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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3000년의 고대 문명과 2000년의 외세 지배, 그리고 50년의 독립정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세계의 시간 단위가 아니라 사뭇 우주적인 시간 단위로 느껴진다. 근현대 이집트의 현실을 보면 '나일의 선물'이라는 헤로도투스의 수식이 일견 과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집트의 고대문명은 그 수식이 한참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로 경이롭다.

 

진나라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할 무렵, 3000년 동안 번성했던 이집트 왕조는 이미 붕괴된 상태였다는 사실은 꽤 놀랍지 않은가?

 

여기에서 호기심이 생긴다. 이집트의 고대역사에는 그것을 더 이상 개별 민족의 역사로 간주하기 어렵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집트의 고대 문명은 그들만의 관광자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역사요, 고대문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가장 친절하고도 명확한 해답을 던져주는 역사기행서이다.

 

고고학의 세계

 

이 책은 60년대부터 '일본 이집트유적 조사단'을 지휘해 온 '요시무라 사쿠지' 교수의 오랜 경륜과 지식이 담긴 역작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어렵게 가르치고, 잘 아는 사람은 쉽게 가르친다고 했던가. 먼저 그가 밝힌 학문과 저술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대목을 통해, 그의 나긋나긋한 육성을 느껴보도록 하자.

 

"이집트인이 하는 말이니 맞다 든가, 교과서에 쓰여 있으니까 옳다든가, 정설로 인정되고 있으니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학문의 최대 적이다.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악질 가이드일수록 손님을 믿게 하려고 알지도 못하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확실하지 않은 것은 "이건 가설이어서 정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쓰니까 훨씬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독자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일본 사람들의 집요하고도 섬세한 장인정신의 끝은 어디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말에서도 바가지를 씌우려는 가이드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래서 그의 섬세함은 민족적 특성보다는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학문적 특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고고학은 하나의 유물을 앞에 두고 수백, 수천 가지 가설을 떠올려보며 그중에서 가장 상식적인 해명을 근거로 하여, 역사 속에 그 유물을 끼워 넣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고고학의 생명은 대전제가 아니라 상식일 것이니, 그 집요하고도 친절한 역사해설의 비결은 바로 이 '상식적인 사고'에 있는 것 같다.

고고학 발굴 초기시절에 '유물이 되는 석기'와 '돌맹이'를 구분하지 못해 헤매던 저자의 경험담을 보고 있으면, 그의 해설이 얼마나 상식적인지 실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석기와 단순한 돌의 차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른 건 다 떠나서 눈으로 보기엔 다 똑같은 모양이었으니까... 가령 석기처럼 생겼다 해도 사실은 우연히 위에서 돌이 떨어지는 바람에 아래 있던 돌이 둘로 쪼개져 그런 모양이 되었을지 모른다. 혹은 애초에 석기를 만들 작정이었지만 중도에 실패해서 버린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은 석기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모양만 봐서는 석기인지 아닌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

 

(성격이 급한 독자를 위해 답을 공개하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그 첫 번째 근거는 '사용했던 흔적'이고, 두 번째 근거는 '2차 가공의 흔적'이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단서로 선사 인류 시대의 생활양식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초지일관 이런 태도를 견지한다. 나일강도, 피라미드도, 람세스 2세도, 클레오파트라도, 기독교도, 그리고 역사적인 발굴을 해낸 고고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1부-선왕조/초기왕조시대, ▶2부-고왕국시대/제1중간기, ▶3부-중왕국시대/제2중간기,▶4부-신왕국시대, ▶5부-제3중간기/말기왕조시대, ▶6부-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로마지배시대 구성된 이 책을 읽고 나면, 4000년의 역사를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역사를 상식으로 해석하는 사고방식만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오로지 뛰어난 모사 그림재주 때문에 발굴단에 채용되어 결국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해낸 '하워드 카터'도, 서커스단에서 무거운 물건 드는 차력사를 하다가 피라미드의 돌을 들어 올리는 인부로 스카웃되어, 훗날 '아부심벨 신전'을 발굴해 낸 '지오반니 벨죠니'도 아마 상식의 대가였으리라.

 

이집트 여행의 일반적인 루트

 

"이집트란 나일이 흐는 곳이며, 이집트인이란 나일 강의 물을 마시는 자이다." - 본서에서 인용한 <아멘신화> 중

 

이집트 사람들은 이집트를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이집트는 나일 강 주변을 제외한 95%의 땅이 사막이고, 인구의 96%가 나일 강 유역에 살고 있다. (과거 이집트 최초의 정복자 '아멘호테프 1세' 이전까지 그들은 사막에 갈 일이 없었다고 한다.) 나일 강을 모르고 이집트를 알 수는 없다.

 

나일 강은 특이하게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그래서 아스완댐에서 카이로에 이르는 남쪽 지역을 '상이집트'라 하고, 나일 강이 지중해를 만나 삼각주(델타)를 이루는 북쪽지역(카이로에서 지중해까지)을 '하이집트'라고 한다. 상, 하이집트는 최초의 통일 왕조인 제 1왕조가 들어서기 전에는 분열되어 있었으며, 통일왕조 이후에도 종교적으로는 다른 신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통합을 위해 '아멘신'과 '라신'의 합체인 '아멘 라 신'이 등장하게 된다)

 

하이집트의 중심도시는 수도 '카이로'이다. 수많은 외국인이 일단 카이로로 입국해 그곳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카이로 주변에는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 고대 태양신의 도시 '헬리오폴리스'와 고대 왕국의 수도 '맴피스', 스핑크스와 3대 피라미드로 유명한 '기자 피라미드'를 비롯한 수많은 피라미드가 있고, '국립이집트박물관'도 있으며, 1200년 이슬람 문화의 꽃 '모스크'들도 있다. 이러니 대부분의 이집트 여행자들이 카이로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카이로에서 5000년 역사를 오가며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한 여행자들은 서둘러 상이집트의 중심도시 '테베'로 떠난다.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720Km 지점, 국토의 중앙에서 약간 아래로 치우친 곳에 위치한 테베는 '신왕국 시대'의 수도로서, 이집트 문명의 전성기를 간직한 도시이다.

 

나일 강 서쪽으로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 '람세스 3세 신전' 등 대신전들이 자리하고 있고, 나일강 동쪽으로는 '왕들의 골짜기', '왕비의 골짜기', '귀족의 골짜기', '맴논의 거상', '하트셉투스 여왕의 장례사원' 등이 있다. 강 동쪽을 '신들의 도시'라고, 서쪽을 '죽은 자들의 도시'라고 부른다고 한다.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된 왕의 무덤만 62개일 정도라니, 이 지역의 유적도 다 둘러보려면 만만치 않다. 그리고 또 이동이다. 이집트 왕조의 최고 스타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 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보려면 아스완 댐을 지나, 수단과의 국경 인근 지역으로 내려가야 한다(이 유명한 신전은 1817년에 발견 되었다. 앞서 언급한 차력사 출신 고고학자 '지오반니 벨죠니'가 발굴의 주인공이다). 참 몸살 나게 볼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은 나라이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가 볼만한 곳은 고대유적뿐만이 아니다. 홍해 해변도 좋고, 수에즈 운하 건너 땅인 '시나이 반도'도 있다. '시나이 산'은 모세가 10계명을 받았던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그 길은 모세의 출애굽의 길이어서 신자들에게는 절대방문지로 여겨진다.

 

여행기중독자가 이집트의 관광코스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집트에 대한 지리적 상식을 정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루트를 곰곰이 살펴보면서 좀 다른 루트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루트란 별 것 아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루트이다. 지금부터 잠시 이 책의 역사지식을 자양분 삼아, 거꾸로 올라가는 루트를 따라 이집트 여행을 해보려 한다. 물론 여행기중독자는 아직 이집트에 가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거꾸로 가는 이집트 여행

 

카이로 공항에 내려 1박하고, 기차를 타고 나일 강을 따라 남쪽 끝으로 달린다. 수단과의 국경 '아부심벨'까지. 이렇게 하면 일단 이국땅에 도착하자마자 극성스러운 호객꾼들과 바가지 요금에 덜 시달릴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또 5000년 역사가 산재한 카이로와는 달리 '아부심벨'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람은 '람세스 2세' 딱 한 사람이다. 시험범위가 팍 줄어든 셈이니, 이제 하루나 이틀 동안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이집트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한다. 신전 정면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석상 네 개가 우리를 압도한다. 업적이 네 배라 석상도 네 배인가? 재위 기간이 보통 파라오들의 네 배라서 네 개인가? 왜 다른 신은 함께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람세스 2세는 '세티 1세'의 뒤를 이어 기원전 1270년에 즉위한 제 19왕조의 왕으로, 신왕국시대의 최대 전성기를 이끈 왕이다. 집권 전반기는 영토를 확장하고, 집권 후반기에는 건축왕이라 불릴 만큼 건설에 매진, 오늘날 이집트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역사적인 건축물이 이 시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재위 기간은 67년, 너무 오래 살아서 12번째 왕자까지 그보다 먼저 죽었으며, 뒤를 이은 20왕조의 왕들은 그의 흠모하여 그의 이름을 람세스 11세까지 계승했다. 그에 관해서라면 히타이트와 치른 '카데슈 전투'의 승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내용도 흥미진진하고, 그의 왕비 '네페르타리(아름다운 여성)'와 이집트 4대 현인 중 하나로 꼽히는, 그의 아들이자 재상인 '케무아세트'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또한 동시기에 있었던 사건인 '모세의 출애굽 이야기'도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하여튼 이집트왕조는 그의 장기집권 이후 절대 권력자의 부재를 수습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다소 지리멸렬했던 제 3중간기와 말기왕조를 거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조선시대의 영정조 시기와 같은 형국이라 할 수 있겠다. '테베'에서 만나게 될 '카르나크 신전'도 '룩소르 신전'도 그가 대거 증축한 것이라고 하니, 우리는 거기서 또 람세스 2세를 만나게 될 것이다.

 

테베

 

이제 '테베'로 향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과 비슷한 지점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니 이동이 덜 어설프다. 가는 길에 다시 보는 아스완댐도 반갑다. 테베는 람세스 2세를 전후한 18왕조, 19왕조, 20왕조의 신전과 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공부할 게 조금 늘어나지만, 람세스 2세와는 이미 구면이니 조금 덜 낯설다.

 

'카르나크 신전'은 '아멘 라 신'을 위한 신전이다. 람세스 2세에 앞서 이 신전의 절반을 지은 파라오는 '아멘호테프 3세'이라고 한다. 제 18왕조 말기에 원없이 거품경제를 누리며 살다간 파라오로 유명하다. 그는 나일 강 서쪽에 '아멘호테프 3세 궁전'을 짓고 주색잡기에 전념하여, 다음 왕인 '아케나탄 왕'도 회생시키지 못할 정도로 18왕조를 붕괴시킨 인물이다.

 

아멘호테프 3세의 시기가 거품의 시대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 호황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이니, 카르나크 신전도 알고 보면 이집트 부흥기를 이끈 18왕조 초기의 파라오 '투트모시스 1세'의 업적에 가깝다.

 

" 신에게 기원하고 전쟁을 했는데 전쟁에 이겼다면 결국 신 덕분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신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신전을 세운다. 아멘호테프 1세와 투트모시스 1세는 전쟁에 이기기만 했으므로 신전이 자꾸자꾸 늘어갔다. 특히 테베에 있는 동안 아멘 라 신앙의 총본산 카르나크 신전은 증축에 증축을 거듭했다. 애써 약탈해 온 대량의 물자는 대부분 신전으로 들어갔고, 따라서 이집트 최고신인 아멘 라 신의 신관들이 점점 권력을 갖게 되었다. "

 

다음을 이은 위대한 파라오는 '하트셉스트 여왕'(이집트의 선덕여왕 격) 이다. 그녀의 치세에는 단 한 번의 전쟁도 없는 드물게 평화로운 시기였으며, 약탈이 아닌 우호적인 무역이 왕성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왕가의 골짜기' 입구에는 그녀가 건설한 건축물인 '하트셉스트 여왕의 장례사원'이 있다. 우아한 테라스식 제전으로 그녀의 정치력을 건축물로 승화시킨 역작이다. 카르나크 신전에는 투트모시스 1세와 하트셉스트 여왕의 업적을 기록한 오벨리스크가 서 있기도 하다고.

 

그녀의 유능한 재상이었다고 전해지는 재상 '센무트', 그녀의 배다른 아들이면서 알렉산드로스가 흠모해마지 않았다는  '투트모시스 3세'(이집트의 광개토대왕 격) 도 흥미롭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된 곳도 이곳이고, 이집트 최고의 미녀 '네페르티티'가 묻힌 곳도 이곳이다. 룩소르 신전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조각상을 찾아보는 것도 씁쓸하지만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카이로

 

이렇게 테베를 둘러보고 카이로로 간다. 보통 피라미드를 본 여행자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고 한다. 하나는 "에게, 겨우 이거였어?"이고, 또 하나는 "아, 역시!"이다. 나일 강에 대한 반응도 대개 "이게 정말 나일 강 맞아요?"라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거꾸로 올라 간 여행자는 좀 다르지 싶다. 속까지 돌로 꽉 들어찬 높이 63m의 입방체 건축물. 피라미드는 테베의 유적보다 천년 이상 앞선 건축물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을 펴 보자. 저자는 특유의 집요함으로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를 파고든다. 1978년, 급기야 그는 옛날에 했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피라미드를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 크기는 쿠푸의 대피라미드의 1/14. 작업 결과 그는 피라미드를 그 어느 때보다 가공할 만한 존재로 느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용적과 체적을 계산하면 원래의 피라미드는 그가 두 달 동안 만든 모형 피라미드에 비해 천배 가량이 된다고.

 

나일 강도 마찬가지이다. 아스완부터 강을 따라 올라온 여행자가 지중해에 서서 나일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본다면, 마치 이집트 사람이 된 것처럼 나일 강을 신성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리아도 그렇고, 모스크도 그렇고, 이집트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도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확실히 한 번 시도해 볼만한 루트라는 생각이 드는데,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이집트 여행을 위한 몇 가지 팁

 

저자는 보름달 아래에서 본 '하트셉스트 여왕의 장례사원'의 풍경에 대해 감탄하며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있다. 또 예전에 소개한 여행기 <가보기 전에 죽지마라>의 저자는 피라미드를 제대로 보기위해 경비원의 눈을 피해 관람 마감시간까지 숨어 있다가 나와서, 바닥에 누워 달밤의 피라미드를 보며  감동했다고 한다. 밤에 보는 이집트 유적은 낮에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운 모양이다. 길만 거꾸로 가볼 게 아니라 낮밤도 거꾸로 다녀볼 일이다.

 

두 번째 팁은 사막여행이다. 이집트는 가장 편안하게, 제대로 사막을 즐길 수 있는 나라 중에 하나이다. 여행기 <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에서 저자 안홍기는 시와 사막에서 '사막을 즐기는 법'을 이렇게 알려준다.

 

"눈을 감고 5분만 가만히 있어보면 사막의 매력을 알게 된다"라고.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서해컬처북스 4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서해문집(2002)


태그:#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서해문집, #요시무라 사쿠지, #이집트, #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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