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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업적 가운데 제1은 탈 권위주의

지난 주말, 청천벽력처럼 날아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하여 온 나라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는 한 없이 뜨겁고, 비통했다. 마침내 오늘 새벽 봉화에서 발인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는 광화문에서 열릴 영결식을 위해서 봉화마을을 떠났다. TV를 통해서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긴 운구행렬을 지켜보았다. 그 운구행렬의 끝에는 빈소를 찾은 100만 명이 넘는 추모객들과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온 국민의 슬픔도 뒤따르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제 그를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의 생애를 정리해야 하는 것은 죽은 당사자의 몫이 아니라 산 자의 몫이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는 대통령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참 많은 것을 남겼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어찌 자잘한 잘못 따위야 없겠는가. 그러나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기고 간 것을 생각하면 어디까지나 '옥에 티'에 지나지 않을 터.

노무현의 업적 가운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업적 하나만을 꼽으라면 오랜 시간 한국사회를 짓눌러왔던 그 쥑일 놈의 권위주의를 타파한 일일 것이다. 조·중·동 등 일부에선 끄떡하면 그의 막말을 문제 삼곤 했지만 어쩌면 그것조차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그의 전략의 하나였는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약간 웃음을 띤 얼굴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말하던 그를 기억한다. 그 말은 내게 불교 선승의 한 마디를 연상시켰다. 법거량(法擧量)을 하는 선지식들은 한마디 말로써 순식간에 상대방의 허를 찔러버린다. 그렇게 허를 찔린 상대는 마침내 깨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가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했을 때 검사들은 "아, 우리가 지금까지 막가고 있었구나."라고 깨우쳐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기가 모자란 어리석은 중생들은 쉽사리 깨침을 얻지 못한다. 깨우치기는커녕 도리어 "저 사람이 지금 막가고 있구나."라고 곡해를 서슴지 않는다. 자신들의 과오를 깨치지 못한 막가파 검사들은 한사코 막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막가는 권력은 '기획수사'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바보 노무현'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담백뱃불을 붙이는 노대통령의 생전 모습.
 담백뱃불을 붙이는 노대통령의 생전 모습.
ⓒ 노무현 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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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 소탈하고 소박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인간 노무현'의 꿈은 그렇게 좌절했는가. 아니다. 봉화마을로 내려와 살았던 지난 1년 3개월 동안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모습만으로도 그는 우리를 충분히 성공한 것이다.

장화를 신고 봉화마을 화포천 청소를 하시던 모습, 유모차를 자전거에 연결시켜 손녀를 태우고 가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자전거를 몰던 모습, 슬리퍼를 신고 마을 슈퍼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등.

카메라에 포착된 이런저런 모습을 두고 사람들은 '노간지'라 칭하면서 그에 대한 친근감을 표현했다.  '노간지'란 '폼이 난다'는 뜻의 일본어 '간지'를 빌려와 만들어진 애칭이다. 국민에게 보여준 일상의 모습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본래의 진면목이 어떤 것인가를 충분히 보여 주었다. 

검찰의 '노무현 죽이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심하다가 마침내 죽음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로 작정한 노무현 대통령은 생애를 마치기 전 마지막 순간에 부엉이바위까지 동행했던 경호관에게 "담배 있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경호원의 진술 가운데 상당 부분 면책을 위한 각색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적어도 이 말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 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워한다. 만약 이때 담배 한 대를 피울 수 있었다면, 그러면서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무튼 노대통령은 꽤나 담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봉화마을에서 자전거를 탄 노무현이 웃으면서 "담배 한 대 필려고 해도 카메라가 계속 따라오니 필 수가 있나?"라고 말하던 그의 모습도 떠오른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홈 페이지 '사람 사는 마을'에 에 올린 글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담배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봉하마을로의 귀향. 어쩌면 그것은 대통령이 금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만 비서로부터 개비로 제공받는 제한적 공급에 동의했다. 이 방식이 얼마나 담배를 줄이는 데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나마의 끽연조차도 작년 말 건강진단 후에는 의료진의 강력한 금연 권고 앞에서 다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건강은 완벽한 금연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작년 말부터 시작된 상황은 대통령의 손에서 담배가 끊어지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 어쩌면 그것은 책, 글과 함께 대통령을 지탱해준 마지막 삼락(三樂)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남긴 글에서 말했듯이 책 읽고 글 쓰는 것조차 힘겨워진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기댈 수밖에 없는, 유일하지만 허약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담배로는 끝내 태워 날려버릴 수 없었던 힘겨움.
- 전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의 글 '대통령의 외로웠던 봄'에서  

나 자신도 10년 전, 25년 동안이나 피우던 담배를 독한 마음을 먹고 끊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끔 담배를 피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담배 한 개비가 가진 마력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내가 생각하기에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다. 그것은 술과 더불어 삶에 있어 가장 큰 위안 가운데 하나다. 문학·영화·노래·그림 등 예술이 가진 기능과 똑같은 기능을 가진 셈이다. 담배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한 모금의 예술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담배가 많은 독소를 가지고 있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그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담배 연기는 허무하게 흩어져 갈지라도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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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마지막 장면과 담배를 떠올리면서 나는 신동엽 시인의 시 ' 담배 연기처럼'을 떠올렸다.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이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다 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 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 신동엽 시 '담배 연기처럼' 전문

1939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신동엽은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1969년 작고할 때까지 <아사녀>,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시집을 남겼던 시인이다. 

그는 생애 내내 역사의식이 가득찬 시를 썼던 시인이었다. 그렇게 예언자적 목소리로 잠든 시대를 깨웠다. 당시만 해도 시의 소재로써 기피되었던 현실의 문제를 끌어다 씀으로써 시도 우리 삶과 역사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전범을 보여주었다. 시 '담배 연기처럼' 은 본래 <한글문학> 1966년 겨울호에 실렸던 시다.

시인은 들길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그는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저 흩어져가는 담배 연기가 마치 내 그리움 같다고. 그렇다면 그 그리움의 대상은 누구인가.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과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의 그리움에는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서려 있다. "어쩐 일인지?/ 멀리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다는 뼈저린 후회가 담겨 있다. 아무래도 그 미안함을 갚을 기회조차 없을 것 같다. 하늘이 너무 빨리 자신을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신동엽 시인이 간암으로 죽기 3년 전에 쓴 것이다. 그때 이미 시인은 죽음에 대한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언젠가 이 들길을 지나갈 길손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그대의 소맷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 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라고.

어찌 생각하면 신동엽 시인과 노무현 대총령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예언자적 삶을 살다갔다는 점, 정감이 넘쳐서 외로움을 많이 탔다는 점.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해했다는 점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도 그가 봉화마을 들길에서 피우던  한 모금 담배 연기처럼 한 줌 연기가 되어 흩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담배 연기는 허무하게 흩어져 갈지라도 사람의 생애란 그렇게 쉽게 흩어지거나 잊혀지지 않는다. 신동엽 시인이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듯이 우리들의 노짱도 그렇게 각인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지 모른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은 물론 우리들 기억 속이다.

지금쯤 노대통령은 시왕산에 도착했을까. 시왕산에 닿아 제5대왕인 염라대왕을 만나 '내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고 싶었으나 피우지 못하고 왔으니 미안하지만 담배 한 개비 빌릴 수 없겠냐?'라고 특유의 너스레를 떨고 있을는지 모른다.

염라대왕이여, 부디 그의 청을 거절하지 마소. 담배 한 대 피는 것으로 이승의 시름을 다 날려버릴 수 있도록.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부디 저승에서만은 그의 삶의 길이 순탄하기를….

덧붙이는 글 | 사진은 노무현 홈 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http://www.knowhow.or.kr/ 에서 가져왔습니다.



태그:#노무현 , #신동엽 , #창비 , #담배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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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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