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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아버지의 쌀알

- 글 : 민풍 호

- 옮긴이 : 최재경

- 펴낸곳 : 달리 (2009.4.17.)

- 책값 : 12000원

 

 

 (1) 밥 한 그릇과 내 삶

 

 어머니한테서도 배우는 삶이요, 아버지한테서도 배우는 삶입니다. 아름다운 삶도 배우며, 얄딱구리한 삶도 배웁니다. 아름다운 삶을 저버리기도 하지만, 얄딱구리한 삶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밥을 먹으며 밥알 하나 남기지 않습니다. 바닥에 떨어뜨렸어도 주워먹습니다. 옆지기도 밥알을 남기지 않습니다. 바닥에 떨어뜨린 먹을거리를 모두 주워먹지는 않으나, 집에서는 으레 주워먹습니다.

 

 언제부터 이러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아주 어릴 적부터 밥알 하나까지 다 비워야 비로소 밥을 다 먹은 셈이었으며, 조금이라도 남기면 구두주걱이나 어떤 몽둥이로 맞았다는 일은 떠오릅니다.

 

 맞으면서 배우는 일이란 좋지 않습니다. 맞으면서 가르치는 일도 좋지 않습니다. 지난날 우리 삶자락은, 어버이가 아이를 손찌검과 몸둥이로 다스렸다고 하더라도 이런 가르침과 배움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집뿐 아니라 학교와 마을에서도 온통 손찌검과 몽둥이질만 있다면, 아이들은 아이 깜냥껏 생각힘을 키우지 못합니다.

 

.. 그 노래는 벼에 관한 노래였다. 그 노래는 볍씨를 뿌리고, 모판에 모종을 기른 다음 새로 갈아둔 논에 조심스럽게 모를 옮겨 심는 과정을 노래했다. 그 노래는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벼 포기가 높이 자라나 초록빛으로 물들기를 기다리고, 그런 다음 잘 익어 누렇게 말라가는 과정을 노래했다. 또한 추수하고, 타작하고, 키질하고, 쌀을 빻는 나날, 그러니까 한 공기의 쌀밥이 만들어지기까지를 노래했다 ..  (41쪽)

 

 지난날에는 잘 몰랐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그무렵 그렇게나 손찌검과 몽둥이질이 흔해빠진 까닭은, 다름아닌 군사독재라고 하는 서슬 퍼런 몹쓸 정치가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으르릉거린다는, 아니 가난에 찌든 북녘 빨갱이가 남녘을 잡아먹으려고 더러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노려보고 있다고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 거짓말 아닌 참말로 여겨지던 문화가 크게 한몫했다고 깨닫습니다.

 

 틀림없이 북녘에서는 간첩을 남으로 보냅니다. 간첩배도 보내고 미사일도 쏩니다. 그러면 남녘은 무엇을 할까요. 남녘에는 미국에서 가지고 온 핵무기를 곳곳에 숨겨 두고 있었습니다(저 같은 꼬맹이는 나중에 머리통이 굵어진 다음에 비로소 알았습니다만). 남녘에서도 북으로 간첩을 보냅니다. 다만, 남녘이 보내는 사람은 '북파공작원'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지난 정권 때에야 비로소 '북파공작원'이 있음을 나라에서 밝혔습니다만, 북녘이 남으로 보낸 간첩 숫자 못지않게, 남녘이 북으로 보낸 간첩이란 대단히 많았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세월을 보내던 1995∼97년에 북파공작원을 처음 알았는데, 그때 제가 있던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군부대에는 "북파공작원으로 뽑아들여 가르치려 하다가 부적격판정을 받은 '무연고 입대차출자'(법에 따르면 군복무예외자이나 배운 것 없고 연고도 없어 말 않고 군대로 뽑아들인 사람)"가 제법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재수가 없다면 재수가 없는 노릇이겠지요. 저는 눈과 코가 안 좋아,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면제를 받았어야 할 몸입니다. 그렇지만 줄을 잘못 선 탓에 군대에 끌려갔고, 군대에 끌려가서도 남녘땅 군부대에서 가장 깊숙한 데로 꼴아박혔으며, 이렇게 꼴아박힌 탓에 '어느 책에도 안 나온 갖가지 군대 비리와 잘잘못'을 몸소 부대끼고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적 살던 옛동네 이웃 아저씨가 우리 꼬맹이(국민학생이었을 때라서)를 둘러앉히고 당신이 북파공작원으로서(그때에는 북파공작원이라 하지 않고 유디티라고 말씀했습니다) 몰래 북녘으로 들어가서 평양에도 가고 김일성궁에도 가고 뭐도 하고 했다는 이야기를 입을 쩍 벌린 채 듣던 일이 무엇을 뜻했는가를 군대를 마치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북파간첩이건 북파공작원이건 또 알파벳으로 줄여 가리키는 무슨 이름이건, 또 남파간첩이건 남파공작원이건 또 무슨무슨 이름이건, 우리 세상은 더없이 뒤죽박죽이요 숨겨진 것투성이에다가 뒤틀린 얼거리일 뿐임을 차츰 느꼈습니다.

 

.. 천천히 인톤은 자신의 논 두 군데서 수확한 벼를 탈곡한 쌀더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자신을 촘촘히 둘러싼 사람들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인톤은 한 줌 가득 쌀을 퍼서는 쌀알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게 했다. "올해로 50년째야." 특별히 누구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 논에서 벼농사를 지은 지가. 그리고 50년 동안, 내가 키운 곡식의 절반을 빼앗겨 왔어." 인톤은 눈앞에 펼쳐진, 햇볕 아래 그루터기만 남은 채 메말라 있는 논을 바라보았다. "난 이 논에 대해서라면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지. 내가 갈아엎고, 파종하고, 김을 매고, 비료를 주고, 수확하고, 그 벼를 탈곡해서 쌀을 얻었으니까. 난 이 땅을 내 땅처럼 생각했어." 인톤의 눈에서 꿈꾸는 듯한 빛이 사라지더니, 별안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띱." 인톤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의 그 1만 평방미터가 넘는 땅 말인데, 그거 자네 땅처럼 생각하지 않아?" 룽 띱이 고개를 끄덕였다 … "사실은 그렇지 않지. 저기 보이는 저 땅은 우리 소유가 아니라 손가락에 흙 한 톨 묻혀 본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의 것이지. 매년 우리가 수확한 곡물의 절반을 가져가는 작자 말이야 … 왜일까? … 왜 우리가 그렇게 많이 주어야 하지?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이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을 때조차 말이야. 왜 우리는 그렇게 용기 없고, 멍청하고, 고분고분해야만 하는 거지?" ..  (126∼128쪽)

 

 군대라는 곳은 군대 나름대로 저를 여러모로 가르쳤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저를 가르쳤고,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저를 가르쳤어요. 아버지는 제가 김치를 안 먹는다고 밥상머리에서 윽박지르기만 하였고, 어머니는 아버지 눈치를 보아 가며 김치를 억지로 먹이려 하시면서도 맵지 않은 김치를 얹어 주시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어릴 적처럼 밥상머리에서 꿀밤이나 회초리를 맞지 않아도 된 이즈음 제 밥버릇을 돌아봅니다. 저는 매운 먹을거리를 못 먹습니다. 고추장은 곧잘 즐기긴 했어도 고추는 못 먹습니다. 고추가루 또한 젬병입니다. 이제는 고추장에도 거의 손을 안 댑니다만, 하얀김치는 먹어도 빨간김치는 속이 뒤집어집니다. 찬국수 또한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제 배속인 탓에 찬국수 물뿐 아니라 동치미 물도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어찌 찬국수나 동치미를 못 받아들이느냐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잖아요. 얼굴과 몸매와 목소리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과 넋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몸속 얼거리도 다릅니다. 어떤 이는 허파가 좋아 오래 달려도 안 지칩니다. 어떤 이는 팔심이 좋다든지, 어떤 이는 간이나 염통이 안 좋다든지 합니다. 저 또한 배속 얼거리가 여느 사람과 같지 않아 '빨간 양념'이 깃든 반찬은 아예 손을 댈 수 없는 몸입니다. 다만, 이런 제 몸을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는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알아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군대에서 밥을 어찌 먹었느냐 궁금해 하실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네, 군대에서는 참말 아무 걱정 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제가 몸담은 군부대는 가장 '끄트머리에 처박힌 곳'인 탓에, 언제나 보급품은 '윗줄에서 다 잘라먹'어 주시면서, 찌끄레기 가지고 밥을 해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군대란 데가 요즈음도 그리 나아지지 않았고, 예전에는 더 나빴잖습니까. 때때로 '빨간 깎두기'나 '빨간 배추김치'가 턱없이 모자란 만큼이기는 했지만 배급으로 티끌만큼 오기는 했으나, 우리가 쓸 수 있는 '빨간 양념'은 거의 없었고, 이런 까닭에 어떤 반찬도 '빨간 물'이 들지 않았으며, 게다가 된장국(찌개 아닌 멀건 국)은 양배추를 숭숭 썰어 때깔만 누런 국물이기만 했습니다. 다만, 군부대는 깊디깊은 산골짜기였기 때문에, 사단장이나 연대장이나 군간부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취나물 사역'을 해서 몇 마대씩 갖다 바쳤는데, 이러한 일을 겪으며 우리들(군인)은 우리 먹을거리를 산에서 얻는 슬기를 몸에 익혔습니다. 이러면서 저 또한 비로소 제 몸에 맞는 먹을거리란 들과 산에서 나는 나물임을 알았고, 날로 먹는 나물이나 살짝 데친 나물만큼 제 몸이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따로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 빈민가를 통과하는 동안, 진다는 이상하게 편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기 엄마들이 방금 목욕을 시킨 아기들의 얼굴에 하얀 밥풀을 발라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늙은 남자들은 시골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방식대로 난초나 레몬그라스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소년들은 남들이 보는 곳에서 샤워를 했고, 머리에는 하얀 비누거품이 덮여 있었다. 이 지역은 방콕에 속해 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 출신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들은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자기들만의 임시 마을을 만들어 둔 것 같았다 ..  (218쪽)

 

 

 저와 오래 사귀어 온 동무라고 해서 제 몸을 잘 헤아려 주지 않습니다. '빨간 물' 든 먹을거리는 손도 안 대는 제 밥버릇을 모르고, 찬국수 물을 마시면 곧바로 배탈이 나 여러 날 죽은 듯 엎어져야 하는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누군가 저를 괴롭히고 싶다면 빨간김치와 찬국수를 하루에 한 번씩만 먹여도 됩니다. 저한테 이보다 더 끔찍한 고문이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밥버릇을 깨닫고 나니, 저 스스로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던 제 몸을 바로보면서 제 몸을 옳게 사랑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내 몸이 이러하다면 다른 사람들 몸은 어떠할까 하는 데로 눈길을 뻗칠 수 있었습니다.

 

 제 몸이 여느 사람들 몸과 비슷하거나 같았다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을는지 모르고, 그렇다 하여도 깊이 생각했을는지 모르나, 아주 오래 걸려서야 비로소 이웃을 생각하지 않았으랴 싶고, 생각한다고 해 보아야 그지없이 더디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몸이 아플 때 내 몸뿐 아니라 나보다 더 몸이 아플 사람들 마음앓이와 몸앓이를 돌아본다고 하듯, 저 또한 제 몸에 깃든 온갖 모습을 느끼면서 이웃사람 마음앓이와 몸앓이를 살포시 들여다보는 눈을 기를 길머리를 텄습니다. 이 길머리는 어떤 높거나 대단한 학문자리보다는, 우리가 늘 부대끼는 가장 낮으면서 너른 자리에서 터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를테면, 농촌봉사활동이라는 자리에 가는 동무나 선후배 가운데, '몸쓰는 고된 일은 마다 않는다'고 하면서도, 고맙게 받아먹는 밥상에서 밥알과 반찬을 깨끗이 비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에서 몸과 마음이 동떨어지거나 생각과 몸가짐이 어긋나는 대목을 느꼈습니다. 입으로는 진보니 개혁이니 떠들어도 술자리나 밥자리에서 젓가락으로 들쑤셔 놓고 다 비우지 않아 '밥쓰레기'가 잔뜩 나오도록 하는 분들 모습을 보며 언제부터인가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날'에는 빈 도시락통을 챙겨 '남는 안주나 반찬이나 밥'을 옮겨 담아 제가 집으로 가져가서 먹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 "정의라구요!" 진다는 격렬하게 말했다. "오빠는 정의를 맛볼 수 있나요? 평등을 냄새 맡을 수 있나요? 오빠가 말하는 그 모든 멋진 말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난 내가 맛볼 수 없고, 냄새 맡을 수 없고, 내 손에 쥘 수도 없는 것들을 위해 내 인생을 걸 수는 없어요. 비 온 뒤의 흙이라면 너무나 촉촉해서 달콤한 냄새를 풍기죠, 그리고 타마린드 순도 우리의 혀에 환상적인 맛을 남기죠. 이러한 것들은 진짜예요. 난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만 살 거예요 … 난 오빠가 나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하길 바라요. 그래요, 통통한 아기들도 몇 명 함께 낳아서 키우고 싶어요. 난 살고 싶어요. 그리고 곡식을 기르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게 그토록 잘못됐나요?" ..  (320∼321쪽)

 

 냉장고를 안 쓰는 삶은 옆지기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한테 있던 작은 김치냉장고는 먹을거리를 담는 통이라기보다 물과 술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게끔 간수하는 통이었습니다만, 물 마시는 버릇을 조금씩 찬물 아닌 여느 물로 바꾸었고, 찬술을 마시고 싶다면 그때그때 구멍가게에서 사 오면 됨을 익혔습니다. 가게에서는 언제나 냉장고를 돌려야 하니, 냉장고를 쓰더라도 하나라도 덜 쓰도록 해야 한달까요. 그리고 우리 먹을거리는 틈틈이 저잣거리 마실을 하면서 꼭 그날이나 그 이듬날까지 먹을 만큼만 장만하고요.

 

 냉장고에 그득 채워 넣는 삶이 되면 더 싼 먹을거리를 찾을밖에 없고, 더 싼 먹을거리를 찾는다 하여 '먹을거리 사는 데 쓰는 돈이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먹을 부피보다 더 사들이게' 되고, 이렇게 싼값에 더 사들이면서, 나라안 농사짓기로는 부피가 모자라서 나라밖에서 곡식을 사들이는 얼거리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으레 '중국산-국산'을 따집니다만, 우리 삶자락은 일찌감치 '중국산 없이 못 살게' 되었습니다. 국산만으로 우리 밥상을 차릴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 나라 농사꾼이 거둔 곡식만큼 밥을 먹자면, 우리 스스로 씀씀이를 줄여야 합니다. 냉장고를 버려야 합니다.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알맞게 장만해서 먹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갖가지 농약과 비료를 쓰며 농사꾼 스스로를 괴롭히는 농사가 되지 않도록 하자면 생활협동조합에 한손을 거들어야 하며, '돈 많은 이들이 사먹는다는 비싼 유기농'이 아니라 '돈 적은 이들 스스로 알맞는 값에 함께 나누는, 이러는 가운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한테 기쁜' 틀거리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 일을 도와야 합니다.

 

.. "불쌍한 벼 포기들 … 난 벼 포기들이 계속 초록색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은 시원한 바람처럼 그녀의 뒤통수를 간질였다. "하지만 계속 초록색으로 있으면 씨를 맺을 수 없단다, 꼬마야. 그리고 씨앗들이 없이는, 벼가 다음해에 곡식을 만들 수 없고, 어른 벼들이 죽어야만 새로운 벼들이 그 뒤를 이어서 다시 자랄 수 있는 거란다." "왜요?"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란다. 늙은 생명들이 그들의 힘을 포기해야만 새로운 생명들이 자랄 수 있지." "왜요?" "그게 바로 생명이 이어지는 방식이니까." "하지만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아버지는 껄껄거리며 진다를 들어올려 공중으로 몇 번 던졌다 받았다 했다. 심장이 멎을 듯 아슬아슬한 순간 동안, 그녀는 갈색 들판 위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튼튼한 팔을 향해 날아갔다. "왜냐고? 왜냐하면 아버지가 널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게 바로 이유란다!" ..  (344∼345쪽)

 

 그렇지만 꽤 많은 분들은, 이들 가운데 대단히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생협을 가까이하지 않고, 찾아보려 하지 않으며, 어깨동무하려 하지 않습니다. 으레 바빠서 날마다 저잣거리 마실을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왜 바쁜 줄 생각하지 못하고, 그렇게 바쁘도록 매인 일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며, 나 스스로 아름다운 진보를 이루어 내는 삶이 아니라면 세상사람한테도 아름다운 진보를 나눌 수 없음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마, "밥이 하늘이다"라든지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라든지 "밥 한그릇에 담긴 즐거움과 고마움" 같은 말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밥이 왜 하늘이며, 밥 한 그릇이든 나락 한 톨에든 왜 우주가 담겼는지 깨달아 보고자 나서는 몸짓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다른 사람을 말하기 앞서 저부터 그러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밥풀떼기 하나라도 샅샅이 비우는' 밥버릇을 왜 들여야 했는지는, 빨간김치를 먹을 수 있도록 다그친다 하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농사는 온누리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이라는 글월을 외우고 다닌다 한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내 밥그릇을 보듬지 않고서야 깨달을 수 없습니다.

 

 

 (2) 아기와 내 삶

 

.. "저희는 학생으로서, 우리 나라의 농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여태껏 아무도, 더욱이 방콕에서 온 대학생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그냥 살고 싶다고 한 적은 없었거든.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자네들은 여기서 뭘 하려는 거지?" ..  (44∼45쪽)

 

 아기가 잠들어 있습니다. 아기가 잠들어 주었기 때문에, 아빠는 조용히 일어나서 글을 쓰고 기저귀를 빨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깨어 있을 때에는 엄마이든 아빠이든 할머니이든 외삼촌이든 누구 한 사람 옆에 붙어 함께 놀아야 합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아기와 놀 수 없습니다. 오로지 아기를 생각하며 아기와 함께 놀아야 합니다.

 

 아기는 엄마젖을 물어야 비로소 새근새근 잠듭니다. 잠투정도 많고 깊이 잠들지 않고 두어 시간 자고 나면 바로 깨어나며 골머리를 앓게 하지만, 아기는 잠들 무렵에는 언제나 엄마젖을 뭅니다.

 

 엄마젖은 엄마가 먹는 밥으로 이루어진 젖입니다. 엄마가 제 살을 바쳐서 내어주는 먹을거리입니다. 엄마는 이 땅을 떠도는 바람을 마시고, 이 땅에 뿌리내린 곡식을 먹으며, 이 땅에 내리비치는 햇볕을 머금습니다. 아기가 먹는 젖이란 바람과 곡식과 햇볕이 고루 섞여 있습니다.

 

.. 닭장이 비고 돼지우리가 버려진 것은 그들(농사꾼들)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뭄 때문에 키우던 가축을 다 내다 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정말이지 부끄러워할 것은 전혀 없었다 … (도시에서 온 대학생) 소리는 봉지를 다 비우더니, 진다가 막을 틈도 없이 봉지를 구겨서 불 속에 던져 버렸다. 진다는 종이봉지에 불이 붙는 것을 보았다. 구멍 하나 없는 두꺼운 갈색 종이가 불타 버리다니, 그건 낭비였다! … 스리는 말끔한 하얀 손수건을 꺼내 팔에 튄 국물을 닦았다. "음식이겠지…… 그렇지?" … "당연히 이것도 음식이죠." 진다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스리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음식이라고…… 우리가 먹을 거야?" 스리가 물었다.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진다는 솥을 불에서 내려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아내, 돼지들한테나 먹여야죠!" 진다가 소리쳤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돼지우리에 새끼 돼지들이 우글거리는 거 못 봤어요?" … 스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네드가 그랬어. 태국 대학생들은 손을 잘 쓰지 않는다고." 스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거야말로 오늘날 태국 지식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의 하나라나. 우리가 이제까지 배운 거라곤 그저 생각하는 것뿐이야." 스리가 하는 말은 교과서에서 읽은 것을 암송하는 것처럼 들렸다. '당연하지.' 진다는 속으로 맞장구쳤다. '그러니 당신들은 우리 돼지우리들을 보고도, 텅 비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  (61, 64∼67쪽)

 

 젖을 먹는 아기는, 엄마가 싱그럽고 시원한 바람을 마시면서 싱싱하고 알찬 곡식을 먹으며 따뜻하고 맑은 햇볕을 머금어야 좋은 먹을거리를 받아들입니다. 아기 엄마가 싱그럽지도 시원하지도 못한 바람을 마셔야 한다면, 싱싱하지도 알차지도 못한 곡식을 먹어야 한다면, 따뜻하지 맑지도 않은 햇볕을 머금어야 한다면, 배는 무언가로 가득 찰는지 모르나, 아기가 아기답게 자라나는 참힘을 얻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마땅히 우리 세상을 읽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세상을 아름다이 가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세상을 깨끗하게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야 합니다. 돈만 버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벌되 세상을 맑고 밝게 키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 즐거운 놀이를 찾아서 누리되 내 이웃과 함께 아름다워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내 살림을 알뜰히 꾸리되 우리 세상이 어찌 흐르는가를 꿰뚫으면서 바른 쪽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다스려야 합니다.

 

 아기를 낳아 기르지 않는 사람이라 할 때에도, 아기란 내 아기뿐 아니라 이웃 아기가 있고, 형이나 언니네 아기가 있으며 동무나 선후배네 아기가 있습니다. 이웃집 아기가 있고,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세계 여러 나라 아기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나 스스로 혼인하여 아기를 낳지 않는 살림살이라 하여도 세상을 옳게 읽어야 합니다. 우리 세상을 아름다이 가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세상을 깨끗하게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이라고 할 까닭 없이, 아기가 아기답게 살아가고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이란, 어른인 우리 스스로도 더없이 즐겁고 기쁘고 신나고 아름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니까요. 아기가 아기답게 살 수 없는 터전은 어른도 어른답게 살 수 없는 터전입니다.

 

.. 진다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 족쇄를 쳐다보았다. 양쪽 발목에 각각 두꺼운 쇠고리를 채운 다음, 그 두 개의 고리를 다시 두꺼운 쇠사슬로 함께 연결해 두었다. 그에게만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일개 농부가 마약 암거래상이나 도박꾼들보다 더 위험한 죄수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 동생! 요즘엔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거든. 수많은 나이 어린 농촌 여자들이 똑같은 일들을 하고 있어. 그리고 하나같이 사연은 똑같지. 아버지가 땅을 팔아야 했고, 어머니는 패물들을 전당포에 팔고, 그러고 나서 딸은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자기가 팔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팔게 되는 거지. 바로 자신의 몸." … "더 숙이라니깐!" 솜분이 꾸짖었다. 훨씬 더 머리를 숙이자 몸이 거의 반으로 접힐 지경이었다. 진다는 마을의 주지스님에게 음식을 공양할 때도 이렇게까지 몸을 숙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렇게 낮게 몸을 숙여야 한단 말인가? ..  (164, 190, 209쪽)

 

 아기를 돌보느라 엄마나 아빠는 몹시 고단합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태어난 뒤로 잠 한 번 느긋하게 잔 적이 없습니다. 하루 한때 여태까지 해 온 일에 온힘 쏟아 즐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있어 주었기 때문에 잠을 미루면서까지 할 만한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아기와 함께 살기 때문에 내가 더 힘을 내어 바칠 만한 일은 어디에 있는가를 느낍니다.

 

.. 진다는 단단하게 움켜쥔 스리의 주먹을 붙잡고는 부드럽게 손가락을 펴 주었다. 진다의 검게 타고 못이 박인 손에 비하면 스리의 손은 하얗고 부드러웠다. 진다는 스리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고 진다는 생각했다. 스리 언니는 모든 것을 가졌고,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그녀를 위로해야 하는 건 나라니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잘 먹었단 말인가? 네드와 소리가, 진다네 집에서 먹는 부서진 쌀로 지은 밥과 생선소스를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진다는 그 신발들을 내려다보며 바깥에 서 있었다. 신발들 대부분은 하얗고 깨끗한 캔버스 천으로 된 테니스화였지만, 가죽구두도 있었고, 어떤 것은 고무 슬리퍼였고, 심지어 한 쌍의 반짝이는 하이힐도 있었다. 천천히 진다는 자신의 고무 샌들을 벗어 놓았다. 진다의 신발만 유난히 낡고 때가 묻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흙이 묻은 자국이 있는 신발도 그녀의 신발뿐이었다 … 스리는 작은 가방에서 열쇠 다발을 꺼내더니 빨간 차의 앞문을 열었다. "내 말 잘 들어." 그녀가 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지금, 네 가족이 30년 걸려야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비싼 차를 타고 떠나려는 주제에 네 마을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어. 어쩌면 까몰이 옳을지도 몰라, 진다야. 나야말로 겁쟁이 위선자인 거야."..  (214, 232∼233, 242쪽)

 

 아기와 옆지기와 제가 오늘 하루 머무는 일산 옆지기 식구네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새로 올려세우는 아파트가 퍽 많습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오는 전철길에서도 북한산을 에워싸며 새로 올라서는 아파트를 대단히 많이 구경합니다. 우리 사는 인천에도 곳곳에 새로 올려세우는 아파트를 끝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즈음,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자전거 공부를 하고 있는데, 파주책도시에 있는 대안학교를 찾아가 보면 학교 둘레에 큼직큼직 선 출판사 건물은 많은데, 우리 나라 곳곳에 수없이 올라서는 아파트마냥 '자연 삶터를 헤아린 마음결'은 조금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시늉이라도 햇볕 전지판을 달아 놓고 승강기나 계단 등불을 밝힌다든지, 빗물통을 달아 뒷간 물 내릴 때라도 쓴달지 하는 마음씀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오로지 돈으로 세우고, 오로지 돈으로 사고팔며, 오로지 돈을 들여 관리비 내고 전기 쓰고 가스 쓰고 물 쓰는 아파트요 건물들일 뿐입니다. 이러한 아파트와 건물은 두 다리나 자전거가 아닌 오로지 자가용으로만 오가도록 합니다.

 

 아파트를 바라보고 건물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집이건 저런 집이건 다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일 테고, 아이로 자라온 사람일 테며, 둘레에 조카나 어린 동생이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는지를. 아이 생각을 넘어 내 생각을 하고 내 집 생각을 하고 내 식구 생각을 한다 할 때에도 이렇게 아파트를 세우고 건물을 세워도 될는지를.

 

 

 (3) 어린이책 《아버지의 쌀알》은 어린이책일까

 

 태국사람 삶과 발자취를 담은 어린이책 《아버지의 쌀알》을 읽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참말로 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1970년대에 태국에서 일어났던 일이요, 태국땅 농사꾼이 겪은 아픔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이야기는 태국땅 농사꾼만 겪은 일이요 아픔은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세계 어느 나라 농사꾼이든 똑같은 길을 걸었고 세계 어느 나라 땅임자이든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세계 어느 나라 권력자와 지식인이든 똑같은 몸짓으로 살았다고 느낍니다.

 

.. 진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래요. 아버지가 이렇게 침울해 하시는 건 처음 봐요. 올해는 수확이 너무 나빠서 두싯에게 절반씩이나 뺏기고 나면, 우리 먹을 곡식이 충분치 않을 테니까요." "왜 절반이나 줘야 해?" 네드가 소를 씻기면서 말했다. 진다는 못 믿겠다는 눈으로 네드를 쳐다보았다. 하도 바보 같은 질문이라서 진다는 네드가 그걸 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대답하려 하니, 마땅한 설명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왜냐고요? 그러니까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냥 그렇게 해 왔으니까요. 우리는 농지를 빌리는 조건으로 수확의 절반을 주기로 했거든요. 그게 다예요." "하지만 왜 절반이냐고?" … "만약 싸움에서 진다면, 우리는 땅과 곡식, 집을 잃고 말 거야. 자칫하면 우리 목숨까지도." "하지만 이장님, 싸움에서 이긴다면 얻게 될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네드가 주장했다. "뭐 말인가? 한두 줌의 쌀 말인가?" "아니죠. 더 나은 음식, 더 건강한 아이들, 더 밝은 미래죠." "말뿐이야." 인톤이 콧방귀를 뀌었다. "꿈일 뿐이지." ..  (99, 103쪽)

 

 《아버지의 쌀알》에 나오는 마을 어르신 '인톤'을 비롯한 모든 농사꾼들은, 당신들이 태어나기 앞서부터 당신들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오늘날까지 어느 한 번도 '땅에 바친 땀을 내 배를 채우는 보람'으로 맛보지 못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소작삯을 바쳐야 했고, 엄청나게 소작삯을 챙기는 땅임자는 도시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아갑니다. 도시에서 '시골마을 문제'를 풀겠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은 언제나 책상물림으로 말다툼을 일삼다가 때때로 군중집회를 열지만, 총과 몽둥이와 깡패를 앞세우는 정부마냥 똑같이 총과 몽둥이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평화를 찾는 길을, 아름다움을 찾을 길을, 즐거움을 찾아나설 길을 밝히지 못할 뿐더러 느끼지 못합니다.

 

.. 다시 정치 이야기잖아. 진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건 도시 사람들이나 해당되는 문제다 … "오빠는 총을 쏘고,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그들을 죽일 건가요? … 집회 때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 사람들을 죽이는 일은 … 절대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  (174, 319쪽)

 

 '진다' 같은 농사꾼 아가씨가 태국 방콕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이 나라 농사꾼들이 서울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매한가지입니다. 태국 농사꾼 삶하고는 동떨어진 채 흐르는 태국 정치 흐름은, 한국 농사꾼 삶하고는 동떨어진 채 굴러가는 한국 정치 흐름과 마찬가지입니다.

 

 태국은 방콕으로만 이루어진 나라이고, 한국은 서울로만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태국 지식인은 오직 방콕에만 모여들고 있으며, 한국 지식인은 그저 서울에만 모여들고 있습니다. 태국 방콕은 태국 시골에서 젖줄을 빨아들여 머리만 디룩디룩 커지고 있으며, 한국 서울은 한국 시골에서 젖줄을 뽑아들여 머리만 대롱대롱 커지고 있습니다.

 

.. 마을 사람들도 집 밖으로 뛰어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진흙이 묻은 옷을 벗어 버리고 맨몸으로 따뜻한 빗속을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발가벗은 갈색 엉덩이들이 비에 젖어 번들거렸다. 아낙들은 약초가 심겨진 광주리들을 빗속으로 옮겨 놓았고, 그러는 동안 남자들은 지붕에서 떨어지는 비를 받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배수관 아래에 유약을 바른 항아리들을 밀어넣었다. 한 늙은 남자는 자기 뜰의 구석에 홀로 선 채, 얼굴을 높이 쳐들고서 혀로 빗방울을 받아먹고 있었다 …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하던 일이나 계속하려무나 … 빗속을 뛰어다녀. 나도 뛸 수만 있다면, 당장 바깥으로 나가 달리고 있을 거야!" … 달리는 동안 맨발바닥에 밟히는 땅은 부드럽고 유연했다. 진흙을 다시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 비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이렇게 거의 말라가던 모들도 다시 살아나, 줄기를 꼿꼿하게 위로 쳐들고 있었다 .. (338∼339, 348쪽)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쌀알》은 어린이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어른책'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면 '그냥 문학'이라 하지 않았겠느냐고. 이러면서 어른들이 먼저 읽고 생각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어린이책이라면 어린이만 읽는 책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일쑤인데,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작품이건 문학이건 무엇이건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눈높이로 다스린' 책이 바로 어린이책입니다.

 

 한결 쉬우며 부드럽고, 더욱 살가우며 따스합니다. 좀더 아름답고 눈물겹습니다. 훨씬 사랑스럽고 믿음직합니다.

 

 아버지가 거두는 쌀알은 어머니가 함께 거두는 쌀알입니다. 어머니가 함께 거두는 쌀알은 할머니가 예부터 거두어 온 쌀알입니다. 할머니가 예부터 거두어 온 쌀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아 기르던 아버지가 나란히 거두어 온 쌀알입니다.

 

 이 쌀알은 누구 손에서 나와 누구 손을 거쳐 누구 입으로 갈까요. 이 나라 한국에서 우리가 나날이 받아먹는 쌀알은 어디에서 어떤 손길로 나와 어느 자리에서 어느 손길을 거쳐 우리 입으로 들어올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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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쌀알

민퐁 호 지음, 최재경 옮김, 달리(2009)


태그:#어린이책, #농사, #태국, #책읽기, #먹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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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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