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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혼과 재기가 넘치는 철재작품 'TV나무'와 'TV깔때기' 천장에 달려있는 강남 대치4동 포스코미술관에서 홍주영 작가가 5년여 동안 작업해 온 '얼음꽃(Frozen Flowers)' 연작 등 26여 점을 주말 없이 7월 9일까지 선보인다.
 
서구의 모더니즘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1857년)'에서부터 태동됐다고 하는데 보들레르는 "시는 읊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를 사진에 확대적용하면 사진은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서 '찍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전무후무한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홍주영 작가의 사진이 바로 그렇다. 
 
그도 이점에 대해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자연의 꽃'을 '얼음꽃'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지구상에 없는 전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창조 작업과 같은 것이다"
 

중남미 정서와 한국적 감정을 사진으로 융합

 

작가 홍주영(1948~)은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멕시코와 브라질 등 포스코중남미지사에서 20년간 일했다. 2000년부터 사진에 데뷔, '얼음꽃'을 브랜드화 하는데 성공한다. 늦깎이로 2007년 중앙대대학원(사진전공)을 수석졸업하고 작년엔 뉴욕에서 열린 제4회 세계미술대전(한국미술협회주관)에서 '최고작가상'을 받았다.

 

그가 이렇게 남다른 작가가 된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발상이 참신하고 감각이 예리하다는 것 외에도 한국적 감정과 중남미 정서를 잘 비벼 통섭의 과정을 통해 빅뱅을 일으키고,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작품을 낳았기 때문이리라.

 

흔히 유럽에선 스페인 햇살이 제일 좋고, 전 세계적으론 지중해 북아프리카 햇살이 최고라지만 그의 작품에 영감과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중남미 햇살이 아닌가싶다. "이런 색감은 중남미에 살아보지 않고는 찍기 힘들겠죠!"라고 했더니 작가는 말없이 고개만 끄떡인다. 

 

차가운 기포 속, 얼음꽃은 붉게 타오르고

 

차가운 얼음 속에 붉은 꽃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경이로운 장면에 놀라지 않는 관객은 드물 것이다. 그의 이런 감각적 기법은 그가 대학시절부터 한국의 야생화를, 브라질에 있을 때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희귀식물에 관심을 두며 일관되게 꽃을 관찰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작업과정에서 얼음이 바깥 공기에 깨어질 때 내는 균열을 고통 때문에 내는 인간의 '비명소리'로 보고, 얼면서 생기는 기포를 살맛나게 하는 '삶의 환희'로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생성과 소멸의 속성을 가진 꽃을 인생에 비유하며 사진 속에서 삶의 희비와 비밀을 캐낸 것 같다.

 

꽃의 절정을 얼음으로 정지시켜 영원성 지향

 

위에서 보듯 신작은 이전보다 더 화사해졌다. 꽃이 주는 결정적인 순간의 감동과 그 황홀한 절정을 심도 있게 포착하였다. 암술머리, 꽃대, 씨방 등의 긴밀한 구성 속에 색채의 대비도 또한 놀랍다. 얼음의 눈부심과 꽃의 화사함이 동시에 관객에게 큰 쾌감을 준다.

 

사진의 발명은 인간이 기록하고픈 열망과 그 기록을 영구히 간직하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작가 역시 꽃이 보여주는 절정의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자 얼음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정지시키고 그걸 카메라에 담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싶다.

 

미술평론가 김영호(중앙대교수)는 이 작가가 해온 '얼음꽃'에 대해 이렇게 의미 부여한다.

 

"홍주영의 얼음꽃은 응고된 아픔의 꽃이다. 자연속의 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금세 시들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꽃이 생명의 한시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역설적인 상징 언어를 통해서다. 그리고 그 꽃의 순간성을 폭로한다. […] 히말라야의 만년설에 파묻힌 어떤 생명처럼 그의 얼음꽃은 미를 향한 영원성을 지향한다."

 

그 꽃의 자태, 너무 우아하거나 요염하거나

 

이 작품은 이번 '얼음꽃' 연작 중 최고작이다. 작가가 절대적 순간에 잡은 원초적 생명의 극치를 우리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보고 있으면 여성의 향긋한 살내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에로틱한 여성의 성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연의 오묘한 진동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아찔함을 어찌 다 말하랴.
 
그 꽃의 자태가 환상적 색채와 그윽한 향기와 순수한 격정 속에서 너무 우아하거나 요염하거나 아니면 너무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런 것이 같이 공존하는 경지라고 할까. 이는 천진과 관능을 고루 갖춘 미인과 비교해도 좋으리라.
 
눈부신 은빛꽃잎에 연보랏빛 꽃술 번지고
 

시인 천상병은 꽃은 신(神)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훈장이라고 했지만 여기 눈부신 은빛햇살 같은 꽃잎에 환상적 보랏빛 꽃술이 번져나가는 것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꽃은 먹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 단지 존재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부자로 만든다. 이를 음미하고 향유하려면 그만큼의 교양과 자격도 갖춰야 한다. 돈이나 권력이 있다고 해서 다 이런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는 없다. 하여간 그는 꽃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걸 즐길 기회와 시간을 무한대로 확대시켰다.
 

가장 원색적이면서 초현대적인 색의 융합

 

녹색과 청색 바탕의 위 두 작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원색적이면서 초현대적인 색감이 융합된 작품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우리가 가시적으로 볼 수 없는 영역까지 작가는 그 시각적 자양분까지도 제공하며 우리의 감성을 부추긴다.

 

그는 이렇게 디지털혁명기에 젊은이들보다 사진이 가지는 가능성을 먼저 열었다. IT기술의 발전이 현재속도라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도 그는 선수를 치고 나간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그의 창발성은 후배들에게 큰 본이 된다.

 

이제 그는 꽃과도 격이 없이 대화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싶다. 하긴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서여 어찌 이런 작품이 낼 수 있겠는가. 인생과 자연과 우주를 꿰뚫어보며 이런 정도의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의 깊은 심미안을 인정해줘도 좋을 것이다.

 

신작 '비밀정원', 시각도 청각도 뛰어넘는 오감세계

 

이제 끝으로 관객의 눈길을 정말 많이 끈 '비밀정원(The secret garden)'을 보자. 이 작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뜻밖의 미인을 만난 격이다. 작가는 여기서 예리한 촉수로 우주만물을 보는 시인의 안목으로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공감각, 다감각 아니 오감으로 모든 사물을 응시한다.
 
위 작품을 보고 있으면 꽃이 내는 색채와 향기와 소리가 융합되어 교향곡소리로 울려 퍼지는 것 같고 우주만물이 조용히 순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는 이렇게 음악과 깊은 교류 속에서 큰 힘을 얻는 모양이다. 하긴 그는 고전음악의 오랜 마니아이기도 하다.
 
쉼 없이 도전하는 작가 홍주영, 사진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변신할지 궁금해진다. 이제 그가 삶을 달관하는 자세로 자연의 섭리에 자신을 내맡기고 더 높은 단계의 예술로 도약하게 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포스코미술관 서울시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2층 02)3457-1665 
위치 지하철 2호선 선릉역 1번 출구에서 5분 거리


태그:#홍주영, #얼음꽃, #포스코미술관,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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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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