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년 5월, 중간고사로 지쳐 있는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홍현진 학생? 여기 영문학과 사무실인데요. KBS에서 홍현진 학생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전화가 왔거든요."

"(놀라며)네? KBS에서 왜요?"

"홍현진 학생, 작년에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에 과외기사 쓴 적 있죠?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

"아!(그걸 어떻게 알았지?) 네... 그런데 어떤 프로그램에서요?"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이요. 연락처 알려줘도 괜찮아요?"

"네? 네... 괜찮아요."

 

찰칵.

 

헉.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이하<소비자 고발>)에서 나를 왜? 대학생 기자상 과외기사라면... 쓴 지가 벌써 반년이 다 돼 가는데 왜 지금? 그나저나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인데 왜 과사에 연락했지? 수많은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비자 고발>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기사 보고 KBS<소비자 고발>서 인터뷰 요청오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작가(이하 A작가)인데요. 저희가 이번에 과외알선업체의 횡포에 대해 취재하고 있는데, 자료를 찾다가 작년에 현진씨가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봤어요...(중략)..."

 

여기서 잠깐, 먼저 문제의 '과외기사'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그러니까 벌써 재작년이 되어버린 2007년 11월, 나는 제2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에 참가해 운 좋게도 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내가 썼던 세 편의 기사 중 첫 번째가 바로, 과외알선업체의 횡포를 고발한 '가르치는 사람 따로, 돈 버는 사람 따로'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과외를 구하기 위해 첫 달 과외비의 무려 60~80%를 과외중개업체에 수수료로 줘야 했던 ‘슬픈’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었다.

 

지금 읽어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이지만, <오마이뉴스>에 올린 첫 취재기사(그 전까지는 주로 TV리뷰를 썼다)라는 점에서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뭐 취재라고 해봐야 나와 주변 친구들이 주 취재원이었지만.

 

다시 전화내용으로 돌아가서, <소비자 고발>의 A작가는 내게 과외알선업체의 어떤 점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왜 그 내용을 기사로 쓰게 됐는지, 취재는 어떻게 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내 기사에 '취재원'으로 등장하는 친구들을 인터뷰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인터뷰라고? 살짝 망설여졌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대 '과외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올라가 있던 날, 나는 하루 종일 '쫄아' 있었다. 과외중개업체의 횡포를 학교 게시판에 고발했다가 '죽인다'는 협박 전화 및 문자를 수백 통 받았다는 친구의 친구이야기도 떠올랐고, 내 이름은 물론 학교, 학과, 학년까지 다 밝혀진 상황에서(당시에는 대학생 기자상 응모기사에 학교, 학과, 학년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제 과외는 다 구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당시에는 내가 기사를 잘 쓰지 못해서인지 별다른 일없이 넘어갔지만, KBS에서 인터뷰까지 한다면... 솔직히 '신변의 위협'도 살짝 느꼈다면 오버일까.

 

하지만 내가 했던 문제제기를 KBS에서 그것도 지금까지 숱한 화제를 낳았던 <소비자고발>에서 하다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아니, 도움이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 나는 내 남자친구 황모씨와 대학동기 박모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 좀 해달라고 말이다.(황모씨는 첫 달 과외비의 80%를 과외중개업체에 수수료로 내고 과외를 구한 지 한 달만에 학부모가 과외를 중단했고, 박모씨 역시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고 과외를 구했지만 과외중개업체가 갑자기 부도나서 과외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해 본 방송촬영, "얘들아 나 방송 나와"

 

사실, 인터뷰에 응하게 된 데는 A작가의 이 한마디가 큰 역할을 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현진씨랑은 저희가 꼭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싶어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현진씨랑은 꼭', '다른 분들은 몰라도 현진씨랑은 꼭'... A작가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왜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갑자기 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 듯한 느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말이다. 과외중개업체의 횡포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사명감'이 마구 샘솟았다.

 

A작가와의 몇 번의 통화 후에 나와 내 남자친구 황모씨는 중간고사 다음 날 각자의 자취방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자취방에서의 인터뷰라... 당연히 부담스러웠지만 ‘다른 분들은 몰라도 현진씨랑은 꼭’ 만나고 싶다는 데, 그게 뭐 대수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방송에 그것도 공영방송 KBS에 그것도 그 유명한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에 나오는데 어찌 추한 몰골을 시청자들에게 보일 수 있겠는가. '거금' 8만원을 들여서 머리도 했다.

 

촬영 당일, 이영돈 PD는 아니고 교육담당의 최지원 PD가 촬영기자와 함께 나의 누추한 자취방을 방문했다. 휴, 나는 방송촬영이 그렇게 어려운 건지 처음 알았다. 신문이나 인터넷기사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글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인터뷰이가 말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 혹은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방송은 '연출'이 중요하다. 특히, PD가 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면 취재원이 웃으면서 문을 여는데, 나는 그게 연출된 건지 그때 처음 알았다. 무려 1시간 반 동안 땀 뻘뻘 흘리면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다시 하고, 난데없이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 우수상 상패도 꺼내놓고, 괜히 기사 쓰는 '척'도 해보고. 민망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촬영해 임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촬영을 마치고 나는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방송출연 한다"고. "남자친구 황모씨도 같이 나온다"고. 아, 그리고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과 인턴을 담당했던 선배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내 ‘과외기사’를 처음으로 봐준 선배 말이다. 내 문자를 받은 선배는 "대견하다"며 "다음 주에 인턴 애들이랑 만나서 같이 방송 보면 되겠다"고 답문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방송이 나올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진씨랑은 꼭 인터뷰하고 싶다"더니... '통편집'이라고?

 

방송이 있기 며칠 전, A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출연료 때문에 전화했나?'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현진씨, 덕분에 취재 잘 마쳤고 편집도 다 끝났어요. 그리고 현진씨 남자친구분은 저희 방송 타이틀로 꽤 비중 있게 나오게 되었어요."

"아, 그래요? 잘 됐네요."

"그런데 현진씨... 최종 편집하는 과정에서 시간 관계상 현진씨 부분이 안 나오게 됐어요. 현진씨가 많은 도움 주셨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네?(괜찮은 척)... 아, 네...괜찮아요."

 

찰칵.

 

헉.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가족이고 친구들이고 심지어 선배한테까지 방송 나온다고 사방팔방 다 소문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뭐,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도 기사 쓸 때 실컷 인터뷰 해놓고는 기사 흐름이랑 안 맞아서 이름 한 줄 쓰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나의 첫 방송출연이 이렇게 무산되다니.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남자친구는 "역시 나는 방송체질"이라며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고, 친구들은 "도대체 인터뷰를 어떻게 했기에 통편집을 당했냐"며 쓰라린 속에 소금을 뿌렸다. 선배는 "으이구, 창피하다. 창피해"라며 나를 놀렸다.

 

드디어 <소비자 고발>이 하는 날, <오마이뉴스> 7기 인턴들과 함께 갔던 호프집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TV가 없어서 '통편집'의 순간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엄마가 나 방송 나온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놓은 걸 미처 ‘수습’하지 못해, 이모네 가족들은 "현진이 언제 나오냐"며 방송이 끝날 때까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방송을 본 엄마는 "○○(황모씨)는 잘 나왔더라"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마이뉴스> 덕분에 '첫 방송출연'할 뻔한 사연은 그렇게 잊고 싶은 '통편집의 기억'으로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때문에 생긴 일 


태그:#오마이뉴스, #소비자고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