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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카피들일 것이다. 기업은 다르지만, 광고를 만든 이는 같다. 제일기획에서 일했고, 지금은 TBWA KOREA에서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박웅현이 참여한 광고들이다. 그가 만든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들이 많지만,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나이로 밀어붙이려는 어른들을 몹시 싫어하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못된 버릇을 매우 경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하는 젊은이의 질주가 경쾌했던 장면이지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하는 젊은이의 질주가 경쾌했던 장면이지요.
ⓒ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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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회사의 광고가 아니라 공익광고 같다고 생각되던 광고입니다.
 이동통신회사의 광고가 아니라 공익광고 같다고 생각되던 광고입니다.
ⓒ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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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한 방 날려주는 카피는 꽤 오래 기억됩니다.
 멋지게 한 방 날려주는 카피는 꽤 오래 기억됩니다.
ⓒ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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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단을 타고 출근하는 중년의 아저씨는 넥타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출근하는 젊은이는 넥타이와 청바지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이 광고는 결재 서류를 들고 사장실로 들어가는 아저씨와 사장실에서 결재 서류를 기다리는 젊은이가 만나는 반전으로 보는 이를 피식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나이에 호소하는 권위적인 태도에 어퍼컷을 멋지게 날려주었다.

'KTF적인 생각' 시리즈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로 기업 이미지 뿐만 아니라 입사제도도 바꾼 사례로 꼽힌다. 한창 광고가 방송되던 때, 광고와는 다르게 KTF의 입사 조건에는 연령 제한이 있었는데, 비난 여론에 밀려 결국 연령 제한을 정식으로 철폐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광고가 기업의 제도나 사회의 관습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진 미디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인문학은 창의성과 소통을 위한 '보약'

'한 첩의 보약을 먹듯 <토지>를 읽었다'고 말하는 광고인 박웅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고 말한다.
 '한 첩의 보약을 먹듯 <토지>를 읽었다'고 말하는 광고인 박웅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고 말한다.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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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광고는 사람들의 욕망으로 피워낸 꽃이자, 욕망을 키우는 꽃이기도 하다. 대중의 취향을 진두지휘하는 광고인들에게 남과 다른 시각과 창의성 그리고 소통 기술은 중요할 것이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광고인에게 필요한 창의성과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창의성과 소통 기술에 대해 출판인 강창래가 묻고, 광고인 박웅현이 대답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창의성은 새로운 시선을 갖는 것이다. 새로운 시선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인문학은 얼핏 어울리지 않는 한 쌍으로 대립각을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둘 다 사람과 사회를 담는 그릇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생각의 중심을 사람에 두는 가치 지향적인 태도가 '잘 만든 광고'를 만들어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노하우 아닌 노하우인 셈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콕 박힌 명 카피들을 써낸 박웅현이지만, 정작 광고에 대해 "인류가 만든 미디어 가운데 가장 천대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광고는 시대정신과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매체이다. 그는 사회와 시대 를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이 주어지지 않아서 회사에 도서관 가듯 출근하던 8개월 동안,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원서로 읽었다는 그는 마찬가지 이유로 '넉 달 간, 한 첩의 보약을 먹듯 <토지>를 읽었다'고 말한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톡톡 튀는 창의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광고계에서 일하면서 흘러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스무 권이 넘는 대하소설을 읽었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창의성과 <토지>사이의 간극에 대해 그는 '보약'이라는 말을 놓아둔다. 인문학은 보약같은 공부다. 보약은 몸을 더 건강하게 하기 위해 먹는 약이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밥이 보약이다." 밥은 매일 먹여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은 밥을 먹듯이 늘 조금씩 쌓아야 한다. 고기나 빵으로 연명할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씹으며 음미하는 밥맛은 특별한 재료나 양념이 없어도 사람을 기르고 살찌운다.

광고, 시대와 사람을 담는 그릇

나는 광고 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광고가 기업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매체이지만, 짧은 시간에 기업의 정서나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광고를 보면 기업이 사회에 대개 갖고 있는 시각도 볼 수 있고, 젊은이들의 트렌드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잘 만들어진 이미지를 구경하며 시각디자인 센스를 높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광고는 압축적이고, 세련된 매체이다. 광고가 내게 전달되기 까지 투입된 자본과 광고를 만든 사람들의 공력을 생각하면, 기업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끊임없이 광고를 하는 걸 보면, 15초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광고인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광고 한 편을 보는 것도 정신 바짝 차리고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참, 광고를 보다 보면, 어쩌면 저렇게 성의 없이 만들었을까, 대체 누가 만들었기에 저렇게 노골적이고 저질인가 싶은, 한 마디로 말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고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이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어처구니 없는 저질 광고는 대개 광고주를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상태에서 만들기 쉬운 광고일테니, 제발 광고맨들이여, 이 책을 읽고 성공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충고를 받아들여주기를 바란다. 이번 가을에는 사람의 정신을 살찌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인문학의 숲에 한 걸음 들어가 주시기를!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광고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 주시기를!!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알마(2009)


태그:#광고 , #박웅현,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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