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0년 11월 30일, 하루가 꼬박 걸려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내투어를 시작하기 전 가이드가 잠시 여행시의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첫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진을 찍을 때 유의할 점이다.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서인지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자주 길거리의 여인네들에게 카메라를 향한다. 그리고 그녀들과 사진을 함께 찍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만약 그녀와 한 남자가 같이 있다면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권한다. 여성만 슬며시 빼내어 같이 찍으려다가는 자칫 오해와 싸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KT나 삼성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도시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 덜하지만, 중국인이나 일본인 등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둘째, 블라디보스토크의 화장실들은 요금을 지불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간혹, 무료인 곳들이 있긴 하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여행 중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식당 등을 들렀을 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의 팁(TIP)을 제공하자면, 한국기업이 지은 '현대호텔'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우리 역시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굳이 현대호텔을 거쳐 가야 했다.

셋째, 블라디보스톡의 교통량은 엄청나다. 그래서 도로 곳곳에 횡단보도나 신호등을 찾기가 어렵다. 이틀동안 버스를 타거나 걸으며 신호등+횡단보도를 본 것은 단 한 번뿐. 거의 모든 차들이 서행을 하고 보행자 위주로 길을 양보하지만 도로에서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타지에서 병원행을 하게 되어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주의사항에 대해 숙지가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내투어가 시작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심, 중앙광장

블라디보스톡 중앙광장의 모습
 블라디보스톡 중앙광장의 모습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첫 여정은 중앙광장이다. 중앙광장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아담하다. 사뭇 속으로 러시아의 이미지에 걸맞은 거대한 광장을 기대했었나 보다. 정신없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무수한 비둘기떼,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다니는 러시아인들, 광장 앞쪽으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번잡하게 늘어져 있는 수많은 차량들이 그곳의 풍경이다. 여행지라기보다는 그냥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생활공간.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정중앙에 있어 중앙광장이라고 불리게 됐으며, 외국인들은 혁명광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17년부터 1922년까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구 소련을 위해 싸웠던 병사들을 기리는 광장이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중앙광장에서는 3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특정한 인물들이 아니라 혁명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놓은 이름없는 동상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물가가 높기로 유명하다. 중산층이 없고 상류층과 하류층이 6:4의 비율로 나뉘는 이 도시에서는 모든 경제가 상류층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상점이 부족하다. 그래서 중앙광장에서는 매주 금·토요일에 평민층을 위한 장터가 열린다. 또한 각종 행사나 공연이 열려 시민들의 놀이·문화공간이 되기도 한다. 서울이라면 시청광장쯤 될 수 있겠다.

연해주 정부종합청사
 연해주 정부종합청사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시청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중앙광장 오른쪽으로는 눈에 띄는 하얀 건물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의 5개 도시의 주도(主都)로써, 이 건물은 연해주 정부청사건물이다. 대한민국 인터넷 검색에 잘못된 정보들이 많아서 이곳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연해주 정부청사건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큰 정교회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두 번째로 정교회를 방문한다는 말을 듣고 그랬다.

'교회 건물이나 보겠다고 이 먼 곳까지 온 게 아닌데….'

게다가 정교회라는 것은 이름만 들어봤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교파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글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해보고는 정교회가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정교회는 기독교의 한 교파로서 988년 블라디미르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었다. 러시아인은 동방정교회를 받아들임으로써 고도의 문명도 함께 받아들여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초기의 정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왕권쟁탈에 의한 위기와 생각의 차이로 인한 분열, 공산주의국가에 의한 박해 등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러시아의 대통령 역시 정교회 신자로 그 교세는 점차 확장되어 가고 있으며, 출근길에 기도를 드리고 직장에 가는 시민들도 있을 만큼 러시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이다. 다른 교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처럼 'OO교회'식의 간판이 달린 건 아니다. 그냥 통틀어 정교회라고만 불린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은은한 베이지색 외관과 반짝이는 둥근 지붕의 멋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사방의 새하얀 눈빛을 받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소담하다. 정교회 건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큰 공원인 파크로스트공원이 감싸고 있다.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수북이 쌓인 눈이 공원의 자태를 감추고 있다.

정교회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들어서자마자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을 내 모습을 본 문지기가 카메라를 가리키며 팔로 X자를 만들어 보인다. 남자는 모자를 벗고 들어가야 하며, 여자는 모자를 쓰거나 안쪽에 비치된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야 한다. 여자의 긴머리가 신을 유혹한다나? 난 짧은데 왜 써야 하는 거야?!

웅장한 외관과는 다르게 안쪽은 생각보다 좁다. 숨소리조차 내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엄숙하고 조용한 내부에서는 신자들의 기도행렬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듯한 내부 조각품들도 눈길을 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미처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뗀다.

아기자기 동화 속 거리, 아르바트 거리

아기자기한 아르바트거리
 아기자기한 아르바트거리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원래 아르바트 거리는 모스크바가 원조다.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는 젊음과 예술의 거리로 유명하다. 그곳의 이름을 따서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 이름을 아르바트 거리라고 지었으며 모스크바의 그곳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기업 KT에서 후원한 거리라고 한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봤지만 어디에도 그런 정보는 없어서 정확한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그렇다면 뿌듯한 일이지.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를 가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본 그곳은 현대식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는 서울의 명동거리쯤과 비슷해 보인다. 이름은 같지만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바트 거리는 전혀 다른 이미지다.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 아기자기한, 달콤한 캔디향이 날 것만 같은 거리이다. 한쪽으로는 해변이 길게 뻗어 있고, 반대편으로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노점과 관람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 질 녘 노을에 물들어가는 거리를 걸으니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동심이 꿈틀댄다.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거리 근처의 해변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거리 근처의 해변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아르바트 거리 근처에서는 운치 있는 해변을 만날 수도 있다. 마침 눈이 내려앉아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감촉 때문에 눈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흰색과 파란색이 이렇게 잘 어울렸던가? 새삼 색에 대한 고마움까지 생겨난다. 쭉 뻗은 눈길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통나무집도 어우러지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고드름도 오랜만이다. 바닷물이 얼어서 만들어진 얼음계단과 바다 위에 동동 떠 있는 얼음알갱이들은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저무는 태양이 뿜어내는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짧은 반나절의 일정을 끝냈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처럼 추울 것 같았던 그곳은 다행히 잔뜩 껴입은 옷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뜻했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19772295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블라디보스톡, #크루즈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