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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뭐야?"


금방 쪄낸 쑥버무리를 그릇에 담아놓고 아들아이를 불렀다. 쑥으로 만든 연둣빛백설기, 쑥바람떡, 쑥개떡은 먹어봤어도, 별 모양새 없이 굵은 털실을 풀어놓은 것처럼 푸실푸실한 쑥버무리라는 걸 녀석은 처음 본다.


어릴 적, 해마다 이맘때면 쑥버무리는 흔하디흔한 간식이었다. 사계절 내내 먹는 게 아니어서 질리는 음식도 아니었다. 집 근처엔 언제나 산이 있었고, 쑥은 동네 사람들이 날마다 뜯어도 지천이었다. 엄마는 손바닥만 한 쑥개떡을 할 때도 있었지만, 쌀가루나 밀가루에 소금을 넣고 쑥을 버무려 한 솥 쪄낸 쑥버무리를 자주 만들었다. 나는 쌀가루를 입혀 끈적끈적하게 덧입혀진 것보다 끈기가 덜한 밀가루에 버무린 쑥버무리가 더 구수하고 맛있었다.


쑥버무리는 친구들 집에 놀러가도 푸짐하게 내놓았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쑥버무리만 한 게 없었다. 설탕이나 당원(뉴슈가)을 넣지 않은 '엄마표 쑥버무리'는 한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꿀꺽 삼키면 입안에 감도는 개운하고 진한 쑥내 때문에 자꾸만 손이 갔다.

 


더 늦기 전에 동네 산에 쑥을 한번 캐러가야지 했다. 하루 이틀 미루다 비가 오고 나서 가보니 가물어서 조그맣게 누웠던 쑥이 쑥 올라왔다. 근처 어디에 복숭아꽃 살구꽃이 있는지 바닥엔 꽃잎도 떨어져 있다.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이름도 모를 새들이 한번씩 지저귀고 지나갔다.


두 시간 쯤 쪼그리고 앉아 캐온 쑥이 제법 많았다. 시장 쪽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쑥을 몇 번 사다가 쑥국을 끓여 먹긴 했지만, 이렇게 내가 캐온 풍성한 쑥을 보니 쑥개떡이나 쑥버무리 생각이 간절했다.

 

 

 

 

결혼하고 가끔씩 쑥개떡을 해먹긴 했지만, 쑥버무리를 만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쑥은 살짝 삶아 쑥버무리용으로 떼놓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었다. 옛날에 먹었던 쑥버무리 맛을 기대하며 밀가루를 쓰기로 했다. 엄마가 해주셨던 맛을 떠올리며 냄비에 물을 넣고 구멍 난 찜받이를 걸쳤다. 소금 뿌린 밀가루에 쑥을 살살 버무려 그 위에 올려놓고, 십여 분이 지나니 냄새가 솔솔 코에 감돈다. 

 

다 쪄진 쑥버무리를 접시에 담았다. 옛 맛을 생각하며 한 입 넣자 소금을 적게 넣었는지 좀 싱겁다. 몸에 좋은 거라고 아이에게 쑥버무리를 들이대는데, 아이는 별로 내켜하지 않으며 겨우 씹는 흉내를 낸다.


"모양도 이상하고 맛도 꽝이네. 엄마나 많이 드세요!"


녀석은 외면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쑥버무리를 건네니 싱겁다면서 간장을 찾는다. 냄새만 '옛날'이고 맛은 영 아닌 쑥버무리에 나도 간장을 찍었다. 그렇게 먹으니 꼭 쑥부침개 같은 맛이 났다. 간도 제대로 안된 어설픈 쑥버무리를 그럭저럭 다 먹은 남편이 말했다.


"담부터 그냥 쑥개떡 해먹자."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 송고


태그:#쑥버무리, #쑥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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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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