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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사막의 로맨스’가 최고

 

사막 레이스는 참으로 재미있고 흥분되는 이벤트다.

먼저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그 사람의 인간 본성을 끄집어낼 수 있으며, 세계 각지의 친구들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광활한 자연 속에서 나약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역으로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드넓은 황무지와 끝이 안 보이는 대 자연 속에 홀로 남겨지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불쌍타 느껴진다.

 

그리고, 흐흐흐~ 많은 이들이 꿈꾸는 사막의 로맨스를 경험할 수 있다.

 

나는 로맨스를 하려면 ‘사막의 로맨스’를 하라고 적극 권장하고 협박하고 싶다.

왜냐하면, 사막이라는 이름의 낭만에 취하고, 부드럽게 휘감아치는 붉은 모래 언덕에 취하고,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 하늘의 별들에 취하다 보면 인종,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한 마음 한 몸(?)이 될 수 있다. 이성 친구가 필요하신 분은 ‘떠나라 사막으로!’.

 

그곳은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닌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축복의 땅이다. ‘그 이상은 묻지도 말고 알고 싶어하지도 마라, 괜히 머리 아프다. 걍 가보면 안다!’

 

 

따끈따끈 사하라

 

2008년 사하라 대회는 예전에 참가했던 2005년도에 비해 낮 기온 50도 정도의 따뜻한 날씨(?)로 부담이 없었지만 코스 난이도가 조금 높았다.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뭔 놈의 모래가 그리 많은지 전체 코스의 약 90% 이상이 모래 지역이었다. 그 중 진상 모래 구간은 발목까지 빠지는 깊이에 발 아래 쪽은 자유유형이 가능할 정도로 팍팍 돌아가는 모래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배 이상은 들었다. 그리고 기록적인 거리의 롱데이 100km는 내 몸 안의 모든 흑 마늘 진액을 쥐어짜는 듯한 괴로움과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그나마 위안은 남들처럼 물집이나 근육통 등의 부상에 시달리지 않아서 몸은 편했다는 것이다. 나도 오지 레이스 초창기에는 발의 물집 때문에 레이스 내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2003년을 기점으로 물집 걱정에서 벗어나 즐거운 레이스를 하기 시작했다. 오지 레이스는 훈련과 단련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장비, 신발, 양말의 선택이 필수다. 그만큼 장비를 보는 안목과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짬밥이 통용되는 사회다.

 

 
사막의 오아시스
 
사막의 오아시스 하면 예쁜 무희들이 춤추고 온갖 과일들과 먹거리가 있는 낭만을 꿈꾼다. 분명 어딘가에 그런 환상의 세상이 있다고 나는 깊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내가 대회 중에 만난 현실의 오아시스는 모래 천지 위에 외로이 홀로 떠 있는 작은 섬이다.
 
신기하게도 주위는 수십 킬로에 걸쳐 온통 모래 밭이지만 오직 한 곳 대추야자수가 있는 작은 섬에서는 물이 솟아 오른다. 그곳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막 여행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작은 안식처다. 황량한 사막에서 나무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든다. 잠깐 쉬어 간다는 것이 10분, 20분, 계속해서 엉덩이가 바닥에 붙어 있게 만든다.
 
그리고 사막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는 역시 사람이다.
레이스 중에 자신과 친한 사람을 만나거나 아니면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과 친구가 될 때 오아시스의 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나에게는 사막을 통해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때론 내 자신이 그들의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때론 그들이 나의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역학 관계는 삶의 또 다른 기쁨이자 희망이다.
 
 
오아시스에 있는 3번째 체크포인트에서 무거워진 몸에 잠시나마 에너지를 충전하고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부터 골인 할 때까지는 체크포인트가 없다. 즉 물이 없다는 소리다.
 
오늘도 처음 출발부터 계속해서 온통 모래 구간이다.
모래 언덕은 멀리서 보면 참으로 감미로운 여성의 부드러운 몸매를 하고 있지만 정작 그곳을 지나려면 마녀 같은 모습으로 돌변한다. 더욱이 날씨도 거의 영상 50도를 향해 달려가기에 태양에 달궈진 모래의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오르락 내리락 얕은 모래 언덕을 계속 넘고 평지다 싶으면 또 다시 오르락 내리락 사람 약 올리는 모래언덕의 연속이다. 내 앞으로 수백 미터 뒤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좀비 같은 참가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척 봐도 모두 지쳐서 엉금엉금 기어 간다는 게 느껴진다.
 
날이 더워서인지 물을 자주 먹어 얼마 안 남았다.
캠프까지 가려면 아무리 못해도 2시간은 가야 할 것 같은데 걱정이다. 그때 멀리서 진행 차량이 달려오면서 물을 공급해 주시기 시작했다. 이쁜이 ‘사만다’가 말하길, 날씨가 너무 더워 비상 사태라 긴급하게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이런 고마울 데가 다 있나. ‘사만다’는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맘씨도 곱다. 그런데 자기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너무 자주 말한다. 그래서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혹시 강한 부정이 강한 긍정?
 
‘사만다’가 건네준 한 통의 물병을 우리집 강아지 ‘라라’ 같이 꼭 껴안고 골인을 했다. 이놈의 골인 캠프는 사람 죽어갈 만 할 때면 나타나 염장과 희망을 주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내일 마의 100km 롱데이를 앞두고 바라 본 사하라의 노을은 가와이 유카고의 얼굴처럼 너무나 아름다웠다.
 
 

덧붙이는 글 | 사막의아들 유지성 / www.runxrun.com 

사막, 트레일 레이스 및 오지 레이스 전문가. 칼럼니스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 남극 레이스,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마라톤, Rock and Ice 울트라 등의 한국 에이전트이며, 국내 유일의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태그:#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 #사하라, #마라톤, #이집트,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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