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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중구에 있는 '신포시장'에 가면 학창시절 추억이 깃든 먹자골목이 있다. 80~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 사이에서 '신포동칼집'으로 통하던 '신포동 칼국수' 골목이다.

 

남·여학생을 불문하고 신포동 칼국수 골목을 찾지 않은 학생이 거의 없었고, 칼국수 골목은 학생들로 늘 북적거렸다. 그 당시, '신포동 칼집'을 모른다고 하면 '간첩'이란 말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던 곳이다.

 

칼국수 한 그릇에 300원(250원부터 있었다고 함, 필자는 300원 세대), 뱃골이 큰 녀석은 400원짜리 '곱빼기'를 주문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각자 입맛에 따라 '수제비' '쫄면' '우무' '라면' 등을 주문하면 식탁은 '만찬상'이 되었고 요것 저것 골라 먹었던 맛과 추억은 중년이 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골라먹는 맛이 있었다면, 골라보는 재미가 있었던 칼국수 집이기도 했다. 많은 학생들이 '신포동칼집'을 찾은 진짜 이유는 칼국수를 먹으면 덤으로 볼 수 있었던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였다. 손님을 끌기 위해 칼집 입구에는 비디오상영프로가 적혀 있었고 학생들은 기호에 맞는 영화를 골라 볼 수 있었다. 신작은 '학생들을 모으는 대박'이었다.

 

주인아주머니 눈치를 보면서 비디오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던 추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해 웃음부터 나온다. 그땐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야~ 그만 먹었으면 이젠 가야지, 밖에서 기다리는 학생들 생각도 해야지…"라는 호통 한 마디가 나올까 수저를 끝까지 놓지 않고 한 편의 비디오를 다 보기 위해 '계속 먹는 척' 눈치작전을 펼쳐야 했던 즐거운 추억이 머물러 있다.

 


20여 년이 흐른 중년의 나이에 찾은 '칼집'골목,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들로 가득했던 신포동칼국수 골목은 이제는 찾는 이 거의 없는 허름한 뒷골목으로 변해버렸다. 대부분의 칼국수 집은 문을 닫고, 두어 집만이 추억을 찾아 골목을 찾아드는 손님을 맞으며 영업을 하고 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통하는 추운 골목을 따라 주인 떠나보낸 빈 칼국숫집들이 허름하게 남아있고, 문을 연 칼국수 집엔 한두 테이블 손님이 앉아 모락모락 피어나는 칼국수 국물 맛을 음미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가 찾은 집은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골목집'이다. 이곳 주인인 장귀선(62) 할머니는 인생의 절반을 칼국수 골목에서 보내셨다고 한다.

 

반가운 듯 반기는 웃음은 수십 년의 벽을 허무는 듯 했다. "이십 한 3~4년 되었겠네요" "학교 땡땡이치고 아침부터 와서 비디오 보곤 했는데…." 수많은 학생들 중 어떻게 기억을 하겠는가? 그래도 옛 기억을 더듬다가 맞장구를 치시며 반겼다.

 

구수한 튀김가루 냄새와 옛 추억을 음미하며 칼국수 먹기에 열중하고 있는 필자 옆에서 옛 추억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주말이면 칼집 골목은 오전부터 학생들로 북적거려 시끌벅적했다고 회상한다. 미처 칼국숫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골목 밖까지 길게 줄을 서 있다 들어와 칼국수를 먹기도 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사용한 나무젓가락 봉지가 나뭇잎처럼 가득 쌓여 푸석푸석 밟힐 정도였지, 그거 치울 시간도 없었어…."

 

- 그 당시 학생들이 이곳을 찾았던 이유는?

"그때는 인천의 중심이 이곳(동인천, 신포동)이었지,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이곳에 있었다. 영화관, 롤러스케이트장, 음악다방, 서점, 게다가 인천을 대표하는 우수한 고등학교가 모여 있었고…."

 

그랬다. 주말이면 동인천을 비롯한 신포동에는 인천 전 지역에서 찾아온 학생들로 넘쳐났다. 흔히 잘나가는 롤러스케이트장, 영화관, 음악다방 같은 곳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첫 관문에 칼국숫집이 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80~90년대 후반부터 초반까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맞으며 등장한 '주윤발' '장국영' '이수현' '왕조현'의 출연 영화 <영웅본색><첩혈쌍웅><천녀유혼>을 영화관이 아닌 칼국숫집에서 그것도 공짜로 '배도 채우고, 비디오도 보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누렸던 곳이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신다면.

"그 당시 유행하던 나이키, 프로스펙스 등 유명메이커 운동화 값 변상해 주던 일이 생각나…."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20~30명 들어갈 수 있는 방부터 채웠다고 한다. 방으로 들어간 학생들 중 유명 메이커 운동화를 신고와 문 앞에 벗어놓고 들어가면, 짓궂은 학생들이 일부러 다 찢어진 운동화 신고 왔다가 새 운동화로 바꿔 신고 나가 신발 값 반을 변상해주었다고 한다.

 

"칼국수 한 그릇에 300원 할 때 몇만 원짜리 비싼 신발 값 물어주려니 속이 상해, '벽에다 신발 잃어버려도 책임 안짐'을 써 붙이고 봉투를 나눠줘 개인이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니 그때부터 분실이 줄어들었어…."

 

- 신포동 칼국수 골목의 손님이 왜 줄기 시작했는가?

"97년 IMF 이후 손님이 끊어졌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서민적인 음식은 불황을 덜 입을 줄 알았는데 손님이 끊겼다. 그 후 유선방송과 컴퓨터 보급으로 더 이상 비디오를 보려고 이곳까지 오는 손님은 없었다.

 

평일에는 찾는 손님이 거의 없고 주말이 돼야지 그래도 손님이 찾아와. 그래도 내 집이고 세금 내는 것 없으니 마음 편하게 장사하지."

 

이제는 추억을 찾아 골목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과 추억 속의 입맛과 그리움을 찾아오는 중년의 성인들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칼국수 골목은 인천시민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아쉽기만 하다.

 

오랜만에 맛보는 칼국수는 세월이 흐르고 입맛도 변해 그 옛 맛을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움으로 먹는 추억의 칼국수'의 맛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주윤발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을 흉내 내던 친구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 세상의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구수함이 담겨져 있다.

 

지금은 그때의 추억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반가워 그만두지 못하고 장사를 하신다고 한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사람 사는 맛도 나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장 할머니는 빈 가게를 지키며 칼국숫집을 가득 메웠던 그때 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 뉴스, 신문고뉴스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신포시장, #칼국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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