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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찾아간 강남의 한 컴퓨터 학원. 카운터에는 다양한 학원 수업들을 안내하는 홍보물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MOS(Microsoft Office Specialist) Master, 정보처리기사, 웹디자인기능사 등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업의 홍보물들이다. 15개 정도 되는 강의실에도 빈자리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학원 관계자는 "방학이 되면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대학생 수강자들이 크게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 학원에서 만난 권아무개씨 역시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 지방국립대 2학년에 재학중인 권씨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자격증인 MOS Master를 따기 위해 방학 중에 서울에 올라와 지낸다.

묻지마 자격증 따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오는 이유

강남의 한 컴퓨터 학원. 방학을 맞아 많은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 수업을 수강한다. 지난 7일 찾아간 이 학원에서는 빈자리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강남의 한 컴퓨터 학원. 방학을 맞아 많은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 수업을 수강한다. 지난 7일 찾아간 이 학원에서는 빈자리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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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권씨가 따려는 MOS Master와 더불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은 대학생들에게 '묻지 마 자격증'으로 통한다. 전공, 진로와 무관하게 기본으로 따두는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희소성도 없는 이런 자격증을 왜 따냐고 되묻겠지만 '졸업은 곧 실업'이라는 절박한 20대에게는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권씨는 "학점인정도 되고 주변에서 다들 따니 취득하려고 한다"며 "취업이 워낙 불확실해 방학 때 뭐든 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다음 학기에 정보처리기사도 취득할 생각이다.

비록 기본으로 따두는 자격증이지만 취득비용은 만만치 않다. MOS Master는 시험비 25만원, 학원비 20여만원 총 45만원의 돈을 지출해야 한다. 다행히 정보처리기사는 응시비용이 상대적으로 싼 국가기관이 주관하는 자격증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한다. 응시비용은 필기시험 1만8천원, 실기시험 2만1천원이다. 권씨는 이 비용들을 충당하기 위해 밤에는 술집에서 5시간 동안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수입은 하루에 4만원 정도이다. 낮에는 학원에서 밤에는 술집에서 학기 중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학생들 취업 위해 제일 많이 준비하는 것은 '자격증'

지난 7월 16일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한 달 평균 21만 3천원의 사교육비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15만 5천원에 비해 29%나 증가한 수치다. 또한 설문에 응답한 1003명 중 35%는 취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냐는 질문에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답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전공공부 및 학점관리(28.6%), 외국어 공부(24.8), 국가고시 준비(11.5%) 순으로 나타났다.

취업을 위해 자격증은 필수가 됐다. 물론 이를 취득하기 위한 사교육비도 증가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취업자격'을 갖추기 위해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 또 어떤 분야가 있을까.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과 3학년인 박아무개씨는 금융 분야 취직을 원한다. 이 분야에 취직하기 위해선 여러 자격증들이 요구된다. 우선 '금융 3종 세트'라 불리는 증권투자상담사, FP(자산관리사), 선물거래상담사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에는 "잘 안 쳐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워낙 많이들 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는 AFPK(한국재무설계사),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 국제FRM(재무위험관리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박씨는 "은행, 증권 등 금융 분야에 꼭 취업하고 싶지만 여자에게는 더 문이 좁기에 차별화를 위해 이들 자격증을 준비 한다"고 말했다.

"취업 자격증 비용 300만원... 부모님께 너무 죄송스럽다"

이들 자격증을 따는 데 드는 비용은 300만원 정도이다. 취득비용이 비싼 이유는 CFP, 국제FRM 자격증이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인정받는 국제자격증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출제되는 국제 FRM은 국제재무위험관리협회(GARP)에서 주관하는데 응시비용이 최대 950달러(약 120만원)에 이른다. 동영상 강의를 들어야만 응시할 수 있는 CFP는 강의비용을 포함해 150만 원 정도의 취득 비용이 들어간다. 그나마 국내에서만 인정받는 자격증인 AFPK의 취득비용은 20만 원 정도다.

박씨는 취업자격을 갖추기 위해 쏟아 부어야 할 이런저런 비용들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먹먹해진다. 여기에다 한 학기에 4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까지 합세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회에 내딛기 위한 이 돈을 스스로 벌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틈틈이 3개의 과외수업을 하고 있지만 이 비용들을 감당하기에는 벅찬 수준이다. 박씨는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지만 자격증 취득 비용의 대부분은 부모님에게 지원을 받는다. 박씨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 신세지는 것이 너무 죄송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재수생도 자격증 취득에서 예외가 아니다. 작년에 지방사립대를 졸업한 김아무개씨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김씨는 취업에 실패한 뒤로 자격증 취득에 매달렸다. "대학은 이미 졸업했으니 이제 취업을 위해 스펙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자격증 따는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7개 자격증 땄지만 그래도 불안"... 자격증 따러 해외 원정도

서울의 한 대학교의 도서관 풍경. 지난 7월 20일 늦은 시각인 밤 10시에 찾아갔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한다는 대답이 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의 도서관 풍경. 지난 7월 20일 늦은 시각인 밤 10시에 찾아갔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한다는 대답이 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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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취직을 희망하는 김씨가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은 총 7개다. 웹디자인기능사, 그래픽운용기능사, 일러스트디자인 등이다. 취득비용으로는 학원비 등 총 200만원 가까이 들었다.

하지만 자격증을 많이 딴다 해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김씨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는 것도 눈치 보이고 힘들지만 또 다시 취업에 실패하게 되면 자격증 취득비용이 모두 물거품 되는 거 아니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자격증 취득하러 해외원정을 가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고 외국기관이 주관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다. 서울 소재 대학의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씨는 AICPA(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내년쯤 괌에 갈 예정이다.

김씨는 "AICPA가 미국 회계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과 회계 법인에서도 높이 쳐주기도 하고, 국내 공인회계사 자격증보다 시험이 쉬워서 주변에서 많이들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학원수강료, 시험비용, 해외체류비용 등을 합치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대략 300만원이 넘게 들어가지만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업무연관성이 없는 자격증은 별 도움 안 돼

작년 국내의 한 은행에 취직한 최수혁씨도 3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최씨는 "입사 동기들을 보면 영어점수도 높고 자격증도 서너 개 가지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도 취업하기 위해 대학등록금 수준의 사교육비를 지출했다. 그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한 이유에 대해 "취업문이 좁은 것이 근본적인 이유겠지만 국제화다 뭐다 해서 기업들이 입사지원자들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도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의 요구 때문에 따는 자격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격증들은 취업 이후에 모두 유효하게 쓰일까. 최씨는 "남들이 다 딴다고 해서 따는 자격증은 막상 입사하고 보니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 왜들 이렇게 자격증 취득에 몰두할까.

취업전문포털 커리어의 문지영 홍보팀 팀장은 "불안감으로 인한 과열경쟁"을 이유로 꼽았다. 문 팀장은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채우기 위해 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직접적인 업무연관성이 없으면 가산점이 없다"며 "본인이 지원하는 업종에서 가산점을 주는 자격증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본 뒤에 취득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취업사교육비는 늘어만 가고 있다. 남들의 스펙보다 뒤지지 않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그렇게 자격증을 따고 사교육을 받는다. 대학생도 이미 사교육의 한 복판에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성천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이 점을 지적한다.

김 부소장은 "대학들은 졸업기준을 정해 놓으면서도, 학생들이 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에만 의존하게 만드는 공적서비스의 무제 상태가 사교육을 유발한다"며 "현장상황을 담아내는 교육방법론과 국가차원의 소통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격증 요구와 같이 기업이 구직자들에게 과도하게 내거는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과 대학 간의 소통 구조를 만들어 대학의 교육 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취업 시장에 들어가는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자격증, #취업사교육, #취업, #실업,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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