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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현장을 뒤로하고 공연을 준비중인 윈디시티
 공사현장을 뒤로하고 공연을 준비중인 윈디시티
ⓒ 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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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돋아나는 풀들의 푸른빛으로 수 놓여야 할 강변은 완전히 파헤쳐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포클레인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쉴 틈 없이 흙을 퍼 나른다. 쑥부쟁이, 봄까치꽃, 쇠별꽃 등 이맘때면 길가에서 볼 수 있던 봄날의 들꽃들은 찾을 수 없다. 커다란 덤프트럭이 굉음을 내며 오갈 뿐이다.

이런 장소가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어울릴까? 그것도 흥겨운 레게음악이다.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강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리를 편다. 형형색색의 원색 옷을 입고 머리카락은 괴상하게 말았다. 이들은 곧 각자의 악기를 연주한다. 레게에 어울리는 여름날 해변대신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오가는 공사판으로 배경으로….

▲ <저수지의 개들> 최진성 감독이 연출하는 생명의 강을 위한 영상 프로젝트 <저수지의 개들>은 4대강 사업의 대상이 되는 4개의 강을 찾아가는 공연 릴레이 형식의 로드 무비이자 음악 다큐멘터리이다.
ⓒ 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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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위하여 / 흐르는 강물을 위하여 / 이 모든 생명을 위하여 / 우리의 내일을 위하여
더불어 삶을 위하여 / 뛰어노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여"

레게음악으로 4대강 사업을 비판하다

남한강을 배경으로 선 윈디시티, 최진성 감독, 환경연합회원들
 남한강을 배경으로 선 윈디시티, 최진성 감독, 환경연합회원들
ⓒ 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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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이 제작·주관하고 영화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히치하이킹> <그들만의 월드컵> 등을 연출한 최진성 독립영화 감독이 연출을 맡은 '생명의 강을 위한 영상 프로젝트 <저수지의 개들>(이하 저수지의 개들)'이 지난 4일 유튜브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저수지의 개들>은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각각 다른 개성의 뮤지션들이 찾아가 게릴라 콘서트를 열고 이를 짧은 뮤직비디오와 20분 내외의 단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네 번의 촬영이 완료된 후에는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완성될 예정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우리의 삶, 또 문화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강의 아름다움과 자연 환경의 소중함, 이에 위협이 되는 4대강 사업의 모순을 돌아보게 하고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과도한 개발 지상주의에 대한 경종을 서정적이면서 대중적인 영상언어로 표현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에 발표된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인 'Take1. 남한강' 편에는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 인정받으며 대한민국 음악계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온 레게밴드 윈디시티가 출연했다. 윈디시티의 김반장은 영상을 통해 발표한 창작곡 <위하여>에 대해 "'우리가 물을 망쳐 놓고 잘 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윈디시티는 평소 이주노동자, 이라크 파병, 4대강 사업 등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고 지난해에는 용산참사 유가족을 후원하기 위한 콘서트에 참여한 바 있다. 

"화합 무시하는 사회에서 레게는 저항이 된다"

윈디시티 작업실에서 포즈를 잡은 세계 각국의 레게뮤지션들. 가운데가 퍼커션에 정상권씨, 오른쪽으로 드럼에 김반장씨, 베이스에 김태국씨
 윈디시티 작업실에서 포즈를 잡은 세계 각국의 레게뮤지션들. 가운데가 퍼커션에 정상권씨, 오른쪽으로 드럼에 김반장씨, 베이스에 김태국씨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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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 7일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윈디시티 음반작업실에서 멤버들을 만났다. 밴드에서 보컬과 드럼을 맡고 있는 김반장(36)을 따라 들어선 작업실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가 세계 각국에서 온 레게 뮤지션들이었다. 그들은 쉴 틈 없이 눈을 맞추고 웃고 떠들었다. 기자를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김씨는 기자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친구들과 녹음실로 들어가 잼(즉흥연주)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0여 분이 지난 뒤에야 땀에 젖은 김씨와 멤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팀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김태국(43)씨, 퍼커션을 맡고 있는 정상권(27)씨도 함께했다.

김반장은 "레게음악은 화합과 조화를 추구하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시대에서는 음악이 저항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음악을 통해 우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까지 진행된 인터뷰를 소개한다. 

- 우리나라에서 보통 저항음악이라고 하면 록이나 힙합을 떠올린다. 레게라는 장르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중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반장(이하 김) : "레게야말로 레벨(계급)음악이다. 하지만 저항을 위한 저항이 아니고 자연에 속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 레게음악이다. 때문에 단지 레게를 저항음악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자란 표현이다. 레게음악은 화합과 조화를 추구하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시대에서는 음악이 저항이 될 수밖에 없다. 레게음악을 통해 우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자는 것이다." 

김태국(이하 태) : "레게음악이 시작된 자메이카는 400년 노예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존중돼야 하는 부분이 존중되지 못 할 때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 목소리를 노래로 표현 한 것이 레게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 용산참사 때도 공연을 봤다.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가수라는 소리를 듣는데 레게뮤지션의 시선으로서 지금 사회문제를 진단해 본다면.
: "4대강 사업, 용산참사 등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그냥 된 게 아니다. 우리의 거울이다."

"MB 만나면 '뿌린대로 거두리라'고 말해주고파"

윈디시티 김반장의 열정적인 드럼연주.
 윈디시티 김반장의 열정적인 드럼연주.
ⓒ 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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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 공사현장에서 공연했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정상권(이하 정) : "관리하는 분들과는 공사현장으로 들어갈 때 마찰이 있었지만, 공사현장을 배경으로 공연할 때에는 괜찮았다. 다만, 경찰이 중재하러 왔을 때 분위기가 싸~해져서 연주할 감정을 잡기 힘들었다."

- 강이 파헤쳐지는 현장을 보면서는 어떤 기분이 들었나.
: "아이가 현장에서 연을 날렸는데, 그 곳이 공사 현장이 아니고 자연이 살아있고 강이 숨 쉬는 곳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원래 그곳은 그런 장소였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콘크리트 아파트와 돈을 물려줘야 행복할 것인가, 살아있는 땅을 물려줘야 행복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 길거리 공연을 자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공연도 또 다른 '길'거리 공연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평소와 무엇이 달랐나.
: "공사현장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 특별했다. 처음에는 못하게 막았는데 나중에는 막아서던 분들도 와서 구경하더라. 경찰들도 구경했다. 음악이란 것이 정말 좋은 것이구나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음악은 싸우다가도 또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 

: "해외페스티벌 참여와 앨범 준비로 공연을 많이 못했는데 오랜만에 야외에서 공연하니까 좋았다. 하지만 뒤에서 강이 파헤쳐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안 좋았다." 

- <위하여>라는 노래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었나.
: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또 우리가 함께 가는 공동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강은 모든 사람들의 삶을 위한 것인데, 몇몇의 이윤을 얻고자 대부분의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이다."

- 여러분 앞에 이명박 대통령이 앉아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 "꼭 한마디 하자면 '무엇이든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무슨 뜻인지는 이 대통령이 알 거라 생각한다." 

: "앞에 앉아 있다면 진지한 대화를 한번 해보고 싶다. 진심으로 느껴야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 "

: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우리 사회 일원들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다. 우리를 돌아보지 않고 대통령만 탓한다는 것은 미천한 생각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고 그것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 "개인적으로 아무리 가정이지만 그와 일대일로 마주친다는 것은 솔직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촬영현장인 남한강 인근에서 포클레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최진성 감독. 앉아 있는 사람은 윈디시티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윤갑열씨이다.
 촬영현장인 남한강 인근에서 포클레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최진성 감독. 앉아 있는 사람은 윈디시티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윤갑열씨이다.
ⓒ 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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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디시티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 대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윈디시티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다. 사회적인 밴드, 저항적인 밴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지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음악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음악을 즐기는 것이 우리가 음악을 하는 최고의 목적이다. 하지만 사회가 음악밖에 모르는 우리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고, 대답하게 만든다. 

재개발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4대강 문제에 질문을 던져 오는데…. 물론 난 모른다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양심이 그 질문들에 답하지 않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을 그냥 지나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 "원래 계획을 잘 세우고 활동하지는 않는다. 내일은 쉬고 이번 주 토요일에는 결혼식에 가서 연주를 한다.(웃음) 해외 여러 음악축제에 초청을 받고 있는데 선택적으로 가려고 한다. 정직한 손과 따뜻한 마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다. 그리고 한국의 레게가 얼마나 강한 음악인지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이 살벌한 도시에서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남아 잡초처럼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꼭 보십시오"
[인터뷰] '생명의 강을 위한 영상 프로젝트 <저수지의 개들>'의 최진성 총감독
 '생명의 강을 위한 영상 프로젝트<저수지의 개들>'의 총 감독을 맡은 최진성 감독
 '생명의 강을 위한 영상 프로젝트<저수지의 개들>'의 총 감독을 맡은 최진성 감독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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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 다큐멘터리라는 작업, 새롭게 느껴진다. 이렇게 작업한 이유가 있나.
"다큐인데 뮤직비디오가 들어가는 스타일은 이전부터 해왔던 작업이다. 대중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음악의 장점을 살려 정치적인 메시지를 재미나게 전달한 작업이다." 

- 작품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 포클레인 장남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포클레인 장남감은 일종의 퍼포먼스다. 공사현장의 포클레인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말이 안 되는 것인가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본래 그 강이 평화롭게 놀고, 영화도 찍고, 춤도 추는, 노는 공간인데 엉망진창으로 파헤쳐져 놀 수 없는 공간이 돼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현장직원들에게 막혀 공사현장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연 날리는 아이는 들어 갈 수 있었다." 

- 4편에 각각 다른 뮤지션들이 출연한다고 하는데 누가 출연하나.
"다음에 출연하는 뮤지션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윈디시티는 약간 무거운 밴드였다. 악기 세팅부터 음향까지 장비가 많이 들었다. 다음에는 1인 밴드나 힙합 장르로 바뀔 수도 있다."(웃음) 

- 직접 가서 본 4대강 사업 현장은 어땠나.
"남한강을 세 번 갔다. 여주환경연합 분들과 트레킹을 했는데 아름다운 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일주일 간격으로 갔는데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섬뜩했다. 4대강 사업에 관심 없는 사람, 아니 찬성하는 사람도 그 현장을 눈으로 봤다면 누구든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주위에서 이런 작업 한다고 걱정하지는 않던가.
"제 주변에 영화하는 친구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지지해주고 응원해준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몇몇 분들은 같이 작업하자고 했을 때 부담스러워 사람도 많았다.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자고 나서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목이다. '살리기'라고 한 타이틀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사업에 반대하면 '4대강 죽이기'인가. 언어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살리기가 아닌데 살리기라고 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 친환경을 내세우며 반환경적인 것을 자행하고 있다. 그런 제목이 언론을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유통된다." 

- 작품을 보는 분들이나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부메랑이 되어 내 자신과 내 자식들을 칠 것이다. 그리고 성철스님의 말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동어 반복의 아름다움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강가에 살고 있는 쑥부쟁이는 쑥부쟁이대로 남겨두고 영화하는 사람은 영화하는 사람으로 남겨 줬으면 좋겠다. 흐르는 강을 저수지처럼 고이게 만들고 쓸쓸한 개처럼(개한테 미안하지만) 버려진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태그:#4대강, #윈디시티, #저수지의개들, #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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