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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해도 너무한 정부의 행태를 고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4월 중순쯤, 관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문이 한 통 왔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터넷실명확인제 실시에 따른 안내'라는 제목이었는데 '선거실명확인지원시스템 이용 신청서'에 기관정보하고 기관 IP주소하고 몇 가지를 적어서 빨리 보내달라는 거였다. 결론은 <공직선거법 제 82조의 6항>에 따라 '인터넷언론사는 실명제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무슨 뜻인지 모를까 봐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선거 기간 때 선거에 관련된 글을 작은책 홈페이지에 올리려면 이름을 밝혀야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어떤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지지하거나 하면 그 사람을 찾아서 처벌하겠다는 거다. 심지어 자연을 망치고 있는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도 선거법 위반이라고 처벌한단다. 국민은 축구 같은 얘기나 하거나, 입 닥치고 일이나 하라는 건가.

무시해 버렸더니 전화가 왔다. 인터넷실명제를 하지 않으면 게시판 폐쇄를 하거나 글을 못 쓰게 해야 한다는 거다.

"안 하겠다는데 왜 자꾸 실명제를 하라는 거요? 진짜 웃기는 나라네요. 거 맘대로 해요. 난 실명제 안 할 테니까."

그러곤 끊어 버렸다. 그 뒤 두 번인가 전화가 왔는데 무시해 버렸다.

5월 7일 금요일, 이번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화가 왔다. 귀찮아서 안 받았다. 그리고 휴일을 보내고 월요일이 됐다. 선관위에서 전화가 또 왔다. 정말 집요하다. 젊은 남자 목소리인데 아주 친절하고 상냥하다. 가증스럽기는 하지만 에효, 이 사람이 뭔 죄 있냐. 밑에서 일하는 사람만 불쌍하지.

"네, 사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귀 언론사 홈페이지가 실명제를 해야 돼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홈페이지 실명제요? 아니, 우리 같은 언론사도 있나요? 아이고, 축하할 일이네요. 고맙습니다. 우리 같은 구멍가게 출판사도 언론사로 취급해 주셔서. 그나저나 우리나라 언론사가 많네요. 뭐 듣자하니 마포구만 해도 언론사가 70개라면서요? 그나저나 이번에 정부가 엄청 긴장하고 있긴 있나 보네요. 아예 시민들 입을 꽉꽉 막고 있는 걸 보면."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들 모두 실명제를 하는 건 아닙니다. 선거에 관련된 글만 실명 인증을 받는 거지요."

선거에 관련된 글을 올리는 사람만 실명제를 한단다. 어이가 없다. 글을 쓰면서 '이 글은 선거에 관련한 글입니다. 실명 인증을 받으세요' 한다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름 밝히는 게 뭔 상관이 있겠냐만 자존심이 상한다. 만일 실명제를 거부하면 벌금을 내야 하냐고 물었다.

"벌금은 아니고 과태료가 있습니다."

"나, 벌금하고 과태료 차이 몰라요. 그럴 때 내는 걸 우린 벌금이라고 해요. 벌금이 얼마죠?"

"천만 원입니다."

"천만 원이요? 우리 회사 자본금보다 많네. 그래요. 나 실명제 아직 할 생각 없으니까 벌금 때려요. 벌금 맞으면 그냥 회사 접을랍니다. 아니, 뭐 우리가 돈 벌지도 못하고 겨우 먹고사는 출판사인데 그런 벌금 맞으면 회사 접고 말지, 뭐 우리가 이 짓 하고 있습니까? 전화 거시는 분은 공무원이에요?"

"아니요. 전 계약직으로…."

"아, 비정규직이군요. 참 힘들겠어요. 죄송합니다. 같은 노동자인데. 그런 일 하시려면 정말 힘들겠어요. 어쨌든 우린 아직 실명제를 할지 안 할지 결정 안 했습니다. 위에다 그렇게 보고하세요. 이 정부, 정권 유지하려고 그렇게 기 쓰다가 경제 완전히 망치고 서민들 입 꼭꼭 틀어막다가 폭동 한번 일어나는 거 볼 거예요."

그 비정규직.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고 친절하게 전화를 끊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폭압적인 정책으로 시민들 입을 막는 정권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친절을 위장하고, 집요하고 끈질기게 시민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정권이다. 촛불을 경찰이 친절하게 입으로 불어서 끄게 하고, 일인시위조차 못하게 한다. 소통이 부족했다며 친절하게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사대강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은 정말 이대로 가면 위기라고 생각하고 투표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투표하면 뭐 하나. 요즘처럼 많은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는데 인터넷에 말을 못하게 하면 선거에 출마하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오로지 후보가 보내 주는 선전물만 보고 찍으란 말인가. 후보가 누군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교육감 선거도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 얼마 전에 부산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생각났다.

강연을 하러 가느라 부산역에서 택시를 탔다. 어디어디를 갑시다 했더니 택시기사가 화부터 냈다. 손님이 없어서 두 시간 넘게 차례를 기다리다가 겨우 나를 태웠는데 너무 가까운 곳을 간다는 거다. 가까운 곳을 가면 택시비가 조금 나오는데 그 택시기사는 나를 내려 주고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가, 그 뒷줄에 가서 또 두 시간 손님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방을 가면, 웬만하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데 강연하는 곳 거리도 잘 모르고 시간이 없어서 택시를 탔는데 역시나였다.

그 택시 기사는 그래도 자기는 착하기 때문에 기분 좋게 모셔다 드리지 다른 기사 같으면 어림없다고 했다. 허허, 참. 그 택시 기사는 말끝에 드디어(?) 이명박 정부를 씹기 시작했다. 경제 살린다고 하더니 이게 뭐냐고, 요즘 손님이 없어서 아주 미칠 지경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이 사람은 생각이 올바로 박혀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 나오는 말.

"그래도 박정희가 잘한 거야. 박정희는 먹고살게 해 줬잖아."

띠용! 머리가 멍했다. 박정희? 난 그 시대에 12살 때부터 공장 다녔어. 노동자들이 먹을 것 못 먹고 열심히 일해서 경제가 살았지, 박정희가 살렸어? 그런데 이 사람은 지난번 선거 때 누구를 찍었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투표요? 아니, 미쳤다고 투표를 해요? 그놈이 그놈인데 난, 태어나서 한 번도 투표한 적 없어요. 투표를 왜 해? 먹고살기도 바쁜데."

참 불쌍하다. 그걸 자랑이라고 하다니. 넌 이명박 욕도 하면 안 돼, 하고 속으로 말했다. 투표가 우리 먹고사는 것과 곧바로 연관이 있는데 투표도 안 하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교육감 하나 잘 뽑으면 청소년들 무상급식을 받을 수 있고, 보충수업을 안 할 수도 있는데 왜 투표를 하냐고? 에라이 이 꼴통아!

인터넷 실명제를 밀어붙이고, 사대강 반대 시위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는 이 정부. 그때 그 택시기사처럼 이명박 정부를 씹지만, 투표를 안 하는 이런 '국민'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거겠지?

(나중에 선거 때가 돼 천만 원 '벌금' 떨어질까 봐 작은책 홈페이지(www.sbook.co.kr) 게시판에 글을 못 쓰게 해 놓았다. 시민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시대가 됐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청소년문학 잡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생활글, #안건모, #작은책,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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