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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인기다.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를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 있을까. 사실, 정의는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전시장, 공연장에서도 정의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석가족전>을 본 뒤 든 생각이다. 이 전시회는 가족전이다. 가족전이라고 하면 흔히 핵가족이나,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이런 규모로 열리는게 대부분.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조금 다르다. 총 4대에 걸친 43명의 가족이 참여했다. 말 그대로 대규모 가족전이다.

 

이번 전시회는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6년 전, 2004년 8월 부모님의 회혼(回婚)을 맞이해 가족이 참여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회혼이란 부부가 혼인하여 예순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마냥 예순해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건강해야하며 자손들도 무사해야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2004년 가족전 이후, 6년 사이에 가족도 더 늘었다.

 

이번 전시회는 아버지인 소석 김덕연(88)선생의 88세를 맞이하여 준비한 전시회다. 사실 이번 전시회는 김덕연 선생의 제안이었다.

 

아버지의 88세 '미수'를 기념한 가족 전시회 

 

"남들은 환갑이다 진갑이다 해서 가족들 모아놓고 잔치하고 먹고 즐기지만 아버님은 그런 걸 무척 싫어하셨어요. 요즘 다들 잘 먹고사는데 굳이 그렇게 모여서 한끼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셨죠. 그 대신 가족 전시회를 열면 어떻겠냐고 저희에게 물어보셨죠."

 

셋째 아들 김영종(57)씨의 말이다. 아버지의 제안이 떨어지기 무섭게 온 가족이 '오케이'했다. 일사천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전시회'라니, 남들 앞에 그림 한점 내놓을 실력도 안 되는 자손에겐 부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덕연 선생의 3남 4녀 자녀들은 모두 손재주와 그림솜씨가 뛰어나다. 맏이인 김영훈(65)씨는 금속공예에 일가견이 있다. 둘째아들 영무(60)씨는 원래 음악을 전공했지만 나무껍질이나 죽은 나무뿌리를 모아 마치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무 형태를 만드는 독특한 재주를 지녔다. 분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셋째 아들 김영종씨는 동양화를 전공, 현재 대학에서 동양화를 가르치고 있다. 막내딸 김영란(49)씨도 대학에서 서양학과를 졸업하여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나머지 딸들인 영자(62), 영혜(55) 영미(52)씨도 모두 서예와 유화에 조예가 깊다. 이쯤되면 예술가 집안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그렇다면 이런 자식들의 '예술혼'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자녀들은 아버지의 공부하는 모습과 어머니의 손재주를 꼽았다.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으셨어요. 저희 어렸을때 밀가루나 진흙으로 동물이나 신기한 것들을 만들어주셨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는 항상 집에서 서예를 쓰셨구요. 뭔가를 끊임없이 공부하시던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맏이 김영훈씨가 말했다.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아버님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참으로 부러운 광경이다.

 

자녀는 부모 본받는다

 

소석 김덕연 선생은 평생 경찰직에 몸 담았다. 한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사대 중등교육양성교육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때문에 휴학해야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경찰이 되었다. 그러나 7세부터 배운 서예를 향한 마음은 이길 수 없었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이었으나 개성과 가장 분위기가 비슷한 전주를 찾아 내려왔다. 전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서예를 공부했다. 스승도 없이 순전히 독학으로 이루어진 공부였다.

 

처음에는 중국의 필법위에 종이를 대로 따라쓰는 것부터 시작했다. 60년을 하루같이 반복했고 연마했다. 어느 정도 글을 쓰게 되면 우쭐하기 마련이지만 선생은 지금도 날마다 붓을 놓지 않는다.

 

가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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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종 외

 

인터넷 가족 '카페' 통해 서로 안부 주고받다

 

이번 전시회에는 미국에 사는 손주들까지 참여했다. 작품을 우편으로 직접 보내온 것이다. 비록 훌륭한 작품은 아니지만 가족전에 기꺼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회의 최고령 참가자는 88세를 맞이한 김덕연 선생이고 최연소 참가자는 증손자 김아원(4)양이다. 유치원에서 고사리같은 손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온 가족이 함께하기에 의미가 깊다.

 

"잘 그리면 어떻고 못 그리면 어때요. 저희 집이 원래 예술과 거리가 멀지도 않고 실제 생활에서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니까 평소 만들고 공부했던 것을 한번 같이 보여줄 수 있으니까 좋죠."

 

아무리 그 '취지'가 좋다고 해도 모든 일의 바탕엔 사람끼리의 마음이 통해야한다. 평소 김덕연 선생의 가족들은 남다른 우애와 가족애를 지녔다. 지난 2008년 작고하신 어머니 양정희 여사가 병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부터 이들 가족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가족카페'를 만들어 어머니의 안부를 주고 받았다.

 

곁에 있는 자녀들은 어머니의 병환 상태와 느낀 점을 담은 '병상일지'를 카페에 올렸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외지의 자녀들은 그 글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어머니가 작고한 뒤로 지금까지도 카페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연락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생에게 우문을 던졌다. 어떻게 해야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나요.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물어봤다.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내 평생 오늘날까지 내가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건 딱 한가지 밖에 없어요. 애들은 부모보고 배운다. 다 어른들 하기 나름이다구요. 어른이 공부하고 열심히 사는 걸 보면 애들도 분명 그렇게 삽니다. 애들 공부하라고 나무라기전에 부모가 먼저 공부해봐요. 자연 애들도 그렇게 따라옵니다." 

 

자녀는 부모 본받는다는 그 말. 아주 단순한 이치같지만 세상에 그처럼 무서운 말도 없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보듬고, 동기간에는 서로간에 공경하고 배려하는 이들 가족의 모습이 바로 작은 '정의'의 시작 아닐까. 전시회장을 나오는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족안에서 어머니는 영원히 살아있다

작고하신 어머니를 기리며 만든 가족공동작 <소풍가는 날>

 

이번 전시회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소풍가는 날>이라는 작품이다. 작고하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와 이번 전시회에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가족 전체가 참여한 작품이다. 어머니가 평소에 즐겨 입으셨던 모시저고리와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 가족사진, 자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을 필름으로 복사하여 꾸며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린 것은 그래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한시간 동안의 심장박동 그래프를 붙여놓은 것이다. 심장 박동이 일정하다가, 갑자기 불규칙해지고 다시 일정하다... 그렇게 몇차례 반복하다 마침내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버린 그 순간을 남은 자식들은 가슴 서럽도록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전시회는 9월 3일부터 9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렸습니다. 


태그:#가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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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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