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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야! 수끼조청 가지러 오너라! 동지(冬支)전에 꼭 먹어야 한데~이."

고향 어머님의 전화입니다. 최근 일이 부쩍 많아서 고향집에 자주 가질 못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차편으로 20분 걸리는데도 말입니다. 무심한 불효자이지요? 고향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님은 며칠만에 보는 큰아들을 무척 반기십니다. 자주 들러야겠습니다.

'수끼조청'을 아십니까? 잡곡으로 분류되는 '수수'를 고향 어르신들은 '수끼'라고 부른답니다. 조청은 시골에서 만든 물엿 직전 단계 음식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수를 주원료로 만든 조청을 고향에서는 '수끼조청'입니다.

밭농사가 많은 고향마을(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서는 수수를 '수끼'라 부릅니다.
 밭농사가 많은 고향마을(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서는 수수를 '수끼'라 부릅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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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향에서는 수수가 많이 생산됩니다. 산비탈에 조성된 산골마을이라서 주로 밭농사가 많습니다. 그런 토질에는 수수가 자라기 적합한 곳인가 봅니다. 어릴 때부터 수수조청을 많이 먹고 자랐습니다. 먹기 싫을 때가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왜 동지(冬支) 며칠 전에 수수조청을 먹어야 할까요? 예로부터 그런 전통이 내려왔다는 게 어머님의 대답입니다. 1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긴 동지날. 큰 명절로 여긴 선조들은 동지팥죽을 끓여먹으면서 '새로운 출발' 다짐했다는 게, 그 유래입니다.

그런 참뜻이 있는 동지날 앞에, 왜 수수조청을 먹는지 곰곰 생각하면 그 답이 나올 법도 합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의식이라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동지날을 새로운 첫날로 여겼던 선조들은 지난해를 보내며 수수조청을 먹었고, 새날을 맞이하는 뜻으로 동지팥죽을 먹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수수조청-동지팥죽, 송구영신(送舊迎新) 음식

수수조청.
 수수조청.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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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식들에선 겨울철 부족한 영양소를 섭취케 하는 선도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수수와 팥에 여러 영양소가 많은지 이젠 밝혀지고 있습니다. 수수는 여러 효능이 있지만, 기관지나 소화기 등 면역력 계통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합니다. 겨울추위를 잘 이기려면 이런 음식이 '건강'에 도움이 될 겁입니다. 팥죽도 마찬가지입니다. 팥죽은 영양식으로 잘 알려졌기에, 언급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농경시대 환경도 이런 음식이 탄생하게 만든 한 요소이겠지요? 당시 쌀은 귀한 반면 수수나 팥은 서민들이 쉽게 생산할 수 있는 품종이었지요. 수수나 팥은 척박한 땅이나 밭 가장자리 어디든지 잘 자라는 농작물로 분류됩니다. 우리 고향마을과 같이 밭농사가 많은 곳에는 수수와 팥을 아직도 많이 재배합니다.

수수조청
 수수조청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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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산골에서 많이 생산되는 수수는 시골밥상에도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곡물입니다. 더욱이, 조청을 만들 때 수수를 사용하는 것도 시골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곡물이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합니다.

조청을 보노라니, 어릴 때 생각이 납니다. 조청 고는 날에는 시골아이들이 가마솥에 옹기종기 붙어 앉습니다. 모든 음식은 정성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는 법.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며 몇시간을 고아야 조청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몇 시간을 인내하며 가마솥 주위에서 기다립니다. 간식거리가 흔치 않은 시골에서 달콤한 조청은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음식이었으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동지팥죽
 동지팥죽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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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동짓날. 어머님은 올해도 어김없이 새벽부터 손수 팥죽을 끊였습니다. 팥죽을 만드신 후 어머님은 곧장 근처 절로 향합니다. '동지기도'를 올리기 위해섭니다. 올해는 큰아들 기도를 많이 한 모양입니다. 20년간 포항에서 살다가 고향인 영천으로 옮긴 아들이 하는 일이 잘되길 기원했다 합니다.

동지기도를 마친 어머님이 차려준 팥죽을 동행한 후배와 맛나게 먹었습니다. 두 그릇이나 비우는 아들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십니다. 어머님은 팥죽이 가득 담긴 냄비를 두개나 준비해 아들 손에 넘겨주십니다. 사무실에 가서 나눠 먹으라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직접 농사지은 곶감과 배 그리고 사과도 한보따리 주십니다.

동짓날이자 영천 5일장인 22일, 가까운 분들과 조촐히 사무실 개소식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팥죽을 나눴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뜻하는 동짓날에, 작은 사무실을 열면서 '새로운 다짐'을 했습니다.

냄비팥죽을 상에 올려 '새로운 출발'을 다짐
 냄비팥죽을 상에 올려 '새로운 출발'을 다짐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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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별빛촌 이야기'(http://blog.daum.net/staryc)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수끼조청, #수수조청, #동지팥죽, #영천시, #화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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