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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 <박재은의 음식남녀>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는 요리사 박재은. 그녀는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뜬 요리사는 절대 아니다. 20대 초반의 청춘을 파리에서 몇 년 머문 적이 있고 한국에서는 와인이나 요리, 식문화에 관련된 일을 하며 내공을 쌓은 그녀는 자칭 '글쓰는 요리사'다.

책 <어느 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
 책 <어느 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
ⓒ 낭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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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글쓰기를 좋아하고 음식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기에 다양한 요리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파리에 거주한 경험이 있고 현재도 자주 음식 때문에 파리 출장을 다녀오는 관계로 '파리 책'을 내자는 편집자들의 제안을 받고 그녀는 조금 망설였다고 한다.

도시 구석구석이 미술관이요, 박물관인 그곳에서 저자는 태어나서 가장 외로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감히 파리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파리가 얼마나 멋진 도시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 어떤 곳보다 문화와 낭만이 넘치는 이 도시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파리에 살면, 누구라도 랭보며 에디뜨 피아프며 피카소가 된다. 파리가 낭만의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최대치를 끌어내 줄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옛날 예술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전 세계의 예술가들은 그토록 '파리에서의 작업'을 꿈꾸었던 것이리라."

그만큼 파리는 다양한 감정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브르, 퐁피두, 오르세 미술관만 하더라도 서로 다른 개성으로 각자의 향기를 뿜어낸다. 루브르는 온 세계의 모든 진귀품이 가득 전시되어 있고 퐁피두는 현대 미술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는 곳이다.

미술관만이 아니다. 파리는 음식의 도시이기도 하다. 길에서 파는 크로와상과 바게트만 해도 침이 절로 넘어갈 정도로 맛있고 향기롭다. 거위 간, 달팽이, 개구리 뒷다리 등 어떤 면에서는 혐오식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조차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것이 프랑스 요리다. 지나치게 프랑스 음식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지만, 일단 그 맛을 보면 역시 최고라는 칭찬은 안 할 수 없다.

저자가 프랑스에 오래 거주했고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늘 프랑스 음식에 관대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명한 프랑스 족발 요리를 보고는, 사실 우리 족발이 더 맛있고 양도 푸짐한데 '프랑스는 너무 비싸게 받아!' 라고 비판할 줄 안다. 프랑스에서 오래 고생한 덕분일까? 그녀의 시각은 제법 객관적이다.

나폴레옹 3세의 제2재정을 축하하며 지은 문화홀 오페라 갸르니에는 현재도 발레 공연장으로 쓰인다. 오래된 건물이면 모두 부수어 새것을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건설 상황을 볼 때, 200년 전통의 문화홀에서 여전히 좋은 공연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그 공연장을 드나들며 행복한 파리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 또한 멋지게 느껴진다.

"개선문은 이름 그대로 프랑스의 '개선' 즉, 승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1차 대전 때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시신이 개선문 아래 묻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마냥 웃으며 사진이나 찍다 가는 곳이 아니다. '승리'는 이곳에 이름 없이 묻힌 아들들의 공이라는 사실을 파리는 한시도 잊지 않는다."

관광객에게는 한낱 사진 찍기 좋은 장소이지만, 파리 시민들에게는 늘 자신들에게 자유를 찾아준 소중한 희생이 묻혀 있는 곳 개선문. 우리는 소중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저 멀리 보관하는 반면 파리 시민들은 늘 가까이에 두고 그 업적을 기린다. 생과 사는 공존하는 것이라는 서구식 사고가 지배적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파리 부촌에 위치한 몽소 공원에서 그녀는 파리에 존재하는 빈부격차를 실감한다. 사립학교 교복을 입거나 유기농 코튼으로 만든 심플한 디자인의 아가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의 머리카락은 대부분 금발, 피부는 우유처럼 뽀얗다.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들은 대부분 유색인종이다.

저자는 이 모습을 보고는 여러 명의 감독이 옴니버스 형태로 만든 영화 '파리, 쥬뗌므' 가운데 '16구'라는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젊은 이민자 엄마가 이른 아침 아가를 탁아소에 맡기고 파리의 부촌으로 보모 하러 출근하는 장면. 낭만으로 가득한 도시는 가진 자에게만 그 혜택을 주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저자는 엄마를 떠올린다. 어렵게 프랑스까지 딸을 찾아온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투정하고 말 안 듣고 못되게 군 기억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저자. 그러다가 여행이 끝날 때쯤 미안해졌다는 솔직한 얘기에 같은 딸로서 공감이 된다. 자신처럼 말 안 듣는 뺀질이를 낳을까 봐 아이도 못 낳는다는 소리에 푸훗 웃음이 터진다.

이처럼 솔직함을 무기로 하면서 농익은 파리 경험과 세상살이, 미술, 역사,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한 박재은의 글은 참 재미가 있다. 평범한 프랑스 여행 서적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도 파리의 어느 거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파리에 갔다면 더 자세히 이곳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여행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추억'을 선사하는 것이기에, 다음 파리 여행 때는 이 책에 소개된 멋진 곳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책장을 덮는다.


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

박재은 지음, 낭만북스(2009)


태그:#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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