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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군가가 저희 차 열쇠구멍에 강력본드를 붙여놔서 차 문을 망가뜨려 버렸습니다. 이를 수리하는 데만 9만원이 들어갔지만, 그보다 더 걱정스러웠던 것은 해코지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누군가가 저희 차 열쇠구멍에 강력본드를 붙여놔서 차 문을 망가뜨려 버렸습니다. 이를 수리하는 데만 9만원이 들어갔지만, 그보다 더 걱정스러웠던 것은 해코지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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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저는 이웃집과의 갈등으로 이사와 법적 소송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2층 아저씨와 주차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고 저는 3층 여성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2층의 아저씨가 차를 댈 곳을 지정하며 우리에게 그곳에 주차할 것을 '명령'하는 듯했기 때문에 아내는 주차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었다고 속상해 했습니다. 3층의 여성은 밤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통에 제가 몇 번 내려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사이가 안 좋아졌습니다.

더군다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저희 차에 해코지를 하는 바람에 속앓이는 더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이 일이 2층 아저씨이거나 3층 여성일 거라고 단정지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3층 여성에게 소송을 걸기 위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녁 7~8시 이후에 소음을 일으키는 것은 '안면방해죄'에 해당하는데, 증거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지를 적고 전문가에게 소음 측정 의뢰를 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이와 같은 사정을 블로그에 올렸고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실비단안개'라는 네티즌님의 따뜻한 댓글 하나가 빙하처럼 얼어있던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두 가구의 주인을 만나면 먼저 웃어 드리세요~~ ^^"

그제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제목처럼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비워놓지 않은 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마음대로 주차하고 싶고 저녁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이웃들도 충분히 그럴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00원어치 복숭아 10개가 풀어준 오해

이웃에게 복숭아를 갖다준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습니다.
 이웃에게 복숭아를 갖다준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습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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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좀 들어보자 하는 마음에 시장에서 5000원을 주고 복숭아 10개를 사서 이웃들에게 다가갔습니다. 2층 아저씨는 이웃들 중 가장 오랫동안 여기서 살았고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건물에만 9집이 살고 있었고 주차공간은 6개밖에 없기 때문에 아저씨로서는 차의 사용 빈도를 검토해서 위치를 지정해준 것이었습니다.

3층의 여성분은 직장인이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악기는 자꾸 다루지 않으면 멀어지기 때문에 야근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복숭아를 들고 먼저 찾아가 사과를 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충분히 좋은 이웃이었는데 잘못했으면 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우리 건물에서는 지난 해에만 두 집이 주차 문제로 이사를 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 비워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마음공부를 해왔다고 자부하는 저도 이웃과의 오해 때문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만약 '온라인 이웃'(네티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잉걸'뉴스가 방송도 타고 책으로 만들어지게 됐어요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작가로부터 제 기사를 방송과 책으로 다뤄도 좋겠느냐는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잉걸기사가 방송과 책으로 진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작가로부터 제 기사를 방송과 책으로 다뤄도 좋겠느냐는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잉걸기사가 방송과 책으로 진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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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는데 제 미천한 글솜씨 때문인지 메인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잉걸'로나마 겨우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내내 아쉬웠고 <오마이뉴스>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작가로부터 오마이뉴스 쪽지가 도착했는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니라 저의 '복숭아 사건' 기사를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방송을 통해 방영될 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출판되고 있습니다. 책의 인세는 불우이웃들에게 쓰여지므로 잉걸뉴스 하나로 저는 소정의 수입과 함께 '선행'도 하게 된 것이죠.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데, 이런 마술 같은 일이 제게 벌어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난 6월 말 강원도 오마이뉴스 스쿨에서 강연자로 나왔던 (전) MBC PD수첩 "황우석 편"의 주인공 한승호 CP는 방송사에서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오마이뉴스> 잉걸뉴스까지 서캐훑이한다고 말했는데 강연을 들은 시민기자들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잉걸기사는 MBC, KBS라는 한국의 양대 방송사에서 애타게 찾고 있는 아이템의 보고라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법정비용, 복숭아로 대신할 수 있다면...

저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오마이뉴스> 기사의 대부분은 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는이야기' 섹션에는 글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숭아 사건'을 '사는이야기'에 쓴 이유는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시골 출신이라 이웃들과 나눠야 한다는 교육을 일상적으로 받아왔는데, 서울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각박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서글플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해 우리 건물에서 이사를 떠났던 사람들처럼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사소한 마음 씀씀이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법적 소송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는 굳이 소송으로 가지 않아도 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변호사 수임료나 재판비 등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복숭아'로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절약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입니다.



태그:#복숭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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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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