행자는 꽃잎을 먹고 기절한다는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가슴에 그리기만 합니다. 어느 거리에서부턴가, 배낭객은 유명 관광지의 잘 다듬어진 풍경보다 조금 덜 익숙하고 지저분하지만 진한 사람 냄새가, 어린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이 동그란 눈처럼 크게 달려오는 골목길을 헤집고 다닙니다.

 

어머님,

중덴에는 4000m 높이에서 6000m의 고산(高山)이 셀 수가 없이 많으며, 이곳도 고산증의 증세가 나타나는 해발 약3280m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거리를 걸어보면, 티벳사람들이 스침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나시주(納西族), 바이주(白族), 이주(彝族) 등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티벳의 풍습은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습니다.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여인의 모습은 조금 낯설지만 어린 아이의 모습이라든가 남자분들을 보게 되면 우리 동네의 어린아이와 아저씨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금 씻지 않은 듯한….

 

중덴은 배낭 여행자에게 큰 매력이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티벳이라는 이름 하나로 사람을 불러 모우고 있습니다. 더친(德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진짜 전설의 샹그릴라인 따오청(滔城)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 마을입니다.

 

마을 건너편에는 '작은 포탈라'라는 애칭을 가징 송찬린쓰가 있습니다. 절집의 담장이 큰어머니마냥 마을을 두 팔로 감싸고 있으며, 많은 승려들이 공부를 하고, 몇 해 전까지 절 언덕 저 너머에서 천장(天葬)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안 고성에는 커다란 마니콜로(마니차嘛尼車는 일본식 표현)가 있습니다. 마니콜로는 둥근 경통 속에 경전이 들어 있어 한 번 돌리면 한 번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어머님,

중덴에 들어와 고성(古城)으로 배낭을 맨 채 걸어 들어가 잠자리를 구합니다. 고성은 리장(麗江)이나 슈허(束河)에서 보다 훨씬 작으며, 첸촨에서 닦여진 길처럼 네모 반듯하지도 않습니다. 골목의 돌은 울퉁불퉁 곰보처럼 돋아 있고, 지붕은 널판지를 네모나게 잘라 닥지닥지 겹겹쳐 놓았습니다. 작은 언덕에 자리한 고성 안으로 티벳의 향기를 맞기 위해 많은 중국인이 드나들며, 간간히 서양 이방인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고성은 고성으로서 매력을 지닌 채 관광객을 맞이하여 아주 세련되게 몸치장을 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또한 카와커보(메리이쉘산 주봉의 이름)의 도(刀)는 차마고도 시절의 향수를 불러옵니다.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티벳 사람들의 옆구리에 칼이 함께 걷고 있음도 쉬이 볼 수가 있습니다.

 

고성에서 나와 시장통으로 들어가면, 티벳 사람들의 진한 삶의 향기가 배어납니다. 고성이 잘 다듬어지고, 깔끔하다면 시장은 예나 오늘이나 왁자지껄하며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곤 합니다. 저마다 초원에서 키운 햇살을 한 가득 자루에 담아와 내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성에서의 깔끔함과는 다른 눅눅한 느낌이 쉬이 발걸음을 불러들이지는 못하곤 합니다.

 

 

어머님,

바이타이하이도 내어놓고, 송찬린쓰도 내어놓고, 티벳 사람만 가슴으로 불러봅니다. 거리를 걸으며 그네들의 삶을 바라봅니다. 다음날, 고성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아저씨 한 분께서 축제가 있다면 같이 나서자고 합니다. 음력 5월 5일에 경마축제가 있다는 정보는 가지고 있었지만 어디에서 하는지 몰라 멈칫멈칫하고 있었는데… 쉬이 길이 열렸습니다.

 

저는 아저씨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큰 축제인지는 모르나 삼삼오오 모인 아저씨와 이주의 전통을 입은 어머님을 모신 아주머니, 우산을 든 아가씨에서 물총을 들고 나서는 어린아이까지. 모두가 축제를 즐기는 듯합니다. 오래된 책에서는 넓은 초원에서 사흘에 걸쳐 경마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오늘은 잘 지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듯합니다.

 

 

어머님,

전 오래된 책을 믿고, 수많은 말들이 일 이등을 다투며 치열한 경주를 할 줄 알았는데… 각 현에서 온 민족의 대표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두어 시간 그렇게 시간이 흐른 다음 말들은 운동장 한 바퀴를 폼나게 돌고서는 문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춤사위는 너무 멀고, 노래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이며, 말들은 너무 쉬이 초원을 벗어난 듯합니다.

 

하지만 운동장 안에는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과연 무엇이 축제인가라고 저에게 되묻습니다. 축제는 점심즈음 끝이 났지만 고성으로, 중덴의 거리 곳곳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이들이 걷고 있습니다. 그네들은 이 날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온 듯합니다. 이주의 한 가족이 사진을 담습니다. 아주머니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소와는 반대로 아저씨의 무뚝뚝한 손 위에 앉은 아이가 인상적인 가족입니다.

 

 

해가 해실바실 너머 갈 즈음,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모두가 익숙한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네들은 예전부터 그래왔다는 듯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되어 춤을 춥니다. 춤사위는 큰 원을 그린 채 아주 단순한 동작이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어머님,

티벳을 떠올릴 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이른 아침에 포탈라궁(布達拉宮, 티벳의 수도 -3650m 라싸에 세워진 궁전)을 오체투지 하며 코라(순례)도는 모습과 해가 질 때 즈음이면 모두가 하나 되어 춤을 추는 원형일 것입니다. 리장의 모습이 의도된 연출의 분위기가 지워지지 않는데 반해 중덴의 모습은 일상입니다.

 

티벳 사람을 보며, 우리 사는 것에 대한 물음을 저에게 묻곤 합니다. 그네들은 내가 가진 것을 나보다 못한 이에게 건낼 때 전혀 우월감이나 동정이 묻어 있지 않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경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함께 손을 잡고 나란히 거리를 걷고, 해가 질 때 즈음이면 마을 사람이 모여 춤을 춥니다. 저는 그네들 곁으로 들지 못한 채 선 밖에 서성이며 과연 내 삶을 흐르는 물결은 어떤가 하고 되돌아 봅니다. 제 앞에서는 커다란 원이 둥글게 둥글게 돌아갑니다. 아마도 강강수월래와 너무나 흡사한 풍경처럼 다가옵니다. 늦게까지 원형 춤을 구경하고, 내일 아침 일찍(7시) 떠날 따오청행 버스를 타기 위해 유스호스텔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님,

전 중덴에서 풍경은 못 보았지만 티벳 사람을 오래도록 보고 길을 떠나려 합니다.

 

2010. 06. 17 옛 중덴(中甸)에서.


태그:#중국, #윈난, #중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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