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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런 날씨다. 어제는 하늘이 파랗다는 걸 보여주었는데 오늘(27일)은 또 흐려졌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탑동에 들렀다. 여름이면 많은 이들이 모여 여유로운 여가를 보내는 곳, 탑동. 그러나 겨울인데다 이런 날씨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서 오는 매서운 바람이 이 공간을 휘감기 때문이다.

매립된 탑동의 일부를 시민들에게 연중 개방하고 있지만 바람찬 겨울엔 한산하다. 멀리 사라오름이 보인다.
▲ 탑동 광장 매립된 탑동의 일부를 시민들에게 연중 개방하고 있지만 바람찬 겨울엔 한산하다. 멀리 사라오름이 보인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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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은 예전에 '탑바리', '탑아래'라고 불렀다. 바닷가 어딘가에 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탑은 요새 '방사탑'이라고 불린다. 마을에 안좋은 일이 생기거나 하면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허'한 지형에 이 탑을 세워 막는 구실을 찾는 것이다. 이 방사탑도 제주도 전역, 주로 해안가 마을에 서 있다.

제주도 여러 마을에서 세운 방사탑을 원형으로 삼았다. 여러 공연이 펼쳐지곤 한다.
▲ 해변공연장 제주도 여러 마을에서 세운 방사탑을 원형으로 삼았다. 여러 공연이 펼쳐지곤 한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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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밟고 선 이 자리가 바다였고, 크고 둥근 돌들이 자리한 해변이었고 그랬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진 자리에 사람들이 한 바가지씩 보말(고둥의 일종), 깅이(게) 따위를 잡아 찬거리로 해 먹던 시절이 있었다.

탑이 있었다고는 하나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으니 본 적도 없는 나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바다에 탑이 놓여 썰물에는 그 몸을 다 드러내고 밀물이면 모가지를 빼꼼 내밀었을 그 신비한 광경을 제주시 동쪽 해안 마을인 신흥리에선 지금도 볼 수 있으니 여기도 멋드러진 풍경을 제공했으리라.

그리운 사람들은 생각만 해야 한다. 이제라도 다시 쌓아 올리려 해도 매립된 바다엔 썰물이 없이 오로지 밀물로만 가득차 있다. 그 바다가 때때로 성이 나 참지 못하면 집채만한 파도를 부딪쳐 높이 솟구쳤다가 세게 뛰어내려 부수어버린다.

큰 파도에 피해가 심각하다. 매립의 후유증이다.
▲ 부수어진 시설물 큰 파도에 피해가 심각하다. 매립의 후유증이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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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으로 변한 스티로폼 테왁을 타고 숨비소리 '후이~' 내뱉는 해녀가 멀리 물에 떠 있는 게 보인다. 이 겨울에도 물에 들고 있는 해녀들.

옛 바다는 아니지만 여전히 해산물 채취를 하고 있다. 해녀들은 적을 두고 있는 마을마다 정해놓은 구역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 숨고르고 있는 해녀 옛 바다는 아니지만 여전히 해산물 채취를 하고 있다. 해녀들은 적을 두고 있는 마을마다 정해놓은 구역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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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녀들도 몇 분 뵈는데 이쪽에선 '억억억'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지역 바다에서 본 해녀도 이런 소리를 냈는데 많은 나이 때문에 폐기능이 나빠서 그런 것처럼 보였다. 현대식으로 높게 뻗은 건물숲을 지척에 두고 제주도 역사에 적어도 몇백 년을 이어왔을 잠수질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저이는 이런 나를 '쓰잘데기 없는 놈팽이 녀석이 어디 찍사질인고?'하고 있지나 않은지. 어떤 해산물이 있고, 예전만큼 잡히는지 궁금하지만 다음 기회에 묻기로 하고 걷는다.

공사를 알리는 안내문에는 4월 9일까지로 예정해놓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두 달 더하기 몇 일 남은 셈이다. 자꾸 반복되는 이 연례행사는 무언가 잘못되었거나, 누군가 잘못했거나 하는 원인이 있을텐데 그것까지 알 수 없는 내 머리는 그저 혀만 '쯧' 차고 지나칠 뿐 도리가 없다.

바다를 보며 길다란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탑동의 끝자락에 닿는다. 길게 뻗은 방파제쪽으로 가지 않고 동쪽으로 더 걸어간다. 도로 주변엔 해산물을 취급하는 상점,식당들이 여럿 있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풍기는 이곳에선 어부들이 배를 끌고 나가 잡아 온 물고기들을 업자들가 사가는 일이 이루어진다. 오늘 일이 모두 끝이 났는지 한산하다.

잡아온 수산물을 이곳에서 매매하고 운송해 간다.
▲ 어시장 부두 잡아온 수산물을 이곳에서 매매하고 운송해 간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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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하나가 '쐐애애' 소리내며 지나갔다. 섬과 육지를 잇는 유일한 길이었던 항구의 바다는 오늘따라 유난히 잠잠하다.

그러나 아직도 바다는 힘이 세다. 멀리 방파제가 교차하듯 두어 개 보인다. 제주외항공사가 저 너머 사라봉, 별도봉 자락에까지 이어진다. 더욱 육중한 배들이 이곳에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골목은 어디에서나 포근하다.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이어주는 골목은 사람의 허파와도 같은 것. 이 길을 어린 시절 동창 녀석들 가운데 몇몇이 날마다 드나들고, 때마다 아부지어무니일을 도우느라  오락가락 했을 것이다.

진한 바다사람 냄새가 남은 궤짝들, 담벼락이 숨쉬고 있다.
▲ 골목 풍경 진한 바다사람 냄새가 남은 궤짝들, 담벼락이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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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끝에 놓인 리어카 위 그물상자에 물고기가 몇 마리 놓여 있었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비가 오면 빨래가 그러하듯 거두어들여야 한다.
▲ 널어놓은 물고기들 비가 오면 빨래가 그러하듯 거두어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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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외관의 점포 아래 해산물 '다라이'들이 보이고 더 깊숙한 곳엔 세간살림이 엿보인다.
그 터의 주인장일 할머니가 역시 분주히 손을 놀린다. 비가 뚝뚝뚝 떨어진다. '바닷물고기가 민물고기되기 전에 어서 들여놓으셔요', 속으로 외치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큰 차들이 만들어낸 육중한 울림이 전해진다. 다리 위에 서 있다. '용진교'. 예전에 커다란 콘크리트를 이불삼아 잠자던 저 '산지천'의 가장 끝에 와 있는 것이다. 다리 한 켠에 표석이 있다.

'도록고(궤도) 차가 운행했던 곳'이라고 한다. 설명을 보니 영화 인디애나존스의 탄광 장면이 떠오른다. 그와 비슷한 모습의 궤도와 차량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산지천 끝에 있는 다리 한 켠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선로를 깔아 운행했던 곳이다.
▲ 도록고(궤도) 차 운행지 표석 산지천 끝에 있는 다리 한 켠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선로를 깔아 운행했던 곳이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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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배들이 휴식을 취하는 곁에는 뱃사람들이 찾아와 앉은 추어탕집도, 고기들을 신선하게 유지할 사명을 띠는 얼음집도 있었다. 

오른쪽에 놓인 장치에서 얼음이 쏟아져 나온다.
▲ 제빙 회사 오른쪽에 놓인 장치에서 얼음이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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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더 걸으면 표석이 또 눈에 들어온다. '대한통운 제주화급소 터' 뱃길을 따라 실어온 화물들을 여기서 분류하고 운송하였던 모양이다. 이제는 제주항으로 변모한 옛 건입포의 영화로움이 계속될 수 있을까. 

옛 영화를 상징하는 표석만 덩그마니 놓여 있다.
▲ '대한통운 제주화급소 터' 표석 옛 영화를 상징하는 표석만 덩그마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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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있는 배의 갑판에 누운 풍어기의 붉고 푸른 빛깔을 눈에 담으며 짧은 여행을 접는다.
비가 더 오려는 모양이다.


태그:#제주도, #탑동, #제주항, #건입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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