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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표정은 무거웠다.

 

20일 오후 4시 30분경, 와다 교수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았다. 19일 임시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 병원과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광장을 찾은 데 이은 이틀째 조문이다.

 

분향소를 찾기 전 그는 이날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미일 3국의 진보적 지식인 110명 공동 명의로 '미국, 북한, 한국, 일본, 중국 및 러시아 정부와 국민에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클린턴·현정은 방북길, DJ가 열어놓은 것"

 

와다 교수를 비롯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에드워드 베이커 하버드대 교수 등 3국 지식인들은 "양자와 다자를 막론하고 실질적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6자회담 당사국들에게 촉구했다. 와다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호소문 발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회장이 북한을 방문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열어놓은 길로 간 것"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에 압력을 가하기보다 화해협력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소련사와 남북한 현대사 권위자이며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다.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한국전쟁> 등의 저서가 한국에 소개돼 있기도 하다.

 

와다 교수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김 전 대통령이 납치되었을 때 일본에서 적극적인 구명 운동에 나서면서 고인과 인연을 맺었다. 이 인연을 시작으로 그는 일본에서 김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와다 교수는 "앞으로 몇 번이라도 더 조문을 오고 싶다"면서 "원래 내일(21일) 귀국 예정이었지만 영결식 이후 24일 귀국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며 고인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다음은 조문을 마친 와다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매일 조문하고 싶다"

 

- 어제도 서울 광장을 찾아 조문했다. 오늘 또 찾은 이유는?

"오늘 오전 한국, 미국 일본의 진보성향 지식인들과 북핵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지식인 성명을 발표하고 오는 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원 소식을 듣고,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 병문안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저께 '비보'를 들었고, 어제 오자마자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조문을 하고 서울광장에서도 조문을 했다. 매일 조문하고 싶다. 내일 일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23일) 이후 24일 귀국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알고 있다. 본인에게 김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1973년 김 전 대통령이 일본으로 납치된 후 구명 활동을 벌였다. 처음 만난 것은 김 전 대통령이 1984년 미국 워싱턴으로 망명했을 때다. 이전까지는 내가 한국에 입국할 수 없었는데 1990년 기회가 생겨서 한국에 와서 김 전 대통령의 집을 처음 방문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깊다기보다는 김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민주화를 이룬 가장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말씀대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선두에 서서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일본 사람들도 그를 많이 알고 존경한다. 요즘 한류 붐 때문에 일본 내에서 한국 연예인의 인기가 많은데, 하네다 공항에서 한국 연예인을 기다리던 일본 팬들이 김대중 대통령이 입국하자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일본 사람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역경을 극복한 삶의 상징과도 같다."

 

- 서울광장 등에서 조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니까 소감이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조문하고 애도의 뜻을 담은 대형 현수막도 걸려 있는 것을 보니 국민들이 그를 존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말씀대로 오전에 북핵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지식인 성명을 발표했는데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등의 업적이 앞으로 남북관계나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석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번 성명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최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회장이 북한을 방문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열어놓은 길로 간 것이다. 그 길을 살리는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화해렵력'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 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문제 해결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해야 한다. 이것은 미국, 한국, 일본 정부 모두에게 해당된다."

 

- 유가족들은 만났나?

"어제 유가족을 만났다. 이희호 여사는 슬퍼 보였지만 의지가 굳어 보였다. 오늘 아침 지식인 성명이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의미라 말씀 드렸다. 이 여사가 '감사하다'고 답하셨다."

 

-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가 현재 한국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일본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많이 걱정하셨다. 그러나 내 생각에 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는 다르다. 한국은 1987년 '민주혁명'을 이룬 나라다. 어느 정부라도 한국 민중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여러 가지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업적을 남겼다. 이것이 한국에 존재하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 없다."


태그:#와다 하루키, #김대중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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