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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대수리국에 보리밥 한덩이 말아 먹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 대수리국(다슬기국) 여름철, 대수리국에 보리밥 한덩이 말아 먹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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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에 대고  '훕! 훕!'  하면 쏙 빠져나오는 대수리알

여름날 아침이면 어린 시절 깨복쟁이 친구들은 코흘리개 동생들 앞세우고 밥그릇 하나씩 들고 정자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밥그릇 속에는 막 삶은 대수리(다슬기)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아침 밥상에 올라온 대수리국 한 그릇 먹고 나서 오전 내내 놀려면 심심하니까 대수리 까먹으며 놀려고 가지고 나온 것이다.

대수리 한 그릇 퍼 담을 때면 나는 간장을 조금 넣어 뒤적거려서 들고 나왔다. 국에서 건진 대수리는 싱겁지만, 짭쪼름하게 간을 맞춰서 까먹으면 쌉싸래한 그 맛이 제대로였다.

대수리 까먹는 데는 싸리비 꽁초가 맞춤이었다. 성냥골은 쉽게 부러져 버리는데 대나무 가지로 만든 싸리비 꽁다리는 단단하고 질겨 단연 최고였다. 하지만 진뫼마을 어른들에겐 어떤 도구도 필요치 않았다. 단지 입술에 대고 '훕! 훕!' 힘껏 빨아들이기만 하면 대수리알들이 쏙쏙 빨려나왔다. 진뫼마을에서는 고등학교 입학할 나이쯤 되면 대수리를 '훕! 훕!' 잘도 까먹었다.

외지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보면 휘둥그레진 눈길을 떼지 못한다. 신기한 듯 쳐다보던 사람들은 이내 자기도 한 번 도전해보겠다며 큰 것을 골라 입에 대고 세차게 빨아보지만 입술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피피 들려올 뿐이다. 강변마을에서 나고 자라면서 어렸을 적부터 셀 수 없이 빨아대며 터득한 '기술'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따라 할 수 있겠는가.

결혼 후 아내와 진뫼마을로 여름휴가를 갔다. 징검다리부터 벼락바위까지 수영도 하고 대수리도 잡았다. 아내는 대수리를 처음 잡아보는 듯 하나씩 줍는 수준이었고 나는 손으로 훔쳐 잡는 수준이다 보니 내가 몇 배는 더 잡았다.

"와! 무쟈게 잘 잡네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손으로 훔쳐 잡는데요!"

이 역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강으로 달려가 놀고 자란 강마을 사람들만의 기술이니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지만 단시간에 전수시켜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을 사람들을 ‘대수리 잡기 달인’들로 만들어준 섬진강 여름 풍경.
▲ 고향마을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마을 사람들을 ‘대수리 잡기 달인’들로 만들어준 섬진강 여름 풍경.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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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짭짜름한 대수리탕은 반 숟가락씩

잡은 대수리는 물에 담가 놓았다 여러 번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돌확에 문질러서 여러 차례 헹군다. 그런 다음 소쿠리에 놓고 한참을 기다리면 길게 입을 내밀며 기어다닌다. 이때 된장을 약간 풀어 팔팔 끓고 있는 물에 재빨리 집어넣는데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내밀고 있던 입을 쏙 집어 넣어버린다. 그걸 그대로 삶아 버리면 대수리알은 아무리 빨아대도 잘 나오지 않는다.

대수리국은 자잘한 것을 골라 끓여먹고 큰 것으론 탕을 끓여 먹는다. 대수리탕은 국에 비해 아주 물을 적게 잡아 끓인다. 고추양념에 된장, 조선간장과 왜간장을 반반씩 넣고 풋고추와 마늘을 다져 넣고 끓인다. 짭짜름하게 끓여놓은 대수리탕을 밥상 위에 올리는 날이면 밥 한 숟가락 넣고 대수리 한 개  입에 대고  '훕!' 하고 빨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중간중간 시원한 국물을 반 숟가락 정도 떠먹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만다.

밥에 대수리회 집어넣고 비벼 먹는 맛이란!

진뫼마을 요리 중에서 최고로 쳐주는 게 대수리회다. 대수리회가 밥상에 올라오는 것은 아주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다. 바쁜 시골에서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국으로 끓여먹고 남은 자잘한 대수리를 돌확에 간다. 껍질과 알을 분리하기 위해 함지박 속에 물을 붓고 조리로 쌀을 일듯 손으로 휘휘 내저으면 껍질은 가라앉고 알맹이들은 위로 뜬다.

이때 얼기미에 부어 자잘한 껍질을 다시 빼낸다. 이를 여러 번 반복해서 껍질을 모두 분리시킨 다음 얼기미에 담긴 알맹이를 손바닥으로 찰박찰박해 검고 딱딱한 디딤부위(기어다닐 때 몸을 지탱하는 부위)의 껍질을 걸러낸다. 알맹이만 걸러진 대수리는 양념고추장 식초 마늘을 다져 넣고 부추와 함께 무친다. 밥에 대수리회를 집어넣고 비벼 먹는 맛이란!  "맛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랑게요!"라고 할 수밖에.

팥대수리는 껍질이 매끄럽고 윤기 나며 국을 끓이면 물이 시퍼렇게 우러나와 쌉싸래한 맛이 일품. 골대수리는 겉에 골이 길게 파여져 있으며 모래땅이나 얉은 물가에 살아 팥대수리보다 국물이 덜 진한 편이다.
▲ 팥대수리(왼쪽)와 골대수리 팥대수리는 껍질이 매끄럽고 윤기 나며 국을 끓이면 물이 시퍼렇게 우러나와 쌉싸래한 맛이 일품. 골대수리는 겉에 골이 길게 파여져 있으며 모래땅이나 얉은 물가에 살아 팥대수리보다 국물이 덜 진한 편이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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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밤에 더듬더듬 대수리를 한 바가지씩

대수리는 낮 동안 돌 밑에 숨어 있다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돌 위에 기어오른다. 대수리가 가장 많이 나오는 날은 비 오려고 흐려진 날 저녁이다. 그런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손전등도 없이 컴컴한 밤에 나와 더듬더듬 대수리를 한 바가지씩 잡아 끼니를 때우곤 했다. 이 때 옆에서 물소리가 나면 누구인지 몰라 무서운 마음에 말을 걸게 된다.

"거그 누구요? 진뫼사람이요?"

"누구는 누구여! 물어본 사람부터 말을 히야제. 나 명애네 어메여!"

"나 월국떡이여. 밥숟구락 놓자마자 곯아떨어진디 낼 아침 반찬이 암것도 없어서 나와봤고만. 여름에는 대수리국에 보리밥 한 덩이 말아묵는 것이 최고여. 그런디 오늘 밤 대수리 무쟈게 나와불었네. 나는 벌써 한 바가치 차 불어서 나갈라고 헝게 뒤에 나옷쇼, 잉!"

내가 고향집을 사서 돌아갈 그 무렵만 해도 마을 어머니들이 종종 대수리 잡으러 밤에 강으로 나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수리 잡았단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시니 컴컴한 밤에 강물에 들어가 대수리 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수리를 잡으려면 일단 잡는 목적지 아래로 내려간 뒤 올라오며 잡는다. 물 흐름 따라 내려가게 되면 대수리는 출렁이는 물결에 다 떨어져 나가게 되고 강에 쌓인 부유물들이 떠올라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잡고 있는 위쪽에 사람들이 다가오면 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아, 내가 잡을라고 헌 데를 왜 훌렁거림선 꾸정물을 일으킬라고 혀. 빤듯이 올라감선 잡제!"

여럿이 잡을 때는 한 발이라도 앞서 나가서도 안된다. 앞에서 훌렁거리면 대수리가 굴러떨어진다. 똑같이 발 맞추며 올라가야지 자기 앞에 많이 있다고 앞서나가면서 훌렁거리면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은 대수리를 못 잡게 된다.

대수리는 돌을 더듬거려 손으로 훔쳐 잡는다. 손전등도 없이 컴컴한 밤에도 진뫼마을 사람들은 대수리를 잘도 잡는다. 어릴 때부터 하도 잡아대서 어느 곳 대수리가 작고, 어디는 굵은 게 많은지 훤히 안다.

내 어릴 적 섬진강 대수리는 양식이 되기도 하고 육성회비가 되기도 했다. 오일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어머니들이 이고 다니며 팔기도 했다.
▲ 다슬기 알맹이 내 어릴 적 섬진강 대수리는 양식이 되기도 하고 육성회비가 되기도 했다. 오일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어머니들이 이고 다니며 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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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이 되고 육성회비가 되기도 한 섬진강 대수리

내 어릴 적 섬진강 대수리는 양식이 되기도 하고 육성회비가 되기도 했다. 오일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어머니들이 이고 다니며 팔기도 했다. 누이들은 오빠들과 동생들 육성회비를 대주려고 굵은 대수리가 나는 대수리방죽이나 저리소산 아래 깊은 물 속에 들어가 하루종일 대수리를 잡아왔다. 내 바로 아래 누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굵은 팥대수리를 잡아오면 어머니는 이웃 청웅면에 가서 팔아와 자식들 육성회비에 보태기도 했다. 누이들이 사는 집이라면 어김없이 대수리를 잡아다 팔아 가난한 살림살이에 보태 큰 힘이 되었다.

껍질이 매끄럽고 윤기 나며 굵은 팥대수리는 상품 취급을 받았다. 반면 골대수리는 겉에 골이 길게 파여져 있다. 팥대수리는 물살이 빠른 곳이나 깊은 물에 주로 산다. 국을 끓여 먹어도 물이 시퍼렇게 우러나와 쌉싸래한 맛이 일품이다. 반면 골대수리는 모래땅이나 얉은 물가에 살아 팥대수리보다 국물이 덜 진한 편이다.

지난 98년 집을 사서 고향에 돌아가던 여름 어느 날이었다. 형제들 모두 여름휴가를 고향집에서보내는데 밤이면 대수리 잡기 대회가 벌어지곤 했다. 형제들은 아침마다 함지박을 들여다보며 엊저녁에 누가 최고로 잡았는지 등수를 매기곤 했다. 1등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누님 아니면 누이였다.

지금도 휴가를 고향으로 오는 마을 선후배들과 나이 드신 형님들은 꼭 대수리국 한 그릇 먹고 가야 고향에 다녀간 기분이 든다고 한다. 아내가 진뫼마을 나들이를 망설일 때면, 내가 꼬드기는 말이 있다.

"요새 대수리가 겁나게 나왔더랑게. 외지 사람들이 밤이면 대수리 잡느라고 난리여. 대수리 겁나게 많이 있는 디를 봐두고 왔는디…. 누가 잡아가기 전에 얼릉 가서 잡아오세."
그러면 아내는 귀가 솔깃해 따라 나선다. 아! 캄캄한 밤, 마을 앞 강물에 발 담그고 대수리 잡는 여름의 맛이여.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기사는 전라도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섬진강, #김도수, #덕치, #진뫼마을주말명예이장, #진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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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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