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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우는 할아버지와 나

 

 지난 화요일에 옆지기와 아기가 경주에 있는 '자연건강단식생채식생활관'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곳으로 떠났습니다. 혼인하기 앞서부터 안 좋던 몸과 마음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동안 그리 나아지지 못해, 이곳에서 한 달 동안 들어가 지내면서 몸이며 마음이며 새롭게 추스르고 아기한테도 물과 바람과 햇살이 깨끗하고 싱그러운 곳을 얼마만큼이라도 누리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곳에 함께 들어간다면 더없이 좋을 테지만, 세 식구가 한 달 동안 들어가 지내자면 요사이 한글학회를 다니면서 받는 일삯 두 달치를 모아도 모자랍니다. 집삯에다가 도서관삯까지 내자면 주머니에 구멍이 나도 어찌어찌 때울 길이 없어 아빠는 홀로 인천에 남고 엄마랑 아기만 먼길을 떠납니다.

 

 여러 날 짐을 꾸리며 일터를 쉬고 아기하고 어울리다가 두 식구를 보낸 화요일 낮, 복닥이며 뒹굴던 집식구가 없으니 그지없이 허전합니다. 아기 오줌 가리기를 하려고 낮에는 기저귀를 풀고 쉬를 누이기도 하지만 틈틈이 온 방과 마루에 오줌을 질러대는 아기 뒷바라지를 하면서 날마다 수없이 걸레 빨고 옷가지 빨고 기저귀 빨고 하느라 허둥지둥이었는데,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해도 되니 오히려 몸이 무겁습니다. 그동안 밀린 글쓰기라든지 헌책방마실이라든지 골목길 사진찍기라든지, 어느 한 가지 즐겁게 할 마음이 샘솟지 않습니다. 저녁나절 뜻밖에 만난 이웃동네 아저씨하고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외로움을 달랩니다.

 

 이튿날, 저녁 여섯 시까지 쉴 틈 없이 학회 일을 치르고 나서 곧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연세대학교 앞으로 갑니다. 이런저런 핑계와 일 때문에 여러 달째 드나들지 못한 연세대 앞문 건너편 헌책방 '정은서점'을 찾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까닭에 헌책방마실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묻히거나 사라지거나 잘 드러나지 않은' 좋은 책을 찾는 재미와 즐거움이 틀림없이 있는 가운데, 저한테는 '쓸쓸하거나 허전한 마음을 달랠 벗님을 묵은 책에서 찾'고, '헌책방 일꾼 일매무새를 넘겨다보면서 내 마음가짐을 좀더 단단히 다스리자'고 마음먹곤 합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마음 달래기를 하는 틈틈이 마음과 가슴과 머리를 듬뿍 채울 고맙고 반갑고 멋진 책을 수없이 만납니다.

 

"아기 많이 컸지요? 아기 귀엽지? 낳고 보면 다 귀엽다고. 아주 다르지." '정은서점' 아저씨가 우리 집식구 안부를 묻습니다. 그저 빙긋 웃으면서 "네, 귀엽지요" 하고 대꾸를 하지만, 바로 어제 병치레 때문에 시골로 쉬러 갔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젠 학생이여. 요즈음 컴퓨터 배우러 다녀. 3개월 간. 이제는 컴퓨터 안 하면 안 되겠더라고. 잘하든 못하든." '정은서점' 아저씨, 아니 이제는 할아버지라 해야 할 텐데, 나이가 예순다섯이니까요, 아무튼 '정은서점' 할아버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현역으로 일하실는지 모릅니다만, 이와 같은 나이에도 새롭게 더 배우면서 일손을 붙잡으시는군요. 하기는. 생각해 보면 누구나 그러할 텐데,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배울수록 더 배우고야 맙니다. 알아갈수록 더 고개를 숙이면서 마지막 눈을 감는 그날까지 '우리보다 훨씬 어린 사람한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웁'니다. 우리는 어르신이나 스승한테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따로 몇몇 어르신(우리보다 나이 많은 분)이나 스승(배움이 깊은 분)한테뿐 아니라 우리 둘레 누구한테서나 배웁니다. 아기한테서도 배우고 어린이한테서도 배웁니다. 구멍가게 할배한테서도 배우고, 버스기사한테서도 배웁니다. 다만, 우리한테 배우려는 매무새가 없다면 못 배울 뿐이요, 우리한테 배우려는 매무새가 있다면 언제나 싱그럽고 즐겁게 배울 뿐입니다.

 

"집사람이 육십이고 내가 육십다섯인데, 오토바이 뒤에 집사람을 태우고 같이 컴퓨터를 배우러 다닌다고. 한 주에 두 번, 두 시간씩. 3개월 코스야. 같이 배우면서 집사람이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 주고. 그리고 내 몸을 지킨다면서 새벽에 다섯 시에 일어나 둘이 같이 운동을 하고. 그렇게 같이 다니면 주변에서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게 사시냐고 물어. 내가 좋아서 하거든. 그렇잖아요?" '정은서점' 할아버지를 가리켜 무뚝뚝하고 말수가 없으며 낯빛이 무섭다고 하는 분이 드문드문 있습니다. '정은서점' 할아버지 낯빛이나 얼굴느낌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당신한테 반가운 책을 찾는 데에만 마음을 쓰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이곳을 한두 해가 아닌, 열 해가 아닌, 스무 해 안팎으로 바지런히 드나들면서 고맙고 반가운 책을 숱하게 만나면서 즐겨찾는 분이 있어요. 저는 이제까지 '정은서점' 할아버지한테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만, 이번에 '정은서점' 할아버지가 셈틀(인터넷 하기)을 익히신 뒤로 인터넷에 당신 헌책방을 놓고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가를 주욱 살펴보셨나 봅니다.

 

"내가 요즈음에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에 들어가 보는데, 어떤 사람인가 우리 가게 이야기를 참 잘 썼어. 찬찬히 읽고 나서 보는데, 읽고 보니까 자네가 쓴 글이더구만!" 저는 1994년부터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 써서 띄웠습니다. 그무렵 나우누리라고 하는 셈틀통신에 처음 올렸고 1999년에 비로소 인터넷을 배워서 이때부터는 인터넷 모임에 글을 올렸습니다. 2000년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고부터는 틈틈이 이곳에도 헌책방 이야기를 띄웠습니다. 글을 쓰기로는 참 부지런히 많이 썼는데, 그동안 인터넷신문 기사로 띄운 글은 고작 200꼭지가 조금 넘습니다. 그나마 예전에 쓴 글은 참으로 철없이 쓴 글이라 남한테 읽히기 부끄러운데, 앞으로 세월이 더 지나면 오늘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그지없이 부끄럽고 얼굴 붉어질 글이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참 어수룩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 어수룩한 글이라도 반갑게 읽어 주고 좋게 받아들여 준다면, 저로서는 우리 나라 헌책방 문화에 아주 조금이나마 이바지를 하면서 우리네 책마을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한몫을 했다는 보람을 우리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꼭 아이한테 '네 아빠는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란다' 하고 말해야 하지는 않으나, '네 아빠는 이런 일을 조용히 오래도록 해 오며 너를 키웠단다'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2) 고개숙여 받아들이고 배우는 책

 

 헌책방 할아버지 말씀을 듣거니 받거니 하는 가운데 책구경을 합니다. 책구경은 안 하고 말씀만 들어도 뿌듯하고 즐겁지만,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에 '저녁에 헌책방에 들러 책을 장만한 다음 이 책으로 집으로 오는 전철길에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 읽을 책만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을 책은 가방에 없습니다.

 

'정은서점' 할아버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서 슬금슬금 골마루를 누빕니다. 골마루 곳곳에 '정은서점' 따님이 마련해 놓은 글쪽지며 장난감이며 쪽거울이며를 싱긋 웃으며 들여다보면서 책을 곰곰이 살핍니다.

 

<조선 장인들>(최무자, 혜진서관, 1988)이라는 책을 들여다봅니다. 글쓴이나 펴낸곳이나 낯섭니다.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하면서 끄집어 냅니다. 차례를 살피고 사진을 돌아보는데, 사진이 퍽 좋습니다. 더욱이 책끝에 예용해 님이 추천글을 적어 주었습니다. '예용해'라는 이름은 우리 나라에서 거의 잊혀져 버렸지만, 대원사에서 이분 전집이 한 번 나온 적이 있고, 〈한국일보〉에서 문화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사로 적바림했으며,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우리 문화를 꾸밈없이 차근차근 들여다보도록 하는 글을 알뜰히 쓰셨던 분입니다. '인간문화재'라는 제도가 마련되도록 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더 알아보아야 할 텐데, '인간문화재'라는 낱말은 예용해 님이 처음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용해 님은 1963년에 <인간문화재>(어문각)라는 이름으로 두툼한 책을 펴내어, '이 나라에서 찬밥이거나 따돌림이거나 막대접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한길을 걷는 훌륭한 일꾼 삶'을 찬찬히 여미어 낸 적이 있기도 합니다.

 

.. "나를 가르친 선생님이 있어요. 조원재 선생이라구. 그분 밑에서 25년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는데 이 도면 그리는 것두 참 무진 애쓰면서 배운 거예요. 점심참에두 다른 사람은 놀아두 나는 한눈 팔 시간두 없었지. 선생님이 그린 도면하구 집을 일일이 대조해 보느라구 말이요. 아무리 연구를 하구 또 해서 보여드려두 다시 그리라는 말밖엔 안 하시니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시방 사람들 같으면 어디 하루나 배기겠나, 어림두 없지. 서투른 솜씨 같구두 걸핏하면 독립을 해 나가겠다니 참 요즘 사람들 딱들 해요." … "한식집은 설계도면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아무리 설계기사가 설계를 잘해 놨다구 해두 실지 그것대로는 집을 짓지 못해요. 이치적으로 맞게 그려놨는데두 실지 집을 지을 때는 맞질 않거든요. 학교에서 잘 배웠겠지만 난 도무지 탐탁치가 않아요." ..  (15∼16쪽)

 

 

저는 헌책방마실을 해 온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을 돌아보면서, 언제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한테 인간문화재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헌책방 일꾼이 이 나라에서 둘도 없고 다시 또 없는 인간문화재라고 하겠다'고. 저를 취재한다며 찾아오는 기자한테 언제나 "헌책방 아저씨 아주머니만큼 이 나라에서 제대로 대접 못 받은 사람문화재도 없다고 느낍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부디 어느 헌책방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찾아가서 적어도 두 시간 남짓 온갖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헌책방 참맛을 깨달아 주시고, 이렇게 깨달은 이야기를 글이나 사진으로나 그림으로나 둘레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셔요." 하고 덧붙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출판사에서 보내 온 보도자료 공짜 책'에 파묻히지 말고, 스스로 두 손에 책먼지를 듬뿍 묻히면서 '우리 스스로 먼저 읽고프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깨닫고, 우리 스스로 누구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다음, 우리 스스로 누구보다 먼저 이 책 이야기를 갈무리하여' 나눌 수 있어야 비로소 문화부 기자이거나 책 평론가이거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대로 간다>(이홍우, 동아일보사, 2007)라는 책을 봅니다. '이런 책도 나온 적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집어듭니다. 썩 내키지 않고 달갑지 않지만, 글쓴이가 어느 '정치 편견'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한국 시사만화 발자취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책장을 넘깁니다.

 

.. 네 컷 만화의 기승전결로 볼 때 나는 지금 결을 향하고 있다. 처음 시사만화가가 된 것은 시사만화가 갖는 놀라운 힘 때문이었다. 글보다도 더 감동적이고 울림이 강한 힘, 그 힘에 이끌려 쉬지 않고 달려왔다. 시사만화의 진정한 힘은 시대와 독자와 함께 걸을 때 발휘된다. 한 걸음 뒤지면 낡은 풍자가 되고 한 걸음 앞서면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암시가 되어 버린다. 수십 년 간 시사만화를 그려 오면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시사만화가의 본연의 자세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펜을 놓는 날까지 내 파수꾼의 눈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이다. 독자와 함께 살아숨쉬는 시사만화를 그리기 위한 나의 마라톤은 내 펜이 살아 있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  (238∼239쪽)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나대로 간다>라는 책에는 '조중동 입맛하고 안 맞는 정치꾼 비아냥과 깎아내리기'가 절반을 넘게 차지합니다. 책 줄거리 가운데 1/3은 아예 ㄴ 대통령 조지기에 바치고 있습니다. 정작 이홍우 님이 어린 나날을 어찌 보내고 젊은 나날을 어떻게 견디었으며 서른 마흔 쉰을 넘기는 동안 어떠한 어려움과 즐거움과 보람이 있었는가는 거의 비치지 않습니다. 이홍우 님 스스로 무엇을 하고자 시사만화라는 길을 걷는지 잘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이홍우 님은 이야기합니다. "(시사만화는) 내 파수꾼의 눈"이라고. "(내가 그린 시사만화는 사회를 읽는) 풍자"라고.

 

 239쪽짜리 책을 금세 읽어치우면서 참말 씁쓸하고 쓸쓸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이홍우 님 요사이 발자취를 살펴보니, 2007년 11월 끝무렵에 <나대로 간다>를 내놓은 다음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신문사를 그만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고 정치권으로 몸을 바쳤더군요. 그러나 공천을 못 받고 신문사에도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신문기자로 정치권에 뛰어드는 폐해' 이야기가 〈미디어오늘〉에 적잖이 실렸는데, 이 꾸지람에 이홍우 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인터넷창을 닫으며 생각합니다. 이홍우 님은 이렇게 정치권에 몸을 담그려고 <나대로 간다>라는 책을 '어떤 힘있는 정치권력자 입맛'에 잘 들어맞게끔 엮었는지 모르겠다고. 너무도 안타깝고 안쓰럽게 당신 만화쟁이 발자취에 먹을 발라 놓고 말았다고.

 

<낮은 산이 낫다>(남난희, 학고재, 2004)라는 책을 집어듭니다. 이분이 1990년에 펴낸 <하얀 능선에 서면>을 아주 즐겁게 읽었던 터라, <낮은 산이 낫다>는 몹시 반갑습니다. 나중에 책을 다 고르고 책값을 셈하는 자리에서 '정은서점' 할아버지는 이 책을 보더니, "아, 그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야. 예전에 이 사람이 쓴 <하얀 능선에 서면>인가를 읽었는데 대단한 사람이더라고. 혼자서 백두대간을 겨울에 가로질렀으니. … 그런데 이런 사람 책도 내가 헌책방에서 일하니까 볼 수 있지, 다른 데에서 일했으면 이런 사람을 알았을까. 그 책이 하도 눈에 뜨여서 한번 읽어 봤는데 대단한 사람이더라고."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정은서점' 할아버지가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남난희라고 하는 분 삶은 여러모로 되새길 만하고 귀기울여 들을 만하고 곰곰이 읽으면서 곰삭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 원래 우리의 산은 등산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구의 알피니즘이 들어오면서 산은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더 빨리, 더 힘든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산은 도전의 대상이 아니다 …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면 아이의 동심이 부러워진다. 아이는 온몸으로 산과 만난다. 나무를 껴안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기도 한다. 온 산이 소란스러울 정도로 떠들기도 한다. 나에게는 도전의 대상으로, 제압해야만 했던 산이 아이에게는 정겨운 친구이다 ..  (11쪽)

 

 문득, 내가 내놓은 몇 가지 책은 내 둘레 사람들한테 얼마나 읽힐 만하고 얼마나 되새길 만하며 얼마나 간직할 만한가 궁금합니다. 아니, 나 스스로 내 길을 얼마나 옳고 바르게 걸어가면서 내 삶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나 혼자만 흐뭇해 하다가 그치는 글굴레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나는 나 홀로 눈물짓기만 하는 사진굴레에 매여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내 가슴을 적실는지는 몰라도 내 이웃 가슴을 함께 적시지 못하는 삶은 아닌지, 내 마음을 채울는지는 몰라도 내 식구들 마음을 함께 채우지 못하는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이후로 모든 생활은 아이에게 맞춰졌다. 아이를 위해서 삼칠 일까지 방에 전등도 켜지 않았다. 그 정도는 지나야 아이의 시력이 적응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를 선택하였는데, 아이에게 그 선택이 잘한 것이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고 아이를 공짜로 키운다고들 한다. 모르긴 몰라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니, 사실은 공짜 정도가 아니라 아이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값진 것을 엄마에게 되돌려 주었다. 방긋 웃는 모습만으로도 세상의 근심은 사라지고 마음은 환희로 충만하였다 ..  (106, 108쪽)

 

 오늘 하루도 좋은 마음밥을 만나고, 기쁜 마음밥을 얻으며, 반가운 마음밥을 받아듭니다. 책방에 선 채로 조금조금 읽다가는 책값을 치르고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에 눈물 몇 방울 찍으면서 새깁니다. 그런데 이 좋은 마음밥을 먹은 나는 얼마나 더 좋은 사람으로 달라지거나 새로워진다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참말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책읽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3) 이런저런 책을 차곡차곡

 

 지난날 퍽 뛰어나다고 하던 러시아문학 가운데 하나라는 <시멘트>(F.W.글라드꼬프/강모라 옮김, 만남, 1989)라는 소설책을 집어듭니다. '내 도서관에 갖출 만한 책이니 갖추어야 할 텐데, 이 책을 내가 읽을 겨를을 낼 수 있을까?' 언젠가는 겨를을 낼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ABC의 공포>(애거더 크리스티/장수철 옮김, 성문각, 1969)를 쥐어듭니다. 어릴 적 학급문고로 읽은 책인데, 우리 아이가 커서 학교에 간다면 우리 아이도 그무렵에 아이 스스로 골라서 학교에서 읽은 책을 먼 뒷날 떠올리며 애틋하게 여기겠지요.

 

<이름없는 순례자>(최익철 편역, 가톨릭출판사, 1978)라는 작은 책을 보고,  <믿음은 외침이 아니다>(백민관, 성바오로출판사, 1979)라는 작은 책을 함께 봅니다. <믿음은 외침이 아니다>라는 책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수녀님들이 '김형석 교수님'한테 드린다는 펜글씨가 이쁘장하게 가지런한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자그마치 서른 해가 묵은 손글씨이지만, 꼭 엊그제 적은 듯한 느낌입니다. 두 가지 책을 살피면 간지가 붙은 자리에 볼펜으로 흘려쓴 서명이 보입니다. 누구 서명일까 하고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이 책을 받은 김형석 교수님이 이 무렵에 책을 다 읽고 남긴 자국일까요? 글씨 흐름으로 보아서는 그렇구나 싶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장주근 글-이인실 그림, 대한기독교서회, 1974)라는 작은 책을 보고, <世界名作アニメ劇場 15話>(小學館,1990)라는 도톰한 책을 봅니다. 우리한테도 낯익은 〈소공녀 세라〉나 〈플란다스의 개〉나 〈빨간머리 앤〉이나 〈엄마찾아 삼만 리〉 같은 만화영화 작품을 보여주는군요. 그런데 '세계명작 만화영화'라면서, 열다섯 작품이 모두 서양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한테 '세계명작'이란 오로지 유럽사람 이야기일 뿐일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우리한테 세계명작으로 손꼽는 작품은 어느 나라 사람이 쓴 글일까요?

 

<제2차 사업 : 누가 우리 문화재에 담쟁이를 심었는가?>(우리문화재바르게지킴이,2009)라는 자료모음을 봅니다. 정부기관에서 낸 자료인가 싶었으나 가만히 살펴보니 아닌 듯하고, 개인 단체에서 펴낸 자료모음이지 싶습니다.

 

 

.. 1910년 우리 나라를 빼앗은 일본은 우리의 문화와 문화재 말살 정책을 쓰면서 많은 문화유산을 파괴ㆍ훼손하였다. 그중의 하나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에 담쟁이를 심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1945년 해방 이후 1960년까지는 일정시대 심은 담쟁이 제거에 국가에서 많은 노력을 하여 상당수는 제거되었으나, 일부는 뿌리를 고사시키지 못하여 되살아났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담쟁이 제거하는 일에 소홀하게 됐고, 따라서 잊혀져 갔다 ..  (머리말)

 

 참말로 문화유적에 담쟁이를 심은 데에는 이런 뜻이 있었을까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는데 1850년이라든지 1750년을 거슬러올라가 들여다볼 수 있다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알 수 있겠지요.

 

<연변조선족력사화책>(연변해외문제연구소 편저, 연변인민출판사, 1997)은 퍽 알뜰하게 엮은 사진자료입니다. 그러나 여기저기 잡지와 신문에서 오려붙인 사진이 많아 흐르멍덩한 사진이 너무 많군요. 그래도, 연변조선족한테는 더없이 반가운 사진자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들어 온 땅과 삶, 호남평야 농부 김씨의 한평생>(국립민속박물관,2008)을 보면서 '우리 민속박물관이 좀더 옛날부터 이런 일을 해서 이런 책을 엮었다면 얼마나 기뻤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라도 늦지는 않은데, 이렇게 '수수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사람들 발자취'를 더듬는 일은 나라돈으로 해야 합니다. 한 가지를 더 바란다면, 이렇게 더듬어서 엮는 책은 '너무 크고 비싸게' 꾸미지 말고, 수수하고 조용한 사람들 삶과 마찬가지로 낮고 가볍고 작고 값싸게 꾸미되 알차고 아름다이 엮어야 한결 낫습니다.

 

 

 (4) 나는 늘 책선물을 받는다

 

 책값을 셈합니다. 오늘은 자그마치 7만5천 원입니다. 지갑을 여는 손이 떨립니다. 그러나 이만한 돈을 치를 값을 하는 책입니다. 책값을 셈한 다음 '정은서점'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아차차, 이 책도 사려고 했는데 깜빡 했네!' 하면서 <크로스게임 (1∼10)>(아다치 미츠루/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06∼2008) 묶음을 더 셈합니다. 여태껏 따로 에누리를 해 준 적이 거의 없는 '정은서점' 할아버지인데 오늘은 에누리를 하면서 만화책값 2만 원에서 5천 원을 덜어 주십니다. 저는 이제까지 에누리를 바라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바랄 마음이 없으며, 언제나 '헌책방 일꾼이 부르는 값대로 책값을 치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얼마를 부르는 책값이라 하든 저한테는 조금도 '비싼 값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책이든 글쓴이 땀방울이 알뜰살뜰 담기지 않은 글뭉치란 없습니다. 어느 책이든 책마을 일꾼 손품이 차근차근 실리지 않은 글꾸러미란 없습니다. 어느 헌책이든 헌책방 일꾼 다리품과 손때가 알알이 배이지 않은 글보따리란 없습니다. 저는 기껏 돈 몇 푼으로 고마운 선물을 받는 셈입니다. 헌책방 일꾼이 눈을 밝히고 온몸을 먼지구덩이에 집어넣지 않으면 캐낼 수 없는 책을 손이나 몸에 책먼지 거의 안 묻히고 슬렁슬렁 두리번거리면서 얻는 셈입니다.

 

<멈춘 학교, 달리는 아이들>(교육사진연구회, 눈빛, 1992)이라는 사진책이 하나 더 보입니다. 책값은 자꾸자꾸 나갑니다. 그나마 오늘은 10만 원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골마루를 한 번 더 휙 돈다면 10만 원이 대수냐 할 만큼 더 많은 책을 집어들 텐데, '오늘은 이만큼 고른 책으로도 마음이 넉넉히 부르지 않으냐?' 하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좋은 책을 다 차지할 생각을 말고, 다른 책은 다른 책손이 즐거이 만날 수 있도록 못 본 체하며 지나가자!'고 다짐합니다.

 

 

 "저기 보면 새 있지요? 그거 톡 건드리면 새 우는 소리가 나. 우리 아이가 갖다 놓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를 좋아하나 봐. 여기 문간에도 책 읽는 인형이 하나 있어요. 혼자서 움직인다고." "그러네요. 참 재미있네요." "거기, 최종규씨가 있는 인천 배다리는 어떤가요?" "헌책방 있는 거리는 싹 쓸어버리고 주상복합 지어서 분양권 내준다고들 하는데, 배다리뿐 아니라 인천을 싸그리 갈아엎는다고 해서 말이 많아요. 엊그제 그 배다리 재개발한다는 공청회가 있었는데, 그 공청회는 겨우 막았어요. 공청회는 시늉이고, 그 공청회를 열면 주민의견 다 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밀어붙이려 하거든요. 그런데 공청회를 막으나 마나 이대로 다 엎을 생각이고, 또 공청회를 막은 주민들을 모두 불법행위를 했으니 형사고발을 한다더라구요. 그런데 헌책방한테 주상복합 자리를 하나 준다고 해 보아야, 지금 어디로 가게를 옮겨서 장사를 하고, 또 어떻게 다시 들어올 수 있겠어요. 지금처럼 오래된 건물에 있으니 그마나 달삯도 적은데 새 건물 달삯을 어떻게 내겠어요." "그려, 그렇지. 그런데 우리도 여기 개발한다고 하면 그때에는 문을 닫아야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는 헌책방들이 더는 큰길 둘레에서는 장사를 못하지 않을까 싶어요. 큰길 가게는 다 술집 옷집 밥집이 하라고 하고, 책집은 골목길 살림집 있는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야 하지 싶어요. 그리고, 이제는 예전하고 문화가 많이 달라져서, 헌책방을 몸소 찾아오는 사람들은 걸어다니며 골목 나들이 하기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인터넷 누리집을 하나 마련하고, 골목 안쪽에서 조금 더 널찍하고 넉넉하게 가게를 열어 놓으면, 다리품 팔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나, 앞으로 서울이든 인천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제주이든 광주이든 전주이든 대전이든 …… 골목길 올망졸망 살림집이 남아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이 나라에서 가난하며 수수한 사람들 삶터를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날 대한민국은 돈 많고 잘사는 사람이 나라밖으로 떠나는 나라가 아니라, 돈 없고 못사는 사람이 나라밖으로 쫓겨나야 하는 나라가 아닐까요? 헌책이든 새책이든 책 하나에 땀과 피와 눈물과 웃음과 넋과 햇살을 살포시 얹어 놓는 마음결은 뿌리내릴 수 없는 우리 나라가 아닐까요?

 

 책선물 한가득 고맙게 받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몹시 슬퍼 다리가 무겁습니다. 붐비는 전철역과 전철칸에서 밀고 밟고 치고 누르는 사람들하고 뒤섞여 오징어떡이 되는 가운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 나 한 사람이라도 옆사람을 밟거나 치거나 밀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흔들립니다. 도시에서 끝까지 붙어서 살아가려 한다면 나 또한 옆사람 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도록 내몰리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세상흐름에서는 도시에서도 사람답게 살아갈 길이란 거의 벼랑끝까지 몰리고 말지 않았나 싶습니다. 골목골목 아직 헌책방이 제법 많이 남아 있어서 나들이를 할 만한 서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서울을 앞으로 얼마나 더 찾아와야 할까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연세대 앞 〈정은서점〉 / 02) 323-3085
 http://jbst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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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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