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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다.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우라질, 네 머리를 쪼개버리겠다" 등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 아이들이 공포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30센티미터 자로 머리나 손을 때리며 밥을 늦게 먹었다는 이유로 걸상을 들고 있게 하기도 한다. 체벌규정이 있다고 하는데 이 교사가 하는 행동은 체벌규정에 어긋나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이 교사로부터 우리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사례 2] 조카가 사립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인데 학기 초 머리가 길다고 등교시간에 뺨을 맞고 벌을 서고 왔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한창 옷이나 머리에 신경 쓸 때 아닌가. 그런 것 가지고 벌을 선다는 것이 기가 막히고 부부교사인 조카 부모도 속상해한다. 다른 아이도 한번 걸렸는데 반발을 했더니 바로 바리깡으로 밀어버렸단다. 아이들의 의견을 학교에 전달할 길이 없는 것 같다. 학교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가 발족했다.
 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가 발족했다.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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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이하 '서울운동본부')의 토론회에서 제시된 학생인권침해 사례다.

토론회에 참석한 강혜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남부지회장은 참교육학부모회에 접수된 상담사례들을 제시하며 "인권침해요소가 있는 각종 규정과 학생인권의식이 미성숙한 학교 관계자 때문에 철저하게 학생인권이 짓밟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 남부지회장은 또 "유엔아동권리협약, 헌법, 초등교육법, 교육기본법에 명기돼 있는 학생인권보장 내용을 토대로 학생인권조례의 구체적 마련이 시급하다"며 "이로 인해 학생인권신장을 담보할 수 있고 교육적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학생인권조례에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참여함으로써 학생인권에 대하여 미성숙한 사람들이 스스로 깨우치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토론회에 앞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는 발족식을 갖고 이들의 출발을 알렸다. 서울운동본부는 선언문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자유와 참여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학교, 차이가 낙인과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학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 복원된 학교를 그리는 기본 설계도"라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를 역설했다.

▲ "학생인권조례한다고 큰일 안나" vs "곽노현은 이중인격자"
ⓒ 오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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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미숙한 보호대상 아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먼저 제기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학생인권이 어떻게 인식돼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난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인권'이 우리 사회의 학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검열하고, 양말색깔까지 신경 써야 할 지경"이라며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명제가 사라진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학생인권은 어떤 이유로든 유보되어서 안 된다"고 말했다.

발족선언문을 읽은 조은(18, 고등학생)양은 고등학교 3학년임에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 학생은 "학교의 치마길이 제한, 두발규정 등 사소한 것들에서 학생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며 "청소년들이 미숙한 보호대상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이 같은 규제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양은 "이제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등이 최대한 지켜지는 것이 옳은 방향이며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들의 권리 신장에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이 올라가면 교권은 떨어진다?

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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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교권이 침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정말 학생인권이 아이들을 망칠지, 교사들이 학생인권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조영선 서울 경인고등학교 교사는 '학생인권은 교권과 대립하는가'에 대해 얘기하면서 "학생인권이 사회에서 억압받는 존재의 인권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면 교권은 학생을 대상화했던 구시대적 귄위 의식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총자료의 교권침해사건 유형별 증감현황에서 교권침해의 주원인은 '신분문제'였고, 학교 현실을 비춰볼 때 교사의 신분을 관할하는 교육청과 사립학교 당국이 교권침해의 주된 주체였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전교조의 자료에서도 교권침해의 원인은 '관리자 갈등', '휴직' 등 노동조건과 관련되는 것이 많다"며 "오히려 언론에서 떠드는 학생생활지도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교권침해의 중요한 원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운동본부, 곽노현과 함께 간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세웠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실행하기 위하여 다음달 8월,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조례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서울운동본부가 곽 교육감과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함께 실현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이에 대해서 서울운동본부는 "함께 병행하지만 서울운동본부의 역할을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석 전교조 서울지부 조직국장은 "서울운동본부는 주민 발의나 주민 청원 등 어떤 형태로든 서울 시민의 뜻과 힘을 모아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자체 조례안을 만들어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를 거쳐 서울시 교육청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조직국장은 "서울시 교육청은 나름대로 조례안을 만드는 등 조례제정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과정에서 두 조례안이 함께 검토돼 하나로 발의될 수도 있고, 각각 발의될 수도 있지만 공청회나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공조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흔쾌히 협조하고 함께할 것"이라고 전했다.

보수단체 "학생인권이라는 미사여구로 학생들 선동"

7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시민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철회 요구를 위한 학부모·교원·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7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시민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철회 요구를 위한 학부모·교원·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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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의 발족식에 앞서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는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시민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철회 요구를 위한 학부모·교원·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집회 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학생 인권 조례는 학교 현장과 교육에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학교 현실을 무시하는 학생인권이라는 미사여구로 학생들을 선동하고 투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계획은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돼 일제고사에 대한 방침에서 교과부와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가운데 학생인권조례 제정 또한 수면 위로 떠올라 시민사회 전반에서 찬-반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학생인권조례, #곽노현,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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