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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이 지난 27일 저녁 서울 압구정CGV 근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KBS로부터 고소당한 방송인 김미화씨 등을 거론하며 " 뻑하면 좌익으로 몰아붙여 곤란하게 만드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영화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이 지난 27일 저녁 서울 압구정CGV 근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KBS로부터 고소당한 방송인 김미화씨 등을 거론하며 " 뻑하면 좌익으로 몰아붙여 곤란하게 만드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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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좌파가 아니거든요. 제발 부탁드려요. 아주 부담스러워 죽겠어!"

배우 류승범과 유해진을 살짝 섞어놓은 것 같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말투가 퍽 인상적이었다. 50분 인터뷰하고 10분 쉬면서, 방송녹화를 포함해 하루 다섯 차례 인터뷰를 하던 류승완(37) 감독은 신작 <부당거래> 홍보에 무척 바빴다. 지난 27일 저녁 압구정CGV 근처 한 카페에 앉아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그는 여러 기자들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한 인터뷰가 끝나면 인증샷을 찍고 휴대전화에 기자와 얼굴을 기록했다. 얼굴과 이름을 까먹지 않기 위한 장치다. 간혹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아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알고 보니 패 죽여도 시원치 않을 관계였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최소한 그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라 했다. 

- 아주 바쁘시죠. 아유~ 힘들어 어떻게 해요.
"아니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제가 고졸이잖아요. 한국에서 고졸출신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이것만큼 편한 게 없어요. 제가 뭐 온갖 잡일을 다 해봤는데요. 결론은 그래요."

약간 쑥스러웠다. 대충 얼버무려도 될 것을 명확하게 콕 짚고 지나간다. 만들고 나니 마치 다큐멘터리 같더라는 그의 신작 <부당거래>만큼 직설적이다. 개봉 첫날인 28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이 영화는 하루 만에 1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류 감독. 그는 '개그감' 또한 충만했다. 개념 차게 웃기는 재주가 있다. 껄렁한 편이었지만 생각은 꽤 깊었고, 그런 자신을 대중이 '지적이라' 봐주길 원했다. 스스로 멋쩍었는지 낄낄 웃으며 그 말을 전했다. 그런 그가 최근 아주 솔직한 화법으로 권력의 추악한 부당거래 현장을 고발했다. 영화는 꽤 볼 만하다. 박중훈의 평대로 '연기 올림픽'이 대단하다.  

부당한 권력 간 거래를 고발한 그는 타인의 취향이 존중되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한결같이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집단과 단체에 숨은 개인들이 한 개인을 무참히 짓밟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타진요, KBS"를 꼽았다. 타블로와 김미화를 걱정한 탓이다. 뻑하면 좌익으로 몰아붙여 곤란하게 만드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당부했다. 그건 진보도 마찬가지라면서.

다음은 류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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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만의 신작 <부당거래>는 권력의 먹이사슬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영화입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했지만, 결국 작은 권력은 다 죽고 큰 권력은 살아남습니다.

"특별히 그것만을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제가 처음 이 대본을 받았을 때 가장 매력적인 대목은 바로 극중 등장인물들의 직업과 삶이었어요. 실은 제가 기소독점이 뭔지, 경찰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몰라요. (웃음)

다만, 이 영화 안에 등장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최대한 알려고 노력했고, 알지만요. 그러나 평소 권력관계에 심취해서 깊이 파거나 관심을 두고 살진 않았어요. 그래서 간혹 어떤 특정한 권력집단을 타깃으로 한 영화 아니냐, 오해하실 수 있는데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 시선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 사건보다 인물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신 건 왜 그러신 건가요.
"경찰, 검사, 조폭 출신 건설업자 등등 이들의 직업과 또 이들이 각각 휘말린 사건이 특수해 보였어요. 다들 물고 물리는 관계잖아요. 서로 발목 잡기를 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우리 일상이 다 그렇지 않나요?

솔직히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면서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똥 묻히는 것도 되게 싫어하고. 욕먹기 싫고, 책임지기 싫어하고. 크건 작건 어쩌면 그건 내 모습일 수 있고,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거죠. 조직과 관계된 개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어요."

"'아빠, 나이 어린 상사한테 욕먹고 있어' 이럴 수는 없잖아요"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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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기(황정민 분), 주양(류승범 분), 장석구(유해진 분)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은요?
"음. 공 수사관(정만식 분)이요! 주양 검사 밑에서 일하는 그분 참 애정이 가요. 하하. 무슨 얘기냐면, 공 수사관은 철저히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우리들에게 지금 이 순간 일을 하고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죠.

공 수사관은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에 벗어난 죄를 짓지는 않고 살아요. 무능력한 게 죄는 아니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하튼, 우리는 늘 어릴 때부터 성실하게 살라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사실 능력이 없는데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에겐 많은 보상이 따르지 않습니다. 벽 보고 일하는 것 같다, 실제 욕도 많이 하고, 욕도 많이 먹지요.

제가 아버지라서 꼭 넣은 장면이 있어요. 스스로 만들어놓고도 참 잘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장면인데요. 공 수사관이 미용실에서 주양 검사에게 깨지는데 딸내미에게 전화가 옵니다. 이건 원래 대본에 없던 건데 제가 애정을 갖고 넣었어요. '아빠 뭐해?' '아빠 일하는 중이야' 이렇게 말하죠. 주양 검사가 가만히 듣고 있어요.

사실 이럴 때 '어, 아빠, 나이 어린 상사에게 욕먹고 있어, 그러니까 끊어!' 이런 표현을 쓸 수는 없잖아요. 저도 종종 애들한테 전화를 받거든요. '아빠 인터뷰 중이야', 무슨 소리인지 애들이 잘 못 알아들어요. 그냥 통칭 '일하는 중이야' 이러는 거잖아요. 그냥 일상의 표현인 거지요.

이동진 선배가 제 영화를 일컬어 '장남영화'라고 해주셨는데, 전 저한테 정말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장남의 영화이고, 가장의 영화이고, 그래요. 호객행위에 별 도움은 안 되지만요. 하하하."

- 호객행위에 도움이 되는 인물 가운데는 애정이 가는 인물이 없어요?
"사실 전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에게 애정을 주는 건 되게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어떤 인물과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정제하는 순간, 의도하지 않게 정치색을 띄게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영화가 프로파간다 영화가 되는 건 싫었어요. 이건 그냥 어떤 인간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소재 자체가 얘기하기 딱 좋은 그런 내용 아닌가요? 후훗. 만일 제가 아예 까놓고 권력의 먹이사슬을 논하는 영화였다면 안 했을 거예요.

질문에 좀 다른 대답을 하자면, 영화감독은 독재가 허용되는 몇 안 되는 직업이잖아요. 주양이라는 인물이 저와 많이 닮았어요. 비슷해요. 영화 속에서 공 수사관이 주양 검사에게 '어떤 명목으로 영장을 청구할까요', 이렇게 묻는데 이런 말을 하지요. '나는 명목 같은 거 잘 모르고 꼭 좀 검토 좀 하고 싶은데?' 사실 제가 영화 찍을 때 현장에서 잘 쓰는 말이에요. 소품 뭐 어쩌고 그러면, 아 나 그런 거 잘 모르는데 그거 꼭 좀 쓰고 싶은데? 이러거든요.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선 사람이 함부로 독재를 휘두를 때 주변이 얼마나 불편해질 수 있는지 그런 거예요."

"<검사와 스폰서>, 돈으로 환산하면 이게 얼마짜리 광고야~"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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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촬영되던 중에 '검사와 스폰서' 사건이 터졌어요. 에피소드 없었나요?

"1차로 '검사와 스폰서' 사건이 터진 건 촬영 직전이에요. 사실 배우들은 이 대본을 받고 이게 말이 되니? 하면서 관객들이 뭐라 하겠느냐,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할 게 아니냐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설득을 했어요. 사건에 주목하지 말고 서로 발목 잡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자고. 그런데 '검사와 스폰서' 사건이 딱 터진 거예요. 너무 비슷한 사건이라 우린 '너무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속으론 쾌재를 불렀어요. 하하하하. 돈으로 환산하면 이게 얼마짜리 광고냐 그랬어요. 처음엔 그랬는데, 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검찰 내부에 별도의 수사처가 생기고, 급기야 특검까지 생기면서 배우들이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야, 우리 이거 개봉이나 하겠냐? 왜냐하면 실제로 승범이는 강풀의 영화 <26년>이 제작 중단된 상태였고. 시국선언 이후 영화계 사람들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던 터라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 결과적으론 '검사와 스폰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딴 영화는 아닌 거군요.
"영화를 아신다면 그건 물리적으로 시간상 어려운 거라는 것쯤은 아실 거예요. 전혀 그 사건과 관계없이 이 영화는 촬영이 됐어요. 다만, 제가 모티브를 따온 사건이 하나 있긴 해요. 2008년 3월 발생했던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이에요. 당시 MB가 직접 일산경찰서 현장을 방문했고 이 사건 아주 이례적으로 기록적인 시간 안에 해결됐었죠. 극을 리드하는 사건이 '아동 성추행범' 관련이거든요."

- 현실로 드러난 '검사와 스폰서'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웃기는 게요, 정작 저는 그 사건을 다룬 <PD수첩>을 못 봤다는 겁니다. 저희 집에 TV가 없잖아요. 애들이 대안학교 다니는데 학교방침이에요. 그래서 전 그걸 못 봤어요. 나중에 자료로 챙겨줘서 다운로드 받아 보긴 했지만요. 시끄럽게 막 돌아갈 때는 그걸 못 봤다는 거죠."

- 비리검사의 일상이 그럴싸하게 묘사돼 있잖아요.
"혹시나 오해하실 분들을 위해 내용증명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은데요. 절대로 특정기관을 일부러 비판하려고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에요. 오히려 지금 기획됐다면 아마 더 조심스러워서 잘 못 다뤘을지 몰라요. 영화 개봉하고 류승완이라는 연출자가 한국사회를 해부했다, 평가해주시는데 실은 저 인터넷으로 연예뉴스 위주로 봐요. 제가 꼭 그렇게 의식이 좌쪽인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술 접대 받는 기자, 그리고 언론인, 언론관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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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속에선 기자도 권력의 먹이사슬에 낀 존재로 묘사되잖아요. 건설업자가 비리검사에게 건넨 명품시계를 결국 기자가 받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 취재원의 입맛대로 기사를 써주는 얘기가 나오지요. 요즘도 그런 기자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언론시사 때 어떤 기자가 제게 언론관을 묻더군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기자는 그냥 그 직업에 종사하는 한 직업인으로 그려진 거예요. 언론에 대한 얘기가 아닌 거지요. 제가 언론을 까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단지 그 세계 안에서 얽히고설킨 관계를 묘사하려다보니 기자도 등장하게 된 거지요. 어떤 분들은 경찰 위에 검찰, 검찰 위에 언론이 있는 거 아니냐, 결국 감독은 권력의 최고에 언론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묘사한 것 아니냐 뭐 이러더군요. 그렇지만 최고의 권력 자리에는 반드시 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한국사회에서 언론이 갖는 영향력을 인정하지만, 솔직히 언론도 발목 잡히는 순간 있지 않나요? 언론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언론이 최고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 주양 검사에게 술 접대 받은 기자가 쓴 기사와 신문이 나오잖아요. 이때 <조선일보>의 '일보' 자가 슬쩍 스치던데요. 기자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 그랬나요? 아닌데...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식당을 했어요. 돈가스 집이었는데요. 어떤 아저씨가 고기 두께가 너무 얇다는 거예요. 막 항의를 하시다가 끝내 하는 말이 내 친구가 신문기자인데, 이 집 한번 언론에 맞아봐야겠어? 오우... 절대 안 잊혀요.

또 제가 삼촌이라 부르며 따라다니던 분이 있는데요. 이분이 낚시인가 바둑인가 잡지 기자였어요. 제가 당구장에서 일할 때였는데 그때 경찰의 야간단속 뜨고 그럴 때인데 그분이 자기에게 기자증이 있는 걸 그렇게 당당히 여기셨던 기억이 나요. 그냥 무의식 속에 기자? 대단한 거구나, 그런 경험들이 있긴 하죠."

- 강력계 형사인 최철기 반장이 고민 끝에 구정물에 손을 담그게 되는데, 결국 이건 장남으로서, 오빠로서 여동생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 때문인 걸로 보여요. 감독님 영화에선 장남의 무거운 어깨가 자주 표현되는 것 같아요.
"제 동생 친구 중에 10대 시절을 어둡게 보내다가, 제도권 밖에서 정말 골통처럼 놀다가 갑자기 고려대 의대에 간 녀석이 있어요. 지금은 그마저도 때려치우고 변리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데, 그렇게 변신한 까닭이 여동생 때문이에요.

여동생 시집 보낼 때가 됐는데 집안에 보호자라고는 덜렁 오빠 하나 있는데 변변한 직장도 없다는 게 너무 싫고, 제대로 된 명함 하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하게 공부했고 의대에 합격했다는 거죠.

저 역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의 존재. 그런데, 이게 또, 가족이 살갑지가 않잖아요. 집집마다 문제들을 안고 사는 것 같아요.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고. <짝패>에서도 그렇고 정말 제 영화엔 가까운 사이에서 틀어지는 관계, 가족 혹은 가족 같은 관계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이 나오는 것 같네요."

- 특정 권력집단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을 통해 감독 스스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사회적 메시지는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에는 작품 끝내고 인터뷰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의도, 소위 작의라는 게 많이 작용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이런 식이에요.

나만 알고 있는 어떤 속뜻? 이런 게 자꾸 치기처럼 느껴져요. 영화를 만드는 본질과는 무관한, 기호를 갖고 게임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본질 같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가 선택한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정하고 나열해서 완성한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여주는 것과 보이는 건 완전히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보여주는 것에 대한 통제권은 내게 있을지언정, 보이는 것에 대한 통제권은 저한테 있지 않죠. 500석짜리 극장에 500명의 관람객이 왔다면 저는 500편의 <부당거래>가 상영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폭탄주 마는 장면은 현직경찰 취재에 의한 것"

- 영화제작을 할 때 취재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주로 무엇을 어떻게 취재하시나요?

"진짜 취재 많이 하는 감독들에 비하면 전 새 발의 피예요. 하하. 그리고 전 제가 상상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세상을 보는 시선이 아주 독창적이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부족한 부분은 발로 뛰어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작품을 합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상상력이란 게, 사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죠. 또 놀라운 일들도 얼마나 많이 벌어집니까. 취재를 통해 얻어지는 생생한 것들을 통해 자꾸 도움을 얻으려고 하지요."

- 이번 영화를 제작할 땐 주로 어떤 분들을 만나 취재하셨어요?
"이 영화는 여러 인물들의 관계망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다뤘잖아요. 따라서 그 관계망에서 있음직한 일과 사건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어요. 현직 경찰과 검사, 그들의 생각과 표현, 문화 이런 것들을 잘 알아야 했어요.

처음엔 접근이 쉽지 않아서 사회부 기자들을 만났어요. 영화를 만든 뒤에는 '문화부' 기자들이 도움이 많이 되지만, 영화를 만들기 전엔 '사회부' 기자들이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하하하. 자세한 얘기는 예민한 부분이 있어서 일일이 다 밝히기가 좀 그런데... 다만, 폭탄주 마는 건 취재에 의한 기법이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현직 경찰이 그렇게들 드신다고."

- <부당거래>에서 검사가 비리와 엮여 검찰청은 좀 불쾌해하지 않았나요?
"우리에겐 <공공의 적2>가 있잖아요. 하하하하. 음 그렇지만 저도 소수가 다수의 이미지를 다 흐려버리는 누는 안 끼치려고 했어요. 사실 검사들도 그런 시선이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검사의 이미지는 왜 그렇게 나쁘냐, 수고하고 애쓰는 검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저도 잘 알지요. 그때마다 전 꼭 얘기합니다. 우리에겐 <공공의 적>이 있잖아요~."

- <대부> 시리즈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좋은 친구들>의 마틴 스콜시지 등 수작을 낸 감독과 비견되는 통찰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영광이지요. 과찬이라고 하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괜히 겸손 떠는 것 같고, 마틴 스콜시지 감독은 세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출가 중 하나입니다. 그런 분과 비견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영광이에요. 그런데, 과연 <부당거래>가 그렇게까지? 싶어요. 객관화해서 얘기해보자면, <살인자들의 성>보다는 나은 것 같고, <좋은 친구들>보다는 훨씬 못한 것 같고. 그렇지만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다른 영화고 다른 세계잖아요.

허나,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거장이 되고 싶은 욕망도 있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전 어느 순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하하하하. 더 비극적인 것은 너무나 뛰어난 연출가들이 제 가까운 곳에서 숨 쉬고 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략을 바꿨어요.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다른 걸 하자! 비교 안 당하게, 영업전략을 사~알짝 바꾼 거지요. 큭큭큭."

- 2008년 대학생이 좋아하는 인물 중 영화감독 부문에서 1위를 하셨어요. 왜 대학생들이 감독님을 선호하는 걸까요?
"글쎄요? 어려 보여서? (- 아유~) 하하하. 그럼 뭘까요? 그런데 사실 전 그런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지나가는 일일 뿐인 거죠. 그리고 전 영화감독인 절 좋아해주는 것보다 제 영화를 좋아해주시는 게 훨씬 감사합니다.

'<무릎팍도사> 잘 봤어요! 감독님 영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팬이에요!' 이런 분들... 아니,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편집된 어떤 소스를 보고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결정할 수 있는 건가요? 그리고 영화감독에게 감독 개인의 이미지가 좋다는 건 칭찬인가 욕인가 생각하게 돼요. 물론 대학생이 혐오하는 감독 1위보다는 100만 배 낫지만 말입니다."

액션키드에게 로맨스영화는 벅차다?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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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키드라는 별칭이 있으신데요. 류승완표 로맨스 영화는 안 만드시나요?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죠. 그리고 진지하게 써보려고 시작한 일도 있었어요, 한 2~3년 전 쯤? <이별하기에 2시간은 너무 짧아>란 제목의 영화였는데요. 전화통화 두 시간 하면서 '너 어디야?' 실제 2시간 동안 서로 엇갈리면서 벌어지는 '이별의 현재진행형'을 다뤄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게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런 영화를 하기엔 현실이... 우리 마누라와 애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 이거죠. 하하하하. 현실에서 살기도 힘든데 영화까지? 아유 그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아주 좋아하는 멜로드라마도 몇 편 안 돼요. 멜로영화 보는 걸 즐기지도 않고. 재밌어하지도 않고, 즐길 것 같지도 않는데 굳이 찍어야 하나? 막연한 가능성만 갖고 영화를 찍기엔 일평생 구경할 수 없을 만큼의 큰돈이 들어가는데, 그런 장난은 안 치는 게 맞다, 직업윤리상.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 지난해 영화인 225인 시국선언에 동참하셨잖아요. 촛불집회에도 나오셨고. 그런데 '촛불은 폭동'이라 악담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장본인 민동석씨가 외교부 제2차관에 새로 낙점됐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저는 정치적으로, 아니, 저를 아는 분들은 오히려 우파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들 해요. 부분적으로는 사형제도도 찬성해요. 애한테 무슨 몹쓸 짓을 저질렀거나, 음식 갖고 장난친 인간들에 대해서는, 그 이면의 실체가 어떻더라도, 그 사실만으로는 찢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래요.

물론 평생 남편에게 구타당했던 일흔 할머니가 남편을 죽인 일,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몽둥이질을 했다는 기사를 읽곤 이런 건 법이 좀 융통성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합니다.

좌우를 떠나,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최소한의 예의랄까, 상식이랄까 이런 것들이 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실제로 전 운전하다 화도 잘 내고 싸움도 잘 하고 그럽니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쓴 시나리오 읽다가 가끔 그러세요. 너 파쇼니? 깜짝 놀라 당장 바꾸기도 하지만, 제가 뭐 진보다, 보수다 그런 구분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너 파쇼니?"

- 촛불집회엔...

"그것도 뭐 특별히 진보적 의식을 갖고 한 행동이 아니에요. 그때가 제 영화 <다찌마와 리> 녹음할 때였는데, 촛불 인터넷 생중계를 봤어요. 그런데 어떤 여자아이가 깔렸는데 군홧발로 막 걷어차는 게 보이는 거예요. 광우병이고 뭐고 이건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서 나간 거지요.

설령 남자아이라도 군홧발로 걷어차면 안 되는데, 하물며 여자아이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한다는 건 정말. 또 그 여름에 뭐하는 거냐고요. 전경 아이들은 두껍게 옷을 입혀서 흥분상태 만들어놓고, 아주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생각했어요.

전경도 피해자고 시민도 피해자인 거지요. 술자리에서 만나면 모두 친구고, 영화관객이고, 또 내 고객이고. 하하. 그런데 그 순간, 손에 피를 안 묻히시고 우아하게 아침이슬 노래소리 들으며 눈물 흘리는 분이 계시더라 이거죠. 그래서 화가 났던 겁니다."

- 2002년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미선·효순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삭발도 하셨는데요.
"2008년 촛불, 2002년 촛불 모두 전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만 생각을 해보자고요. 살아 있는 사람이 그것도 어린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죽게 됐어요. 차라리 총에 딱 맞았거나, 대포에 맞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장갑차 바퀴에 짓밟혔다면 그 고통이 어땠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거 아닌가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국민 보호 좀 잘하라고 선거하고 대통령 뽑고 그러는 건데, 아니 그 꽃 같은 나이에 사람이 죽었는데, 무엇보다 누가 범인인지 확실히 아는데, 가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안 해?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냥 한 아이의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전 지금도 미제 좋아하고 담배도 말보로 피우고 그래요. 반미주의자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사건은 도의적으로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봐요.

프랑스 가서 되게 부러운 건 메뉴판에 영어 없어도 당당하다는 거예요. 국민들에게 그 정도의 자존심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영어를 잘해서 꼭 살아남아야 돼, 영어 잘하려면 밤새 과외해야 돼, 어릴 때부터 해외연수 가야 돼, 국사를 영어로 배워야 돼, 이런 게 아니라 어떤 자존심,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08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셔서 교육문제에 관심 많다고 하셨잖아요. 지난 6월 치러진 교육감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이 수도권에 포진했습니다. 교육에 변화의 바람이 불까요?
"(웃음) 저는 제 경우를 일반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고졸이잖아요. 제 동생은 중졸이고. 그래서 군대도 안 갔잖아요. 우리 애들은 대안학교 다니는데, 인가가 안 나서 모조리 무학이에요. 하하.

그런데 저는 대학교육을 안 받고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이런 자신감을 그냥 일반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가 맞다, 틀리다 하기 참 어려워요. 안타까운 건 매일 밤 12시가 넘으면 강남 대치동에 아이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닌다는 거지요.

국사교육보다 영어교육이 더 중요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철학과 윤리를 공부하는 것보다 토익점수를 더 많이 따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생각해요. 저도 영어공부 하지만, 철학이 형성돼야 할 시기에 사고력과 상상력을 길러야 할 시점에 암기력만 요구하는 교육이 맞는 건가? 그런 교육이 좀 바뀌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합니다."

"타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였으면"

-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나요?
"얼마 전 제가 한 초등학교에 일일교사를 하러 간 일이 있어요. 제일 많이 나온 질문이 영화감독의 연봉은 얼마인가요? 와~ 저 되게 놀랐어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는데, 우리 때와 비교하자면 대개 과학자, 슈바이처, 피아니스트 대개 꿈이 이랬잖아요. 그런데 대기업, 공기업 취업. 이런 게 맞는 건가요?

<부당거래>도 그렇지만,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구조라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사건이 벌어지잖아요. 따지고 보면 <부당거래>는 헛소동이에요. 한 발만 떨어져서 보면 <부당거래>는 완전히 헛소동극이지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좀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은데."

- 영화감독 말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원칙이랄까, 그런 건 뭐가 있을까요?
"개인이 좀 더 존중받고, 타인의 취향이 존중되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존중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집단과 단체에 숨은 개인들이 어떤 개인을 짓밟는 건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타진요, KBS, 타블로와 김미화. 뭐만 하면 좌익이라고 몰아붙이는 일들, 그건 진보도 마찬가지 같아요. 몰아세우기 그런 건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권력이 좀 분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기업이 체인들을 만들어서 자그마한 구멍가게들을 공격하는 것들, 동네 구멍가게의 역할까지 다 빼앗아가는 것. 나쁘죠. 다양성 안에서 일치? 그런 게 좀 됐으면 좋겠어요. 전문가들, 장인이 존중받는 문화였으면 좋겠고.

결과적으로는 결국 우리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비롯된 잘못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우리나라 국사교육과 역사인식이 강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태그:#소셜테이너, #류승완, #류승범, #유해진,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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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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