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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유시민이면 나는 오바마다…. 뭐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저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 유시민입니다. 저도 야구를 좋아해서 가끔 눈팅 하는데, 오늘은 '앵벌이'하려고 로그인해서 글을 씁니다."

지난 8일 오후 1시경,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엠엘비파크>(MLBpark) '불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경기도지사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참여 신청을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유시민(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지난 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렸다.
 유시민(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지난 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렸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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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참여 신청하고, 선거인단에 뽑히면 전화 한 통 받아주시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저를 별로 마뜩찮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 글 그냥 skip(무시)하시기 바란다"는 당부도 적혀 있었다. 누리꾼들은 수백 개의 댓글을 달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정말 유시민 후보가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인증' 요구가 빗발쳤다.

30여분 뒤 유시민 국민참여당 예비후보의 트위터에는 유 후보가 불펜 게시판을 보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 글을 유 후보가 썼다는 사실이 '인증'됐지만, 이번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발목을 잡고 나섰다. 선관위는 사이트 관리자에게 유 후보의 글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통보했다. 유 후보의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하지만 유 후보측은 선관위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선관위에 유 후보의 글이 왜 선거법 위반인지를 묻는 질의서도 보냈다. 선관위의 '빨간펜'을 받은 뒤 다시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인단 참여는 10일 마감된다. '인증'이라는 산을 넘은 그의 인터넷 '앵벌이'는 '선관위'란 산을 넘지 못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저기요~ 저...유시민인데요"... 인터넷 '앵벌이' 나선 까닭은?

"저… 유시민인데요."

야구 등 스포츠 팬들이 주로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유시민 후보의 글은 주말 한낮 평온한 게시판을 삽시간에 뒤흔들 정도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선관위로부터 삭제 조치를 당한 첫 번째 글은 누리꾼들이 꼭 들러야 한다는 '성지'가 됐고, 삭제 조치에서 살아남은 두 번째 글 '다시 유시민인데요' 역시 9일 오후 2시 현재 최다 추천, 최고 조회, 최다 리플 등을 휩쓸고 있다.

유 후보는 첫 번째 글에서 "왜 불펜에서 선거운동 하느냐고 나무라지 말라"며 "여러분도 제 처지가 되면 이렇게 하게 될 거다, 저를 지지하는 분들이 마음으로 지지만 해주고 선거인단 참여를 안 해주시면 저는 정말 망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유시민 후보가 인터넷 '앵벌이'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처지'는 무엇일까? 유 후보 캠프의 김희숙 대변인이 8일 오후 "불펜회원 여러분, 유시민 5·8대란의 진위는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기도지사 후보단일화 경선 선거인단 모집을 하는데, 저희가 당원도 적고 조직력도 약하다보니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말고는 기댈 데가 없어요. 그래서 곰곰 생각하다가 '그래, 길거리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하루 종일 악수하는데, 눈팅하던 게시판에 들어가서 글 남기는 거 못하겠냐'하고 들어왔던 겁니다.

오프라인 거리에서 후보가 직접 악수하지 참모들이 대신 악수하지는 않는 것처럼, 온라인 게시판에도 캠프홍보물을 퍼 나를 게 아니라 후보가 직접 글을 쓰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시민(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린 뒤, 누리꾼들의 '인증' 요구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샷'을 올렸다.
 유시민(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린 뒤, 누리꾼들의 '인증' 요구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샷'을 올렸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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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유시민 후보는 후보단일화를 앞두고 경쟁자인 김진표 민주당 예비후보와 쉽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후보는 '전화조사 방식의 국민참여경선 50% + 여론조사 50%'로 결정된다. 특히 10일 오후 마감되는 참여경선 선거인단에 어느 후보쪽 유권자가 더 많이 포함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된다.

문제는 양당의 당원들이 주로 선거인단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기도내 민주당원은 30만 명인데 비해 국민참여당은 8000명에 불과하다. 일단 조직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김 후보는 휴대전화와 문자메시지 등 오프라인 모집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대중적 인지도가 장점인 유 후보는 지지 세력의 자발적 참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온라인을 통한 모집에 '올인'하고 있다. 유 후보 스스로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란 기적이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 후보가 수시로 트위터나 인터넷 팬카페 게시판 등에 직접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8일 <엠비엘파크> 외에 주로 주부와 여성들이 많이 찾는 <마이클럽> <82쿡>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잇달아 올렸다.

유 후보는 "오늘 '앵벌이'하려고 이 사이트 저 사이트 헤매고 다니는 중"이라며 "왜 마이클럽에서 이러느냐고 나무라지는 마시기 바란다, 하도 다급해서 이러겠거니 이해해주시면 고맙겠다"고 호소했다.

유 후보의 글에 대해 대다수 누리꾼들은 '참신한 발상'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닉네임 '수혹성여행'은 "자기 블로그나 홈페이지가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에 인증 글 올린 최초의 정치인이 유시민"이라며 "정치인이 유권자를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장이 아닌 인터넷 게시판에서 (정치인을)실제로 볼 수 있을 줄이야"라는 감탄사를 남겼다.

특히 유 후보가 자신의 글에 대한 진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인증 사진을 올리자, 누리꾼들은 "소름이 돋는다"(nizi), "엠팍 생활 7년에 이렇게 쇼킹한 일은 처음"(깁슨슴가) 등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고'하는 누리꾼, '삭제'하라는 선관위... 유시민 "어렵네요, 어려워 ㅜ.ㅜ"

모든 누리꾼들이 유 후보의 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정치적인 얘기는 다른 곳에서 하라"며 유 후보의 글을 '신고'했다. '신고'는 게시물 열람자가 게시물이 부적격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신고된 게시물들을 한데 모아 삭제 여부를 판단하는 기능을 말한다.

유시민(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리자, 일부 누리꾼들이 이를 "부적절하다"며 '신고'했다.
 유시민(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리자, 일부 누리꾼들이 이를 "부적절하다"며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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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후보는 자신의 글이 신고되자, 즉각 "괜히 글을 올렸나 하는 후회가 조금 든다"는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유 후보는 "제가 오늘 오프라인 선거운동을 포기하고, 가입되어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서 경선 선거인단 참여신청을 호소하는 일정을 잡았다"며 "오늘 글 올린 것이 혹시 결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누리꾼에 이어 선관위에서도 문제를 삼고 나섰다. 선관위는 유 후보가 올린 첫 번째 글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254조 '선거운동기간위반죄'에 해당된다며 <엠엘비파크> 측에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희숙 대변인은 "제3자가 쓰는 지지글은 문제가 되지만 후보가 직접 쓰는 글은 괜찮다고 알고 있었다"며 "종종 눈팅하던 게시판에 선거인단 많이 가입해달라고 시민참여를 부탁한 건데,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건지 좀 헷갈린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김 대변인은 "저희는 일단 정해진 규칙에 따라 뛰어야 하는 선수이고, 게시판 관계자들이 피해 받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게시글을 내리는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유시민 후보도 <마이클럽> <82쿡> 등에 올린 자신의 글들을 부분 수정한 뒤, "적극적 지지를 호소하면 안 된다고 해서 아까 썼던 글을 살짝 고쳤다"며 "선거법 위반할 마음, 눈곱만큼도 없는데, 어렵네요, 어려워 ㅜ.ㅜ"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유 후보측은 선관위에 삭제된 글 전문과 함께 질의공문을 보낸 상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선관위의 빨간펜 첨삭을 받아서 수정본을 다시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인단 모집 마감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어서 더 이상 온라인 '앵벌이'에 기대할 수 없게 된 유 후보는 또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태그:#유시민, #6.2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야권후보단일화, #김진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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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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