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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올레 제안자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발언하고 있고 우측부터 이해찬 전 총리, 이계안 전 의원, 한명숙 전 총리, 김진애 민주당 의원,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대표, 김진표 민주당 최고위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민주올레 제안자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발언하고 있고 우측부터 이해찬 전 총리, 이계안 전 의원, 한명숙 전 총리, 김진애 민주당 의원,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대표, 김진표 민주당 최고위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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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비가 섞여 내리고 바람도 거세 눈을 똑바로 뜨고 있기도 힘든 날씨지만 3.1절을 맞아 200여 명이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등학교에 모였다. '민주주의 역사 현장을 함께 걷자'는 취지의 민주올레 참가자들이다. 민주올레의 제안자인 이해찬 전 총리는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를 성찰했으면 좋겠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궂은 날씨에도 행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 전 총리에 이어 연단에 올라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3.1민주올레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 정부는 민주공화제의 3.1정신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3.1정신 중 또 한 가지는 비폭력, 평화주의다"라며 "광우병 쇠고기 수입, 용산참사로 볼 때 지금 정권은 폭력성이 남아 있다"라고 정부를 규탄했다.

민주올레는 이해찬 전 총리와 더불어 정연주 전 KBS 사장,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의원 등 많은 사회인사들의 제안으로 준비됐다. 민주올레의 첫 시작인 3.1민주올레는 3.1운동이 처음 준비됐던 장소부터 만세운동이 벌어진 종로와 대한문 일대를 거쳐 독립운동가들이 피 흘린 서대문형무소까지 이르는 길을 걷는다.

민주올레 참가자들이 북촌길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체 행렬이 제법 길다.
 민주올레 참가자들이 북촌길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체 행렬이 제법 길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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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서윤이도 함께 걷는 민주올레

1일 오후 1시 첫 번째 코스인 중앙고등학교를 나설 때는 비도 서서히 그쳐가고 있었다. 중앙고등학교를 나와 북촌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평소 호젓했던 북촌의 골목이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였다. 생각보다 많은 참가자에 주최 측도 당황한 듯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곧 만해 한용운 선생의 거처에 다다르자 이내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참가자들이 안내책자를 펼치고 설명을 듣는 동안, 기자는 어떤 사람들이 왔나 살펴보았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부터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까지, 팔짱을 끼고 찰싹 달라붙어 걷는 풋풋한 젊은 커플부터 이제는 조금 떨어져 걷는 게 익숙해진 중년의 부부까지,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가운데 노란 우비를 꽁꽁 싸매 입은 7살 서윤이는 걸으면서도 안내책자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서윤이네 가족. 서윤이는 이때부터 졸린 모습이었다. 최종 목적지인 서대문형무소에 이 가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서윤이네 가족. 서윤이는 이때부터 졸린 모습이었다. 최종 목적지인 서대문형무소에 이 가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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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이는 수줍음이 많아 이것저것 물어봐도 배시시 웃기만 했고, 가까이 가면 엄마 품에 안겨버렸다. 서윤이 엄마 김영임씨는 "민주올레에 참석하기 위해 창동에서 왔다"며 "서윤이가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킨 역사를 알고 나라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주차를 하러 간 서윤이의 아빠 정경모씨는 올레길을 한참이나 걸은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정씨는 "서윤이가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3.1절처럼 의미 있는 날 민주올레를 하며 걸었던 것을 기억하고 미래의 건강한 민주시민이 되길 바란다"라며 지친 서윤이를 끌어안고 걷기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제안한 데이트 코스, 민주올레

북촌 길과 삼청동 길을 거쳐 안국역 횡단보도에 잠시 멈춰 섰을 때 데이트하러 나온 커플인지 민주올레 참가자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남녀가 서 있었다. 두 사람 손에 들려 있는 안내책자와 기념 스카프가 아니었으면 그냥 데이트 나온 커플로 알았을 것이다. 횡단보도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안내책자를 들여다보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민주올레를 데이트 코스로 잡은 정용진, 김현희 커플.
 민주올레를 데이트 코스로 잡은 정용진, 김현희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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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같은 연휴 마지막 날 다른 데이트 장소도 많은데 어떻게 이런 자리에 오게 됐나"라는 질문에 쑥스러워 하던 커플은 남자친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용진(31)씨는 "교과서를 통해서만 알았던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어서 오게 됐다"라고 말한 후 "사실 여자친구가 먼저 가자고 했다"라며 웃었다.

남자친구 말에 부끄러워하던 김현희(30)씨는"평소에 데이트하러 자주 오던 곳이지만 설명을 듣고 생각을 하며 걸으니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면서 "오늘은 사람도 많고 복잡해 다음에 조용히 다시 한 번 걷고 싶다"라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씨는 "여태까지 걸어오면서 느낀 것은 문화유적이나 역사적인 장소에 대해 설명이 잘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표식이나 지표를 통해 구체적인 설명을 해놓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인천 부평고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인 신현수씨.
 인천 부평고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인 신현수씨.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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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돌아가 학생들과 꼭 나누겠다"

3.1민주올레의 중간 지점인 탑골공원 근처에 도착했을 때 또 다른 참가자와 동행했다. 얼굴이 낯이 익어 물어봤더니 시집을 5권이나 낸 기성 시인이었다. 시인이자 부평고등학교 교사인 신현수씨는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어 마치 사진기자처럼 보였다.

참가한 동기에 대해 묻자 신씨는 "우리는 그동안 선배 독립열사 분들의 공을 모르고 살았다"면서 "반성하는 의미로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가까이 있는 유적들을 무시하고 소홀히 했다"라며 "국권피탈 100년을 맞아 진정한 독립을 찾고 조상들의 삶에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신씨는 이런 점들을 "학교에 돌아가 꼭 학생들과 나누겠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에 울려 퍼진 만세 삼창

3.1민주올레의 행렬이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탑골공원에 도착했다. 1코스인 중앙고등학교에서 탑골공원까지만 참가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이 많았지만 이내 2코스에 참가하기 위해 온 사람들과 거리 시민들의 즉석 참여로 행렬은 줄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공원 안에 있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오른쪽에 있는 독립투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제단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단 위에는 3.1절을 맞아 조화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가운데 자리 잡은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를 보며 참가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부 참가자가 제단에 올라가 화환을 훼손하려 해 다른 참가자들이 말리기도 했다.

휴식을 겸해 시작한 중간 행사는 효림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명예대표가 나와 시를 낭독하며 절정에 이렀다.

"조국의 자주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3.1정신 그 위대함이여 다시 날개를 펴고 비상하라
동지들이여, 젊은 청년들이여 민족의 자주권을 위하여 희생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다시 피 흘려라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라"

▲ 효림 스님 시 낭송, 만세 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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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이어 만세 삼창을 하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만세의 물결로 뒤덮였던 종로를 지나 덕수궁 대한문까지, 그리고 돌담길을 따라 정동으로 향하는 코스다.

"자원봉사 안 나왔으면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을 것"

탑골공원을 나오면서 세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세 명 모두 친해 보였으나 두 명만 친구였고 나머지 한 명은 이날 만난 사이라고 한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이동욱(21)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를 책으로만 배웠다"라며 "3.1운동의 과정을 현실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라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이씨의 친구인 오정석(21)씨는 이씨가 같이 하자고 해 자원봉사를 하게 됐지만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오씨는 "봉사활동 하러 나오지 않았으면 작년처럼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을 것이다"라며 "행사의 취지가 정말 좋고 나중에 내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올레 자원봉사요원(?). 왼쪽이 작년 3.1절에는 집에서 뒹굴뒹굴했다는 오정석씨, 우측으로 정원대씨, 이동욱씨.
 민주올레 자원봉사요원(?). 왼쪽이 작년 3.1절에는 집에서 뒹굴뒹굴했다는 오정석씨, 우측으로 정원대씨, 이동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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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와는 따로 자원봉사에 나섰다가 현장에서 친해졌다는 정원대(24)씨는 "종로라는 거리의 역사가 새롭다"라고 말한 후 "앞으로 매번 걷던 길이라기보다 의미를 되새기며 걷게 될 것 같다"라며 두 친구와 어께동무를 했다.

세 친구와 인터뷰를 마친 후 조금 멀어진 대열을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내서 걸었다. 1, 2 코스에 배정된 시간은 비슷하지만 거리는 2코스가 훨씬 멀었다. 탑골공원을 나와 광화문 비각을 지나 대한문,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이화여고 안에 있는 유관순 우물터에 도착했을 때는 참가자 대부분이 지쳐 있었다.

독립문 아래를 걸으며

마지막 코스인 서대문형무소로 들어오는 민주올레 참가자들.
 마지막 코스인 서대문형무소로 들어오는 민주올레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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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3.1민주올레의 대열은 독립문 앞에 섰다. 아무리 뜻 깊은 행사라도 몸이 고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독립문에 대한 마지막 설명이 이어질 때도 참가자들은 생기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독립문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본래 자리에서 옮겨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참가자들은 다시 생기를 찾았다. 안내자가 "우리 꼭 민주정부 다시 세워 독립문을 제자리로 옮겨 놓읍시다"라고 외치자 사람들은 큰 함성으로 답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서대문형무소로 입장했다. 사람들은 마치 독립군처럼 아치형 독립문 아래로 들어왔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간략한 마무리 행사로 일정을 마친 3.1민주올레는 전체 민주올레 행사의 첫 출발이었다. 한대기 시민주권 집행위원은 "첫 행사라 미흡한 점이 있었다"라며 "오늘 참가자들과 다시 의견을 나눠 다음 행사를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이후 행사일정을 묻는 질문에 한 집행위원은 "4.19민주올레는 서울에서 진행할 예정이며 정확한 코스는 미정이다"라며 "처음 시위가 일어난 대학로 서울대학병원과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안국동 로터리, 이기붕 집이 있던 경교장 근처가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4.3제주항쟁을 기념한 올레는 제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한 올레는 광주에서 진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민주올레는 5.18 이후 5.23 노무현 대통령 1주기 행사로 이어지고 6.10항쟁 기념 민주올레로 마무리된다.

행사를 마치고 완주 메달을 받기 위해 본부석으로 갔을 때 동행한 참가자들을 찾아보니 많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서윤이는 걷다 지쳐 칭얼거리다가 아빠 품에서 잠들어 돌아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젊은 커플은 행사가 길어져, 예매해 놓은 영화시간에 늦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서대문형무소에 모인 참가자 수는 출발할 때에 비해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올레의 뜻이 떠올랐다. '올레'는 '놀멍, 쉬멍, 걸으멍' 자연풍광을 즐기는 걷기 행사로 그 특징은 자발성, 개방성, 다양성이다.


태그:#민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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