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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비해 조항이 시원치 않다”고 말한 어부는 고단함을 담배연기와 함께 뿜어 날린다. 오징어가 풍년이 들어야 시집간다는 울릉도 처녀들의 마음에도 흉년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난해에 비해 조항이 시원치 않다”고 말한 어부는 고단함을 담배연기와 함께 뿜어 날린다. 오징어가 풍년이 들어야 시집간다는 울릉도 처녀들의 마음에도 흉년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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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시골 초등학생 꼬마는 유일한 여행이라 할 수 있는 소풍을 하루 앞두고 조바심을 낸다. 폭우로 못 가게 되는 건 아닌지, 갑자기 학교가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걱정에 설 잠을 자기 일쑤였다.

여행지는 비록 학교인근의 산이나 저수지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난다는 해방감과 맛있는 김밥, 혀를 톡톡 쏘는 달콤한 사이다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기대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과 설렘을 갖게 한다. 울릉도는 처음 발을 내딛는 땅이었고 더욱이 독도 방문까지 예정돼 있어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2박3일간의 이번 여행에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함께했다. 같은 공간에 근무하면서도 살갑게 지내지 못했던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였다.

몸과 마음이 울렁울렁, 그래서 울릉돈가?

우리 일행을 울릉도로 태워다 준 썬플라워호가 고요한 바다에 정박해 있다.
 우리 일행을 울릉도로 태워다 준 썬플라워호가 고요한 바다에 정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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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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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에서 울릉도 출항 시간인 오전 10시를 맞추기 위해 새벽 4시에 출발했다. 배 멀미를 비껴가기 위해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을 비롯해 짐을 꼼꼼하게 챙겼다. 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쯤이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여객선 터미널에 가까워 오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는 무엇 때문에 뿔이 났는지 거친 파도를 토해내고 있다. 걱정이 앞섰지만 우리를 울릉도까지 이동시켜줄 썬플라워호의 위용을 보고 안도했다.

하지만 걱정은 곧 현실이 됐다. 터미널 매표소에는 출항예정 시간이 오후 1시로 미뤄졌다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4m를 넘는 파도가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1시도 그때 가봐야 안다"는 터미널 매점 아주머니의 한마디는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다행히 오후 1시에 배는 출항했다. 배에 자리는 잡자 '너울로 배가 심하게 흔들릴 수 있으니 이동을 자제하고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란다'는 안내방송이 우리를 긴장시켰다.

3시간이면 가는 거리였지만 이날은 5시간이나 걸렸다. 배를 타기 전 "지루하니까 한 잔하며 무료함을 달래자"던 직원은 술잔을 만져 보지도 못하고 사색이 되어 배 바닥에 누워 버렸고, 화색이 돌던 대부분 승객들은 황색으로 변했다. 멀미약은 제 구실을 못했고 일부는 점심에 먹은 음식물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울릉도에는 신호등이 있다? 없다?

울릉도에는 신호등이 있을까? 없을까? ‘있다’가 정답이다. 터널 폭이 좁아 차량 교행이 안 돼 진출입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울릉도에는 신호등이 있을까? 없을까? ‘있다’가 정답이다. 터널 폭이 좁아 차량 교행이 안 돼 진출입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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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간동안 운전과 안내를 담당한 기사의 걸쭉하고 재치 있는 입담은 우리를 즐겁게 했다. 일행이 버스에 오르자 "울릉도는 호박엿하고 해양심층수가 유명하지만 시작부터 엿 먹이고, 물 먹일 수는 없어서 섬 일주부터 하겠습니다"라고 농을 쳐 우리를 웃게 했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버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었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은 강원도에서도 보기 힘든 깎아지는 비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더덕과 명이나물 등이 자라는 밭에는 모노레일이 깔려 농민들이 쉽게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도록 했다.

울릉도에는 신호등이 있을까? 없을까? '있다'가 정답이다. 다만 신호등은 교통량이 많은 읍면 소재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뚫린 터널 입구에 있다. 터널 폭이 좁아 차량 교행이 안 돼 진출입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담배 값을 제외하고 모든 물가가 육지보다 비싸다. 공장이 없어 대부분의 물건을 육지로부터 공수해 와야 하기 때문이다. 주유소가 2곳이 있는데 휘발유의 경우 1L당 1979원으로 육지에 비해 300원 가량이 비싸 전국최고가다. 이마저도 울릉군에서 보조를 해줘 이 정도란다.

오징어를 다듬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오징어를 다듬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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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은 기후와 지리적 특징 때문에 이곳에서 운행중인 52대의 택시가 모두 레저용차량(RV)이다. 택시로 이동 중에 만나 기사는 "승용차로는 운행이 불가능하고 차량의 수명은 5년, 브레이크 라이닝은 1달에 2번, 타이어는 1년에 2번 정도를 갈아야 한다"고 귀띔했다.

울릉도의 최고층 건물은 5층인 상록아파트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안전을 고려해 2~3층이 고작이고, 이번에 새로 지어 지난 8월에 입주를 시작한 주공아파트도 4층으로 지어졌다.

배가 들고나는 저동항과 도동항 부두에는 늦가을 밤 찬바람을 맞으며 오징어를 잡이를 나갔던 배들이 정박해 있고 이들이 잡아온 오징어를 다듬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지난해에 비해 조항이 시원치 않다"고 말한 어부는 고단함을 담배연기와 함께 뿜어 날린다.

오징어가 풍년이 들어야 시집간다는 울릉도 처녀들의 마음에도 흉년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괭이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부산을 떨고 있다.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야는 나리분지다. 화산 분화구에 사람이 사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이곳이 유일하다. 이곳에서 맛봤던 산채비빔밥은 지금도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또한 봉래폭포 입구에서 먹었던 호박동동주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울릉도 호박 70%와 야생돌배, 누룩, 보리밥을 발효시켜 만들었다는데 진한 호박 향과 달콤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안주로 나온 새콤달콤한 곰치나물과 손부두가 찰떡궁합을 이룬다.

대마도는 본시 우리나라 땅

독도박물관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최보경 문화관광해설사.
 독도박물관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최보경 문화관광해설사.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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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가보리란 일말의 기대는 성난 바다가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대신 도동약수공원에 위치한 독도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박물관을 오르는 길 우측으로 '대마도는 본시 우리나라 땅'이라고 쓰인 비석이 버티고 서 있다.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을 엄중히 꾸짖고 있는 듯 했다.

독도박물관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건립이 추진됐으며, 고 이종학 초대관장이 30여 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의 유품 등이 전시돼 1997년 개관했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영토 박물관이기도 하다.

박물관 1층의 상설전시실에는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료 대부분이 일본 것으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특히 일본 지도제작의 대가인 하야시가 1785년 그린 삼국접양지도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이 지도에는 일본과 이를 둘러싼 3국의 색을 달리 구분했다. 지도에는 조선해 가운데 2개의 섬(울릉도, 독도)이 우리나라 땅과 같은 색으로 그려져 있으며, 큰 섬에 '죽도' 라고 쓰고 그 왼쪽에 '조선의 것' 이라고 기록했다.

2층 전시실에는 독도의용수비대의 활약과 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으며, 지금도 2~3일에 한 번꼴로 나타난다는 일본 순시선의 사진이 걸려 있다. 또한 일본이 왜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 시키려는 지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2박3일의 일정이던 여행은 바다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3박4일로 변경됐다. 예상치 못한 여행일정은 우리에게 색다른 추억을 남기게 했고 서로의 끈끈한 정을 확인 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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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가격이 1L에 1979원임을 알리고 있다.
 휘발유 가격이 1L에 1979원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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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은 기후와 지리적 특징 때문에 이곳에서 운행중인 52대의 택시가 모두 레저용차량(RV)이다.
 눈이 많은 기후와 지리적 특징 때문에 이곳에서 운행중인 52대의 택시가 모두 레저용차량(RV)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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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엿 공장 입구에 즐비하게 쌓여있는 호박
 호박엿 공장 입구에 즐비하게 쌓여있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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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박엿 공장을 방문한 직원들
 오박엿 공장을 방문한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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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호박 70%와 야생돌배, 누룩, 보리밥을 발효시켜 만들었다는데 진한 호박 향과 달콤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안주로 나온 새콤달콤한 곰치나물과 손부두가 찰떡궁합을 이룬다.
 울릉도 호박 70%와 야생돌배, 누룩, 보리밥을 발효시켜 만들었다는데 진한 호박 향과 달콤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안주로 나온 새콤달콤한 곰치나물과 손부두가 찰떡궁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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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지 불행인지 2박3일의 일정이던 여행은 바다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3박4일로 변경됐다. 여객선 터미널 매표소에 붙여진 안내문
 행인지 불행인지 2박3일의 일정이던 여행은 바다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3박4일로 변경됐다. 여객선 터미널 매표소에 붙여진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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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울릉도는 지난 16일부터 3박4일동안 다녀왔습니다.



태그:#울릉도, #음성군, #독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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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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