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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의혹과 타당성 결여로 비판받아

조계종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과 관련해 정권의 외압설이 일파만파로 퍼지는 가운데 명진 스님에게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좌파주지' 발언을 전했던 김영국 전 조계종 종책특보(52)가 23일 오후 "명진 스님 말씀은 모두 사실"이라는 취지의 기자회견내용을 발표했다.

김 전 특보는 지난해 11월 13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안상수 원내대표,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함께하는 자리는 자신이 주도했기 때문에 끝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그날 자리는 정부의 문화 정책과 관련해 조정하고 조율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음에도 애초 의도와 다르게 안상수 원내대표가 전혀 다른 발언을 해 오늘의 이런 사태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특보의 회견에도 불구하고 안상수 원내대표는 해명 자료를 내고 "조계종 측에 외압을 가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실제 어떠한 외압을 가한 일이 없다"면서 "이 점에 관해 앞으로 일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계종 측도 대변인인 원담 스님(총무원 기획실장)을 통해 "외부의 압력은 단 1%도 없었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안상수 대표와 만난 것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오간 발언에 대해서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담 스님은 김 전 특보가 회견하기 전인 23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조계종은 모 정치인에 의해 움직이는 종단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고 없으며 종단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사회는 정교분리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종단 인사에 정부가 개입한 적이 없다. 대명천지에 외부 압력으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했다는 논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 면서 "원장스님은 취임 후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무수한 얘기들이 오고갔는데 그것을 밝히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무원장스님을 종교지도자로서 사회적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은사 문제가 정치권과 종단내부 갈등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안상수 원내대표와 조계종 총무원측은 각각 침묵과 부인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침묵과 부인이 사태수습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야당에서는 안상수 대표가 억울하면 김 전 특보를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고 있으며 일반 불자들도 신정아 사건 이후 또다시 한국불교의 명예가 또다시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봉은사 누리집에는 명진 스님을 지지하는 글들과 함께 안상수 대표는 물론 조계종 총무원측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지방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명진 스님은 28일 봉은사 일요법회에 참석할 예정으로 있으며 이때 어떤 발언을 할지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봉은사 신도들은 누리집에 명진 스님의 뜻에 따라 집단행동 대신 법회에 힘을 모으자는 의견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봉은사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봉은사의 총무원 직영화가 타당성이 결여된데다 그 과정이 각종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애초 총무원은 수도권 포교강화를 목적으로 삼각산 도선사와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한다고 발표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도선사는 빼고 봉은사만 지정했으며 중앙종회 의결과정에서도 1차로 봉원사 직영 안이 안건상정을 논의하는 총무위원회에서 부결되었음에도 11일 종회에서 총무원장이 직권 상정해 통과시켰다. 이날 봉은사 직영 안은 안건중 거의 마지막에 해당했으나 법정스님 입적 소식이 전해진 직후 다른 안건은 제쳐놓고 직영 건을 곧바로 처리해 의혹을 더욱 키웠다.

봉원사 직영 안이 주지인 명진 스님은 물론 봉은사 신도, 공청회 등 불교 내부의 충분한 공감대 없이 처리되고 도선사와의 형평성 문제에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직영사찰 지정은 '도심포교를 위한 백년대계'라는 총무원의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총무원도 일부분 인정하고 있다.

총무원 대변인 원담스님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봉은사 직영 지정 과정에서의 소통 부족은 저희들의 부족함이므로 사과드리고 개선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 앞으로 종단이 가진 직영사찰 계획을 더 많은 스님들, 봉은사 관계자들과 얘기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무원측의 입장은 사태가 악화일로에 있는 것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지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명진스님의 발언 전인 지난 18일 중립단체인 참여불교재가연대가 제안한 총무원과 봉은사간의 대화제의에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해 11월 취임한 후 소통과 대화를 강조했던 자승 총무원장이 오히려 소통을 무시하고 무리수를 둔 것은 외부와의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3월 23일자(132호)기사에서 조계사 직영 안이 처리되기 전인 3월 9일 정보기관 고위관계자가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 같은 좌파 승려를 교체하라'고 압력을 넣었고, 여러 명의  불교관계자들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총무원에서는 그대로 하려 한다는 소문이 종단 안에 이미 파다하게 나돌았다고 보도했다. <시사인>은 명진 스님에게 이 사실은 알리자 명진 스님은 "그런 말을 한 곳은 정보기관 쪽이 아니라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명진 스님의 발언과 김영국 전 특보의 사실 확인 기자회견, 총무원의 직영사찰 지정과정의 무리수, 정부의 압력설이 이미 조계종단 주변에서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총무원측이 무조건 압력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명진 스님이 폭탄발언이 터지자 조계종 개혁승려들의 모임인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대중결사)는 22일 '종단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정치권력의 외압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 총무원의 자세한 해명을 촉구했다.

대중결사는 "종단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을 유린한 정치권력을 철저하게 진상규명하고,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관련 정치인은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청정승가는 또 "조계종 총무원은 봉은사와 관련된 일련의 일에 대해 해명하고, 부당한 정치권력에 굴복했다면 총무원은 모든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총무원에서는 당시 모임이 어떤 계기로 이뤄졌는지, 그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자세하게 해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처럼 불교계 내부에서조차 진상규명 요구가 나오고 있음에도 당사자인 자승 총무원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총무원측은 자승 스님이 취임이후 수천 명을 만난 상황에서 일일이 대화내용을 밝힐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봉은사 직영 안을 처리하는 데 앞장서고 참석한 모임이 정치권과 불교계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침묵만 지키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모임의 발언에 대해 안상수 대표만큼이라도 사실관계라도 확인해주는 것이 총무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계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조계종은 일제와 독재시대 권력으로부터의 굴종을 떨쳐버리고자 1994년 지선·효림 스님 등 실천승가회를 중심으로하는 개혁파 승려들이 정권의 비호를 받았던 서의현 전 총무원장체제를 무너뜨리고 이루어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계종이 또다시 권력의 압력에 굴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94년 종단개혁의 한 주역이자 복마전같은 봉은사를 사찰본연의 모습으로 바로 세운 명진스님이 이전투구의 중심에 서거한 것은 온전히 총무원의 책임이다. 지금이라도 자승 총무원장은 자신의 오랜지기인 명진스님이 명예를 찾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종단을 개혁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온 몸을 바쳤던 수많은 승려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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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계종, #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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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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