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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와 책방마실 하기란

헌책방 뿌리서점.
 헌책방 뿌리서점.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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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헌책방에서 <도로시 에드워즈/최경림 옮김-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동서문화사,1982)이라는 어린이책 하나를 사서 읽었습니다. 1980년대 첫머리에 동서문화사에서 '현대세계 가장 훌륭한 교육동화'라는 이름을 내건 '메르헨 전집' 가운데 하나로 나온 책으로, 이 책이 2007년에 다시 나왔음은 헌책방에서 이 책을 알아보고 사 읽은 뒤에 알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이렇게 놀랍도록 훌륭하고 어여쁜 책을 다시 내준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궁금하여 알아보니, <못 말리는 내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비룡소에서 내놓았습니다. 새로 나온 책이나 예전에 나온 책이나 알아보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어쩌면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처럼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받아들이자면 사람들 스스로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아름답게 살아야 할 텐데, 오늘날 우리 터전은 조금도 수수하거나 투박하지 않으며 하나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돈으로 발라 놓은 그럴싸한 아파트가 숲을 이룰 뿐, 아름다운 집터를 마련하는 움직임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더 빨리 달릴 기차를 만들고 더 큰 돈을 들여 이루려는 토목공사는 있으나, 정작 우리 스스로 작고 낮으며 고운 결을 일구려는 땀방울은 쇠삽날에 찍힙니다.

즐겁게 읽고 덮은 책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입니다. 제가 혼인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살아갔다 할지라도 어느 날엔가 이 책을 알아보고 즐거이 읽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을 꾸리는 오늘 모습이기 때문에, 이 책이 번쩍하고 눈에 들어왔고, 차근차근 읽는 동안 어버이 된 몸이자 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는 아이인 내 삶을 새삼스레 생각할 수 있어 더욱 즐겁고 반가운 문학이 아니랴 싶습니다.

아픈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가 하루 아닌 삶이지만 어렵사리 틈을 내어 헌책방 마실을 떠납니다. 인천에 있는 동네 헌책방은 꾸준히 찾아가지만 좀더 많은 책을 살펴보고 싶고, 여러 갈래 책을 둘러보고 싶어 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못하고, 동인천역에서 빠른전철로 휭 하니 나가서 얼른 돌아올 만한 거리인 용산역 둘레 <뿌리서점>까지 갈 뿐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너무 오래 바깥에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아이가 더 어릴 때에는 거의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면, 이제는 아이가 어느 만큼 견디어 준다든지 다른 사람들하고 신나게 어울리며 놀아 주니까, 엄마나 아빠 된 사람으로서 살짝살짝 책 구경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책방에서 쉴새없이 놀고 있는 아이.
 책방에서 쉴새없이 놀고 있는 아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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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맙게 만나는 책들

헌책방에 온 아이는 새로운 놀이터에 왔다고 여기는지 이리 쑤석이고 저리 쑤석입니다. 먼저 엄마보고 책을 보라 하고, 아빠가 아이를 맡습니다. 아이한테 손을 잡히고 이리저리 걷다가 안아 달라 할 때에는 품에 안고 일본책 꽂힌 자리에 섭니다. 손으로 책을 끄집어 내어 펼칠 수 없는 만큼 눈으로 책이름을 훑습니다. 일본말로 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나 소노 아야코 님 책을 찾아 달라는 분이 있어서 <曾野綾子-夫婦の情景>(新潮文庫,1983)과 <曾野綾子-天上の靑 (上)>(新潮文庫,1995)을 골라 놓습니다.

판 끊어진 소설 하나.
 판 끊어진 소설 하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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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김난주 옮김-가족 시네마>(고려원,1997)라는 소설책을 하나 고릅니다. 일본에서 큰상을 받으면서 알려진 유미리 님이고, 이 책은 지난날에 꽤나 사랑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고려원 출판사가 문을 닫고 난 뒤로 <가족 시네마>가 다시 나오지는 못합니다. 소설이든 책이든 바람을 타고 팔린다고 할까요. 책에 담은 알맹이란 어느 한때에만 읽으면 그만일 삶자락이 아닐 텐데요.

이양지 님 책이나 사기사와 메구무 님 책이나 유미리 님 책이나 엇비슷하게 대접을 받는데, 한국땅 사람들이 이 세 분 삶자락 그대로 아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지라도, 먼 나라 남 이야기로 읽고 덮을 책 하나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쩌면 이런 바람 저런 바람이 모두 수그러든 조용한 이즈음 유미리 문학을 차근차근 읽어 보아야 비로소 이이 문학에 깃든 눈물어린 삶을 유미리 님 스스로 내버리지 않고 실낱같은 풀줄기 하나 붙잡는 모습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프랑소아즈 사강, 베르나르 뷔페 그림/이가림 옮김-사강의 환각일기, 독약>(문예출판사,1980)라는 얇은 그림책 하나를 들여다봅니다. 사강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으나, 사강 님이 마음이 지치고 몸이 힘들며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쓴 글에 그림을 몇 가지 붙여 나온 책이라 하기에 들여다봅니다. 튼튼하다는 사람들 기쁘다는 이야기에는 그리 손이 안 가는데, 아프다는 사람들 슬프다는 이야기에는 늘 손이 갑니다. 넉넉하고 아쉬움 없다는 사람들 돈벌이 이야기에는 콧방귀를 뀌지만, 모자라고 힘겹다는 사람들 가난한 이야기에는 귀를 쫑긋 기울입니다.

.. 오늘 아침에 나는 아뽈리네르의 작품을 읽었는데, 다마스커스 여자들이기는커녕 정신분열증 환자여서 이상한 머리에 보라빛 밀짚모자를 쓰고, 하나의 자그마한 생각에 그들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자그마한 생각에 집요하게 사로잡힌 이 착한 여자들이 공원의 숲길을 거니는 광경을 보았다면 그는 뭐라고 말을 했으려나? ..  (20쪽)

새로 장만한 책마다 연필로 책값을 적어 놓습니다.
 새로 장만한 책마다 연필로 책값을 적어 놓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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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에서 처음 펴낸 책을 우리 말로 옮긴 '20세기 미술의 발견' 묶음책이 몇 가지 보입니다. 이렇게 눈에 뜨일 때에 장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Oskar Kokoschka(김금미 옮김)>(예경,1996), <Marc Chagall(마순자 옮김)>(예경,1996), <Joan Miro(유재길ㆍ이돈수 옮김)>(예경,1995), <Rene Magritte(조광석ㆍ이돈수 옮김)>(예경,1995) 네 권을 골라듭니다.

그런데 이 묶음책에는 옮긴이 이름만 나와 있을 뿐, 에스파냐 어느 출판사에서 낸던 책이며 글쓴이는 누구이고 엮은이는 누구인가 하는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간기에는 알파벳으로 저작권을 밝혔으나, 한글로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궁금하군요. 책을 왜 이렇게 만들어 옮기는지.

.. 코코슈카는 기술적인 묘사에 의존하지 않고 동시대의 다른 미술가들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일을 해내려 했다. 즉, 자신의 시대상을 활용하여 20세기의 내면적 전기라 할 수 있을 편년사를 남기려 했다 ..  (오스카 코코슈카)

후안 미로라는 분은 조셉 파스코 미술학교에서 카탈루냐 지방 공예품에 나타난 수수한 그림결과 생명력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때는 10대 나이인데, 한국이든 아시아이든 유럽이든 남미이든 시골에서 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빚는 물건은 어디나 투박하면서 수수합니다. 멋을 부리려는 물건을 만들지 않습니다. 쓰려는 물건을 만들면서 멋을 부립니다. 따로 멋을 부린다는 생각이 없이 당신들이 오래도록 즐겨쓸 물건을 만들고 있으니, 오래도록 지켜보고 아이한테 물려주어도 지루하거나 질리지 않을 투박하면서 수수한 물건을 만들겠지요.

질그릇이든 노래이든 괭이이든 집이든 숟가락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쓸모있게 만들면서 튼튼하게 만듭니다. 쓰기 좋게 만들면서 몸에 금세 익숙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당신들 살아가는 터전에 흔히 있는 흙과 나무와 돌과 짚으로 물건을 만듭니다. 쉽게 만들 수 있고, 더는 쓸 수 없어 버려야 한다면 저절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들이 제아무리 도시에서 돈벌이만 하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사람들한테 두루 사랑받는 한편 오래도록 뭉클한 이야기를 나누는 작품들은 모두 '흙'을 다루던 투박한 '농사꾼 손길'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당신들 깜냥껏 곰삭인 매무새를 빛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옛 전매청 사외보.
 옛 전매청 사외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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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이름을 바꾸어 쓰는 예전 '전매청'에서 펴내던 공기업 사외보 <專友> 6호(1972.4.)를 봅니다. 사외보 첫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전우논총'이라는 꼭지 <공무원의 봉사정신>이라는 글을 읽으면 "그러면 과연 우리 나라 공무원들이 얼마나 이 봉사정신에 투철할까 하고 문의할 때 대다수의 국민들이 어떻게 대답할는지? 매우 궁금하다(9쪽)."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70년대 공무원만 시민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1960년대 공무원 또한 주민을 올바로 받들지 못하지 않았겠느냐고 헤아려 봅니다. 1950년대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이며, 1980년대나 1990년대라고 나아지지 않았겠지요. 2000년대나 2010년대는 지난날과 견주어 얼마나 새로워지거나 거듭났을까요. 밥벌이 일자리 아닌 '공무를 하는 사람'임을 깨닫는 일꾼은 오늘날 얼마나 늘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책 <허호(사진),최경희(글)-혼자가 아니에요>(Compassion, 2009)를 봅니다. 이 사진책을 내놓은 '컴패션'이라는 곳은 "꿈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겠다고 하는 선교봉사 모임입니다. 1952년에 전쟁 잿더미 한국 어린이를 도우려고 열린 모임이고, 1993년까지 10만이 넘는 한국 어린이를 돌보았다고 하는데, 2003년에 한국은 후원국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한국 컴패션은 나라밖 6만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 이제껏 저는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고작 한 장의 사진으로는 그곳의 끔찍한 현실을 보여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곳의 숨막힐 듯 지독한 가난의 냄새를 담아 올 재주가 없습니다. 그런 환경에도 아랑곳없이 언제나 힘차게 달음박질하는 어린이들의 박동을 느끼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렇듯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이들의 얼굴을 마주보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행복했지만, 찍은 사진을 꼼꼼히 들춰보기는 이번에도 힘들었습니다 ..  (찍은이 머리말)

가난하게 살아간다고 웃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 웃음을 잃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가난한 아이들 웃음이 더 맑거나 환해 보일 리 없습니다. 웃음은 부자든 가난뱅이이든 똑같습니다. 삶은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만큼 사랑스러운 삶이고, 스스로 아끼는 만큼 애틋한 삶입니다. 제 아무리 돈이 넘치더라도 사랑과 즐거움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면 메마르고 차가우며 쓸쓸하고 고단한 삶입니다. 제아무리 배를 곯고 있더라도 사랑과 즐거움을 아끼려 한다면 거짓말 아니라 콩 한 알을 갈라서 나누어 먹고 있더라도 얼굴에는 맑은 웃음이 감돕니다.

책시렁 한켠.
 책시렁 한켠.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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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살아가면 가난하게 살아가는 대로 사진으로 담고 글로 옮겨적으면 됩니다. 가난하면서도 밝게 웃고 지내면 가난하면서도 밝게 웃고 지내는 삶을 고스란히 담아서 보여주면 됩니다. 가난하기에 고달프다면 가난하기에 고달픈 모습을 사진으로 싣습니다. 넉넉하면서 나누지 않으며 찌뿌둥하게 살아가고 있으면 이러한 모습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밝히면 됩니다.

더 좋게 보이려 하지 않는 사진이라면 참을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더 나쁘게 깎아내리려 하지 않는 사진이라면 거짓이 깃들지 않기 마련입니다. 겉으로만 웃는 돈쟁이를 사진으로 찍으면 이러한 사진에는 웃고 있되 속으로는 시커먼 모습이 절로 우러나오기 마련입니다. 겉으로는 꾀죄죄하지만 오순도순 꾸리는 수수한 살림집을 사진으로 찍으면 이러한 사진에는 가난한 곳에 피어난 예쁜 꽃내음이 스며들기 마련입니다.

컴패션이라는 모임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또는 얼마나 속깊은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어떠한 일을 하든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어린이들한테 빛을 주기 앞서 하느님 사랑이 먼저라고 여길는지 모르나, 어린이들과 어깨동무하는 빛이란 따로 밝히거나 드러내지 않더라도 시나브로 하느님 사랑하고 하나가 됩니다.

가난한 이웃한테 밥 한 그릇을 나누어 주면서 '이 밥은 하느님 사랑이요' 하고 말한대서 참말 하느님 사랑이 가난한 이웃한테 베풀어지지 않습니다. 말없이 건네는 밥 한 그릇에는 저절로 하느님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깃들지만, 아니 말을 할 때에는 깃들이지 않는데, 사람들은 자꾸자꾸 내가 무엇을 베풀고 있다는 소리를 들추고 있습니다. 입으로 '우리는 사랑을 나누어요'라 읊는다고 참말 사랑이 나누어질 리 없으나, 몸으로 부대끼거나 삶으로 녹이기 앞서 자꾸만 말이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3) 고마운 사람

아이는 헌책방에서 신나게 놀아 주다가는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집에서 실컷 놀며 낮잠을 걸렀으니 책방에 와서 다시금 신나게 노니까 고단했겠지요. 아이와 함께 복닥이느라 책은 얼마 살피지 못하고 사진 몇 장 겨우 찍습니다. 나중에는 아이를 품에 안고 한손으로 덜덜 떨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옆지기는 함께 아이를 돌보아 주고, 당신이 어느 만큼 책을 보고 난 다음에 아빠보고 책도 보고 사진도 찍으라며 아이를 품에 안고 가만히 기다려 줍니다.

겉그림.
 겉그림.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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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뿌리서점> 아저씨는 1분이나마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할 겨를이 없이 새로 들어오는 책을 사들이고 손질하고 책값을 매기고 책시렁에 꽂아 놓기에 바쁩니다. 낮나절에 문을 열어 밤나절에 문을 닫을 때까지 한 번도 자리에 앉는 법이 없이 서른다섯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 손을 거친 책이란 얼마나 많을까요. 당신 손을 스치며 책손한테 건네진 책이란 얼마나 많을까요.

이 많은 책들은 처음에 누가 만들자고 생각을 했을는지요. 이 많은 책들은 처음에 누가 엮어서 펴내며 고운 책손 손길을 기다렸을는지요. 서른 해 만에 빛을 보는 책이란, 서른 해 동안 어느 분 책시렁에서 잠자고 있다가 헌책방에 흘러들어온 책이거나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서 서른 해를 잠자고 있다가 어느 책손한테 눈에 뜨인 책입니다. 서른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 책이라 하면, 이 책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을까요. 이 책을 쓴 사람은 아직 살고 있으실까요.

이제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미우라 아야코/맹사빈 옮김-빙점>(양우당,1983) 일곱 권이 보입니다. 일곱 권 한 질이 정갈한 모습으로 끈으로 묶인 채 한쪽에 쌓여 있습니다. 이제는 <빙점> 같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없을 듯한데, 문득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 판본을 따지며 찾아보고 있습니다. 마침 '맹사빈 옮김'으로 일곱 권짜리가 보이고, 이 책은 일본책을 고스란히 옮긴 책이겠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몇 해 앞서 '맹사빈 옮김'으로 고미카와 쥰페이(五味川純平) 님 <인간조건> 열 권을 장만하여 읽은 적이 있거든요.

.. "누구든지 어머니라면 저하고 같을 거예요. 쓸쓸하고 슬퍼서 미칠 것 같다고 틀림없이 생각할 거예요. 당신은 일을 하시니까 시름을 잊고 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 나쓰에도 여자애를 보는 것은 괴로왔다. 그러나 루리꼬와 같은 또래의 여자애를 보면 말을 건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 여자애들 속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루리꼬와 공통된 것이 반드시 있었다. 그것은 귀엽게 한쪽이 떨어져 나간 이빨, 비단결 같은 살결, 묘한 머리카락 냄새, 그리고 어린 말씨 따위였다. 그 여자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죽은 자기 딸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소망은 보는 것마저 괴롭다는 그 괴로움을 초월한 소망이었다 ..  (<빙점> 1권 93∼95쪽)

샛장수 아저씨 품에 안겨서 노는 아이. 샛장수 아저씨는 좋은 책을 거두어 줄 뿐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하고 함께 놀아 주기도 합니다.
 샛장수 아저씨 품에 안겨서 노는 아이. 샛장수 아저씨는 좋은 책을 거두어 줄 뿐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하고 함께 놀아 주기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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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꾸리는 삶을 살가이 담아내어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부드러이 펼치는 문학을 선보인 미우라 아야코 님이라고 느낍니다. 이분 번역을 여러 사람 판으로 읽었는데, 이제까지 제가 읽어 보기로는 다른 분보다 맹사빈 님 번역이 가장 나으며 어울린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 더 손질하면 한결 나을 테지만, 이만큼 글쓴이 마음이 되어 한 글자 두 글자 또박또박 옮긴 책은 드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깨끗하고 쉬운 말과 바르고 옳은 말도 잘 살필 노릇이지만, 이에 앞서 글쓴이 마음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번역이라 할 만합니다.

제아무리 일본말에 뛰어나다 할지라도 일본문학 번역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한국말에 훌륭하다 할지라도 글쓰기를 잘할 수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꾸리는 삶에 어떤 넋과 얼이 있는가를 읽는 눈길과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눈길과 마음을 내 따순 손길로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하고, 이 손길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나누어야 합니다. 창작이 예술인 만큼 번역은 예술이고, 번역이 예술이기에 나라밖 훌륭한 문학을 나라안에서 누구나 즐거이 맞아들이면서 웃음과 눈물을 나눌 수 있어요.

이리하여, 모처럼 헌책방마실을 함께해 주며 잘 놀아 준 아이부터, 아픈 몸으로 함께 따라와 준 옆지기에다가, 좋은 책을 만나도록 다리를 놓은 헌책방 아저씨, 좋다고 느낄 책을 처음 일군 글쓴이와 엮은 책마을 일꾼, 처음 이 책을 알아본 책손, 버려지거나 흘러나온 책을 고이 갈무리해서 헌책방에 가져다준 샛장수, 그리고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겨 준 숱한 옮긴이들 모두 고마운 사람입니다.

애 아빠가 짊어지는 가방을 만든 일꾼이며, 우리 식구 타고 움직이는 전철을 모는 일꾼이며, 우리 식구 달삯을 치르며 깃드는 보금자리를 지키는 할매와 할배며 모두 고마운 사람입니다. 노상 고마움을 받아먹고 살고 있는 셈인데, 고마움을 받아먹은 내 몸뚱이는 얼마나 내 이웃한테 고마운 몸짓으로 지내고 있는지 새삼 돌아봅니다.

갓 들어와 쌓인 동서문화사 어린이책들.
 갓 들어와 쌓인 동서문화사 어린이책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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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인 책들.
 묶인 책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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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서울 용산 <뿌리서점> / 02) 797-4459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헌책방, #책읽기, #삶읽기, #헌책방마실, #뿌리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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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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