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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김헌태씨가 정치를 대하는 대중의 마음을 분석한 책을 펴냈다. 그의 최근에 펴낸 단행본 <분노한 대중의 사회>(후마니타스)는 노무현 정권의 출범에서부터 집권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이르는 지난 7년동안 유권자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를 날카롭고 심도깊게 분석하고 있다. 다음은 그중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를 전망한 대목을 옮겨 싣는다. [편집자말]
유권자의 30% 지지 받고 등장한 취약한 MB정권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김헌태씨가 최근 펴낸 <분노한 대중의 사회>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김헌태씨가 최근 펴낸 <분노한 대중의 사회>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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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대선 결과의 의미를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 진영이 자축에 앞서 식은땀을 흘려야 할 만큼 곤란한 여론의 흐름 속에서 당선되었다. 무엇보다 대선 당시에 불거졌던 도덕성 문제로 인해 지도자로서 충분한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득표율을 볼 때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지난 대선에서의 이명박 후보 득표율은 48.7%였으며, 2위 정동영 후보와의 격차는 22.6%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2% 안팎의 격차로 승리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격차를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은 지난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 48.9%보다 많지 않다. 또 지난 대선이 63%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전체 유권자 중 약 30%만의 지지를 받고 탄생한 것이 이명박 정부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16대 대선의 투표율은 70.8%이므로 대략 전체 유권자의 35%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결국 전체 유권자 중 이명박 후보에 투표한 비율은 3분의 1에도 못 미쳤으며, 나머지 70%는 다른 후보를 찍었거나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투표 기권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37% 정도였다.

이런 결과를 정리하면, 지난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가운데 '이명박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약 30%, 투표는 했지만 이명박 후보를 찍지 않은 유권자가 약 33%,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은 층이 37%가량 된다. 문제는 투표했지만 다른 후보를 찍은 층이나,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은 층의 정서가 생각보다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층조차도 그 충성도는 별로 높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 2007년 12월 19일 저녁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부인 김윤옥씨가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선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 2007년 12월 19일 저녁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부인 김윤옥씨가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선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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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투표는 했지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정동영 후보 지지층이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투표자 중 26.1%의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호남 거주자 및 수도권 호남 출신들로, 고정적 민주당 지지층일 가능성이 크므로 2002년 대선 때의 '호남 지지층'의 특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성향은 크게 보아 과거에 비해 변한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없는, 지역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고정 비토층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이회창 후보 지지층이다. 이들은 초창기 이명박 후보 지지에서 이탈해 보수 진영의 제3후보인 이회창 후보로 옮겨 간 층으로 도덕성을 중시하는 보수층, 즉 '반 이명박 보수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회창 후보는, 민주신당 후보는 찍기 싫고 이명박 후보도 못마땅해 하던 충청 유권자들에게도 대안적 선택지였다. 이들은 같은 이념적 색깔을 가지고도,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보수 진영의 제3후보를 지지한 만큼 이명박 후보 개인에 대해 그 어느 집단보다 부정적 태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또 다른 집단은 바로 진보적 유권자 집단이다. 이들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정동영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으며, 상당수가 지난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다. 대선에서 두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8.7%였다.

한편, 진보층 중 투표를 하지 않은 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특성을 요약하자면 '진보적 냉담층'이다. 대개 이들은 여론조사에서는 진보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실제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과거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지만 2007년 대선에서는 마땅히 지지할 후보를 찾지 못해 아예 투표를 포기한 층으로 지난 17대 대선의 투표 기권층 중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비율이 적지 않다는 얘기이다. 또 투표하지 않은 층이 꼭 진보층이 아니더라도 20, 30대 유권자들이 많아 이들을 이명박 대통령의 잠재적 호감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 진보 냉담층은 기존의 민주당이나 민노당, 그리고 새로 부상한 창조한국당을 끝내 대안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성향상 '비보수,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측면이 강하므로 투표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문국현, 권영길 지지층과 함께 이명박 정부에 가장 반감이 강한 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MB 지지층의 충성도도 약하다

마지막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층 역시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층은 앞서 지지 형성 단계 과정에서 설명했지만 대개 수도권 중산층과 영남 보수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영남에 기반을 둔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의 특성 역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가 강고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나라당 지지층 내부에 존재하는 '친박근혜, 비이명박 정서' 때문이다. 이들 친박 보수층이 가장 뚜렷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이었다. 이들은 비록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에 표를 던졌지만,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아닌 친박연대나 친박 무소속 후보들을 지지한 층이다. 지난 총선에서 친박 후보들은 무시할 수 없는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 당선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지지층 구성만으로 보면 출발 시점부터 박근혜 전 대표와의 연합 정권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들 친박 한나라당 지지층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탐탁치는 않았지만, 공동의 적인 '좌파 정부'를 종식시켜야 했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를 찍은 층이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30%가량의 국민 중에서도 이명박 후보를 끝까지 지킬 만한 충성층의 비율은 더더욱 줄어든다.

다음은 '수도권 중도층'인데, 이들 역시 이명박 정부의 든든한 고정 지지층이 되어 주기에는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정동영 후보는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표의 절반 수준의 득표를 했는데, 이들이 이탈하여 가장 많이 이동해 간 곳은 바로 이명박 후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득표율이 매우 높았으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2002년 대선의 노-정 단일화 이전에 '정몽준'을 지지했던 수도권 중산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2007년 초 지지도가 20%에 이르던 고건 전 총리의 사퇴 이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대략 10%가량 늘어났는데, 이들을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도적 중산층, 즉 '이탈한 노마드' 계층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비록 진보·개혁 진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명박 후보에게 이동해 갔지만 특성상 대개 중도적이며 유동성이 커 새로운 정부의 고정적인 핵심 지지 기반이 되기는 힘들다. 다만 이들 중 일부가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 완화나 감세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 차원에서 새 정부의 고정 지지층으로 정착하는 흐름도 어느 정도 나타나지만 그 비율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여기서 설명한 범주 바깥의 개별적 지지층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층은 생각만큼 넓지 않으며, 유동적이어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취약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출발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얻은 득표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특별히 많다고 볼 수 없으며, 지지자들도 '인물보다는 정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지한 사람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지하지 않은 사람 중 상당수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인물 개인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거나, 정치 성향 면에서 2002년 대선 때보다도 진보 성향이 강화된 유권자의 비중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기보다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싸늘한 시선을 가진 대다수 국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명박 정부의 미래는?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풍요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 주며 권력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런 대중의 바람은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절망'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아지지 않는 민생, 부자 중심의 경제, 그리고 시대착오적 권위주의 등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분노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의 기간은 바로 민주화 집권 세력에 이어, 산업화 세력 역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실현시켜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대중들이 확인하는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이런 실망감은 곧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붕괴시켰다. 고질적으로 낮은 대통령 지지도, 그리고 큰 변화 없이 무응답층만 늘어 가는 정당 지지도는 대중의 정치에 대한 기대가 바닥 수준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임기 2년째가 되어도 4대강 개발이나 미디어법 추진 등 새로운 정부가 적극 추진한 정책 중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이 거의 없다는 것은 국민이 희망을 가질 만한 어떤 일도 계획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여론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를 평가한다면 '국민이 원하지 않는 특권층 중심의 정책을, 이념과 철학을 앞세워 억지로 밀어붙인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6월에 이르러 '서민 중심 중도정치'를 표방하고 나섰다. 이는 집권 이후 자신의 정책 기조에 대한 최초의 수정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국면 전환 시도가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인지, 아니면 지방선거 등을 고민한 전략적 선택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또 그런 서민 경제 노선이 보수 진영 내부의 정체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는 하겠지만, 대중 여론 차원에서 어떤 특별한 변수가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물론 서민 중심 중도정치라는 구호 자체가 여론을 더 악화시키는 성격을 가지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선언이 단지 구호로서만 존재할 뿐, 실제 승자 독식, 약자 도태의 사회구조에 대한 전면적 방향 수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지난 9월 10일 남대문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지난 9월 10일 남대문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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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서민중도정치의 한계

양극화된 현실, 순환되지 않는 부, 가계 부채와 고용 불안으로 인한 민생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현재의 대중 여론 지형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 상황에서 수출이나 무역수지와 같은 거시 지표는 물론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의 빛나는 실적조차도 대중에게 희망을 주기는 어렵다. 그동안 보아 왔듯이 그와 같은 거시 경제지표와 대중 여론이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이 대통령 취임 후 초중반 나타난 대중과의 지속적 갈등 양상은 사실 전면적이긴 했지만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이 적지 않았다. 즉, '억지로 밀어붙이지 마라'라든지, '특권층 중심 경제가 싫다' 정도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 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무관심과 체념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놓고 도처에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들불처럼 번지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즉, 대기업과 대기업, 대기업과 자영업자,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이 싸움들은 이념 분쟁의 성격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이해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이념과 이해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명박 정부가 자신의 정체성 변화와 함께 공권력을 앞세운 권위주의적 통치를 약화시킨다 해도, 결국 곪을 만큼 곪은 민생 밑바닥에서는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이 멈출 리 없다. 지도층이든 부유층이든, 서민이든 대중이든 오직 '돈만이 전부인 사회'에서는 이런 분쟁을 막을 만한 가치나 권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한국 사회는 명예와 헌신의 상징인 보수도, 정의와 사랑을 앞세운 진보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누구도 지켜 주지 않는 이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는 오로지 '힘'과 '생존'의 논리만이 통용된다고 볼 수 있다.

제도권 정치의 영역에서도 갖가지 사회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길고 긴 정쟁이 계속될 것이다. 이런 정쟁에 민생이 끼어들 틈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실 여당은 제도가 보장한 권력을, 야당은 민심을 앞세워 싸운다 해도 어느 한쪽이 승기를 잡기는 어렵다. 이 상황에서 일부는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여러 가지 정치 이벤트를 기획하거나, 교착상태에 빠진 정국을 돌파한다며 개헌과 같은 접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한 결말을 맺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구도 타협을 이끌어 내거나 '중재자'로서의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리더십을 상실한 지도자', '대중의 살아남기 위한 무한 투쟁', '무능력한 정치'가 만들어 낼 향후 한국 사회를 좀처럼 예상하기가 힘들다.

가치의 교체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다만 이 시점에서 나타날 대중적 가치 지향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먼저 이전의 민주화 정치 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산업화 정치 세력 또는 산업화 가치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중적 기반을 상실할 것이다. 일찍부터 대중적 생명을 마감한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는 그렇다 치고 '성장주의'에 대한 향수 역시 약화된다는 것이다. 또 이는 한국 대중 정서에서 핵심 축이었던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료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 이와 연동되어 한국 대중의 경제관에서 최초의 가치 교체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묻지 마 성장'에 이어 '알아서 생존', 나아가 '네 것을 내놔라'라는 여론 흐름이 부상하고 시장주의 가치나 성장을 통한 민생 개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경제 패러다임과 관련한 이런 여론 흐름의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거나 표피적인 것이 아닌, 한국 대중 여론의 중심부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만큼 큰 변화의 시발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갖가지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 상황에서 단언하기란 쉽지 않다. 또 신뢰받는 정치 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현실 정치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될지 예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사실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는 정치적 위기가 아닌, 그보다 상위 차원의 사회경제적 위기의 성격이 강해 제도 정치가 얼마나 해법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 2008년 6월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 2008년 6월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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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앞서 언급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통해 정치권력의 교체가 나타난다 해도, 그것이 우리 사회의 기존 구조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회적 가치 교체 또는 가치의 권력 교체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한국 대중에게서 나타나는 위기의 흐름들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 해결의 칼자루를 쥔 것은 산업화 정치 세력이라기보다는, 고도성장 시기에 경제 권력을 선점한 산업화 지배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즉, 건국 이후 지난 수십 년간의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간단할 리 없으며,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주체, 즉 산업화에서 사회 권력을 선점한 측이 기득권을 내놓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합의, 또는 사회적 대타협 없이 정권 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여론 흐름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나의 길'을 간 것은 노무현 정부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대중의 동의 없는 억압적 이념 정치를 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내걸었던 박정희 신화, 그동안 강조해 왔던 시장주의 가치, 그리고 법치마저 붕괴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는 남은 기간 동안 반드시 국정 운영을 성공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성패는 '성과를 정말 낼 수 있느냐' 여부, 그리고 성과의 과실이 아래로 순환되어 분배 지표에까지 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공권력을 앞세워 위부터 챙긴' 이명박 정부의 경우, 부의 최종적 재분배를 통해 민생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역대 가장 실패한 정권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성과의 과실이 아래로까지 내려갈 수 있나?

특히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단순히 참여정부 이후 민주화 정치 세력이 몰락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나의 길'을 힘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예상되는 결과만은 아니다. 산업화 가치의 종말은 대안 없는 한국 보수가 위기에 처함을 의미하며, 보수 정치 세력의 종말은 결국 대중의 분노가 이제 특정 정치 세력으로부터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를 향해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실패 이후 새로운 선택지도 없이 대중의 불만이 전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되어 갈 수 있다. 아무래도 그것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진짜 위기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더 이상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앞으로 나타날 대중 여론의 흐름은 사회경제적 권력을 점유하고 있는 파워 엘리트들의 선택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최후의 흐름을 결정하는 힘은 대중 스스로에게서 비롯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촛불로 '분노'를, 조문으로 '슬픔'을 보여 준 대중이 다음 국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지켜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파괴적 저항이 될 수도 있고, 생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될 수도 있으며, 절망 속의 자포자기가 될 수도 있다.


태그:#여론조사, #서민해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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