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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이 비싸서 야단이다. 한 학기에 500만원 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만약 집을 떠나 외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생활비에 책값까지 쳐서 1년에 2천만원 든다는 이야기도 나올 법하다.

자식이 두 명, 세 명이 되면 이를 감당해야 하는 부모의 삶은 어떨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하지만 대학생 한 명에게 드는 1년 비용이 천만원이든 이천만원이든 우리 집은 대학 등록금 걱정은 없다. 대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열아홉과 스물 한 살인 아이가 있지만, 둘 다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대학에 진학할 계획도 없다. 큰 애는 작년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응시했다가 2차 면접에서 미끄러진 뒤 대학 갈 마음을 접은 것 같고, 작은 애는 대학에 안 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지 제법 오래 됐다.

긴 머리의 여학생들이 삭발까지 하면서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고,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선거공약까지 들먹이고 있는데, 만약 대학 등록금이 지금의 반값이 된다 해도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이다. 등록금이 비싸서 대학을 안 가는 게 아니라, 대학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안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천만원대 대학, 꼭 가야 하나

10일 오전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는 전국대학생대표자 농성선포식이 마친 뒤 20명의 대학생 대표자들이 집단 삭발식을 하던 도중 경찰이 '차도에서 내려와서 불법 시위를 한다'며 3차례 경고방송 직후 곧장 연행작전에 돌입해서 남녀 대학생 49명을 강제연행했다.
 10일 오전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는 전국대학생대표자 농성선포식이 마친 뒤 20명의 대학생 대표자들이 집단 삭발식을 하던 도중 경찰이 '차도에서 내려와서 불법 시위를 한다'며 3차례 경고방송 직후 곧장 연행작전에 돌입해서 남녀 대학생 49명을 강제연행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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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논란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한 마디로 대학 교육의 값이 비싸다는 건데 좀 싸지면 괜찮다는 말인가 하는 것이다.

품질은 별로인데, 값만 비싼 게 요즘 대학이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할 때는 반드시 뒤따라야 할 셈법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런 얘기가 별로 왕성하지 않다.

물론 대학을 나와야 그래도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은 물론 사람 구실을 하지 않겠냐고,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미신이라고 믿는다. 집단 무의식으로 강고하게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미신. 한국 교육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라면 바로 이것이다. 이 미신을 만들고 전파한 것.

진리를 탐구하고 시대의 지성을 키우는 산실 역할을 우리의 대학이 하고 있냐고 물어 보는 것 자체가 남세스럽다. 솔직히 지금의 대학은 취업 알선기관이 아니던가.

교육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보고 사람을 자원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대학에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이는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대학에 갈 필요성 못 느끼는 아이들

이제 막 국회 앞 천막농성 600일을 맞는 비정규교수들의 애환이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대학과 그 관계자들은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어야 한다. 정부와 대학당국의 교육시장화 앞에서 무력해진 교수들. 겹치기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교수와 교수, 조교 학생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먹이사슬. 넘쳐나는 논문의 이중게재와 표절들. 취업난의 피난처가 되는 대학원 진학. 이게 뭔가?

약한 이웃을 돌보고 세상만물을 공경하며 자신의 인격적 소양을 드높이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 지금의 대학이 아니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전문 지식이 한 순간에 흉기가 될 수 있다.

천만원 단위의 거액을 내 가며 지금의 대학을 가야 할 이유가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했으면 한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공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작은 아이는 사단법인 밝은마을에서 주관한 <100일학교>를 통해 삶의 방향과 가치를 정립하고 있다. 사진은 <100일학교>에 참가간 아이들의 모습.
 작은 아이는 사단법인 밝은마을에서 주관한 <100일학교>를 통해 삶의 방향과 가치를 정립하고 있다. 사진은 <100일학교>에 참가간 아이들의 모습.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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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애는 지금 열심히 공부한다. 작년에 입시준비 할 때도 계속 해 왔던 공부다. 다지원(다중지성의 정원)에서 하는 세미나에 열심히 나가고, 참여연대에서 하는 고전세미나 셰익스피어 읽기에도 나간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프랑스 문학도 공부하고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소설 공부도 한다. 드로잉 공부도 한다. 모든 공부는 아이가 좋아하고 그래서 잘 하는 과목들이다. 자기가 벌어 가면서 한다.

작은 아이도 그렇다. 삶에서 배우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자기 스스로 정한 과목이다. 작년에 사단법인 밝은마을에서 주관한 <100일학교>를 통해 삶의 방향과 가치를 잘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진짜 공부는 대학 '밖에' 있다

진짜 공부를 하는 곳은 대학 '밖에' 있다. 참되게 살면서 하는 밥벌이는 널려 있다. 세상에 널리 이로운 존재가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 분명하면 된다고 본다. 그렇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면 지식, 경험이면 경험, 대학이면 대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 없이도 이렇게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고 확신한다. 무슨 성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인류 역사는 이래왔다. 최근 반 백 년 안팎에 와서 이 난리일 뿐이다.

두려움만 벗어나면 길은 많이 있다. 눈여겨보면 다 보인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런 사람들이 슬슬 뭉치는 모습도 보인다. 다들 잘 하는 불매운동 있지 않은가? 대학 불매운동 하자. 한 발만 내딛으면 그 다음은 쉽다.


태그:#등록금, #대학,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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