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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사이에 두고 선물이 두 곳으로부터 배달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그 무엇보다 책을 선물로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먹거리 입거리보다는 책을 선물로 보내주곤 합니다. 나와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들은 세계관에서 나와 공통분모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다룬 책을 알아서 보내옵니다. 목회자인 이유로 신앙 서적이 앞자리에 차지하고 있지만 그 외 문학과 역사 그리고 정치 사회 쪽의 책들도 간간히 섞여 있습니다.

 

최근 며칠을 사이에 두고 받은 책 선물은 좀 색다른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이신 유정 조동호(榴亭 趙東祜) 선생기념사업회에서 만난 분들이 보내온 것이어서 더 애정이 갑니다. 먼저 사흘 전(5월 13일)에 받은 선물은 <2009 할렐루야교회 요람>입니다. "미래를 향하여 준비하자!"라는 슬로건 아래 엮은 요람에 올망졸망 관심 가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교회 집사님으로 신앙생활에 열심이신 조윤구 집사님(선생님에서 갑자기 '집사님'으로 쓰려니 아주 어색하군요)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여느 단행본에 뒤지지 않을 꾸밈새가 먼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분들' 난에는 김용성 권사(조 선생님의 사모님), 이중현 집사(조 선생님 조카사위) 그리고 조윤구 선생님도 집사 칸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노란 포스트지를 해당 페이지에 예쁘게 붙여 표시까지 해 놓았습니다. 특히 목회를 하고 있는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부록에 들어있는 교회예식지침입니다. 성례 결혼예식 장례예식은 교단마다 아니 교회마다 차이가 나서 혼돈될 때가 많은 데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활용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부러운 교회의 신실한 신앙생활들이 눈에 모자이크되어 들어옵니다. 유정기념사업회에 관계하는 유일한 목회자이기 때문에 기념사업회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 송구할 때가 있습니다.

 

또 다른 책 선물은 조치원에 사시는 김제영 선생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김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곱게 연세를 잡수신 분이구나 하는 감정을 갖습니다. 팔순을 넘기신 김 선생님은 여러모로 현역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정년'이라는 단어가 감히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부터가 젊은이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싱싱하시고 또 소설문학도 계속 발표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시국이 어수선할 때는 날카로운 칼럼으로 불의한 세력에게 일침을 가하시는 분입니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님은 지금도 <the Journal of Music>, <ART KOREA>에 예술평론가로 칼럼을 고정적으로 싣고 있습니다. 저의 편향된 시각인지 모르나 세상 흐름에 비판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예술 쪽엔 다소 어두울 수가 있는데, 김 선생님은 그곳에도 아주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음악과 미술 전문지 새달(5월)치를 저에게 선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음악 저널>엔 "김제영의 음악풍경"이란 고정 칼럼란이 있습니다. 이번 5월호에는 '임시정부수립 90주년 기념음악회와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을 위한 음악회'에 대한 기사를 온밀(溫蜜)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ART KOREA>에는 "'운지족가락(云知足可樂)의 퍼포먼스' 이종국의 작품세계"라는 제목 아래 우리 고유의 전통을 아름답게 계승하면서도 현대성을 결코 배척하지 않은 이종국의 작품 세계를 정치(精緻)하게 그려놓고 있습니다. 대단한 노익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아오신 연륜을 읽을 수 있는 잣대는 많을 것입니다. 먼저 외모의 노쇠에서 또 입은 복장에서도 그것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갖고 있는 뒤쳐진 사고(思考)에서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것에서 그것을 느낍니다. 사람의 필체에서 먼저 살아온 연륜을 느끼는 엉뚱함을 갖고 있습니다. 김제영 선생님의 필체는 무척 떨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마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지난 번 보내주신 <燕岐文學>에서도 그랬고 또 이번 예술 전문지를 보내 주시면서도 직접 격려의 글을 담아 보내신 것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명재 목사님, 목사님을 떠올리면 할렐루야가 울리는 듯합니다. 행복을 주신 것이지요. 김제영 2009. 5. 13."

 

이런 내용의 글에서 저는 또 다른 감회에 젖습니다. 연세가 드신 김 선생님이 힘에 부쳐 아마 필체가 많이 떨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떨린 필체에서 산전수전에 형극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은 한 삶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정국 이어 6.25동란, 군사독재... .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의와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온 한 노 전사를 발견하는 듯해 마음이 짠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유정(榴亭)의 장남되시는 조윤구 선생님, 소설가이자 현역 예술평론가로 활동하시는 김제영 선생님. 두 분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분들입니다. 연세들이 많으시지만 아직도 할 일이 그 분들 주위에 쌓여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관계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두 분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기 싫은 관계, 우리의 사이를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참으로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그:#책선물, #유정 조동호, #김제영, #조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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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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