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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가친척도 친구도 살지 않는 나라여서 늘 먼발치에서 책으로 보거나 TV나 인터넷으로 만나는 나라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생은 먼 항해를 하다가 신기루 대륙을 만나듯이 내게는 꿈이나 꾸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미국을 우연치 않은 기회가 생겨서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미서부, 서부극에 나오는 대륙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미서부 여행은 지금 살고 있는 지역 소래초등학교 여자 동창생들과 함께 하게 된 여행이다. 30여 년 넘게 만나던 친구들 사이에 그동안 모인 회비가 많아서 문제가 생겼다. 친구들 모임에서 이 돈의 쓰임새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의논을 했다. 그냥 묶어두기엔 너무 많은 회비기에 더 나이 들기 전에 친구들이 함께하는 멋진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행 장소에 대해서 동남아, 유럽 등을 살펴보며 장소도 여러 곳을 선정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돈에 맞추어서 미서부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미주 6박8일의 여행은 자금도 만만치 않다. 평상시 생활 속에서 쪼개고 쪼개어 살림을 하는데 나 하나 즐겁게 여행하자고 목돈을 꺼내 쓴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있어서 여행비는 회비로 충당하고 자부담 14만원만 더 내고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6박8일 일정의 여행를 비록 회비로 간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과 많은 걱정과 많은 조바심을 하게 되었다. 먼저 일주일이나 집을 비우려니 불안한 마음 하나와 남편이나 식구들도 못 가 본 미주를 내가 먼저 간다고 생각하니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둘 그리고 또한 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운 때에 외국 여행이라니 주위에서 바라보는 이목도 거북스러워서 말을 꺼내는 일이 조심스러운 세 가지 이유 외에도 많이 있지만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아이들의 후원으로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하고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다.

 

여행 당일 남편은 굳이 인천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공황까지 갔다가 다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주고 싶지 않아서 시흥가스안전공사 앞에서 타는 공항버스를 이용하겠다고 하였다. 그곳에 오는 버스는 한번 타면 공항 대합실 앞에서 내리니 식구들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공항에 가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딸은 공항버스 시간을 알아주고 남편과 딸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버스는 정해진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도착하여 조금은 식구들의 신경을 쓰게 하고 버스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엔 함께 여행할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고 이번 여행을 의뢰한 여행사를 하는 남자 동창친구가 출국 전 수속을 밟고 있었다. 이내 우리들은 그 친구와 작별의 인사를 하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섰다. 면세점에서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을 구입하고 오후 9시 10분 비행기를 탑승했다.

 

드디어 마음으로만 그리던 평생에 한 번도 못 갈 줄 알았던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 생애에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다. 이 횡재를, 6박8일이라는 횡재를 안고 후회 없이 알차게 즐기고 느껴야 하는 순간들이 우리들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집안에서 비워질 내 자리 때문에 생길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챙겨주지 않으면 식사도 거르기 일쑤인 남편과 아들의 식사 문제와 또 잡다한 여러 가지 집안 일 때문에 편치 않았지만 막상 비행기를 오르니 다 털어버려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친구들도 똑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모두들 착찹해 있는데 한 친구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한다.

 

"얘들아, 우리 평생 내손으로 하던 일들 잊어버리고 일주일 동안이나마 손에 물 안 대고 호강해 보자."

"해주는 밥 먹고, 재워주는데 자고. 데려다 주는데 가서 구경이나 하면서 말야."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렇게 호강할 데가 어디 있나. 집에 있으면 먹고, 자고, 마시고, 치우고, 빨고, 손에 물이 마를 날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집에 가는 날까지 해주는 밥 먹고, 자고, 구경하니 이것은 분명 낯선 풍경 속에서 여왕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잡다한 집안 생각은 더욱 잊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여행은 함께 하는 친구들과 마음을 트게 하는 마력이 있다. 숙자도 영희도 애자도 영화도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지만 집안의 모든 걱정거리들을 잊고, 서로 속을 털어놓으며 낯선 이국에서 같은 공간, 같은 공기와 같은 문화 속에 빠져서 같은 시간을 지내면서 그동안 못 나누었던 우정을 더욱 두텁게 하는 기회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탑승시간은 장장 11시간이다.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서로 좋아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 친구씩 잠들기 시작한다. 나도 집에서라면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들었는데 영 잠이 오질 않는다. 우리들이 앉은 좌석은 비행기 가운데 좌석이라서 자리는 더욱 좁고 화장실을 가려면 옆사람들을 깨워야하니 불편하기만 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기내에서 시간을 알린다. 미국시간 오전 11시 한국시간 오후 4시란다. 한밤중이라고 생각했는데 햇살이 눈부시다. 현재는 7시간 차이가 나는 지점에서 시간 적응을 하려니 계산이 안된다. 현지 시간 1시나 되어서 기내식이 나왔다. 내가 주문한 식단은 단호박죽과 빵, 과일 두 쪽의 간편한 식사가 여행의 첫 식사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시흥시민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여행, #초등 여자동창생, #미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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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민뉴스에 기사를 20 건 올리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마이 뉴스에도 올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올렸던 기사는 사진과 함께 했던 아이들의 체험학습이야기와 사는 이야기. 문학란에 올리는 시 등입니다. 이런 것 외에도 올해는 농촌의 사계절 변화하는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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