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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공사에서 오늘 보내온 상장
 수자원공사에서 오늘 보내온 상장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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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여 근무를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액정화면의 발신자 전화번호를 보니 서울서 건 전화였다.

그래서 응답을 하니 내 이름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어디신지요?"

그 사람은 모 방송사의 상품협찬 발송 대행사 담당자라고 했다.

"지난 11월 9일에 방송된 모 라디오 프로그램의 선물을 보내 드릴 건데 주소지 확인과 더불어 인적사항을 알려 주세요."

그래서 묻는 사항에 대하여 알려주고 나니 그 사람은 선물의 내용은 문화상품권 20만 원어치라고 했다.

'허걱! 자그마치 20만 원이나!!' 순간 너무 좋아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사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따금 사연을 보낸다. 그렇지만 그걸 일일이 모두 듣지는 않는다. 왜냐면 나에겐 어떤 징크스와 머피의 법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기대를 하면 반드시 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고로 당첨과 당선(글쓰기 공모전의 경우)이 되면 어련히 알아서 담당자가 오늘의 경우처럼 연락을 하는 걸 익히 터득하고 있는 터였다. 아무튼 통화를 마치고 나자 자그마치 20만 원이나 되는 문화상품권을 어찌 써야할지 금세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선 딸에게 10만 원어치만 보내주고 나머지로는 마누라 안경을 맞춰줄까?'
대전시내의 안경원 중에는 실제로 문화상품권을 받아주는 곳이 있는 때문이다.

아님 이걸 '깡'(단골로 가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액면가 1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즉석에서 9천 원의 현금으로 바꿔준다)을 해서 연탄난로의 부속품을 살까?

그처럼 이런저런 고민의 구름 속을 유영(遊泳)하다가 이윽고 저녁나절이 되어 퇴근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늘의 '실제적' 소득은 없었다. 내가 취급하는 출판물을 정기 구독하겠다는 독자를 오늘은 단 한 명도 '붙잡지' 못 한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이른바 '공'(空)을 치고 만 것이었다.

기본급도 전무하고 오로지 판매한 액수의 일정한 리베이트(수당)만으로 생활해야 하는 나같은 세일즈맨에게 있어 가장 견딜 수 없는 자격지심과 스스로의 모멸감은 오늘처럼 실적이 없는 날이다.

그렇지만 실로 운이 좋게도 난 본디의 생업이 아닌 어떤 투잡의 형태인 가외로서 20만원이란 문화상품권을 수령하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벌이를 못 했다고 하여 평소처럼 괜스레 의기소침할 필요까진 없었던 것이었다.

시내버스에 올라 꾸벅꾸벅 졸다가 겨우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입구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대문 앞의 우편물 함(函)엔 오늘도 나에게 온 우편물이 수북했다. 그 중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보낸 상장과 사단법인 샘터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샘터>도 두 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걸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가위로 개봉을 하여 안의 책자를 꺼내니 담당 기자의 세심함까지 드러났다.

월간 샘터에 게재된 필자의 글
 월간 샘터에 게재된 필자의 글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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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님께, 안녕하세요? 월간 <샘터>의 이*현입니다. 귀한 일기를 보내주신 덕분에 2009년 12월호를 무사히 출간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요즘 같은 취업 대란에
당당히 대기업에 입사한 아드님의 취직도 축하드립니다. 새해 인사는 조금 이른 것 같기는 하지만, 2009년도 마무리 잘 하시고요. 2010년엔 올해보다 더 기쁜 소식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늘 건강하세요~

구구절절 고맙고 감사하며 기분 좋은 문구(文句)들로만 채워져 있는, 그림엽서에 담긴 그 글귀는 오늘 공(空)을 쳐서 실제로 약간은 처져있던 어깨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

그 담당 기자는 지난주에 이미 나에게 전화를 해 준 터였다. "12월호 특집기사에 홍 선생님의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원고료는 차후에 입금해 드릴 거니까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 주세요"라고.

샘터에 실린 나의 글을 보니 다시금 아까 방송사 상품협찬 대행사의 전화를 받을 때처럼 기분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샘터에 실린 내 글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아들이 취업의 성공을 위해 연일 녹초가 되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필코 취업에 성공하길 바라는 이 아비의 솔직한 심경을 담은 것이었다.

샘터에 실린 글은 아들이 취업 확정이 되기 전에 보낸 글이었지만 그 날 기자는 나에게 최근의 근황을 이메일로 알려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오늘 샘터에 실린 내 글의 말미(末尾)엔 밑줄을 쭉 친 아래로 아들의 취업성공이란 고무적인 내용까지가 담겨져 있어 동가홍상이었다.

다음으론 수자원공사에서 보내온 상장을 펼쳤다. 이 또한 약 2주 전에 담당자와 통화를 한 바 있었기에 이제나저제나 상장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오늘 도착한 상장은 수자원공사가 해마다 실시하는 <물 사랑 문예공모전>에 응모했던 나의 글이 입선에 당선된 때문의 결과물이었다. 대상과 금상이 아닌 까닭으로 상금은 얼마 안 된다.

그렇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입선이라도 하였으니 이 어찌 희열이 아니었겠는가! 이쯤에서 찬찬히 정리를 해 보자.

그러니까 나는 오늘 무려 세 건이나 되는 '사고를 친' 것이다. 첫 번째가 20만원의 문화상품권이요, 다음으론 유명한 월간지에 게재된 나의 글이 그것이며 마지막으론 상장 이렇게 도합 세 건 이렇게. 흐뭇한 미소가 보름달로 양미간(兩眉間) 에 걸리면서 나는 오늘 같은 날만 계속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봤다.

이같은 나의 '사고' 세 건 외에도 아들은 얼마 전에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모집에서 당당히 최종합격하는 기염의 '사고'를 친 바 있다. 사고(事故)의 의미는 1)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2)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3) 어떤 일이 일어난 까닭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이처럼 고무되어 모조리 까발리는 건 '사고'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것이리라. 말이야 바른 말이고 글 또한 나는 가식(加飾)으로 쓰는 걸 원칙적으로 경멸(輕蔑)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때론 너무 노골적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내 맘과는 사뭇 다르게 여기 오마이뉴스에서도 기사로 채택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튼 내 글에선 그간 자주 등장했지만 나는 그동안 정말이지 너무도 힘들고 가파른 협곡만을 점철해 왔다.

아이들의 올바른 교육 바라지를 위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길 수 년 째이며 톡톡 털어 서울의 딸에게 돈을 보내주고 나면 심지어는 버스비마저 소진된 적도 있었으니 더 말 해 무엇하랴! 기왕지사 모조리 홀랑 뒤집어 내면서까지 '이실직고'를 하는 마당이거늘 뭘 더 숨기고 자시고 할 게 있겠는가. 하여 어쩌면 사족이자 첨언(添言)인데 사실 여기 오마이뉴스에서 그간에 내가 글을 써서 받는, 혹은 받은 원고료는 얼마 안 되는 푼돈이다.

대신에 다른 매체들에서 받은 원고료는 그동안 두 아이를 가르치는데 있어 정말로 커다란 원군(援軍)으로 작용했다. 여하간 이제 아들이 취업의 안전지대에 입성했고 딸 또한 올해만 지나면 대학을 졸업하므로 고생은 다 했다는 느낌이다. 아울러 고생 끝에는 반드시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이름의 역(驛)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천착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보다는 자식이 잘 되길 소망한다. 나는 비록 못 배웠고 그래서 30년 가까이를 척박한 비정규직으로만 살고 있다. 그렇지만 방대한 독서와 병행하여 독학(獨學)에도 열중하여 글 쓰는 솜씨만큼은 이제는 누구 못 지 않게 스스로 깨쳤다고 감히 자부한다. 작년부터 다니고 있는 사이버대학은 여전히 더 부족한 내 지식의 창고에 영양분을 채울 요량에서이다.

한가위를 일컬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고 했다. 오늘처럼 상품권(내가 보는 문화상품권은 곧 현금의 등식이란 개념이다)과 상장, 그리고 내 글이 실린 월간지와 같이 고무적인 날만 지속되길 진정 소망한다. 나는 너무도 오랜 세월을 산전수전도 모자라 공중전까지 마스터한 때문으로.   

덧붙이는 글 | <저, 사고쳤어요> 응모 글



태그:#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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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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