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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는 우리 집 지킴이 진돗개의 이름입니다. 정식으로 이름을 작명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새벽이'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아이들끼리 그렇게 정해서 먼저 부른 듯합니다. 나도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즐겨 불러 주었습니다.

새벽은 하루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또 저는 하루를 새벽 기도로 출발합니다. 지난 날 함께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오늘도 동행해 주십사 기도하는 새벽 시간이 저에겐 아주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새벽을 좋아합니다.

새벽 기도를 나갈 때 가장 먼저 반겨 주는 녀석이 바로 '새벽이'입니다. 꼬리를 종횡으로 흔들어대며 반갑다고 야단입니다. '새벽이'도 그 시간이 일어나는 시간일 텐데 저렇게 자연스럽게 반길 수 있을까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자세만 누웠다가 일어나는 시늉을 할 뿐이지 주인에게 새벽 인사를 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어제(6월 17일) 낮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였습니다. 아주 더웠습니다. 더울 때는 사람도 동물도 아니 온 대지가 갈증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비롯해서 마당의 나무들에게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또 우리 '새벽이'에게도 금방 올린 시원한 지하수를 한 바가지 갖다 주었습니다. 정신없이 먹어 치우더군요.

그렇게 하고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재에서 수요 밤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막내딸 윤경이가 학교에서 여느 때보다는 좀 일찍 돌아왔습니다. 윤경이가 울상을 하고 말했습니다.

"아빠, '새벽이'가 안 보여요."

"아니, 네가 잘 못 본 거겠지. 어딘가에 있을 거야. '새벽이'가 집을 나간 적은 지금까지 없었는데... ."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윤경이와의 대화를 끝냈습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새벽이' 집을 가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이'는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뭔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요예배 말미 광고 시간에 '새벽이'가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알렸습니다. 혹시 마을에서 발견하면 교회로 데려올 것을 당부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광고를 하면서도 저는 솔직히 '새벽이'를 탐낸 누군가가 훔쳐갔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 나름대로 추론까지 하면서. '새벽이'가 자의로 뛰쳐나가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묶어 두었던 줄이 끊어지거나 손상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줄 전체가 송두리째 없어졌습니다. 또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그가 심하게 짓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새벽이'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짓지 않고는 못 배기는 녀석이거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새벽이'가 사람을 보고 짖는 데에는 몇 가지 등급이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저희 가족 또 자주 만나는 성도들을 보면 짖지 않습니다. 반갑다고 꼬리만 흔들어 댑니다. 가끔 보는 성도들 또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 한 두 번 짓고 평상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마 저 이들은 아는 사람들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표현 같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사람들에겐 열 번 쯤 연달아 짖어댑니다. 그리고 주인이 나타나면 인수인계하고(?) 짖기를 멈춥니다. 정녕 당혹스럽기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집주인인 제가 나타나도 짖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한 20여 분을 쉬지 않고 짖어댄 다음, 손님과 주인의 친밀도가 확인되고 난 뒤에야 짖기를 멈춥니다. 아주 똑똑한 '새벽이'입니다.

그런데 어제 '새벽이'가 사라질 때는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새벽이'의 울음소리로 손님을 알아보고 있는 제가 하루 종일 집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의 동정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필경 개를 잘 다루는 사람이 '새벽이'를 어루어 말없이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지레 생각했습니다.

어제 밤은 집안 분위기가 초상집과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허전함은 어른보다 더 했습니다. 슬픈 표정 일색에다 '새벽이'와 관련되는 미담들을 들추어내어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그것이 '새벽이'에게 마지막으로 표하는 애정이라도 되는 듯이.

오늘 새벽 기도는 한 쪽이 텅 빈 듯한 기분으로 드렸습니다. 매일 가장 먼저 만나는 '새벽이'의 인사를 받지 못한 탓이 클 것입니다. 아침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를 향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새벽이'가 오늘이라도 돌아와 주면 정말 좋으련만 하는 바람들이 표정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이들 등교로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어귀에 사는 한 권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금방 이장님이 방송을 했는데요, 개 한 마리가 불모사(佛母寺) 절에 보관되어 있대요. '새벽이' 같은데 한 번 가 보세요."

반갑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괘씸하다고 해야 할까 이상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마치 잃었던 아이를 찾고 난 뒤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을까 싶었습니다. 아내와 차비를 하고 불모사로 향했습니다. 불모사는 우리 교회와 이웃하고 있는 동네 안의 작은 암자입니다. 곶감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소문으로 주위에는 곶감 공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가 이 동네로 이사온 지 2년 반이 지났으나 불모사 사람들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서로 이웃해 있으면서도 직접 대면하여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 행사가 있을 때 가끔 음식을 전달하여 나눠먹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한 관계는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불모사의 주인 부부 그리고 몇 명의 다른 식구들이 나와서 '새벽이'에 관한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해주었습니다.

"어제 오후 4시가 넘었을 때였어요. 이 개가 쇠줄을 단 채 우리 절을 휘젖고 다녀서 묶어 두었습니다. 주인이 찾아오겠거니 생각했는데 하루 밤이 지났어요. 아침 일찍 이장에게 말해서 방송을 부탁했습니다. 개가 아주 순한 것 같아요. 그냥 두려고 해도 가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절 마당 화단을 망가뜨려 단단히 묶어 둔 것입니다."

"감사해요. 가까이 이웃에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린 밤새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더욱이 우리 아이들은 가족을 잃은 것 같은 기분들이었어요. 하루 밤 잘 보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알고 보면 악한 사람 없듯이, 서로 좋은 이웃으로 잘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우리 부부는 절을 나섰습니다. 이 '새벽이'와 우리의 인연은 아주 깊습니다. 제가 충북 옥천에서 목회할 때부터 함께 지낸 식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벌써 10년 넘게 우리 집 지킴이로 역할을 톡톡히 해 온 '새벽이'입니다. 진도개의 핏줄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길렀는데, 이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워낭소리'라는 다큐 영화가 있습니다. 소의 충직성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평생 주인을 위해 묵묵히 일한 소가 자연 수명보다 훨씬 더 긴 연수를 주인에게 봉사하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마지막처럼 예를 다해 장사를 치루어 주었다는 휴먼 다큐 영화가 바로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워낭소리'입니다. 우리 '새벽이'도 지금처럼 우리와 희노애락을 같이 한다면 장차 또 하나의 '워낭 소리'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 있었던 '새벽이'의 가출 소동, 하루 만에 한 편의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말이 쉬워 해프닝이지 그가 돌아오기 전, 우리 가족 전체에게 아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태그:#새벽이, #가출,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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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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