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국그룹 '퀸'과 나와의 인연은 대학 신입생 시절로 거슬라 올라간다. 신입생 환영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삼삼오오 떠들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한 선배가 대학로 앞에 있는 레코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더러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레코드 가게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무슨 테이프를 들고 나타났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퀸의 전설적인 명반 <A Night at the Opera>였다. 퀸과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보헤민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가장 사랑했다.  테이프가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지금도 내 mp3에 있다) 나에게 테이프를 선물해 준 선배는 퀸의 팬이었는데 내게 주면서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머지않아 나도 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라디오 팝송 프로그램 작가를 하면서 다시 퀸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알고있던 프레디 머큐리는 퀸의 리드싱어. 4옥타브를 넘나드는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 에이즈로 죽음을 맞게 된 비운의 뮤지션. 그 정도였다. 

프레디 머큐리-낯선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
 프레디 머큐리-낯선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
ⓒ 뮤직트리

관련사진보기

<프레디 머큐리>는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생전 했던 기자회견이나 자료 등을 토대로 구성한 프레디 머큐리 어록이다. 중복된 내용도 많고 중언부언한 것도 있다. 체계적인 얼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대답들이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간의 속뜰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개 톱스타들의 인터뷰는 판에 박힌듯 비슷비슷한데 프레디 머큐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찌나 그 육성이 생생한지 지금이라도 꿈틀거리며 프레디 머큐리가 나타날 것 같다.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프레디 머큐리, 다시 보게 될 걸?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프레디 머큐리나 퀸에 대해 몰랐던 많은 것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 퀸의 멤버들이 얼마나 자주 치열하게 싸우고 다투었는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퀸이라는 그룹이 탄생했는지 아마 처음 알게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서. 특히 음악에 관해서 프레디 머큐리와 브라이언 메이(기타리스트)의 미묘한 알력과 대립은 아슬아슬할 정도이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갈등이 멤버 네 명의 영감과 그룹에 대한 애정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프레디 머큐리는 몇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퀸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멤버 그대로 유지했다. 솔로 활동에 대한 유혹이나 열망을 모두 갖고 있긴 했지만 퀸을 위해 양보했다. 모든 것의 0순위에 퀸이 있었다. 오늘날의 퀸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퀸의 멤버는 모두 천재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땀과 숨결이 프레디 머큐리의 인터뷰 행간에서도 느껴진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새롭고 혁신적인 음악을 시도했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퀸의 스타일'로 굳어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기에 오페라 록이라는 퀸만의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우린 모두 일상적이지 않은 것,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 그리고 평범하지않은 것들을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우린 틀에 박힌다든지 밴드로서 진부해지는 게 싫다. 하지만 우리처럼 오래 함께 지내다보면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미 얻은 명예에 만족해서 느슨해질 염려가 있지만, 우리중 어느 누구도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 우린 결코 정체되고 싶지 않다.' (130쪽)

퀸의 이러한 활동에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걸출한 리드 싱어가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활화산같은 열정과 에너지, 터질듯한 아이디어, 발상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로지 노래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 자신 스스로도 자기가 할 줄 아는 것은 작곡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외로웠던 'Great Pretender'

지금도 전설적인 라이브 공연으로 손꼽히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Live Aid(1985년 영국런던의 웸블리구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JFK 스타디움에서 동시에 벌어진 아프리카 기아난민을 돕기위한 자선공연)에서 퀸의 공연은 과연 압권이었다. 관중을 한꺼번에 휘어잡는 프레디 머큐리는 활화산을 연상케한다.

그러나 그것은 프레디 머큐리의 반쪽모습이었다. 그는 그의 노래처럼 정말 'Great Pretender'였다. 그는 사실 너무나도 여린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진짜 모습일 지도 모른다. 자존심도 강하고 외로움도 잘 타고 늘 불안해 했으며 상처도 잘 받았다. 돈 쓰는 것을 좋아해서 몇 백 파운드의 쇼핑을 오로지 남들에게 주는 선물만 구입하고도 무척이나 흐뭇해했던 사람이었다. 남에게 거액의 돈을 떼여도 크게 상심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아끼는 와인에 허락없이 손을 대면 펄쩍펄쩍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평생의 연인 메리 오스틴이 그의 생일 선물로 그가 태어난 날의 신문을 구해 준 것을 잊지못해 자신 평생의 멋진 선물이라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몰랐던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다. 상상이 되는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그 부리부리한 눈매, 독설이 튀어날 것 같은 뻐드렁니, 바람이라도 베어버릴 듯한 그 매부리코의 그가...

무대 위의 폭발적인 모습과 달리, 인터뷰를 하는 등 무대 아래에서 그의 모습은 또다른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생전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 거의 매번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약간은 말을 더듬는 그의 모습을 볼 수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거나, 어깨를 으쓱하면서 빠른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면 톱스타로서 그가 느꼈을 부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문득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그가 만약 우리나라의 <무릎팍도사>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그는 신문기자들은 혐오했지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라면 좋아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끼'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았던 그였기에 아마 <무릎팍도사>에 적극 찬성했을 듯. 오히려 무릎팍도사 측근들에게 기를 팍팍 넣어주고 오지 않았을까.

프레디 머큐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중의 하나는 '에이즈'다. 실제로 그는 1991년 11월 24일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끝까지 함구하다가 세상을 뜨기 하루 전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세상을 뜬다. 끝까지 그는 프리텐더였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자주 이야기했다. 자신도 앞으로 착실하게 (?) 살 테니 제발 이 병만은 피해달라고 빌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던 것 같다. 그도 결국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난 제발 에이즈만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여러친구들이 그 병에 걸렸다. 어떤 친구는 죽었고 다른 친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이 내 차례가 될까봐 두렵다.'

우리는 퀸의 '채무자'

프레디 머큐리의 최후를 두고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무질서하고 방탕한 생활을 보낸 대가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탐욕만을 쫓은 결과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은 프레디 머큐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공인'으로서 좋은 본보기를 남기지 않았다고 힐책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음악을 남겼다. 예술가들은 어떤 면에서 보통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생활을 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불행한 최후를 맞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예술을 향유하며 사는 후세사람들은 예술가들에게 어느 정도의 마음의 빚을 지면서 살고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상 '퀸'은 해체되었다.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없는 퀸은 더 이상 퀸이 아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퀸의 멤버들이 한 말이었다. 그러나 퀸은 지금도 맹활약중이다. 무슨 경기라도 열리는 날이라면 빠지지않고 들려오는 'We are the Champion' 'We will rock U'' 'Don't stop me now' 'I was born to love U'속에서 퀸은 살아있다.

'내 음악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근사한 일이다. 나 역시 무척 행복하다. 그저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혹시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안타깝지만 할 수 없지! 내 음악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다른 가수의 음반을 사러가면 된다. 누군가 '맙소사 끔찍하군!'하고 말한다고 해서 잠을 못이루거나 무분별한 짓을 하진 않는다. 그러기엔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 -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

그레그 브룩스.사이먼 럽턴 지음, 문신원 옮김, 뮤진트리(2009)


태그:#프레디 머큐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