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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동안 함께 했던 아이들이 모두 그립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그리운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교과담임 시절에 만났던 아이다. 그동안 그 아이를 보러 교실로 찾아갈까, 아니면 교담실로 부를까 고심하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참았었다. 이제 일 주일 후면 떠나야 하니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그리운 아이, 현지를 불렀다. 오늘쯤은 불러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동안은 편애하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대해주었다. 편애처럼 아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유난히 애틋하게 지금까지 가슴에 담기는 아이가 있다. 그러나 만일 현지가 마지막 수업 다음날 편지로 제 마음을 표현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현지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채 떠났을 것이다. 아마도 내게 있는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그냥 그렇게 떠났을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5학년 5반 현지라고 합니다.^0^

절 기억하고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읽어봐라~하시는 책들 꼭 읽어보겠습니다.

 

이 추운 겨울방학을 알차게 보내도록 마음의 양식을 쌓겠습니다.

그리고 5학년 동안 '마음의 예절'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공부한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내가 왜 그렇게 공부했는지.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었는데. 후회도 해봅니다.

이젠 지나가버린 시간인데……

 

선생님은 저에게 가장 소중한 선생님이실 겁니다.

수업시간에 집중 안하고,

친구들과 떠들고 그랬지만. 화 한 번 안내시고, 매 한 번 안 때리시고.

그래도 소중한 말씀들 해주시고 선생님 감사합니다.(ㅠ.ㅠ)

 

선생님 제가 보낸 메일은 아주 짧지만.

아주 아주 짧지만 보시고 답장해주세요.

꼭 해달라는 말을 아니구요. 시간 나시면 한 마디만 해주세요.

 

선생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선생님, 복 많이 받으시고 언제나 건강하세요.

5학년 5반 현지 드림

 

밤새워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음악 듣는 것을 즐기는 큰아이는 대학 2학년 때 사랑을 만났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는 곁에 와서 내 눈을 들여다보며 "엄마! 나 달라진 거 없어?" 하고 물었다. 그래서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는 "여자친구 생겼구나" 했더니 말없이 웃기만 했다. 다시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다. 학생회 활동하면서 눈에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극히 내성적인 아이는 표현하지도 못한 채 그저 혼자서 몰래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그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모양이다. 혼자서 짝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다가 그만 혼자서 마음을 정리하고는 친구를 만나서 말이나 하고 끝내야겠다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도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둘 다 끝내려고 한 자리에서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입대 기간에도 변함없이 이어진 그들의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늘상 주장하는 것처럼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랑만은 표현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사랑스러운 현지는 내게 그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던 애틋하고 소중한 아이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지금쯤 고등학생이 되어있을 현지가 오늘은 참 많이 보고 싶다.


태그:#사랑,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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