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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앞서까지 충주 산골마을에서 일하던 때, 제가 가장 좋아하던 나무는 살구나무였습니다. 살구 열매 맺힐 때면 길을 가며 만나는 살구나무에서 한둘쯤 따먹든, 저잣거리에서 동글동글한 열매를 한 바구니 장만하여 냠냠짭짭 즐기든 했습니다. 그러나 살구꽃 피는 때를 맞추지는 못해, 소담스러웠을 어여쁜 꽃 모습을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열매꽃은 때를 맞춰 즐겼는데, 살구꽃 구경만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네 해 동안 산골마을에 있으며 살구꽃은 구경하지 못한 채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고향동네인 인천으로 온 2007년 뒤로 부지런히 골목마실을 합니다. 어느덧 세 해째입니다.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면서 온갖 꽃나무를 실컷 구경합니다. 조그마한 헌 통에 흙을 옮겨담아 나무 심는 매무새도 놀랍지만, 흙이 없을 만한 빈터에 어떻게든 어디에서든 흙을 퍼 옮겨 작은 꽃나무를 심어 놓은 마음결에 눈물이 납니다.

 

이 집터가 언제 헐릴는지 모르는 '철거민촌'이라 한들, 무허가 집터라 한들, 달삯 내고 살아가는 집자리라 한들, 골목동네 사람들은 당신 밥벌이하는 데에도 바쁘고 힘든 틈을 쪼개어 새벽엔 일찍 일어나고 밤엔 늦게 자면서까지 골목길 꽃그릇을 간수하고 보듬습니다.

 

하루이틀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대추나무 호두나무 능금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모과나무 매실나무 감나무 들을 만납니다. 인천 골목길에 오동나무가 그리도 많은 줄은 2007년에 돌아와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오동나무를 알아보는 옛 고향동무는 하나도 없었고, 제법 나이가 있다는 분들조차 모르기 일쑤였습니다. 오로지 '골목길에 나무 심고 꽃 심고 하는 할매 할배'들만 오동나무를 알고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이른봄까지 잎이 하나 없고 새눈도 웬만한 눈으로는 알아보기 힘들어 비쩍 말라서 앙상한 죽은 나무처럼 보이곤 하지만, 따순 봄이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잎이 돋으면 금세 넓적하고 시원한 잎사귀로 그늘을 넉넉히 드리우곤 합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느 사람들은 '언제 이런 나무그늘이 있었느냐'는양 여기지만, 그나마 요사이는 이렇게라도 느낄 만큼 마음이 느긋한 사람은 없습니다. 골목나무뿐 아니라 길거리 나무조차 가만히 올려다보거나 줄기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엊그제 앵두열매가 파랗게 익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구, 올해에도 앵두꽃은 또 놓쳤네!' 하고 가슴을 쳤습니다. 지난해에도 앵두꽃은 놓치고 앵두열매만 사진으로 담았는데, 지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올해에도 영 글렀군요. 다가올 2010년에는 앵두꽃 피는 때를 놓치지 않고 기쁘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앵두꽃 놓친 아쉬움에 한숨 두숨 세숨 푹푹 쉬면서 안타까움에 젖어 있다 보니, 앵두열매 파랗게 익는 옆으로 빠알간 장미꽃이 보입니다. 장미라. 그래, 장미.

 

그러고 보니, 요즈음 인천 골목길 어디를 가나 장미꽃이 가득이던데. 앵두꽃은 거의 소리 소문 없이 피었다 져 버리고, 진달래와 철쭉과 개나리가 왔다가, 개망초와 이밥나무를 비롯한 하얀 꽃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다음으로는 민들레를 비롯한 노란 꽃이 골목을 듬뿍 빛낸 다음, 이제부터는 빨간 장미란 말이지?

 

그래, 앵두꽃은 다음해로 미뤄 두고, 골목골목 환하게 피어 있는 장미꽃 구경을 하자구! 지고 없는 꽃을 아쉬워한다고 다시 피겠니? 바로 오늘 내 앞에 피어 있는 꽃을 반갑게 맞이하자구! 앵두열매 열리는 다른 골목은 더 없나 살피면서 장미꽃 즐기러 골목마실을 떠나 보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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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골목여행, #장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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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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