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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주먹을 쥐는 순간 쌈마이가 된다."
 
17년째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이진수 보좌관(김부겸 민주당 의원실)이 국회 로텐더홀 폭력사태 이후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그는 지난 8일 빚어진 폭력사태에 대해 '더이상 이건 아니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미디어법 사태 때 해머가 등장했다면 이번엔 주먹다짐과 발차기, 뺨때리기, 코뼈 부러뜨리기 등 폭력의 양태가 더욱 노골화 됐다.
 
평소 민주당에 비해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보좌진들은 8일 오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행동개시 명령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행동방침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알려졌다.
 
'회관에 계신 보좌진들은 09:00까지 도서관 하식당 앞 집결' 원실별 2명 이상)의원실별 점건, 원내대표 당부.'
 
사건 당일 한나라당 보좌관 200여명은 국회 도서관에 우선 집결한 뒤, 국회 식당의 야채 등 식자재를 나르는 전용통로를 통해 의사당 본청까지 진격했다.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인 셈이라고 야당 보좌진들은 말한다.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해머가 등장했어도 미디어법 날치기 국회에서는 인격적 존중은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무슨 전쟁터에 나갔다가 피를 본 사람들처럼 죽기 살기로 달려드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여당이 일방적으로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UAE 파병처럼 논의조차 되지 않은 법안들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현실에서 야당도 '괴물'에 맞서려면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며 "참 슬프지만 이것이 오늘 국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발길질은 명백한 폭력이다"
 
이진수 보좌관이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린 이유 역시 이런 자괴감의 표현이다. 그는 후배 보좌관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작성된 이 글에서 "예전엔 몸싸움 수준에서 그쳤는데 이번엔 주먹다짐이 노골적으로 벌어졌다"며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거나, 발길질을 하는 건 명백한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또 "과거엔 서로 스크럼을 짜고 밀고 밀리다가도 누가 넘어진다거나, 옆에 유리창이 깨질 것 같다거나 해서 사람이 다칠 정도로 위험해지면, 어느 편이랄 것 없이 먼저 대치를 풀고 잠시 떨어질 정도로 어떤 금도가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충돌 양상은 '당파성이 퇴조한 대신 지나친 조직 논리가 빚어낸 폭력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정말 심각한 것은 '로텐더 전투'가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질돼가는 현실"이라고 걱정했다.
 

<문화일보>는 9일 보도를 통해 "여야를 막론하고 당직자와 보좌진들은 의원들보다 더 큰 부상을 당했다. 갈비뼈가 부러진 이들도 있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보좌진 가운데 정치 입문을 염두에 둔 사람들은 영감(의원) 눈에 들기 위해 전면에 나선다'며 '그래야 공천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이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의원들간, 보좌관간, 여야 당직자간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이 한데 다 뒤엉켜 비난과 욕설, 몸싸움을 넘어 주먹다짐에 폭력난동을 부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작금의 폭력문제를 총체적으로 다시 보고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조기호 민주당 보좌관 협의회(민보협) 회장(양승조 의원실)은 "폭력행위를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왜 이 같은 폭력사태가 날 수밖에 없는지 그 뿌리를 좀 살펴봐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직권상정하고 논의도 생략된 의안들과 예산을 날치기 처리하지 않았나, 이 국면에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야당 보좌진들이 방어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칫 국회 폭력이라는 프리즘만으로 이번 '로텐더 사태'를 관찰한다면 그것은 한나라당을 편드는 양비론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럼에도 그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폭력사태가 자주 빚어지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면서 "국회의원을 총으로 쏴죽이는 수준보다는 우리가 낫지만 그래도 대화와 타협을 통한 모색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보좌관 협의회 "폭력에 보좌진 동원 회의적...거부할 생각"
 
김성준 한나라당 보좌관 협의회(한보협) 회장(김효재 의원실)도 로텐더 전투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김 회장은 8일 한나라당 보좌관들에게 "말대꾸하지 말자 등 지침을 내렸지만 결국 말이 씨가 되어 싸움이 되는 양상이 드러났다"며 "과격했고 언성을 높이다가 결국 몸싸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갈비뼈가 부러져 기침 할 때마다 죽을 지경"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11년째 국회에서 보좌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매년 로텐더 홀의 폭력양태는 갈수록 심각해진다"며 "보좌진들이 이런 폭력에 동원되는 것에 회의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런 동원을 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회 축구회 등 여러 모임을 통해서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다가 이런 폭력사태 때가 되면 서로 싸워야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며 "야당 측에도 요청해 함께 참여하지 않는 방안을 생각해볼 계획"이라고 전달했다.
 
이와 관련 민보협의 조 회장은 "한보협이 결심한다고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면 보조를 맞추겠"지만, "국회 경호권이 발동돼 경위들이 의원님들을 밖으로 드러내는 상황이 빚어지게 되면 보좌관들이 가만히 구경만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끝을 흐렸다.
 
현재 국회 운영위원회에는 한나라당의 발의로 '국회선진화법'이 계류 중이다. 국회의원이 회의장에서 정상적인 회의진행을 방해하면 직무를 정지할 수 있고,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또 회의장 출입 방해시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유죄가 확정될 경우 5년 피선거권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국회 선진화법은 일방독주 보장법"이라며 "이것은 거대 여당의 숫자만 믿고 모든 것을 밀어붙이겠다는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협박이며, 소수 야당의 최소한 저항권마저도 제도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공룡 여당의 횡포를 법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의회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면서 국회 선진화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라며 "국회의 평화를 위해서는 국회 갈등의 원인인 한나라당의 일방독주를 포기하고,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복원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일갈했다.
 
다음은 이진수 보좌관이 국회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주먹을 쥐는 순간 쌈마이가 된다" (17년차 왕보좌관의 편지)
 
L에게
 
온 몸이 아파 일찍 들어간다더니 주말 동안 잘 쉬었는지, 좀 괜찮아졌는가? 몸도 몸이지만 마음에도 상처가 많았을 것이야. 지나가듯이 '우리 보좌진들이 이렇게 몸싸움에 동원되는 게 맞는 건가요?'라고 자네가 묻던 말, 그게 이를테면 '마음의 상처' 일텐데, 선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있을까 싶어 시작한 글이네.
 
곰곰 생각 중에 누군가 기름을 한 번 더 끼얹더군. 신문 기사를 그대로 옮기자면, "여야를 막론하고 당직자와 보좌진들은 의원들보다 더 큰 부상을 당했다. 갈비뼈가 부러진 이들도 있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보좌진 가운데 정치 입문을 염두에 둔 사람들은 영감(의원) 눈에 들기 위해 전면에 나선다.'며 '그래야 공천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나도 일면식이 있는 기자라, 폰 전화번호부에서 연락처 삭제로 나름 소심한 복수(?)를 하긴 했지만 부끄럽더군. 실제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기자가 인용 한 것 아니겠어?
 
네 가지 동인
 
보좌진이 로텐더 전투에 나서는 동인은, 아마도 다음 중 어느 하나겠지. 첫째는 정의감. 세상에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시비지심만큼 전투적인 감정도 없지. 특히 정치를 '운동의 연장'으로 받아들였던 우리 세대들에게는 이런 감정이 중요했는데, 불의를 못 본 체하는 것은 불의에 승복한 것과 다름없고 따라서 온 몸을 던져 싸우는 보좌진들은 지금도 분명 있을 걸로 봐.
 
둘째는 당파성. 이건 아마도 당직자들이 보좌진보다 강할 것이야. 민주당 당직자가 한나라당 당직자로 또는 그 반대로 변신하는 경우란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그런데 보좌진들은 다르지. 정무형 보좌진이 드물어지고 정책형 보좌진들이 늘면서 지금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당을 넘나들며 전직들을 하지.
 
더욱이 보좌진 중에서도 학생운동이 강하던 시대, 즉 80학번에서 90년대 초반 학번까지가 비교적 짙다면 중반 이후 학번으로 내려갈수록 당파성은 옅어지겠지. 따라서 당파성 때문에 전투에 뛰어드는 보좌진이 이전보다 많지는 않을 것 같아.
 
셋째는 의원의 눈에 띄기 위해. 그 기자가 들었다는 대로 전혀 없진 않겠지만 3~400명의 보좌진이 전부 출마할 목적을 품고 있어 그렇게 극렬한 전투행위에 뛰어들었다? 글쎄 그건 좀 넌센스 아닌가?
 
넷째는 조직 논리. 일종의 직장에 대한 충성심일 수도 있고, 몸과 몸이 부딪히는 현장에서 흥분상태가 유발한 군중심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핵심엔 자신이 속한 의원(실)과 또 그 의원이 속한 정당이 요구하는 조직 논리란 게 있을 수 있다고 봐.
 
당파성의 퇴조
 
그런데 이상의 유주얼 서스펙트 중에 누가 진짜 카이저 소제일까? 또 동인이 뭐든 비단 자네만이 아니라 많은 보좌진이 품고 있다는 회의처럼, 이런 식의 보좌진 동원은 과연 현명하고 바람직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 작금의 충돌 양상은 '당파성이 퇴조한 대신 지나친 조직 논리가 빚어낸 폭력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 우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로텐더 전투가 갈수록 폭력적이라는 사실이야. 그 전엔 몸싸움 수준에서 그쳤는데 이번엔 주먹다짐이 노골적으로 벌어졌잖아.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거나, 발길질을 하는 건 명백한 폭력이야.
 
더욱이 동영상에 찍힌 의원의 주먹질이나 코피가 터져 피범벅이 된 후배 보좌진의 망연자실한 얼굴을 보는 순간, 이건 범죄다 싶더군. 내 기억으로 과거엔 서로 스크럼을 짜고 밀고 밀리다가도 누가 넘어진다거나, 옆에 유리창이 깨질 것 같다거나 해서 사람이 다칠 정도로 위험해지면, 어느 편이랄 것 없이 먼저 대치를 풀고 잠시 떨어질 정도로 어떤 금도가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 그게 없어진 거야.
 
조직논리의 과잉
 
당파성에선 이전 민주당 보좌진들은 지금 진보정당이 그렇듯이 거의 운동권 출신이 많았던 만큼 아주 강했지. 정의감도 그렇고. 동시에 한나라당 보좌진들도 40대 이상 연배에 대개 사람들이 점잖았어. 민주당보다 전문성이 높은 이들도 많았고. 그렇게 보좌진의 성격이나 출신 내력이 달랐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여야 구분 없이 회식도 했고, 서로 교류가 있었어요. 그러니 자연히 '미워도 당이 밉고, 상층 권력자들이 미운 거지,
 
보좌진끼리 미워해서 뭐 할 것이며, 피차 무슨 죄가 있냐...' 하는 마음들이 다 있었던 것이야. 그렇게 마치 김두한 시대, 주먹으로 하던 싸움이 언젠가부터 '연장'이 등장하면서 협객의 시대가 조폭의 시대로 전락하듯이, 로텐더 전투도 정치적 기세 싸움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무지막지한 주먹싸움이 돼버린 것 아닌가 싶어.
 
요컨대 이처럼 폭력성은 강화된 반면 의식성이나 당파성은 점차 옅어져 온 결과 조직 논리 - 과도한 충성심과 군중 심리 - 만 횡행하는 '비열한 거리'가 되고 말았다 싶어. 그러므로 누굴 탓하기 전에 지금의 과격함은 결국 보좌진들 스스로가 다시 돌이켜 볼 문제라고 생각해. 도대체 조직논리란 게 뭐지? 우리 편이 상대 편에게 당했으니 그 이상으로 보복해야겠다는 조폭들의 의리가 '조직 논리' 아닌가? 그게 바로 '쌈마이'들의 논리 아닌가?
 
"그들도 나와 같기를"
 
그러고 보니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이미 자네가 12월 8일 사건이 터지기 직전 트위터에 올렸던 글귀 그대로였네.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절대 상대방을 미워하는 일이 없기를...
 
더욱이, 불필요한 충성심으로 인해 '몸통'이 아닌 자들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기를...그리고 그들도 나와 같기를... "
 
L!
 
현실 정치의 환경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도 로텐더 전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야. 그리 그러한 한에선 정의감이나 당파성에 의한 참전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봐. 처음부터 승패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니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막는, 또는 돌파하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는 게 중요할 때도 많으니까. 따라서 바람직한가 아닌가 차원의 문제는 아니고 불가피하다면 그리고 자기 확신이 있다면 17년차 이 '뒷방 보좌관'조차 열외일 수는 없을 것이야.
 
하지만 자네도 지적했듯이 실체도 없는 '조직논리'에 이끌려 몸통이 아닌 자들끼리 서로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야. 방법은 간단해. 주먹을 쥐지 않으면 돼. 스스로 '쌈마이'로 전락하는 게 두렵지 않다면 몰라도... 정치와 정책을 다루는 흔치 않은 직업으로서 '보좌진'의 자존심을 스스로 버려도 좋다면 몰라도... 주먹은 증오심이야. 정치에서 증오심은 선거에서의 승리에 대한 열정으로 불태울 일이지 그 자체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야.
 
어때, 그리 할 수 있겠지? 2년 뒤에 우리 건승! 화이팅!

태그:#국회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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