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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2월부터 열리고 있는 한 독특한 전시회가 논란이 되고 있다.

2월 12일부터 파리 시내의 '마들렌느 공간'에서 시신전시회가 개최됐다. "개방된 Our Body"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17인의 진짜 시신을 여러 포즈로 치장해 전시했다. 인체 내의 체액을 실리콘으로 전환해 시체가 장기 보관될 수 있도록 한 것. 특이한 점은 이들이 모두 동양인이라는 것이다.

이미 미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 리용과 마르세이유 등에서 3천만 명이 관람한 이 전시는 파리에서도 입장료가 15.5유로(대략 2만8천원)나 되는 거금임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파리의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진짜 시신을 전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들은 왜 모두 동양인인가. 이 시신은 어디에서 온 건가?"

시신 전시, 파리에선 안 되나요?

'our body' 시신 전시회 포스터
 'our body' 시신 전시회 포스터
ⓒ 앙꼬르 이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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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주최 측인 '앙꼬르 이벤츠'(Encore Events)에 따르면, 이 시신들은 '홍콩 해부학과 공예학 재단'(foundation Anatomical Sciences and Technologie of Hong Kong)으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다. 재단 측은 당사자들로부터 생전에 사후 전시 약속을 받은 바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인권단체 '사형반대를 위해 다함께'와 '중국연대'는 "이 시신들은 중국 사형수의 시신일 가능성이 높다,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사형수의 시신을 거래해 파리 시내에서 전시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법원에 전시금지 급속가처분신청을 냈다. 프랑스 민법 16조는 '의료적 필요성'이나 '치료학'이 아닐 경우, 인간의 육체 전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앙꼬르 이벤츠 측은 전시회의 목적이 교육적이고 과학적이라며 타당성을 주장했다. 또 시신 전시에 관해 프랑스 법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전시 금지 가처분 신청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섰다.

전시회 주최자인 파스칼 베르나르뎅은 "만약 이 전시회가 불법이라면 루브르에 있는 이집트 미라도 금지해야 되고, 모든 해부박물관도 금지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4월 21일, 파리법원은 인권단체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시회 금지 판결을 내리고, 24시간 이내에 전시장을 철수하라고 한 것. 이 결정에 불복할 경우 하루 2만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시신 농락, 파리에서는 용납 못해"

루이 마리 렝자 판사의 금지 이유는 이랬다.

"법적으로 시신이 있을 공간은 무덤이다. 전시회를 통한 육체의 상업화는 인간 육체 존중에 어긋나는 일이다. 17명의 중국인 시신은 정부의 공권력과 협조해 제대로 매장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두 인권협회의 변호사인 리샤르 세디오도 민법 16조 1항을 인용해 "인간 육체 존중은 사망으로 끝나지 않는다"라며 "사망자의 유해는 존경과 품위, 예절에 맞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금지된 Our body". <리베라시옹> 관련 보도
 "전시금지된 Our body". <리베라시옹> 관련 보도
ⓒ 리베라시옹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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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최 측은 이에 반발하며, 즉각 항소했다. 전시회장은 판결 다음날인 4월 22일부터 문을 닫았지만, 주최 측은 2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전시회장을 유지했다.

그런데, 파리법원은 4월 30일 2심에서도 전시금지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에서 시신 보호를 강조했던 법원은 2심 판결에서는 시신의 출처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끌로드 마장디 항소법원장은 "앙꼬르 이벤츠 사는 시신의 출처에 대한 합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쟁이 되고 있는 시신이 정당한 방법으로 거래되었는지 알 수 없다, 시신 전시 승낙에 대한 점도 확실치 않다"며 전시 금지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5월 10일까지 예정되어 있었던 파리 시신전시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5월 22일부터 8월 23일까지 파리 동쪽에 위치한 벵센느 숲의 '파끄 플로랄'(Parc floral)에서 예정됐던 전시일정도 취소됐다.

파리의 지성은 아직 깨어있다?

별 논란 없이 치러온 시신전시회가 유독 '문화의 도시'라는 파리에서만 금지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파리에는 아직도 깨어있는 지성이 살아있다" "선정적인 예술에 반기를 들어 오늘날 세계에 난무하는 모든 종류의 빗나간 예술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베라시옹> 인터넷 판에는 전시회 금지 판결과 관련해 무려 366개의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이랬다.

"미리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물론 이 전시회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여러 문제를 제기하지만 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난 사망한 자에게 '존경심이 결여'되는 걸 선호한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형편없는 조건의 지하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살아있는 자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다." tato

"이 전시회를 예술적으로 여기는 자에게 묻고 싶다. 내 아들, 부모, 처, 남편 등 귀중한 사람들의 시체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보이고 싶은가?" belinda 94

"이 전시회의 상업적 목적이 너무 눈에 드러나 일부로 보러가지 않기로 작정했다. 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 TV 방송이 있으면 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취할 수 있는 항거 방식이다. 그러나 판사가 대신 나서서 우리 대신 전시를 금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 진정한 벌은 관람객들이 가지 않는 일이다." fran7


태그:#시신전시회,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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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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