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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은 정부를 견제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어 두 번째 국정감사를 마무리하면서 많은 아쉬움과 함께 적지 않은 좌절감을 느낀다.

 

과거 인연을 따지기에는 너무 절박한 현실

 

야당 국회의원을 하다 보니 과거에 동고동락했던 공직자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특히 국정감사기간 동안에는 더욱 그렇다. 지난 해 1월말에 건설교통부장관을 끝으로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보니 국감 때가 되면 예전 인연 때문에 인간적 갈등을 겪는다. 1년 2개월 동안 건설교통정책을 함께 추진했던 직원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정부도 견제 받지 않으면 부패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권력을 남용한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목표를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무대포 정부'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여 주었다.

 

지금 국토해양부는 국민의 뜻에는 아랑곳도 없이 4대강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여 차례에 걸쳐 부동산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함으로써 주택가격과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는 등 문제가 심각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4대강 사업비 8조원을 수자원공사에 떠넘기는 부도덕한 행태도 서슴없이 보이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정책으로는 연결되지도 않는, 무늬만 서민행보를 하면서 국민통합을 얘기한다. 도무지 진정성이나 양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믿음을 주기 힘든 대통령이다. 이 정부와 국토해양부는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근무했던 정부와 건설교통부와는 매우 이질적인 DNA를 가진 못된 정권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정부의 문제와 부도덕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내게 주어진 소명이다. 사심을 버리고 대의를 따라 야당의원의 길을 가는 것이니 과거 동료들도 이해해 주겠지 하는 생각이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10월 6일 국토해양부 국정감사가 끝나고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전·현직 장관이 설전을 벌였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 인연에 얽매이기에는 '무대포 정부'와 '거대 여당'을 둔 대한민국에서 야당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국민의 공복이 국민의 대표에게 큰소리치는 국정감사장

 

수감기관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고위직 공무원들의 국감태도는 청와대가 국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민하게 달라진다. 이명박 정부처럼 국회를 경시하는 정부에서는 공무원들이 어떻게든 자료제출을 거부하려고 한다. 부실국감의 원인 중 하나인 불성실한 피감기관들의 배짱대응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제출하는 자료에 주로 의존하는 국정감사의 특성상 주무부처가 자료은폐, 허위 제출, 지연 제출을 하면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다. '1년 중 하루만 버티면 된다', '한번 지나가면 끝이다'라는 생각을 행정부가 하는 것도 상당부분 국회에 책임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막기 위해서는 국회차원에서 각종 자료를 DB로 구축해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 국정감사의 모든 과정을 철저히 기록으로 남겨야 하며,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진실인지, 국감에서 지적된 개선요구를 반영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허위자료를 제출하면 반드시 상응하는 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부실한 자료제출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무리한 자료요구도 억제할 수 있다. 국정감사 때가 되면 감당할 수조차 없는 자료 요구 때문에 공무원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일부 여당 상임위원장과 여당의원들의 노골적인 정부 편들기도 국정감사를 무력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여당의원은 정부를 감사하는 것인지 야당 국회의원을 감시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야당의원들의 정략적이고 비판을 위한 비판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국정감사가 부실하게 운영되는 주책임은 여당에 있다. 야당의석을 다 합쳐 모아도 100석이 안되어 국무위원 해임건의안도 낼 수 없는데 야당의 노력만으로 어떻게 효율적 국정감사가 될 수 있겠는가? 기관장이 국민의 대표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도 여당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방관한다면 국회의 권위는 계속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아닌 정권에 맹종하는 일부 고위 공직자를 보면 안타까워

 

공직자는 정권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집단이어야 한다. 물론 정권이 정의롭고 도덕적이면 공직자가 정권에 충성하는 것이 나라에 충성하는 길이 된다. 그러나 이 정부를 보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매우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하다. 신뢰, 정의, 정직과 같은 사회적 자본을 훼손하고 있다. 국정감사를 하면서 아쉬운 것은, 정권차원의 잘못된 정책까지도 무조건 비호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자세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정책으로 생각되면 공무원이 정부정책을 반대하고 나서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맹종에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극히 일부지만 자리보전과 승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공직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국민과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이런 소수 고위직들 때문에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문제를 제대로 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나와 함께 근무했던 간부들 중에도 일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다. 유한한 자리를 위해 자신의 가치를 너무 훼손하지 말라고 얘기 해 주고 싶다.

 

'한방' 기대하는 언론과 국민이 국회의원의 잘못된 행태를 만든다

 

뭇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흥미로운' 한방을 기대하는 언론과 국민의 기대에도 문제가 있다. 한방보다는 국정감사에서 지적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크고 작은 민생문제들을 발굴하여 시정하는 국감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언론과 국민이 '한방'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야당 의원들도 과거처럼 '아니면 말고'식 폭로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안타는 안중에 없고 홈런 한방만을 노리는 폭로와 한건주의 국정감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것이다. 국회의 국정감사를 감사원의 감사나 수사기관의 수사와 비교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언론이 바뀌면 국정감사도 달라질 것이다. 깊이 있는 검토를 거쳐 문제를 지적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해도 언론의 관심은 적다. 짧은 시간에 취재해서 주목받는 기사를 쓰는 데 언론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선정적이고 폭로성 높은 기사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언론 스스로가 국감 때마다 정책국감을 강조하면서 정작 정책대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은 언론이 선호하는 분야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훌륭한 지적도 내 편이 아니면 외면하는 언론의 편 가르기도 큰 문제이다.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감 우수의원을 뽑는 평가기준이 보다 객관화되고 공정해야 흥미위주의 사회적 이슈에서 벗어나 민생국감, 정책국감이 될 수 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보는 국회

 

행정부에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현행 국정감사제도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금의 국정감사는 상임위원회나 예결위원회에서 질의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매년 국정감사가 끝나면 현행 국정감사 제도에 대해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지만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회가 자기 문제는 방치하면서 정부에게만 시정하라고 요구한다면 국민적 설득력도 공감도 얻을 수 없다.

 

지난해 현행 국정감사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법」,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다른 의원들도 같은 취지로 개정안을 제출했다. 1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진전이 없다.

 

국회가 매년 4천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쓰면서 존재하는 이유는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고 건강한 국회를 만들려는 개혁의지가 현재의 국회 지도부에는 없다.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국회를 이끄는 의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18대 국회 후반기에는 시대적 소명의식과 역사적 평가를 두려워하는 훌륭한 국회의장을 만나 국정감사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용섭 (광주 광산을) 민주당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건교부·행자부 장관을 지냈으며 민주당 민생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국정감사,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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